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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집 막내 구단주-40화 (40/272)

40화

제주도에서 해물이 푸짐하게 들어간 해물라면 한 그릇을 말끔하게 비운 뒤, 배부른 배를 쓰다듬으며 나왔다.

“문어하고 홍합이 끝내주네.”

“알아보니까 이 집이 맛집으로 유명하더라구요.”

“그런 거 같더라. 우리가 좀 일찍 와서 다행이지. 조금만 늦었으면 한참 기다렸다가 먹을 뻔했어.”

포만감은 사람을 기분 좋게 만든다. 나는 눈앞에 펼쳐져 있는 바다를 보며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그러고는 미리 준비한 오픈카에 탑승했다.

김비서가 운전대를 잡고 나는 조수석에 앉았다.

“배도 부르고 하니까 오랜만에 김 비서의 드라이브 실력이나 느껴볼까?”

그런 내 말에 김 비서가 말없이 선글라스를 끼고 시동버튼을 누르고 핸들을 잡았다.

그러자 마니 사에서 만든 마니 시리즈인 ‘마니 컨버터블’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2인승이다 보니 자동차 크기는 작은 편이지만 속도감은 있었다.

우리는 시원한 바닷바람을 맞으며 기분 좋게 도로를 달렸다.

“야호~~”

오랜만에 느껴보는 편안함이 나를 더욱 기분 좋게 만들었다.

그런 내 반응을 슬쩍 본 김 비서가 말을 걸었다.

“도련님, 좋으세요?”

“아~ 당연히 좋지. 얼마 만에 누리는 여유냐.”

비록 휴가로 온 것은 아니지만, 짧게나마 누릴 수 있는 이 여유는 나에게 기쁨과 행복을 주었다.

“김 비서도 좋지 않아?”

“네, 좋네요.”

대답하는 김 비서의 입가에도 미소가 지어지는 걸 볼 수 있었다.

그렇게 도로를 달려 도착한 곳은 제주 시내에 위치한 호텔이었다.

“도착했습니다.”

우리가 묶을 호텔은 따로 있었다.

그런데 이 호텔에 온 이유가 있었다.

바로 만날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20층 스카이라운지로 가면 된다 했나?”

“네. 분명 그렇게 얘기했습니다.”

“알았어. 나 먼저 갈 테니까. 주차하고 들어와.”

“네, 그럴게요.”

차에서 먼저 내린 나는 호텔 안으로 들어갔다.

넓은 호텔 로비를 지나쳐 엘리베이터를 타고 20층으로 올라갔다.

띵!

열린 문 사이로 걸어 나가자 제주 시내가 한눈에 보이는 전망과 함께 넓은 스카이라운지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예약하셨습니까?”

“지태훈.”

“네, 확인되셨습니다. 자리는 이쪽입니다.”

직원의 안내를 받고 이동한 자리에는 이미 사람 한 명이 앉아 있었다.

그 사람은 날 보더니 화들짝 놀라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지태훈 대표님?”

“반갑습니다. 박태준님 맞으시죠?”

“예. 제가 박태준입니다.”

박태준.

고양 유나이티드의 서포터스 ‘맥플라이’의 리더이자 고양 서포터스 총책임자이기도 했다.

“이렇게 뵙는 건 처음이네요.”

“네. 경기장에서만 뵙다가…….”

나는 이미 박태준과 안면이 있는 사이였다.

회귀 전에도 이 사람은 고양 유나이티드 서포터스 연합회장으로 활동했었다.

회귀한 지금도 그랬다.

누구보다 고양에 대한 열정이 가득한 인물.

회귀 전에는 몰랐지만, 지금은 그렇게 결론을 내렸다.

“오늘 이렇게 보자고 하셔서 놀랐습니다.”

“하하. 그렇습니까?”

사실 오늘 만남은 내 쪽에서 먼저 연락 했다.

본래 구단은 서포터스와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는 경우들이 있다.

하지만 고양 유나이티드 같은 경우에는 서포터스와의 관계가 많이 소원한 편이었다.

이전까지 고양 프런트가 서포터스들과의 만남을 꺼렸기 때문이다.

그럴만도 한 것이 역사 깊은 고양에는 강성 지지자층이 제법 있는 편인데, 근 10년 사이 구단이 보여준 모습에 불만이 가득했다.

이에 고양 프런트도 그런 강성지지자층을 불편하게 여겼다.

‘게다가 큰형이 구단을 버릴 생각으로 운영해 왔으니 서포터스들과 사이가 더 안 좋아질 수밖에 없지.’

사실상 근 몇 년 동안은 교류 자체가 없었다.

서포터스가 불만을 갖고 시위를 해도 요지부동의 모습을 보여온 고양 프런트다.

그랬던 고양 프런트가 내가 취임한 이후 조금씩이지만 소통을 하면서 달라지기 시작했다.

경기장을 찾아온 서포터스들을 찾아가 허리 숙여 응원을 부탁하기도 했다.

그런 내 태도에 강성 지지자층도 마음을 조금씩 열기 시작했다.

그런 상황에서 이번에 구단 대표이사와 서포터스 연합회장이 단독으로 만나게 된 것이다.

“저는 서포터스와 좀 더 좋은 관계를 형성하고 싶습니다.”

“알지요. 알다마다요. 대표님께서 이전 대표님들과 달리 노력하는 모습을 보이신다는 것은 대부분 팬들도 알고 있습니다.”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하지만 일부 강성팬들 사이에서는 여전히 저희를 향한 불만을 가지고 계신다고 알고 있습니다.”

“뭐, 모든 팬들의 욕구를 만족시키기란 어렵죠. 그리고 그분들도 팀이 좀 더 잘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그런 말들을 하시는 거구요.”

박태준은 대화가 잘 통하는 인물이었다.

그가 왜 연합회장으로 선출되었는지 잘 알 수 있는 부분이기도 했다.

“다가올 시즌에는 저희는 좀 더 팬들과 소통할 수 있는 다양한 행사를 기획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까? 예를 들면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저희가 이번 시즌 기획하고 있는 이벤트들 중에서 ‘레전드’라는 이벤트가 있습니다.”

“레전드요?”

“네. 전설들을 모셔놓고 팬들과 소통할 수 있는 이벤트죠.”

“호오.”

“그런데 이것은 팬들도 해당이 됩니다.”

“네?”

두 눈을 끔뻑이는 박태준을 보며 나는 가볍게 미소를 머금었다.

“오랜 시간 우리 팀을 응원해준 올드팬들. 그분들도 경기장에 모실 생각입니다.”

“오!”

“어떤 식으로 모실지는 아직도 논의 중입니다. 하지만 결론을 내리기에 앞서 서포터스의 의견을 듣고 싶어 말씀을 드리는 거고요.”

“오, 그거 정말 괜찮은 이벤트네요. 저희 쪽에서도 의견을 모아서 전달해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렇게 좋은 분위기 속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는데 김 비서가 등장했다.

“대표님.”

“어, 김 비서.”

공적인 장소에서 김 비서는 나를 대표님이라고 부른다.

김 비서의 등장에 박태준은 저도 모르게 입을 벌렸다.

“예, 예쁘다.”

청순한 외모로는 최상위권인 김 비서의 매력에 박태준도 꼼짝 못 했다.

김 비서가 내 옆에 앉은 것을 확인하고 나는 멍하니 있는 박태준을 불렀다.

“박태준 씨?”

“…….”

“박태준 씨!”

“아, 넵. 마, 말씀하세요.”

한동안 정신을 못 차리는 박태준을 보며 나와 김 비서는 가볍게 웃었다.

“우리 그럼 계속 대화해 볼까요?”

* * *

고양시 외곽에 위치한 어느 폐건물.

그 안에는 검은 정장을 입은 체격 좋은 남자들이 흉흉한 기세를 풀풀 풍기며 자리하고 있었다.

그런 남자들 틈에 의자에 묶여 어쩔 줄 몰라 하는 남자가 있었다.

“너, 너희들 내가 누군지 몰라! 이 새끼들아! 너희들 뭐 하는 놈들이야!”

머리가 희끗희끗한 남자가 버럭버럭 외쳐보아도 남자들은 어떤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이런 x발! 나, 영신그룹 재무이사 박종수야! 네놈들 이러고도 무사할 줄 알아!”

“아따, 겁나 시끄럽구만.”

보다 못한 어떤 남자가 박종수 앞으로 걸어갔다.

드러난 팔뚝에 문신과 얼굴에는 칼자국이 나 있는 남자가 흉흉한 기세를 뿜어냈다.

그러자 천하의 박종수도 침을 꼴깍 삼키며 긴장했다.

“이보시오. 대기업 이사 양반. 지금 상황 파악 안 돼?”

“…무, 무슨!”

“아, 됐고. 곧 VIP 올 거니까 좀만 기다려.”

남자의 말에 박종수가 흠칫했다.

‘VIP?’

누군가 자신을 이렇게 만들도록 시킨 인물이 있었던 모양이었다.

박종수는 그자가 누군지 알면 침을 뱉어줄 생각을 가졌다.

‘천하의 박종수에게 감히 이런 일을 겪게 만들어? 반드시 갚아 주겠어!’

그런데 잠시 후, 그런 박종수의 생각이 와장창 무너지는 일이 벌어졌다.

“여어, 우리 박 이사님을 위해 준비한 장소인데, 마음에 들지 않은가 봐?”

“다, 당신은……!”

정장들 사이로 뚜벅뚜벅 걸어오는 한 남자.

그 남자의 정체를 아는 박종수는 눈이 튀어나올 정도로 놀랐다.

“지, 지태완 사장?”

“박 이사님. 뭘 그렇게 놀래?”

대외적으로 훌륭한 인품의 소유자로 알려진 지태완.

그가 이런 음침한 장소에 자신을 묶어둔 것이다.

“지, 지 사장. 지금 이게 무슨 짓이오!?”

“무슨 짓… 이냐고? 하. X발. 어이가 없네. 무슨 짓? 아니, 그쪽이 무슨 짓이냐고 물어?”

“지 사장……!”

박종수가 목소리를 높이려는 순간, 지태완이 검은 가죽 장갑을 낀 손으로 박종수의 얼굴을 꽉 잡았다.

그리고는 으르렁거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박 이사. 그러니까 처신 잘했으면 좋았잖아. 왜 자꾸 내 앞에서 걸리적거려서 일을 이렇게까지 만들었어, 어?”

“……!”

박종수의 두 눈이 떨렸다.

그는 예전부터 지태완에 대해 부정적인 의견을 표출해 오던 인물이었다.

“그렇게 태종이 밀어봤자 소용없어.”

지태종.

지종윤의 둘째 아들이자 지태완의 동생이었다.

박종수는 그런 지태종의 측근이기도 했다.

“태종이도 조만간 나락으로 갈 거야. 내가 보낼 거거든.”

“이 새ㄲ……!”

“시끄럽네.”

지태완이 대기하고 있는 정장들에게 신호를 보냈다.

그러자 신호를 받은 정장들이 박종수를 구타하기 시작했다.

일방적으로 두들겨 맞은 박종수는 금방 만신창이가 되었다.

이빨이 깨지고 이마와 코에서는 피가 줄줄 흘렀다.

“지, 지태완, 네놈……!”

“아직도 말할 힘이 있나 봐?”

지태완은 차갑게 웃었다.

차가운 그 미소가 마치 악마를 연상케 했다.

“괜찮아. 어차피 오늘 당신이 집에 돌아갈 일은 없을 거야.”

맹수처럼 번뜩이는 지태완의 모습을 본 박종수가 비명을 질렀다.

* * *

와아아아아!

드디어 기다렸던 시즌이 개막했다.

제주 홈구장에서 열리는 K리그2 개막전 경기에 수많은 인파가 몰려왔다.

그런 상황에서 오늘 현장 중계를 맡게 된 두 명의 중계위원이 카메라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안녕하십니까. 시청자 여러분. 오늘 K리그2 1라운드 제주FC vs 고양 유나이티드의 경기를 생중계하게 된 캐스터 이형욱입니다. 박재성 해설위원과 함께합니다.』

『예, 안녕하십니까.』

『오늘 드디어 기다렸던 새 시즌이 개막합니다. 개막을 앞두고 많은 팀들이 준비를 하고 새 시즌을 시작하게 되었는데요.』

『그렇습니다. 지난 시즌 우승팀인 안양과 준우승팀 대전이 K리그1으로 승격을 했고요. 이 빈자리에 제주와 서울이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지난 시즌 1부에 있던 제주가 2부로 내려오기는 했지만 상당한 보강을 했단 말이죠?』

『네. 제주는 외국인 선수들을 모두 교체했고, 울산에서 뛰던 미드필더 온주현 선수하고 J리그 가시와레이솔에서 뛰던 공격수 장지원 선수를 영입하면서 공수 전체에 보강을 잘했습니다.』

『이에 맞서는 고양도 상당한 보강을 하였는데요. 고양도 기존에 팀을 이끌던 외국인 선수 중 나탈을 제외하곤 대거 새롭게 영입했습니다. 그리고 전북에서 뛰었던 장현우 선수를 임대 영입했고, 여기서 놀라운 건 박형우 선수를 완전 영입했습니다.』

『네. 어떻게 보면 제주보다 더 많은 투자를 한 팀이 고양이라고 볼 수 있는데요. 시즌을 앞두고 중동 오일 머니를 투자받았죠? 이를 통해 공수 전체 보강에 성공했습니다.』

『지금 화면에 보이는 곽찬구 감독은 지난 미디어데이 때 우리는 우승을 노린다라고 얘기했는데, 과연 우승을 노릴 만한 전력일지 봐야겠습니다.』

『공교롭게도 이번 시즌 가장 강력한 우승후보로 꼽히는 두 팀이 개막전부터 만났습니다. 상당히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는데요. 어떤 결과가 나올지 지켜봐야겠습니다.』

『지금 화면에 비춰지는 인물이…… 고양 유나이티드의 지태훈 대표님이죠?』

『그렇네요. 그 옆에는 제주FC의 대표이사이자 선경오일의 회장인 최용일 회장님이네요.』

『양 팀을 이끄는 대표들도 오늘 경기장에 나왔는데요. 두 사람이 어떤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지 궁금하네요.』

『아마 좋은 경기 해보자. 그런 얘기가 아닐까요? 하하.』

『그럴 수도 있겠군요. 자, 그럼 저희는 잠시 후에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여기는 제주FC의 홈구장 제주월드컵경기장입니다.』

* * *

“자네가 지종윤 회장님의 아들인가?”

“맞습니다. 최용일 회장님 맞으시죠?”

“맞네. 소문으로만 듣다가 이렇게 보는구먼.”

선경오일 회장 최용일은 동네에 하나씩은 있을 법한 풍채 좋고 인자한 인상을 가진 아저씨처럼 생겼다.

“회장님은 잘 계신가?”

“정정하십니다. 회장님께서도 잘 지내시죠?”

“하하. 잘 지내고 있지. 그건 그렇고 자네도 참 대단하더군.”

“네?”

“어느 날, 혜성처럼 등장한 젊은 대표이사가 구단을 바꿔놓는 일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지.”

“과찬이십니다.”

“과찬은. 뭐, 우리도 우승을 위해 총력을 펼칠 예정이네. 서로 좋은 결과가 나오면 좋겠구먼.”

“예. 그러면 좋겠지만 그래도 우승트로피는 저희가 가져갈 겁니다.”

“하하하!”

최용일은 호탕하게 웃음을 터트렸다. 그러다가 곧 인자한 아저씨에서 호랑이 같은 기세로 바뀌며 말했다.

“해볼 수 있으면 해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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