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화
100억.
그 한 마디에 프런트 직원들은 모두 꿀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백, 백억이요?”
“네. 두바이의 칼리드 왕자가 우리에게 백억을 빌려주기로 했습니다.”
“그게 무슨…….”
천지원 부장이나 정소영 부장 모두 이해하지 못했다.
그럴 만도 했다.
나라도 갑작스러운 이 상황이 믿기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다가올 쾌감은 더욱 크다.
“이걸 보시죠.”
김 비서에게 눈짓하며 신호를 주었다. 신호를 받은 김 비서가 가방을 열어 서류 한 장을 꺼냈다.
영어로 무언가 가득 적혀져 있는 서류.
그 서류 맨 마지막에는 칼리드 왕자가 직접 찍은 인장이 있었다.
“칼리드 왕자가 우리에게 돈을 빌려준다는 증명서입니다.”
그렇게 말하며 서류를 천지원 부장에게 건넸다.
영어 실력이 월등한 천지원 부장이 빠르게 눈을 굴리며 읽어내렸다.
그리고 곧 부들부들 떠는 목소리로 말했다.
“지, 진짜군요.”
“진짜죠. 그럼 가짜겠습니까?”
이뿐만이 아니다.
“여기에 그것을 증명하는 신용장도 함께 받아왔습니다. 수일 내로 칼리드 왕자 쪽에서 입금을 진행할 겁니다.”
그 말에 직원들은 모두 하나가 된 듯 환호성을 질렀다.
와아아아아!
“대표님 정말 대단하십니다!”
“갑자기 중동으로 출장 가신다고 해서 의아해했는데 다 계획이 있으셨군요!”
천지원 부장을 비롯한 부장급 인사들은 나를 향해 경외의 시선을 보냈다.
뭐, 나도 이 정도 성과까지 올릴 줄은 나도 예측하지 못했다.
“그래서 도대체 무슨 일이 있으셨던 겁니까?”
“그게…….”
천지원 부장의 물음에 나는 과거의 기억을 떠올렸다.
* * *
“돈 좀 빌려주십시오.”
“음?”
나는 칼리드 왕자에게 간곡한 어조로 부탁했다.
“흠, 형제에게 돈을 빌려주는 일이야 그리 어려운 건 아니네만, 빌려서 어디에 쓰려고?”
“박형우 선수 영입하고, 남은 돈은 구단에 투자하려고 합니다.”
내 말에 칼리드 왕자의 표정이 묘하게 바뀌었다.
그러더니 곧 기가 찬다는 듯 얘기했다.
“지금 나와 계약된 선수를 영입하는데, 내 돈을 빌리겠다? 그게 무슨 소리인가? 그럼 내가 내 돈 주고 자네 팀에 영입시키라는 소리인가?”
“그렇습니다.”
“이해할 수 없군.”
“이해하기 어려울 겁니다. 하지만 이것 또한 어떻게 보면 투자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게 투자다?”
“예.”
박형우 선수가 내년에 월드컵에 나가기를 원한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평범한 2부 리그 팀에 국가대표급 선수를 영입하는 것은 쉽지 않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평범한’ 2부 리그 팀일 경우에 해당된다.
‘평범한’이란 단어를 지워버린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두바이의 거물 칼리드 왕자가 2부 리그 팀에 투자를 진행했다는 소식이 들리면 세간의 시선이 확 몰려올 겁니다.”
“…….”
“저는 그걸 이용할 생각입니다. 비록 저희가 당장 레알 마드리드나 바르셀로나 같은 팀처럼은 안 되더라도, 적어도 K리그 내에서는 큰 이슈가 될 겁니다.”
“그럼 그 이슈를 활용해서 박형우를 월드컵에 내보낼 생각인가?”
“물론입니다.”
“……!”
칼리드 왕자가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아마 그의 입장에서 돈 좀 받은 2부 리그 팀이 뭘 더 할 수 있겠냐는 생각을 하고 있겠지.
하지만, 다른 리그라면 몰라도 K리그는 가능하다.
“현재 대한민국 국가대표 감독이 누구인지 아십니까?”
“음, 크리스토퍼 제이든 감독이던가?”
“맞습니다. 잘 알고 계시네요.”
“알 수밖에…… 형우의 일로 그하고 몇 번 만난 적이 있었으니까.”
“그럼 그 사람이 어떤 생각을 가진 인물인지도 알고 계시겠군요.”
“물론…… 설마?”
“네.”
무언가를 눈치챈 칼리드 왕자.
나는 그런 그를 보며 씩 웃었다.
“크리스토퍼 제이든은 실력도 중요하지만 그 선수의 스타성도 함께 봅니다. 과거 클럽 감독을 했을 때부터 버릇처럼 가져왔던 일이죠.”
“지금 자네는 팀과 형우를 함께 이슈화시키겠다는 뜻인가?”
“네. 어차피 이번 겨울 이적시장 때 스쿼드에 대규모 개편이 이루어질 예정입니다. 그때 박형우의 존재를 K리그 전역에 알려 이슈화시킬 예정입니다.”
“하지만 조금이라도 실패한다면, 형우는 월드컵에 가기 어려울 거야.”
“가능합니다. 분명 가능합니다.”
“정말 그렇게 단언할 수 있나?”
“예. 왜 그런지에 대한 나머지는 지켜보시면 서서히 알게 될 겁니다.”
그말을 끝으로 나와 칼리드 왕자 사이에는 침묵이 흘렀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짧지도 길지도 않은 시간이 흐른 뒤에 칼리드 왕자가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하하!”
박장대소하듯 크게 웃는 그를 보며 나는 묘한 기분을 느꼈다.
그는 눈에 고인 눈물을 손으로 훔치며 말했다.
“형제가 상당히 똘기가 있다고 여겼는데, 이거 상상 이상이구먼!”
“칭찬으로 여기면 되겠습니까?”
“하하하! 그 패기도 마음에 들어!”
아무래도 칼리드 왕자의 마음에 쏙 든 모양이다.
그럼 이제 그가 내게 얼마의 금액을 줄 수 있을지가 관건이다.
2부 리그 팀들 평균 예산 규모 생각하면 30억 이상 받아도 충분히 이슈가 될 것이다.
그 이상 받으면 더 좋고.
박형우의 연봉도 감당해야 하기 때문에 어느 정도 이상은 받아야 한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데, 칼리드 왕자가 손가락 1개를 펴며 말했다.
그걸 본 나는 순간적으로 얼굴을 일그러뜨릴 뻔했다.
‘설마 1억?’
아닐 거다.
저 1은 10억 정도 되겠지?
그래, 아무리 그래도 중동 왕자인데 그 정도는 되어……
“100억.”
“역시 그럴 줄 알았…… 예?”
순간 내 귀가 잘못된 줄 알았다.
옆에서 통역해주던 김 비서도 어안이 벙벙한 얼굴이다.
아무래도 제대로 들은 모양이다.
“우선 자네에게 100억을 빌려줄 거야.”
꿀꺽.
그 말에 나도 모르게 침을 삼켰다.
그 사이 칼리드 왕자가 말을 이어갔다.
“형우가 내년 월드컵에 나간다면 그 100억은 갚지 않아도 돼.”
파격이다.
그만한 액수를 빌려주는 것도 놀랄 일인데, 박형우가 월드컵에만 나간다면 갚지 않아도 된단다.
“그리고 이후 자네 구단에 추가 투자를 진행하도록 하지. 금액은 그때 가서 정하는 걸로 하고.”
“감사합니다!”
“감사하긴 일러. 자네가 나한테 얼마만큼 더 재미난 것들을 보여주느냐에 따라 더 큰 선물 보따리가 따라올 거야. 무슨 말인지, 알겠나?”
“물론입니다!”
“그럼 관련된 증명서를 바로 발급해주겠네. 입금은 자네가 돌아간 뒤에 며칠 안으로 바로 입금이 될 거야.”
그렇게 나는 상상 이상의 총알을 얻게 되었다.
* * *
약속대로 칼리드 왕자는 정말로 100억을 입금해 주었다.
회계팀의 정소영 부장이 통장에 찍힌 0을 하나씩 세다가 소리를 지른 일은 덤이다.
“정말 100억이네요.”
김 비서도 나도 통장에 찍혀 있는 금액을 보고 절로 탄성이 나왔다.
사실 재벌집 자식인 내가 고작 100억 보고 놀란다는 것도 웃긴 일이긴 하다.
하지만 태어나서 처음으로, 내가 직접 뭔가를 해서 마련한 금액이었다.
회귀 전에 대표이사를 했을 때도 이만한 액수를 다뤄보지도 않았다.
무엇보다 큰 관심이 없었다.
그저 내 눈앞에 떨어지는 떡고물에만 관심이 있었지.
그런데 이제는 다르다.
제대로 된 대표이사 활동을 하면서 만든 군자금이다.
이 군자금으로 할 수 있는 일들은 무궁무진하다.
그걸 떠올리면 가슴이 뛰었다.
“이렇게 우리끼리만 콩닥콩닥할 필요는 없지. 그렇지?”
“맞습니다. 대표님. 그럼 준비한 기사 터트릴까요?”
“응. 바로 진행해.”
“알겠습니다.”
일부러 그 누구에게도 이야기하지 않았다.
아마 아버지도 준비한 기사를 보고 알게 되겠지.
그리고 형도 마찬가지일 거고.
“형이 내 선물을 보고 기뻐했으면 좋겠다.”
* * *
『[오피셜] 고양UTD, 두바이 왕자로부터 100억 규모 투자 유치 성공!』
“이게 무슨 개소리야!”
화가 잔뜩 난 지태완이 내지르는 고함이 방 안을 가득 채웠다.
그런 그의 앞에 있는 비서는 어쩔 줄 몰라 하고 있었다.
“도대체 어떻게 된 거야! 그 새끼가 어떻게 이런 투자를 받아!?”
“그, 일전에 두바이로 출장을 떠난 이유가 칼리드 왕자를 만나기 위함이었던 것 같습니다.”
“젠장!”
고양 유나이티드의 반등을 막기 위해 지태완이 손수 국내 투자를 막아왔었다.
일부 업체는 고양 쪽에 투자를 진행한다고 했지만, 대부분의 업체는 고양과 손절한 상태였다.
여기에 내년에 집행할 모기업 투자 예산도 반토막을 냈다.
이렇게 되면 내년 시즌 예산은 풍비박산이 났다고 봐도 무방했다.
그런데 갑자기 상황이 역전됐다.
숨통을 끊어놓기 바로 직전에, 막대한 해외 투자로 되살아난 것이다.
지태완 입장에서는 당혹스러운 상황이 아닐 수 없었다.
“막내 녀석이 이렇게까지 날뛸 줄이야.”
달라졌다.
무슨 일인지 몰라도 막내가 달라진 것이다.
“호랑이 새끼였나.”
지태완은 왜 아버지가 막내에게 기대를 거는지 조금은 알 것 같았다.
그랬기에 지태완은 더욱 지태훈을 내버려둘 수 없었다.
‘아예 씨를 말려야겠어.’
지태완이 그렇게 다른 방법들을 생각하는 사이, 지종윤 회장도 소식을 듣게 되었다.
“으하하하!”
회장의 호탕한 웃음소리가 회장실을 가득 채웠다.
그런 회장 곁에는 박준후 팀장이 있었다.
“녀석이 아주 큰~~일을 저질러 버렸구만!”
지종윤 회장은 슬쩍 박준후 팀장을 향해 말을 걸었다.
“이보게 박 팀장.”
“예. 회장님.”
“자네도 이제 슬슬 인정하지 그러나. 우리 막내아들의 실력을 말이야.”
“……제가 딱히 인정하고 말고 할 부분이 있겠습니까?”
“쯧쯧. 박 팀장, 나는 자네의 그런 중립적인 것 같은 애매함을 좋아하긴 하네만, 이럴땐 확실하게 대답해줘야지. 안 그러나?”
“…….”
대답은 하지 않았지만 박준후 팀장도 속으로는 상당히 놀라고 있었다.
그저 답 없는 망나니로 생각해왔던 막내 도련님이 이만한 성과를 낼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다.
“지태훈, 고놈이 대표로 부임하고 나서 구단이 많이 바뀌었어.”
“회장님께는 좋은 일 아닙니까?”
“좋다면 좋은 일이지.”
지종윤 회장은 그렇게 말하다가 뭔가 마음에 들지 않았던지 인상을 팍 찌푸렸다.
“이보게 박 팀장, 이번에 보니까 내년 구단에 지원할 예산을 반으로 줄였다면서?”
“그렇습니다.”
“왜 그런 거야? 지금 상황이면 충분히 더 지원해줘도 되는 거 아닌가?”
“으음.”
대답을 망설이는 박준후 팀장을 본 지종윤 회장이 눈썹을 꿈틀거렸다.
“말해 봐.”
“……지태완 본부장이 뒤에서 주도한 모양입니다.”
“태완이가?”
지태완이 뒤에서 주도했다는 말에 지종윤의 표정이 묘하게 바뀌었다.
“태완이 녀석, 벌써부터 견제에 들어간 모양이구먼.”
“어떻게 할까요?”
“어떻게 하긴. 일단 내버려둬. 태훈이 고놈이 야망 있고 실력 있다면 이 정도 상황 정도는 본인이 알아서 뚫고 가야지.”
“…….”
“그리고 뭐, 특별히 내가 손을 댈 것도 없이 알아서 잘 해나가고 있는 모양이고.”
변화가 생기고 있다.
지종윤 회장은 그것을 느끼고 있었다.
자연스러운 경쟁은 회사에도 이롭다.
“박 팀장. 앞으로 두 놈 관련된 모든 정보를 내게 실시간으로 보고 하도록. 알겠나?”
“예. 그리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