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화
“그럼 신년 맞이 첫 주간 회의를 진행하겠습니다.”
김 비서의 말을 시작으로 1월 첫 주간 회의가 시작됐다.
나는 회의에 참여한 인원들을 쭉 훑어보다가 유지원 경영지원팀 부장에게 멈춘 뒤 말을 걸었다.
“유지원 부장님. 선수들은 아직 휴가 중이죠?”
“네. 다음 주에 복귀할 예정입니다.”
“복귀 선수들 훈련 계획은 어떻게 됐죠?”
“일주일 정도 구단 훈련장에서 가벼운 워밍업 훈련이 진행될 예정입니다.”
“훈련 과정은 모두 곽찬구 감독이 계획한 겁니까?”
“예. 감독님과 협의해서 진행했습니다.”
“그렇군요. 그럼 전지훈련은 어떻게 됐습니까?”
전지훈련에 대해 묻자 유지원 부장의 얼굴이 조금 어두워졌다.
“그게…….”
“왜 대답을 못 하죠?”
“사실, 마땅한 전지훈련 장소를 구하지 못했습니다. 죄송합니다.”
“뭐라고요?”
전지훈련 장소를 구하지 못했다는 말에 나는 두 눈을 부릅떴다.
“당장 전지훈련이 1월 말에 있는데 아직도 못 구했다는 게 말이나 됩니까?”
“…….”
“무슨 이유가 있었던 겁니까?”
“그, 처음에 곽찬구 감독님과 협의해서 가까운 일본 쪽으로 전지훈련 장소를 잡으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저희가 물색하려던 장소를 파주FC 측에서 미리 선점해 뒀더라구요.”
“……파주FC가요?”
“네.”
뭔가 감이 잡혔다.
하지만 이해할 수 없는 부분들도 있었다.
“파주FC가 선점을 했다고 해도 일본에 전지훈련할 수 있는 장소가 거기 하나만 있지 않을 텐데요?”
“안 그래도 다른 곳을 수배해서 진행해보려고 했는데 하필 다른 팀들이 또 선점을 해서…….”
“…….”
순간 머리가 지끈거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애써 티를 내지 않고 방법을 찾기 위해 머리를 굴렸다.
“일본 말고 다른 나라에 있는 훈련장은 안 됩니까?”
“가능은 한데 아무래도 몇 가지 문제가 좀 있어서 말이죠…….”
“문제요? 혹시 돈? 그거라면 모자라지는 않을 텐데요?”
경비 문제는 있을 수 없다.
이미 우리가 받은 투자 금액만 따지면 K리그2뿐만 아니라 K리그1에서도 어지간한 상위권 팀 수준이었으니까.
그러자 유지원 부장이 다급하게 설명을 덧붙였다.
“대표님, 전지훈련을 가는 이유 중 하나가 단순히 날씨 좋은 곳에서 선수들이 훈련만 하는 게 전부가 아닙니다.”
“그렇죠. 가서 훈련도 하고 서로 마음에 드는 상대하고 만나서 연습경기도…… 설마?”
“……네.”
그랬다.
유지원 부장은 훈련장을 구하지 못한 게 아니었다.
전지훈련에서 맞서 볼 상대를 구하지 못했던 것이다.
“설마 일본 팀 하나 못 구할 정도입니까?”
일본 J리그는 우리와 똑같이 춘추제로 리그를 진행한다.
해서 우리가 전지훈련을 진행할 때 맞춰 비슷하게 프리시즌 기간을 갖는다.
그래서 한국 K리그 팀들은 일본 클럽들과 맞붙는 것을 선호했다.
일본 클럽들도 비슷한 실력을 지닌 한국 클럽들과의 연습경기를 치르는 것을 좋아했다.
그랬기에 하나도 못 구했다는 말이 더욱 이상했던 것이다.
“죄송합니다.”
“이럴 수가 있나?”
작년까지만 해도 우리는 멀쩡하게 일본 팀들과 연습경기를 가졌었다고 한다.
그런데 올해 그게 모두 틀어졌다.
“다른 팀들을 수배해보셨습니까?”
“그게, 일정이 비는 팀들을 수배해봤는데, 모두 갖은 이유를 대면서 우리와의 평가를 모두 거절했습니다.”
“…….”
불길하다.
왠지 이거와 비슷한 상황을 겪어본 적이 있어서 그런가?
나는 슬쩍 김 비서 쪽을 쳐다봤다.
김 비서도 나와 똑같은 생각을 한 것인지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아무래도 방법을 찾아야겠군요.”
* * *
전지훈련 장소를 찾는 사이에도 이적 시장 발표는 계속 이어졌다.
『[오피셜] 전북 모터스 미드필더 장현우, 고양UTD로 전격 임대 이적!』
┗ 장현우가 온다고?
┗ 와, 사무엘에 이어서 장현우? 가슴이 웅장해진다!
┗ 현우야 어디 가!
청소년 시절부터 각급 연령별 대표팀을 두루 경험했던 장현우.
고등학교 졸업 후 전북 모터스와 바로 프로 계약을 맺을 정도로 실력 있는 선수였다.
K리그 U22 정책 덕분에 20세부터 22세까지 주전에 가까울 정도로 1군 경기도 상당히 많이 소화했다.
23세가 되던 해에 K리그 100경기 달성에 성공했다.
아시안게임 대표로 발탁되어 우승까지 한 덕분에 군면제도 받았다.
전북 모터스에서도 애지중지하던 장현우가 해외 리그도 아닌, 그것도 2부 리그 고양UTD로 임대 이적한 것이다.
비록 임대라고 해도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사실 여기에는 이유가 있었다.
“더 뛰고 싶다.”
매년 우승을 다투는 전북 모터스에는 실력 있는 선수들이 즐비하다.
조금이라도 실수하면 바로 주전에서 밀리는 것이 현실이다.
장현우는 분명 실력 있는 선수였지만, 작년 시즌에 같은 포지션 경쟁자인 세르베르에게 밀렸다.
세르베르는 동유럽 루마니아 국적을 가진 선수다.
작년 처음으로 K리그 무대를 처음 밟은 그는 리그와 컵 대회를 통틀어 17골 14도움을 기록하며 대활약을 펼쳤다.
장현우는 이러한 세르베르의 활약 앞에 주전에서 벤치로 밀리고 말았다.
더 이상 U22 의무 출전 대상이 아니게 된 장현우는 세르베르가 부상 또는 체력 관리 차원에서 진행되는 로테이션 아니면 출전하기 어려워진 상태였다.
결국 장현우는 이적을 고민하게 되었는데, 그런 상황에서 접근한 팀이 바로 고양UTD였다.
전북에서 받는 연봉을 최대한 보장하고 다양한 수당 지급을 약속하며 데려온 것이다.
그렇게 사무엘에 이어 장현우 영입까지 성공하며 팬들을 놀라게 한 가운데, 또 한 번 사람들을 놀라게 하는 영입 소식이 터져 나왔다.
『[오피셜] 고양UTD, 우즈베키스탄 국가대표 출신 라시모프 영입!』
┗ 우즈벡 국대?
┗ 햐, 미쳤네!
┗ 이번에 고양 뭐 하나 크게 일 내겠는데?
┗ 2부 리그 팀도 이렇게 영입하는데 1부 리그에 있는 서울 라이언스는 영입 안 하고 뭐 하냐? 반성해라!
막심 라시모프.
현 우즈베키스탄 내에서 핫한 선수로, 향후 미래가 기대되는 선수였다.
포지션은 중앙 수비수이다.
아직 21세에 불과했지만 전 소속팀인 로코모티브(우즈베키스탄)에서 주전을 활약하며 팀을 우승시켰다.
로코모티브의 최소 실점을 이끌며 수비수로서 대인 방어와 조율 능력이 일품이었다.
우즈베키스탄 국가대표에도 차출되며 활약했는데 지금까지 총 12경기를 뛰었다.
그런 그가 2부 리그인 고양UTD로 이적한다는 소식을 들은 K리그 팬들과 우즈베키스탄 팬들 모두 놀랐다.
“우즈베키스탄 선수들 사이에서 한국, 특히 K리그에 대한 이미지가 좋은 편이다. 나도 제파로프나 게인리히 같은 선수처럼 되고 싶다.”
라시모프는 이적 이후 진행된 기자들과의 인터뷰를 통해서 이렇게 이야기했다.
아울러 과거에 K리그에서 뛰었던 우즈베키스탄 선수들의 이름을 언급하며 그들처럼 대성하고 싶다고 말하며 K리그 팬들의 호감을 샀다.
방출 이후 팬들을 놀라게 하는 영입 소식이 이어지는 가운데, 이러한 영입 소식에 방점을 찍는 일이 터졌다.
그것은 바로…….
『[오피셜] 국가대표 출신 박형우, 고양UTD로 전격 이적!』
┗ 내가 아는 그 박형우?
┗ 헐, 박형우까지?
┗ 고양팬은 성불합니다.
┗ 다음 시즌 승격은 고양이 될 듯.
현 대한민국 국가대표에서 활약하면서 동시에 중동의 메시라 불리는 박형우가 마침내 고양 유나이티드로 전격 이적한 것이다.
* * *
“이거, 정말이지 뭐라 어떻게 감사해야 될지 모르겠습니다.”
“감사 표현은 승격으로 해주시면 됩니다.”
“알겠습니다. 믿고 맡겨주십시오. 나, 곽찬구의 이름을 걸고 반드시 팀을 승격하게 만들겠습니다!”
이름 있는 선수들을 대거 영입하는데 성공한 나를 향해 곽찬구 감독은 진심으로 고마워했다.
나는 그런 그를 보며 보일 듯 말 듯 미소를 지었다.
‘미래를 알고 있는 게 이럴 땐 도움이 되네.’
앞서 사무엘, 장현우, 라시모프 모두 곽찬구 감독의 요청으로 영입된 인원들이었다.
물론 이 과정에서 내가 알고 있는 미래의 정보들도 도움이 됐다.
‘사무엘은 그렇다 쳐도, 장현우와 라시모프의 경우에는 미래에 곽찬구 감독과 함께 하게 될 운명이긴 했어.’
곽찬구 감독이 중국 클럽 감독을 지휘하고 있을 무렵 데려왔던 라시모프.
이후 서울 지휘봉을 잡으며 영입한 장현우.
이 둘은 곽찬구 감독이 이끄는 서울이 우승할 수 있는 큰 원동력이 된 선수들이다.
사실 곽찬구 감독이 서울을 우승시켰을 때쯤에 나는 억울하게 감방 생활을 하고 있었을 때였다.
그래도 감방 안에 있으면서도 국내 축구 소식은 틈틈이 듣고 있었던 편이었다.
그중에서 장현우와 라시모프의 활약은 감방 안에 있던 나도 알 정도로 대단했고.
어쨌든 시점이 많이 빠르기는 하지만, 내가 곽찬구 감독에게 의도적으로 정보를 흘려서 이 두 선수에게 관심을 갖도록 유도했었다.
그렇게 곽찬구 감독은 직접 이 두 선수의 상태를 확인하게 되었고, 그 결과 앞으로 자신의 전술 속에서 반드시 필요한 선수들이란 것을 확인하고 바로 영입 요청을 해왔던 것이다.
‘확실히 영입 시점이 빨라서 그런지 몰라도 이 두 선수의 몸값이 예상보다 많이 낮아서 다행이었어.’
가성비 있게 영입을 진행했다.
“그런데 대표님. 박형우는 어떻게 해서 영입하게 된 겁니까?”
곽찬구 감독의 물음에 나는 피식 웃음을 흘렸다.
사실 박형우는 곽찬구 감독이 원했던 영입은 아니었다. 애초에 생각조차 하지 않았을 테니.
그렇다고 불필요한 영입은 아니다.
오히려 박형우가 가진 개인 실력과 경험은 팀에 큰 도움이 된다고 판단했다.
그런 그가 우리 팀으로 왔으니 신기할 것이다.
“모든 건 영업 비밀입니다.”
“…….”
“어쨌든 감독님께서는 승격을 위해 모든 힘을 다 써주십시오. 저를 포함한 프런트도 최선을 다해 서포트 해드릴 테니까요.”
“예.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 * *
시즌이 끝나고 휴가를 떠났던 선수들이 다시 복귀했다.
기존에 나간 선수들도 있고 새롭게 영입된 선수들도 있었다.
약간은 어색할 수도 있는 상황이지만 곽찬구 감독을 비롯한 코칭스태프들이 적극 지도에 나섰다.
그로 인해 선수들 사이에 어색함은 많이 없는 편이었다.
그렇게 곽찬구 감독이 선수들을 이끌며 훈련에 매진하는 사이, 나는 이번 전지훈련 관련 사건의 배후가 누구인지 알게 됐다.
“설마 했는데 역시나네.”
“어떻게 할까요?”
“후우.”
김 비서의 물음에 나는 깊게 한숨을 내쉬었다.
“아무래도 우리가 계속 가만히 있으니까 더 막 나오는 거겠지?”
“글쎄요.”
“가서 직접 형을 만나서 한마디 하고 올까?”
“도련님, 감정적으로 이야기하는 것은 좋지 않아요.”
“나도 알아. 하지만 지금 내가 상당히 열 받는걸?”
또 형이다.
우리가 전지훈련에서 진행할 연습 경기 스파링 상대를 구하지 못하게 만든 원흉이 바로 큰형 지태완 때문이라는 것이 밝혀졌다.
점점 형의 방해가 짙어지고 있었다.
시즌 막판에 조금 조용해지나 싶었는데, 또 내 앞길을 방해한다.
“솔직한 심정으로는 당장 형을 치워버리고 싶어.”
“……도련님.”
“알아. 그러기에는 형이 가진 힘이 아직 막강하다는 걸. 하지만 말이야. 이것도 과연 얼마나 오래갈까?”
이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다.
언젠가 형은 무너져 내린다.
바로 내 손에 의해서.
“지금은 조금만 참아보자.”
아직은 발톱을 숨기고 있을 때다.
좀 더 날카롭게 다듬어지거든 그때 가서 목덜미를 노려도 늦지 않다.
그리고 내게 이런 상황을 해결할 방법이 없는 것도 아니었다.
“김 비서.”
“네, 도련님.”
“스페인으로 가자.”
“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