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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집 막내 구단주-20화 (20/272)

20화

고양 유나이티드의 여러 문제들 중 하나로 꼽히던 게 바로 외국인 선수 문제였다. 최근 몇 년 동안 외국인 선수복이 없다 못해 바닥을 뚫을 정도. 단순히 실력의 문제가 아니라 태도나 인성 부분에 있어서 불합격인 선수들이 많았다.

결국 먹튀에 가까운 결과로 인해 외국인 선수에 대한 팬들의 반응도 상당히 좋지 않았다.

그런 가운데 올 시즌을 앞두고 홀로 영입된 나탈은 몇 년 만에 제 몫을 해주는 외국인 선수였다.

측면과 중앙 쪽 모두 활약 가능한 미드필더인 그는 첫 시즌부터 대부분의 경기에서 주전으로 활약했다.

3골 6도움.

올 시즌 그가 기록한 골과 도움이었다.

다른 외국인 선수가 없는 고양 유나이티드에서는 그 입지가 탄탄해졌다고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아무 문제 없을 것 같은 그에게도 고민은 존재했다.

‘한글. 어려워.’

24년 동안 브라질에서만 살아왔던 그는 심각한 언어 문제를 겪고 있었다.

간단한 대화 정도는 가능했다.

문제는 읽고 쓰는 부분이 문제였다.

노력을 안 하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는 이번에 깨달았다.

자신이 언어에 약하다는 사실을.

그리고 문제는 이것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었다.

‘음식도 거의 안 맞아.’

한국 음식이 유독 안 맞았다.

오죽하면 따로 챙겨 먹어야 할 정도였다.

이러다 보니 코칭스태프와 동료들 모두 나탈을 걱정할 수밖에 없었다.

‘동료들하고 감독님 모두 좋은 사람들이라는 건 알아. 리그 수준도 나한테 맞고. 무엇보다 임금 체불 없이 매달 돈이 나와서 더 좋아.’

브라질 리그는 종종 임금 체불이 벌어지는 경우가 많았다.

K리그는 그런 면에서 체불이 거의 없는 리그에 속했다.

그리고 브라질에 비하면 치안도 좋아서 살기 좋았다.

나탈도 나름 오랜 시간 한국에서 생활하고 싶은 마음이 컸다.

하지만 언어와 음식 문제가 발목을 잡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신임 구단주가 부임하고 시간이 어느 정도 지난 상태였다.

훈련장으로 출근하던 나탈의 눈에 낯설지 않은 무언가가 눈에 띄었다.

“어?”

[훈련장]

[화장실]

[체력단련실]

평소와 똑같으면서도 미묘하게 다른 모습에 나탈의 두 눈이 흔들렸다.

평소라면 한글로만 되어 있던 안내판들 밑에 익숙한 포르투갈어가 함께 적혀 있었던 것이다.

단순히 포르투갈어만 적혀 있지 않았다.

나탈이 알기 쉽게 한글 발음을 할 수 있는 발음 기호도 함께 적혀 있었다.

“이게 무슨 일이지?”

놀란 나탈 뒤로 누군가가 등장했다.

“여어, 나탈! 많이 놀랐나 봐?”

“……!”

두 눈만 깜빡이는 그의 곁으로 구단 통역사가 나타났다.

통역사가 웃으면서 상황을 설명해주었다.

“대표님의 지시사항이 내려왔어. 네가 언어 문제를 겪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구단 전체에 포르투갈어와 네가 한글을 배울 수 있게 발음 기호도 같이 넣으라고. 그리고 앞으로 네가 봐야 할 모든 공문에도 포르투갈어가 기재될 거야.”

“……!”

“그뿐만이 아니야. 네가 음식에 대한 문제도 있다고 하니까 전담 요리사를 따로 고용해서, 네가 먹기 좋은 음식들로 준비해준다고 해.”

이에 나탈은 감격했다.

자신을 위해 이렇게까지 해줄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사실 그가 이적해 올 때, 일전에 고양에서 활약했던 다른 브라질 선수로부터 들은 얘기가 있었다.

-K리그는 우리 같은 외국인 선수가 뛰기 힘든 곳이야. 제대로 된 인프라도 없고, 활약이 조금만 없으면 바로 방출시키거든!

모든 구단이 인프라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고양 유나이티드 같은 경우에는 타 구단에 비하면 인프라가 상당히 많이 떨어진 것은 사실이었다.

나탈이 이적하고 나서도 실제로 인프라에 대한 체감을 많이 겪고 있었다.

그래서 자신이 갖고 있는 이 어려움은 스스로 해결하지 못하면 끝이라고 생각하고 있던 상황이었다.

그런데 신임 대표가 온 뒤 상황이 달라졌다.

“언제든지 필요한 것들이 있으면 얘기하라고 하더라.”

“정말입니까?”

“그래. 그러니까 너도 팀을 위해 최선을 다해줘.”

“당연하죠! 저 정말 최선을 다할게요!”

나탈은 은혜를 모르는 남자는 아니었다.

그는 팀을 위해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쏟아낼 각오를 다졌다.

그리고 이 일은 앞으로 고양 유나이티드가 승승장구할 수 있는 발판이 되는 계기가 되었다.

* * *

나는 석정원과 함께 고양도시관리공단 사장을 만났다.

“석 회장님! 그간 잘 지내셨습니까?”

“아, 김 사장. 덕분에 나야 잘 지내고 있지. 김 사장은 좀 어떤가?”

“하하! 저도 회장님 덕분에 잘 지내고 있습니다.”

하하호호 하는 두 사람 곁에서 나는 멀뚱멀뚱 서서 지켜보았다.

석정원이 그런 나를 소개했다.

“이쪽은 고양 유나이티드 신임 대표인 지태훈 대표.”

“아! 반갑습니다. 지태훈입니다.”

“그리고 이쪽은 고양도시관리공단 사장인 김종수 사장.”

“오, 그 소문의 주인공이셨군요. 반갑습니다. 김종수입니다.”

우리는 준비한 명함을 서로 주고받은 뒤, 가볍게 악수를 나누었다.

“오늘 자네를 만나러 온 건 말이야. 여기 우리 신임 대표님께서 경기장에 가변석을 좀 설치하려고 한다 해서 말이야.”

“아! 가변석 말씀이십니까?”

가변석 이야기가 나오자 김종수 사장의 눈이 번뜩였다.

“날 봐서라도 힘 좀 써주게. 앞으로 한국 축구계를 이끌어갈 젊은 대표니까 말이야.”

“네, 걱정 마십시오. 제가 책임지고 일을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럼 김 사장만 믿겠네.”

석정원이 직접 나서준 덕분에 나는 상당히 수월하게 경기장 내 가변석 설치 건을 진행할 수 있었다.

담당 부서와 다이렉트로 연결해서 곧바로 일을 진행할 수 있게 만들었다.

모든 일을 마친 후에 나는 석정원에게 감사를 표했다.

“감사합니다. 총재님.”

“하하. 감사하긴요. 전부 한국 축구계를 위한 일이라고 생각해서 하는 겁니다.”

그 말에 나는 석정원의 눈치를 살피다가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총재님. 저는 혹여나 과거 일로 인해서 저희를 싫어하시면 어쩌나 생각했었습니다.”

그 말에 석정원이 실소했다.

“하하. 공과 사는 구분해야죠. 그 정도도 구분 못 하면 무슨 일을 하겠습니까?”

“…….”

“그리고 그 일은 지 대표의 형과의 일이지, 우리 지 대표와는 아무 상관 없다고 보는데, 내 말이 틀렸습니까?”

“그, 그렇죠.”

“어쨌든 그런 걸 걱정했다면 나를 너무 좀팽이로 생각한 겁니다. 조금 섭섭한데?”

“아! 그런 거 절대 아닙니다! 저는 그저…….”

“하하하! 농담입니다! 농담.”

농담이라는 말에 나는 식은땀을 흘렸다. 그놈의 농담 두 번 했다간 정신이 나갈지도 모르겠다.

석정원은 프로축구연맹 총재면서 동시에 대한그룹의 총수다.

대한그룹은 국내 재계 다섯 손가락 안에 든다. 영신그룹 못지않은 곳이다.

그런 그룹의 총수와 이렇게 만나는 일은 쉽지 않다.

아무리 내가 영신그룹의 막내아들이라고 해도.

“그건 그렇고 김종수 사장과 친분이 깊어 보이시던데, 오래 알고 지내신 사이셨습니까?”

“아아. 내 학교 후배였습니다. 6년 후배인데, 예전에 몇 번 함께 일한 적이 있었죠. 그때 서로 알게 된 이후 친해졌죠. 종수 녀석이 날 잘 따르기도 했고.”

“그랬군요.”

“아무튼 오늘 일은 잘 처리하길 바랍니다.”

석정원은 그렇게 말을 끝내고 헤어지려고 했다. 나는 그런 그를 붙잡았다.

“총재님!”

“음?”

“저는 총재님과 좋은 관계를 만들어가고 싶습니다!”

갑작스러운 고백(?)에 놀란 것일까?

그는 두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 금방 눈웃음을 보이며 대답했다.

“조만간에 연락 한번 드리죠.”

“넵! 감사합니다!”

나는 차에 탄 석정원을 향해 허리숙여 감사를 표했다.

그런 내 모습을 눈에 담은 석정원 회장은 조용히 웃기만 했다.

그리고 곧 그가 탄 차가 갈 때까지 나는 계속 허리를 숙였다가 천천히 일으켰다.

“후우. 이걸로 뭔가 좀 잘 되는 거겠지?”

잘 되는 거라고 믿고 싶었다.

* * *

연수 대학교 스포츠경영학과에는 최근 늦깎이 학생 한 명이 다니고 있었다.

언뜻 보면 남들처럼 평범하게 학교를 다니는 학생처럼 보였다.

하지만 그가 과거 그라운드를 누볐던 축구선수 출신이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다.

“현수야. 학교는 다닐 만하냐?”

“네, 코치님. 덕분에요.”

“그래. 그래. 지금이라도 늦지 않게 학업 시작해서 다행이다. 선수로서 네 나이는 많지만, 인생에 있어 네 나이는 아직 젊고 어리다.”

연수 대학교 스포츠경영 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는 박춘식은 눈앞에 제자를 보며 흐뭇한 미소를 드러냈다.

강현수가 어린 시절, 박춘식은 유소년 코치로 활약하고 있었다.

어떻게 보면 강현수를 프로축구 선수로 이끈 장본인이라고 볼 수 있었다.

그의 재능을 눈여겨본 박춘식이 적극적으로 그를 축구판으로 끌어들이게 했으니까.

여러 고난이 있었지만 강현수는 무사히 프로무대까지 올라와 활약할 수 있었다.

그 일이 있기 전까지만 해도.

박춘식은 알고 있었다.

강현수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고양 유나이티드가 설마 강현수를 그렇게 내치게 만들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거의 폐인처럼 지내던 강현수를 다시 세상으로 이끈 사람은 바로 박춘식이었다.

흔들리는 제자를 가만둘 스승은 없었다.

그는 강현수를 설득했다.

“현수야. 이럴수록 강해져야 한다! 여기서 무너지면 그 사람들이 원하는 대로 되는 거야! 알아?”

“하지만 저는…….”

“그래. 많이 힘들겠지. 근데 현수야. 네가 힘들어 봤기 때문에 앞으로 더욱 크게 될 수 있을 거라는 생각도 해야 한다.”

“……코치님.”

“공부하자. 공부해서 네 스스로 더욱 큰 인물이 되는 거야. 그리고 널 이렇게 만든 놈들에게 제대로 복수하자. 응?”

“…….”

강현수는 고민 끝에 그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이후 박춘식의 도움으로 그가 재직하고 있는 연수 대학교 스포츠경영학과 학생으로 입학했다.

이제는 26세의 대학생이 된 강현수.

그는 그 누구보다 열심히 수업을 듣고 학업에 열중했다.

비록 과 내에서 나이가 많은 학생이기는 해도, 오히려 그는 그것을 장점으로 만들었다.

‘네가 성장하는 모습을 볼 때마다 뿌듯하구나.’

달라진 그를 보며 뿌듯함을 느꼈지만, 한편으로는 안타까운 마음도 있었다.

‘분명 더 좋은 선수가 될 수 있었을 텐데.’

더 이상 축구선수 강현수를 보지 못한다는 사실이 안타까웠다.

다시 복귀하면 좋겠지만 더 이상 축구선수로 활약하기 어려운 몸 상태였다.

‘개 같은 영신그룹 놈들!’

이럴수록 박춘식은 영신그룹에 대한 적개심이 올라갈 수밖에 없었다.

강현수는 모르지만 박춘식은 그간 인맥으로 알 수 있었다.

‘지태완. 그놈이 외부에 알리지 못하게 미리 손을 써놨어!’

영신그룹의 첫째 아들이자 강력한 차기 총수 후보인 지태완이 강현수 사건이 터졌을 때 미리 손을 써버렸다.

그 어떤 곳에서도 강현수는 도움을 받을 수 없었다.

언론에도 터트릴 수 없었다.

분했지만 평범한 인간이 대기업의 권력을 상대하기 어려웠다.

“코치님.”

“음, 어?”

“지금 딴생각하고 계셨죠?”

“아니다. 절대 아니야.”

“흐음~”

강현수는 눈을 가늘게 뜨며 커피를 홀짝였다.

그런 그의 시선에 박춘식은 헛기침을 하며 시선을 피해 버렸다.

“그건 그렇고 요즘 고양 유나이티드가 잘 나간다고 하더라고요.”

“……그래?”

“네. 신임대표가 오고 많이 바뀌었다고 하더라고요.”

“…….”

박춘식은 보았다.

강현수가 죽은 눈으로 무덤덤하게 이야기하는 모습을.

그가 가진 상처는 깊다.

인생에 전부라 할 수 있는 것들을 잃게 만들었던 곳이니까.

한때 은혜로웠던 존재가 원수가 되었다.

그렇기에 그가 가진 적대심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일 것이다.

“현수야.”

“저 이만 가볼게요.”

조용히 떠나는 그의 뒷모습을 박춘식은 안타깝게 쳐다볼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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