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화
“크흠!”
나는 재빨리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고는 김 비서를 향해 조심스럽게 손을 내밀었다.
김 비서는 그런 내 손을 잡고 자리에서 일어난 뒤 조용히 옷매무시를 고쳤다.
“…….”
우리 둘 다 잠깐이지만 말이 없었다.
그러다가 보다 못한 내가 먼저 말문을 열었다.
“김 비서, 어디 갔다가 이제 오는 거야?”
“그, 잠시 은행 업무를 보다가…….”
왜 우물쭈물해?
평소 같으면 툭툭 나를 쏘아붙였을 김 비서의 태도가 이상하다.
“그, 도련님은 왜 여기에 계세요?”
“그게 저 녀석을 쫓다가…….”
“저 녀석이요?”
김 비서는 뒤늦게 덕구의 존재를 확인했다.
천진난만한 얼굴로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고 있는 덕구의 입에는 서류가 물려 있었다.
“저 녀석이 갑자기 서류를 물고 냅다 뛰는 바람에…….”
“아, 네.”
김 비서가 손을 내밀자 덕구는 입에 문 서류를 내려놓고 얼굴을 비볐다.
“돌아가자.”
“네.”
바닥에 떨어진 서류를 챙겨든 나는 몸을 돌려 대표실로 향했다. 김 비서도 덕구의 목줄을 잡은 다음 조용히 내 뒤를 따라왔다.
그렇게 한동안 우리는 말이 없었다.
* * *
K리그 팬들에게도 이번 고양의 프리시즌 경기는 화제의 대상이었다.
“야, 너희 팀은 좋겠다. 보강도 많이 하고, 스페인 가서 유명 팀들하고 스파링도 하고.”
“몇 년 동안 응원하는 게 힘들었는데 그래도 이번에는 기대가 좀 되네.”
김정근과 박태준은 K리그를 즐기는 팬이었다. 김정근은 1부에 속한 성남 버드FC 팬이고, 박태준은 고양Utd 팬이었다.
두 사람은 K리그 팬 카페에서 활동하다가 서로 알게 된 사이기도 했다.
“요즘 성남은 괜찮냐?”
“아, 몰라. 감독 바뀌고 좀 괜찮은 건가 싶더니 이번에는 프런트가 문제다.”
“시민구단이라서 좀 힘들겠다.”
“말도 마. 지난번에 시장 선거 치르고 시장 바뀐 뒤에 지원금 반 토막 났다.”
“주축 선수도 많이 떠난 거 같더만.”
“젠장.”
K리그는 기업 구단이냐, 시민 구단이냐에 따라 구단 운영방식이 완전히 다르다.
모기업이 존재하는 기업 구단의 경우, 모기업의 정책에 의해 운영된다.
반면 시민구단은 해당 시의 지자체장과 시의원들이 누구냐에 따라 구단 운영이 정해진다.
성남의 경우 최근 선거전에서 여당과 야당의 권력 구도가 뒤바뀌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시장도 바뀌게 되었다.
그리고 새로운 시장은 시민구단인 성남 버드FC에 대한 운영에 굉장히 인색한 편이었다.
“너희는 조만간 1부 리그 올라오겠네?”
“모르지. 2부 리그도 워낙 경쟁 치열하고 반전도 많잖냐.”
“그렇긴 한데, 그 정도로 투자하는데 못 올라오는 게 이상하지 않냐?”
“뭐, 그렇기는 해.”
“어쨌든 다음 시즌에는 1부 리그에서 보자고.”
“어. 너희도 일 잘 풀렸으면 좋겠다.”
“어. 고맙다.”
두 사람은 건승을 빌었지만, 실상 속마음은 달랐다.
‘돈만 가지고 올라올 수 있겠냐? 천만의 말씀이다, 이거야.’
‘조만간 나락 가겠네. 쯧쯧. 미래가 보인다, 보여.’
* * *
선수단이 한창 스페인 전지훈련을 치르는 동안, 나는 김 비서와 함께 고양시에 있는 어느 고등학교를 방문했다.
“아이고, 대표님! 이렇게 연락도 없이 불쑥! 찾아와주시다니.”
“아, 그쪽이 교장 선생님인가요?”
“네, 네. 그렇습니다.”
머리가 듬성듬성한 나이 든 교장 선생님이 직접 마중을 나왔다. 그런 교장 선생님 옆에는 야구 모자를 쓴 젊은 남자가 있었다.
그 남자와 눈이 마주치자 자연스럽게 남자는 자신을 소개했다.
“아, 안녕하세요. 백송 고등학교 축구부 감독 최용우입니다.”
일산에서 유명한 스리백 중 한 곳인 백송 고등학교.
이곳은 영신 그룹이 뒤에서 지원하는 학교이기도 했다. 그리고 고양Utd 산하로 있는 유소년 축구팀도 존재했다.
그런 유소년 축구팀 감독이 바로 최용우였던 것이다.
“얘기 많이 들었습니다. 과거 선수 시절에 고양에서 활약하신 후 이렇게 저희 산하 유소년 팀을 지도하고 계신다고.”
“하하.”
멋쩍게 웃고 있는 최용우를 보며 나는 묘한 기분이 들었다.
참고로 나는 회귀 전에 단 한 번도 유소년팀을 방문해 본 적이 없다.
한 구단의 대표이사면서도 유소년 팀을 방문하지 않는다는 일이 어처구니없기는 한데, 그때만 해도 나는 축구에는 관심이 없었다.
“진즉에 한 번 와봤어야 했는데, 제가 너무 늦게 온 게 아닌 건가 싶군요.”
“아닙니다. 전혀 아닙니다. 대표님께서 하신 일들은 저희도 충분히 듣고 있습니다. 정말 대단한 일들을 해내시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대단하긴요. 그저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이죠.”
존경의 눈길을 보내는 최용우가 내심 부담스럽게 느껴졌다.
나는 황급히 주제를 돌렸다.
“그건 그렇고, 축구부 구경 좀 해도 되겠습니까?”
“예?”
축구부 좀 구경하겠다고 말하니 두 사람은 상당히 당황스러워했다.
그런 두 사람을 본 나는 두 눈을 번뜩였다.
“김 비서. 가자.”
“네.”
나와 김 비서는 축구부가 있는 건물로 향했다. 그런 우리의 행동에 놀란 교장과 최용우가 부리나케 뒤쫓았다.
그렇게 우리를 만류하는 두 사람의 행동을 무시하며 도착한 축구부 건물.
건물 내부를 본 나는 충격을 받았다.
“선수들이 여기서 생활합니까?”
“아, 넵. 무슨 문제라도?”
내가 불쾌한 기색을 드러내자 당황한 교장이 땀을 뻘뻘 흘리며 어쩔 줄을 몰라 했다.
나는 함께 온 김 비서에게 말을 걸었다.
“김 비서. 우리가 여기에 쏟아붓는 금액이 얼마나 되지?”
김 비서는 미리 가져온 서류를 슥 보고 대답했다.
“연간 평균 3~5억 정도 됩니다.”
“그래?”
그 말에 나는 이번에 최용우를 봤다. 어느샌가 굳은 얼굴을 하고 있는 최용우를 볼 수 있었다.
“혹시 지원 금액이 모자랍니까?”
“…….”
그 누구도 물음에 답하는 사람이 없었다.
모자랄 게 있나.
그럴 리가 없다.
이 근방 축구팀들 중에서 이만한 지원을 받는 축구부는 없다.
그런데 이게 뭔가.
천장에 듬성듬성 보이는 거미줄.
깨진 유리창.
오래된 TV.
낡아빠진 침구류들.
지역 내 최고 수준으로 받는 축구부가 맞나 싶을 정도로, 굉장히 열악했다.
“아, X발.”
절로 욕이 나왔다.
“열받네.”
나는 두 사람을 노려보며 말했다.
“도대체 얼마나 해 처먹었냐?”
“그, 오, 오해입니다!”
“오해?”
“예, 예. 그, 그렇습니다!”
하얗게 질린 얼굴로 오해라고 외치는 교장 선생님의 말에 나는 어이가 없었다.
“지금 내가 이렇게 두 눈을 치켜뜨고 보고 있는데, 뭐? 오해?”
“대표님! 제가 사실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사실…….”
“됐습니다. 사실 이미 다 알고 온 거니까요.”
“……!”
내 말에 두 사람이 두 눈을 부릅떴다.
사실 지난번 덕구가 물고 도망갔던 그 서류.
그 서류의 내용이 백송 고등학교 축구부와 관련되어 있었다.
백송고 축구부에 상당한 내부 비리가 있으며, 지원금에 맞지 않는 열악한 환경 속에서 축구를 하고 있다는 내부 고발이 담긴 내용이었다.
나는 그 사실을 알기 위해 연락 없이 찾아간 것이다.
그리고 실제로 보게 된 내용은 더 충격적이었다.
“정말 두 눈으로 보고도 믿을 수가 없네.”
구단 내부에 있는 바이러스들을 모두 정리했다고 생각했었는데 완전 오산이었다.
아니, 어쩌면 지금이라도 발견된 것이 다행일지도 몰랐다.
‘회귀 전에 구단이 몰락한 데는 다 이유가 있었을지도 몰라.’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단순히 나만 잘못해서 구단이 무너진 것은 아닐 것이라는 생각.
이미 썩을 대로 썩어버린 구단은 그저 무너져 내릴 타이밍만 보고 있었을지도 몰랐다.
“모두 대가를 치르게 될 겁니다.”
내 말에 교장과 최용우 모두 하얗게 질려버렸다.
* * *
이후 백송고 축구부에 대한 내부 조사가 진행되었다.
영신 그룹에 요청해서 내부 감사팀을 파견하게 했고, 감사 결과 심각하게 썩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야, 백송고 축구부와 연관된 인원들이 해 먹은 돈만 해도 20억이나 되네?”
구단에서 지원받은 돈을 날름한 것도 모자라서 축구부에 소속된 학부모에게도 금품을 건네받은 정황이 적발되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고양Utd의 유소년팀 관리를 하는 직원도 연관되어 있었다.
해당 직원은 중간에서 교묘하게 보고서를 조작해서 결재를 받아왔다.
과거 허재우 단장이 있을 때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일이 이렇게 지금 터져버린 것이다.
이 사실은 곧 언론에서도 집중적으로 다루게 되었다.
『내부 감사 결과 백송고 축구부 비리 적발!』
『최 모 감독, 교장 등 대거 연류된 비리…… 피해 규모만 무려 20억!』
백송고등학교 축구부 비리 여파로, 기존 축구부에 소속된 학생들은 불안감을 가지게 되었다.
“우리 이제 어떻게 되는 거야?”
“설마 이대로 끝인 거야?”
소문에 의하면 축구부가 해체될 수도 있다는 이야기가 돌기도 했다.
하지만 그런 우려와 달리 백송고 축구부가 해체되는 일은 없었다.
“백송고는 옛날부터 우리가 관리해오던 유소년팀입니다. 그런 유소년팀을 갑자기 내칠 수는 없습니다.”
지태훈 대표가 직접 학부모와 학생들을 만나 이야기하며 논란을 종식 시켰다.
그리고 고양Utd는 공석이 된 축구부 감독을 새롭게 내정할 준비를 해야 했다.
* * *
백송고 축구부 사건이 일단락되어 가는 무렵, 스페인에서 전지훈련 중인 고양Utd 선수들은 마침내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와 맞붙게 되었다.
“와…….”
“언젠가 스페인으로 이적하게 되면 뛰고 싶었던 팀이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였는데…….”
경기 시작 전 몸을 풀고 있는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선수들의 모습을 본 고양 선수들은 혀를 내둘렀다.
몇몇 고참급 선수들을 제외하면 대부분 아이돌을 만난 것처럼 쳐다봤다.
“와, 저 사람 제레미 아니야?”
“내가 제레미를 실제로 보다니!”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의 제레미는 팀에서 가장 잘나가는 측면 공격수였다.
과거 전성기 시절의 가레스 베일을 연상케하는 플레이를 보이며 한창 인기가 오르고 있었다.
올 시즌 그가 기록한 공격포인트는 무려 24개. 14골과 10개의 어시스트를 기록했다.
이제 막 후반기에 들어서는 상황에서 상당한 양의 공격포인트였다.
그런 제레미가 몸을 풀고 있는 모습을 본 선수들은 놀람과 설렘으로 가득했다.
반면, 곽찬구 감독을 비롯한 코칭스태프들의 심정은 달랐다.
“저놈이 왜 여기 있어?”
“저도 잘…… 허,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인지.”
“분명 지 대표가 아틀레티코는 2군급하고 경기를 진행한다고 얘기했잖아!”
“그, 그랬죠.”
“근데 왜 제레미를 비롯해서 1군 급 선수들이 섞여 있는 거야?”
경기 시작 1시간 전에 발표한 명단에는 제레미를 비롯한 1군 주전급 선수들 일부가 주전 멤버에 포합되어 있었다.
적당히 경기를 준비했던 곽찬구 감독 입장에서는 마른하늘에 날벼락 같은 일이었다.
“헉! 헉! 감독님?”
“음?”
선수단을 돕기 위해 파견 나온 고양Utd 직원이 헐레벌떡 곽찬구 감독에게 뛰어와서 말을 전했다.
“조나탄 감독이 제레미가 전반기 막판에 미세한 부상이 생기는 바람에 점검 차원에서 오늘 경기에 선발로 넣었다고 하네요.”
“뭐라고요?”
“그밖에 다른 1군 선수들은 밸런스 차원에서 넣은 거라고 하고요.”
“…….”
이게 무슨 말이야 방구야.
곽찬구 감독은 목구멍으로 치솟는 말을 가까스로 참아냈다.
“어쩔 수 없군.”
이게 잘된 일인지 아닌지는 아직 아무것도 알 수 없다.
하지만 팀 입장에서 지레 겁먹을 일도 아니다.
어차피 축구는 수많은 변수 속에서 진행된다.
이것도 그러한 변수 중 하나일 뿐.
그렇게 생각을 정리한 곽찬구 감독은 선수들을 불러모았다.
몸을 풀던 선수들이 감독 앞으로 몰려왔다.
그런 선수들을 향해 곽찬구 감독이 말했다.
“너희들도 알았겠지만, 예상외의 변수가 생겼다.”
“…….”
진지한 곽찬구 감독의 한 마디에 선수들의 얼굴이 굳어졌다.
“그런데 말이다.”
“……?”
“다가오는 시즌에 우리가 1부 리그로 승격하려면 다양한 변수를 이겨내야만 돼.”
“…….”
“오늘 경기도 마찬가지라고 본다.”
곽찬구 감독은 아틀레티코 선수들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목소리를 높였다.
“이미 그라나다와 발렌시아까지 상대한 우리가 뭐가 두렵겠냐! 저 아틀레티코라고 해서 뭐가 다르겠냐 이 말이야!”
그 말에 고양 선수들의 눈에는 투지가 일었다.
“오늘 한번 일내 보자. 알겠나!”
“네!”
선수들의 힘찬 대답이 경기장을 채웠다.
그리고 그런 고양 선수들의 모습을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선수단도 흥미롭다는 듯 쳐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