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화
프리시즌을 마치고 다시 국내로 복귀한 고양 유나이티드 선수단.
선수들은 짧은 휴식을 취한 뒤 다시 훈련을 진행했다.
그런 와중, 이번에 새롭게 이적한 박형우가 외부 인터뷰를 진행하는 시간을 가졌다.
“박형우 선수, 오랜만입니다.”
“네. 오랜만이네요.”
인터뷰를 진행하는 사람은 이번 프리시즌 경기를 중계했던 KSB의 한정희 해설위원이었다.
두 사람은 제법 오랜 기간 인연이 있는 사이기도 했다.
박형우가 어린 시절부터 그를 눈여겨본 인물이 바로 한정희였기 때문이다.
“제가 박형우 선수를 처음 봤을 때가 7살 때였나? 그랬는데, 벌써 시간이 이렇게 흘러버렸네요.”
“벌써 그렇게 됐나요? 하하하.”
올해 32세가 되는 박형우.
축구선수에게 있어 슬슬 말년으로 향하는 나이대이기도 했다.
“19살에 K리그 데뷔했을 때 받은 충격은 아직도 잊지 못하는데, 그때 어땠습니까?”
“아, 정말 제게는 좋은 추억이죠. 데뷔전부터 좋은 모습을 보였고 덕분에 국가대표에도 바로 발탁되었으니까요.”
“당시 박형우 선수가 대전에서 활약했었는데, 이번에 K리그로 리턴할 때 대전이 아닌 고양으로 와서 깜짝 놀랐어요. 혹시 이유가 있나요?”
19세의 나이로 대전에서 데뷔한 박형우는 그해에 리그에서만 무려 18골을 넣었다.
당시에 그는 리그 득점 랭킹 3위에 오르는 기염을 선보이며 K리그 전체에 충격을 주었다.
그랬던 그가 자신의 옛 친정팀이 아닌 고양으로 이적한 소식에 충격을 받은 대전팬들이 많았다.
“사실 월드컵에 대한 열망이 컸습니다. 제가 이적한 이유도 월드컵 때문입니다.”
“월드컵 때문에 고양으로? 그런데 고양은 2부 리그 팀인데… 제가 고양 유나이티드를 무시하는 것은 아니지만, 객관적으로 봤을 때 월드컵에 나가려면 2부 리그 팀보다는 1부 리그 팀이 조금 더 낫지 않나요?”
“음, 위원님 말씀도 일리가 있습니다. 저도 처음에 그렇게 생각했거든요. 실제로 저에게 영입 제안을 넣은 팀 중에서 1부 리그 팀도 있었습니다.”
“그랬나요?”
“네. 하지만 여러 가지 검토 끝에 그 팀들과 제 스타일이 맞지 않겠다는 결론을 내려서 정중하게 거절하고 말았습니다.”
“그렇군요. 그럼 이번에 이적한 고양은 본인과 성향이 잘 맞는 것 같나요?”
“네, 생각보다 감독님과 동료들하고 잘 맞습니다. 전술적으로도 제 플레이 스타일하고 잘 맞고요.”
“확실히 박형우 선수가 이번 프리시즌에서 보여준 결과물만 봐도 잘 알 수 있죠.”
실제로 박형우는 이번 프리시즌에서 가장 좋은 모습을 보여준 선수였다.
박형우는 프리시즌 기간에 총 3골을 만들어냈다.
팀 내에서 가장 많은 득점을 쏘아 올렸다.
특히, 그 득점들은 발렌시아와 AT마드리드 같은 강팀들을 상대로 만든 것들이라 더욱 가치가 있었다.
“무엇보다 저는 구단이 가진 야망이 좋았습니다.”
“야망?”
“네. 지태훈 대표님께서 직접 제게 이야기하신 것들이 있습니다. 그분께서 가진 목표가 상당히 높더라고요. 저도 그 목표에 함께 도달할 수 있는 인원이 되고 싶었고요.”
“호오, 들어보니 굉장히 궁금하네요. 도대체 어떤 이야기들이 오고 갔을까요?”
궁금해하는 한정희를 보며 박형우는 옛 기억을 회상했다.
* * *
처음 마주한 지태훈 대표는 꽤 양아치 같은 인상을 주었다.
나중에서야 알게 됐지만 그가 영신 그룹에서 알아주는 망나니라는 것을 알게 됐다.
하지만 외관과는 다르게 그는 생각보다 친절했다.
“옛날 기억나네요. 박형우 선수가 국가대표에서 활약하는 모습을 종종 봤었는데 말이죠.”
“그랬습니까?”
“네. 아, 제가 어렸을 때 축구를 그렇게 많이 좋아하거나 보는 편은 아니었습니다. 그래도 박형우 선수는 알 수밖에 없죠. 월드컵은 봤었으니까요.”
“그랬군요.”
“뭐, 과거는 어찌 됐든 이렇게 박형우 선수와 만나는 날이 오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저도 그렇습니다.”
사실 칼리드 왕자가 주선해 주지 않았다면 내가 지태훈 대표와 만날 일은 없었을 것이다.
내가 K리그 복귀를 꿈꾸고 있긴 했어도 고양은 내 선택지에 없었던 팀이니까.
그런데…….
“K리그 복귀를 꿈꾸신다고 들었습니다.”
“그렇습니다.”
“과거 K리그에서 뛰었을 때 친정팀이 대전으로 알고 있는데, 혹시 대전으로 가실 생각이십니까?”
“그건…….”
“뭐, 선수가 과거 친정팀으로 복귀하는 일은 종종 있었던 일이지만, 저는 잘 모르겠네요. 대전이 박형우 선수를 다시 받아줄 수 있는 그릇이 될지를 말이죠.”
“…….”
나도 알고 있다.
대전은 내가 해외로 떠나기 전이나 지금이나 재정적으로 열악한 팀이다.
예전에 내가 해외로 이적했을 때 그래도 적지 않은 이적료를 받긴 했지만, 구단 운영에는 모자란 것으로 알고 있다.
실제로 대전에 복귀 의사를 타진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아직까지 답변이 없다.
“제가 알아보니까 대전은 박 선수의 복귀를 그리 달가워하지 않은 모양입니다.”
“……뭐라고요?”
“구단의 규모에 맞지 않는 높은 몸값. 그리고 현재 박 선수가 뛰는 공격형 미드필더 자리에는 이미 3명의 선수가 경합하고 있죠. 대전으로 복귀한다 한들 경쟁이 치열할 겁니다.”
그 말에 살짝 울컥하며 반응했다.
“몸값은 그렇다 쳐도 제 실력을 무시하는 겁니까?”
“그럴 리가요. 다만, 현 대전 감독인 용승원 감독이 어린 선수들 위주로 기용하고 있기에 쉽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거죠.”
“…….”
“실제로 대전은 용승원 감독 부임 이후 당시 팀 에이스였던 주원재와 라코스테를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내쳤죠.”
“…대표님께서 하고 싶은 말씀이 무엇입니까?”
“대전은 좋은 선택지가 될 수 없다는 말을 하고 싶습니다.”
“…….”
지태훈 대표가 제법 많이 준비해온 듯싶었다.
하지만 나에게는 여전히 많은 선택지들이 존재했다.
애초에 그가 나를 영입하고 싶어서 이 자리를 만든 것으로 알고 있다.
그렇기에 그가 내게 주어진 수많은 선택지보다 더 훌륭한 메리트를 제공해야만 했다.
그렇지 않으면…….
“다른 1부 리그 팀들도 사정은 비슷할 겁니다. 현 1, 2위인 울산과 전북의 경우 박 선수의 몸값은 맞춰줄 수 있을지 몰라도 그 안에 내부 경쟁은 장담할 수 없죠.”
“…….”
“하지만 우리는 박 선수의 몸값은 물론이고 당신이 팀 에이스로 활약하면서 주목받을 수 있게 만들 수 있습니다.”
“그게 무슨 말입니까?”
종종 되지도 않은 거짓말을 일삼는 구단들이 있다.
그렇기에 나는 불신을 담아 지태훈 대표를 쳐다봤다.
하지만 그는 시종일관 여유로운 태도를 유지하며 말했다.
“칼리드 왕자를 비롯해서 우리 구단에는 이미 대규모 투자가 예정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자금은 크게 문제없죠.”
“……!”
“그리고 우리에게는 목표가 있습니다. 바로 ‘왕조 재건’이죠.”
그 말에 내 눈이 커다랗게 떠졌다.
“고양은 K리그 내에서 꽤 역사가 깊은 구단이죠. 뭐, 우리와 비슷한 역사를 지닌 구단들이 더러 존재하긴 하지만 우리도 꽤 밀리지 않습니다.”
“역사가 깊은 것은 인정하지만 제대로 된 트로피 하나 없지 않습니까?”
어쩌면 상당히 무례하고 불편할 수도 있는 발언이다.
하지만 어느샌가 그와의 대화에 집중하고 있는 나는 그렇게 물어볼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그는 내 얘기에 전혀 불쾌해하지 않았다.
오히려 통 크게 인정했다.
“맞습니다. 그 기나긴 역사 속에서 트로피 하나 없는 슬픈 팀이죠. 하지만.”
“……?”
“저는 박형우 선수라면 우리가 가지지 못했던 것들을 가질 수 있게 만들어 줄 수 있을 거라고 봅니다.”
“……!”
“아직 정식 발표는 안 나왔습니다만, 파주의 사무엘 선수가 우리 팀에 합류할 예정입니다. 그리고 전북의 장현우를 임대, 우즈벡 대표인 라시모프를 영입하기 위해 움직였고 실제로 거의 끝에 왔습니다.”
지태훈 대표 입에서 흘러나오는 이야기에 나는 화들짝 놀랐다.
그의 입에서 언급되는 선수들의 구성은 모두 실력이 보증된 이들이기 때문이다.
확실히 그는 야망이 있어 보였다.
무엇보다 그만한 선수를 구성하는데 가십거리 하나 나오지도 않았다는 것도 놀라웠다.
보통 사전에 루머 하나쯤은 돌기 마련인데, 고양은 선수 영입과 관련된 루머는 전혀 돌지 않았다.
이것은 대표이사의 노력이 없다면 이루어질 수 없는 부분이기도 했다.
“박형우 선수가 온다면 이 스쿼드에 방점을 찍겠죠.”
지태훈 대표는 나를 높게 평가해주고 있었다.
그 점은 기분이 좋았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한 부분이 있었다.
“저는 다가올 월드컵에 꼭 참여하고 싶습니다. 하지만 고양이 아무리 야망 높은 팀이라고 해도 2부로 가게 된다면 제가 국가대표에 발탁될 확률이 떨어지지 않겠습니까?”
내 물음에 지태훈 대표는 오히려 본인이 더 의아해하는 반응을 보였다.
“정말 2부에 있다고 국가대표가 되지 못할 거라 생각합니까?”
“……?”
“2부 리그에 있어도 월드컵까지 간 선수들의 사례는 존재합니다. 한국이든 외국이든.”
“…….”
“중요한 건 선수를 구성하는 감독 마음에 들어야 된다는 거겠죠.”
감독 마음에 들어야 된다는 말을 듣는 순간, 나는 둔기로 맞은 것 같은 충격을 받았다.
그래, 감독의 마음에 들어야지.
하지만 어떻게 감독의 마음에 든다는 말인가.
“현 국대 감독인 크리스토퍼 제이든 감독은 제로톱에 대한 미련이 크다는 것을 아십니까?”
“……!”
전혀 몰랐던 부분이다.
지태훈 대표는 내가 모를 줄 알았다는 듯 씩 웃어 보였다.
“모를 수밖에 없죠. 왜냐하면 그에게는 꼭 잊고 싶은 흑역사니까요.”
“흑역사?”
“네. 크리스토퍼 제이든 감독이 과거 MLS에 속한 애리조나FC라는 팀을 아주 잠깐 이끌었던 적이 있었는데, 그때 사용했던 전술이 제로톱이거든요.”
애리조나FC?
처음 듣는 클럽이다.
그런 데가 있었나?
“별로 유명한 팀은 아닙니다. 어쨌든 예전에 제이든 감독은 제로톱을 사용했는데, 결과가 그리 좋지 않았습니다. 애리조나FC 이후 다른 팀 감독을 맡아도 비슷했고요.”
“…….”
“왜 그런지 아십니까?”
“왜 그런 거죠?”
“그건 지금까지 제이든 감독이 제로톱에 어울릴 만한 스쿼드를 갖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스쿼드가 부족해서?
하지만 감독이라면 부족한 스쿼드에도 자신의 철학을 입힐 수 있어야 하지 않나?
이런 내 생각을 읽기라도 한 듯 지태훈 대표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말했다.
“이 세상에서 부족한 스쿼드에 자신의 철학을 완벽하게 입힐 수 있는 감독은 드뭅니다. 그런 능력이 있으면 그 사람을 ‘명장’이라고 부르죠.”
“그런데 이 얘기를 꺼내는 이유가 뭡니까?”
이유를 묻자 지태훈 대표의 한쪽 입꼬리가 올라갔다.
“현재 저희 팀을 이끌고 있는 곽찬구 감독님이 제로톱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
“당장은 쉽지 않을 겁니다. 하지만 시즌이 시작될 때 제로톱 전술은 완성될 겁니다.”
“……!”
“그리고 감독님이 사용할 제로톱 전술의 핵심으로 ‘박형우’ 선수가 제일 어울리기도 하고요.”
마지막 말을 들었을 때, 나는 고양으로 이적하기로 마음을 굳히게 됐다.
* * *
“대표님, 박형우 선수의 인터뷰가 실린 영상이 올라왔습니다.”
“그래요?”
나는 박형우 선수의 인터뷰 영상을 봤다.
한정희 해설위원이 진행하는 인터뷰에서 박형우는 시종일관 즐거운 기색을 드러내었다.
『호오, 들어보니 굉장히 궁금하네요. 도대체 어떤 이야기들이 오고 갔을까요?』
『제가 자세히 설명드리는 것보다 앞으로 변해가는 고양 유나이티드를 보면 저절로 알게 될 것 같습니다.』
『앗, 박형우 선수! 너무 쉽게 빠져나가려는 거 아닙니까?』
『그래요? 근데 저는 사실을 이야기한 건데요! 하하하!』
가만히 영상을 보던 나는 피식 웃었다.
박형우는 잘 적응하고 있었다.
처음에 박형우 선수를 영입할 계획은 없었다. 하지만 칼리드 왕자와의 인연으로 박형우 선수와 연결된 이후, 나는 그를 영입하기 위해 정말 다양하게 조사하고 분석했다.
그 결과 박형우는 곽찬구 감독이 앞으로 사용하게 될 제로톱 전술에 가장 어울리는 선수라는 것을 알게 됐다.
곽찬구 감독도 박형우를 제로톱에 활용하기 위해 다양한 시도들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프리시즌을 통해서 꽤 괜찮은 결과를 얻은 모양이었다.
곽찬구 감독은 조만간 기대할 만한 무언가를 만들어서 보여 주겠다고 호언장담했다.
“앞으로가 기대되는걸?”
내 머릿속에서는 긍정적인 결과들이 그려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