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화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21세기, 시메오네 감독 부임 이후 라리가를 지배하는 레알 마드리드와 바르셀로나와 함께 3강 구도를 형성하고 있는 팀이다.
지금도 아틀레티코 마드리드는 라리가를 호령하고 있는 중이다.
그런 팀이 아시아에 있는 2부 리그 팀과의 연습경기를 원한다는 말이 이해가 되질 않았다.
“아틀레티코 측에서 자신들이 보유한 2군 팀들과 연습경기를 진행해보는 건 어떻겠냐고 제안해 왔어요.”
“2군?”
“네. 1군에 있는 주전 멤버들에게 밀려 기회를 받지 못하는 비주전 선수들하고 이제 막 유소년팀에서 성인 프로팀으로 올라온 유망주들로 구성되었다고 하더라고요.”
이제 알겠다.
아틀레티코는 실전 경험이 필요한 2군 팀을 내보내서 경험도 쌓게 하고 돈도 받겠다는 의도로 접근해온 것이다.
조금 실망스러웠지만, 그래도 좋은 기회였다.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정도면 1군이든 2군이든, 우리 입장에서는 굉장히 환영할 일 아닌가?”
“그렇죠. 아마 우리 팀에게도 많은 도움이 될 거라고 봐요.”
“좋았어. 그럼 마지막 경기는 아틀레티코와 진행하는 걸로 하자.”
“네. 그럼 아틀레티코에 있는 프런트와 접선하도록 할게요.”
“응.”
김 비서를 통해서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와 미팅 날짜를 잡았다.
“마드리드와 내일 오후에 만나기로 했어요.”
“거리가 있으니 비행기를 타야겠지?”
“네. 바로 비행기 표 끊을게요.”
그렇게 우리는 마드리드로 향했다.
* * *
지태훈이 스페인에서 고군분투하는 사이, 천지원 부장을 비롯한 고양 유나이티드 프런트도 열일하고 있었다.
“어?”
컴퓨터 화면을 바라보고 있던 신진호 대리가 화들짝 놀라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곧 그의 입에서 찢어지는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돼, 됐다아아아!”
“신 대리, 무슨 일인데 그렇게 소란스러워?”
“중계! 중계 확정됐어요!”
“뭐라고!?”
신진호 대리의 외침에 천지원 부장도 반응했다.
“어디서 중계 해준데?”
“KSB요!”
“KSB? 거기 공중파 아냐?”
“네! 공중파에서 중계하고 싶다고 요청이 왔어요!”
공영방송인 KSB라면 분명 기대해볼 만한 중계 효과가 있을 것이다.
천지원 부장은 당장 메일을 보내온 KSB 담당자에게 전화를 걸었다.
“네, 고양 유나이티드의 천지원 부장입니다! 네, 저희 팀 중계를 진행하고 싶으시다고요? 네. 네. 네. 알겠습니다. 네.”
담당자와 연락을 마친 그는 기쁨의 환호성을 내지를 뻔한 것을 가까스로 참았다.
“KSB에서 3경기 모두 생중계를 해주고 경기마다 재방송을 2번까지 해주겠데!”
“정말요?”
“어! 중계권료도 꽤 챙겨준다고 하고.”
원래대로라면 고양 유나이티드가 임의로 중계권 협상을 진행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K리그와 아시아챔피언스리그에 연관된 경기만 해당될 뿐, 프리시즌 경기는 달랐다.
천지원 부장의 주도로 진행된 중계권 협상도 성공적으로 진행됐다.
“메인스폰서로 더블 은행이 참여해준데!”
“헐! 대박! 거기 국가대표 경기 후원해 주는 곳 아니에요?”
“맞아! 바로 거기야!”
대한민국의 은행 중에서 첫손가락으로 꼽히는 더블 은행은 오랜 시간 한국 축구를 후원해온 기업이다.
그런 기업이 이번 고양 유나이티드의 프리시즌 중계와 관련해서 후원을 해주겠다고 연락이 온 것이다.
“이 소식을 우리만 알면 안 되겠지?”
“그럼요! 당장 대표님께 연락드려요!”
“내가 직접 연락드려보마.”
그렇게 천지원 부장은 기쁜 마음으로 스페인에 있는 지태훈 대표에게 연락했다.
* * *
마드리드에 도착하자마자 나는 기쁜 소식 하나를 듣게 되었다.
“뭐? 우리 팀 연습경기 중계가 확정됐다고?”
“네! 천지원 부장이 주도해서 KSB 중계가 확정되었다고 해요!”
그 말에 나는 기쁨을 감출 수 없었다.
“천 부장이 일을 잘해.”
천지원 부장이 어느 정도 일을 잘 한다는 것을 알고는 있었다.
하지만 지금껏 별다른 활약은 없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달랐다.
“한국으로 돌아가면 크게 칭찬해줘야겠는데?”
“도련님, 칭찬만 해주고 끝인가요?”
“음, 연말 보너스 많이 챙겨주면 되려나?”
“그것도 좋겠네요.”
중계마저 확정됐으니 이제 마무리만 잘 지으면 되겠다.
“마지막까지 수고 좀 하자고, 김 비서.”
“네!”
* * *
며칠 후, 한국 축구팬들을 놀라게 할만한 소식이 전해졌다.
『[오피셜] 고양UTD, 스페인 전지훈련에서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와 경기 확정!』
『파격행보 보이는 고양UTD, 이번에는 스페인이다! 그라나다CF, 발렌시아, 아틀레티코마드리드와 경기 확정!』
이 소식을 들은 축구팬들의 반응은 뜨거웠다.
┖ 미쳤다! 전부 스페인 1부 리그 클럽들이야!
┖ 쯧쯧. 붙어봤자 어차피 처참하게 깨질 것이 뻔한데 뭐하러 붙은 거냐? 가서 나라 망신시키지나 마라!
┖ 위에 멍청한 놈아! 경험 쌓으려고 가는 거잖아!
┖ KSB에서 중계하네? 본방 사수합니다!
┖KSB면 라리가만 전문으로 해설해주는 한정희님이 하겠네? 개꿀.
┖ 발렌시아에서 뛰는 스페인 국대 바르케스하고 아틀레티코에 있는 헤라르두 볼 수 있는 건가?
┖ 2부팀 전지훈련 클라스 미쳤고요. 오졌고요. 도대체 우리 서울 라이언스는 뭐하냐?
국내 축구에 관심 없는 사람들도 관심을 가질 정도로 반응은 뜨거웠다.
“대중들의 관심은 확실하게 이끌었네요.”
“네. 결과가 어떻든 관심을 이끄는 건 성공입니다.”
“선수단 분위기는 어떻던가요?”
“굉장히 달아오른 상태입니다. 무슨 결승전 경기를 앞두고 있는 모양새입니다.”
“그래요?”
스페인 일정을 모두 마치고 돌아온 나는 천지원 부장과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천 부장님 덕분에 이번 전지훈련이 더욱 빛나게 되는 것 같네요.”
“아닙니다. 대표님 덕분이죠.”
“하하하! 우리 천 부장님이 이렇게 아부를 잘하시던 분이신가요?”
“아부라니요. 사실을 이야기했을 뿐입니다.”
“하하하!”
기분 좋게 웃는 나를 바라보는 천지원 부장의 입가에도 미소가 그려져 있었다.
“대표님.”
“음?”
갑자기 천지원 부장이 진지한 얼굴로 바뀌었다.
“저는 언제나 대표님 편입니다.”
“어유, 뭘 새삼스럽게 갑자기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그러자 그는 무언가 결심한 얼굴을 드러내며 말했다.
“대표님의 큰형이자 영신 그룹의 사장 지태완이, 대표님을 적대하고 있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
“저는 대표님을 믿고 있고, 대표님이 무너지지 않게 돕고 싶습니다.”
“그, 천 부장?”
“대표님, 너무 혼자서 모든 것을 하지 마십시오. 대표님 곁에는 함께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어, 음.”
나는 순간 말문이 막혔다.
작심한 얼굴로 또렷하게 나를 쳐다보는 천지원 부장의 기세에 순간적으로 억눌려버린 것이다.
아무래도 나도 모르는 사이에 뭔가 오해를 사고 있는 것 같았다.
나는 혼자서 막 뭘 해보겠다고 생각한 적은 없었다.
그저 형에게 복수하겠다는 일념 하나로 했을 뿐인데…….
“대표님의 그리시는 큰 그림이 망쳐지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크게 착각하고 있다.
착각이라고 이야기하고 싶었다.
하지만…….
“어, 음. 예. 그렇게 하세요.”
속마음을 이야기하지 못했다.
* * *
김유리는 모처럼 쉬고 있었다.
스페인 일정을 마친 후, 지태훈 대표의 지시로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오래간만에 보는구나.”
“아빠.”
김진철 이사는 모처럼 집에서 휴식을 취하는 딸의 모습을 보게 되었다.
“그놈이 너무 일을 많이 맡기는 게 아니냐? 어떻게 된 게 집에 들어오는 날보다 밖에 있는 날 더 많은 거냐?”
아버지의 볼멘소리에 김유리는 시큰둥하게 반응했다.
“그런 거 없어요. 도련님은 저한테 잘 대해줘요.”
“정말 괜찮은 게 맞는 거냐? 얼굴이 많이 수척해진 것 같은데?”
“아빠. 오랜만에 본 딸한테 잔소리하는 거야?”
“……크흠!”
김진철은 딸의 한 마디에 더 이상 뭐라 말할 수 없었다.
그러다가 슬쩍 김유리의 눈치를 살핀 그가 한마디 툭 던지듯 얘기했다.
“요즘 회사에 그 망할 놈 이야기가 많이 돌더구나.”
“…….”
“잘해 보거라.”
김진철은 그렇게 말하고 자리를 떠났다.
혼자 남게 된 김유리는 문득 지태훈을 떠올렸다.
구단 대표이사로 발령받기 전후로 갑자기 사람이 달라져 버렸다.
여전히 통통 튀는 면이 있기는 했지만 과거 통제 불능이었던 시절에 비하면 정말 사람이 됐다.
“조금은 멋있은 것 같기도 하고.”
흠칫.
저도 모르게 혼잣말을 중얼거린 김유리는 흠칫했다.
“이게 무슨 소리야. 어차피 도련님은 도련님일 뿐이야.”
김유리에게 있어 지태훈은 정말 지켜주고 싶은 동생 같은 존재였다.
어린 시절, 부모님을 통해서 알게 된 이후부터 쭉 가지고 있던 마음이었다.
그랬는데…….
“…….”
듬직한 어깨.
종종 자신을 배려해주는 태도.
직원들을 다루는 카리스마.
“하아.”
그녀의 마음은 시간이 지날수록 조금씩 심란해져 가고 있었다.
* * *
고양 유나이티드 선수단이 스페인으로 떠났다.
스페인에 도착하자마자 선수단은 현지에서 상당한 관심을 받았다.
현지에서도 스페인 1부 팀들과 경기를 치를 아시아의 작은 2부 팀에 흥미를 보였다.
그렇게 많은 이들의 관심 속에서 훈련이 진행됐다.
그러다가 얼마 안 가서 프리시즌 첫 경기가 펼쳐졌다.
『고양UTD와 그라나다CF의 경기가 시작됩니다! 이곳은 그라나다의 홈구장 누에보 로스 카르메네스 경기장입니다!』
그라나다CF를 상대하는 프리시즌 첫 경기.
그라나다의 홈구장에는 수많은 팬들로 가득했다.
대부분 홈팬들이지만 스페인에 거주하는 한국 교민들도 제법 와 있었다.
그들은 멀리서 온 고양UTD를 응원했다.
대한민국에서도 이미 수많은 사람들이 오늘 경기를 시청하고 있었다.
『이번 프리시즌 첫 경기에서 고양은 새로 영입한 선수들을 모두 선발로 내세웠는데요. 과연 영입된 선수들이 얼마만큼 좋은 활약을 보여줄지 기대가 됩니다.』
고양은 4-2-3-1 포메이션으로 경기를 치렀다.
새로 영입된 사무엘이 최전방에 기용되고 그 밑에는 박형우가 뒤를 받쳤다.
장현우도 중앙 미드필더로 나서서 공수밸런스를 조절했다.
수비에는 라시모프를 축으로 라인을 조율해나갔다.
『경기 전만 해도 그라나다CF가 우세할 것으로 보였는데요. 고양 선수들의 투지를 기대해보겠습니다.』
이 경기를 지켜보는 사람들이 있었다.
바로 지태훈 대표였다.
한국에 왔다가 다시 스페인까지 날아간 그는 현지에서 경기를 지켜보고 있었다.
그런 지태훈 대표의 모습이 중계 카메라에 잡혔다.
『K리그 역사상 가장 젊은 대표이사죠?』
『그렇습니다. 젊어서 그럴까요? 현재 K리그에서 가장 핫한 대표이사이기도 합니다.』
굳은 얼굴로 경기를 지켜보는 지태훈 대표의 모습을 바라보는 이가 있었으니, 바로 한국에 남아 있는 고양 프런트 직원들이었다.
그들도 각자 집에서 본방 사수하며 경기를 지켜보고 있었다.
“고양 파이팅!”
“좋은 모습 보여줘!”
그렇게 모두의 기대와 응원을 받은 덕분일까?
고양 선수들은 의외로 밀리지 않은 모습을 보여줬다.
『그라나다CF는 현재 리그 중하위권에 있는 팀인데요. 그래도 프리메라리가 1부 리그 팀이라는 자부심이 있는데, 의외로 고양이 밀리지 않고 있습니다!』
『상대로부터 공을 빼앗은 장현우! 장현우, 박형우 쪽으로 살짝 내줍니다! 박형우, 드리블! 드리블 돌파!』
『왔어요! 왔어요!』
『순식간에 2명을 제치는 박형우! 국가대표 출신의 실력을 보여주는데요! 순식간에 그라나다의 수비가 뚫려버립니다!』
『자~~ 앞에 수비 1명이죠! 옆에 사무엘이 같이 뛰어가고 있어요! 내주나요? 아니면 직접 때리나요!?』
『박형우 슈우우웃! 하지만 수비 맞고 굴절, 다시 잡는데요! 이번에는 사무엘에게!』
『와써요~~! 싸무에에에엘!』
『사무엘~~ 슈우우웃! 들어갑니다! 사무엘이 고양 유니폼을 입고 이번 프리시즌 첫 번째 득점을 기록합니다!』
모두의 예상을 깨고 선제 득점을 만든 사무엘의 플레이에 그라나다 홈구장은 충격에 휩싸였다.
득점을 기록한 사무엘이 코너 쪽에 있는 카메라 앞으로 뛰어가서 외쳤다.
“나 아직 안 죽었다!”
그런 사무엘의 모습을 지켜본 지태훈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외쳤다.
“이야~~ 역시! 쏴라 있네!”
때마침 서로 눈이 마주친 두 사람.
두 사람은 서로를 향해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