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화
경기는 1:0으로 고양 유나이티드가 이겼다. 하지만 주축 선수로 활약하고 있는 이진수의 부상은 뼈아팠다.
“이진수 선수는 최소 한 달 정도 경기 출장은 어려워 보입니다.”
“한 달이나?”
김 비서의 보고에 나는 미간을 찌푸렸다.
소속 선수가 부상을 당하면 구단도 손해가 컸다. 선수가 정상적으로 뛰어서 결과를 만들어줘야 구단도 이익 창출이 가능했으니까.
“이진수 선수는 지금 어떻게 됐지?”
“병원에 입원해서 치료받고 있습니다.”
“병원이면…… 고양 병원?”
“네. 맞습니다.”
고양 병원은 고양 유나이티드와 협약을 맺은 곳이다.
선수 계약 때 진행하는 메디컬 테스트부터 시작해서 부상 경도에 따라 진료를 받을 수 있다.
“병원에 가봐야겠어.”
“지금요?”
“어. 직접 선수 상태를 확인해보게.”
“네. 그럼 일정 조율을 하겠습니다.”
오후에 구단 회의가 예정되어 있었다. 회의를 예정 시간보다 한 시간 뒤로 밀었다.
김 비서를 통해 일정 조율을 한 뒤 나는 곧장 고양 병원으로 향했다.
병원에 도착한 나와 김 비서는 이진수가 입원해 있는 병실로 향했다.
“음?”
병실에 도착하니 우리보다 먼저 도착한 이들이 있었다.
주장 김지우와 박요한이 이진수의 병문안을 와있었던 것이다.
“안 들어가십니까?”
“쉿. 잠깐만.”
나는 잠깐 문 앞에 서서 대화를 듣기 시작했다.
“……몸은 좀 괜찮아?”
“네, 괜히 걱정 끼치게 해서 죄송해요.”
“죄송하긴. 네가 사과할 게 아니지. 그 뭐야, 혁수 그 새끼한테서는 연락받았어?”
“아, 어제 전화 통화했어요. 미안하다고 하더라고요.”
“너희 둘이 친구라고 하지 않았어?”
“네. 같은 고등학교 축구부 출신이거든요.”
“햐~ 친구끼리 그렇게 거칠게 태클을 하냐?”
“아하하하.”
이진수는 멋쩍은 표정을 드러내었다. 그런 그의 모습을 조용히 지켜보던 박요한이 조금은 허탈한 듯 얘기했다.
“한동안 형이 올려준 크로스 못 받겠네요. 나 누구한테 공 받죠?”
“얌마! 그동안 형 많이 그리워해라! 알겠냐?”
경기 중 이진수와 박요한의 연계 플레이가 상당히 좋았었다.
측면에서 이진수가 크로스를 올리면 박요한이 교묘하게 오프사이드 트랩을 뚫고 마무리 슈팅까지 가져가는 플레이는 상대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들었다.
이진수가 부상에서 회복할 때까지는 한동안 그런 플레이는 보기 어렵게 됐다.
“감독님도 아쉬워하세요.”
“그러겠지.”
곽찬구 감독을 비롯한 코칭스태프도 이진수의 부상을 아쉬워할 수밖에 없었다.
한창 좋은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을 때 주축 선수의 부상 이탈을 썩 좋은 일은 아니었다.
“그나저나 하필 고양 병원이냐. 여기 시설 관련해서 말이 좀 많던데.”
“음? 별론가요?”
김지우의 말에 이진수가 어리둥절했다.
“작년에 현수가 부상당해서 고양 병원에 입원해서 수술받았잖아. 근데 그때 문제가 좀 많았나 봐. 치료가 제대로 안 돼서 그 형 기량이 많이 떨어졌거든.”
“엥? 정말요?”
“어. 그거 땜에 현수가 구단하고 병원에 항의를 좀 했었거든? 그때 트러블이 좀 크게 일어나서 결국에 이번 시즌 앞두고 은퇴해버린 거잖아.”
“와, 그런 일이 있었구나. 근데 어떻게 저희는 몰랐던 거죠?”
“엉. 이 일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아. 허재우 단장하고 임태무 감독이 입막음했거든.”
과거 고양 유나이티드에서 활약했던 강현수는 프로 데뷔부터 작년까지 고양에서만 활약했던 인물이었다.
오랜 시간 고양에 충성을 다했던 그가 갑자기 은퇴를 한다고 했을 때, 고양 팬들은 상당한 충격을 받았었다.
대부분 자세한 이유는 알지 못했다. 그런데 이번에 이렇게 알게 된 것이다.
‘진짜 도움 하나 안 되는 놈들이구먼.’
회귀 후에 그 놈들부터 먼저 쳐낸 건 정말 잘한 일인 것 같았다.
그렇게 생각한 나는 더 이상 가만히 있지 않았다.
“이진수 선수. 몸은 좀 어떻습니까?”
“엇! 대, 대표님!?”
아무렇지 않게 선수들에게 인사하며 병실로 들어갔다. 그러자 선수들이 크게 놀라며 어쩔 줄 몰라 했다.
“왜 그렇게 놀래요? 뭐, 죄지은 사람들처럼?”
“하하. 아닙니다. 그것보다 여기는 어쩐 일로 오셨습니까?”
김지우의 물음에 나는 빙긋 웃으며 대답했다.
“당연히 이진수 선수 상태를 살피러 왔죠. 우리 팀 선수가 다쳤는데 당연히 제가 와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아!”
그 말에 선수들은 저마다 다양한 반응을 보였다.
김지우는 눈을 동그랗게 떴고, 박요한은 탄성을 터트렸다. 병상에 앉아 있던 이진수는 감동받은 표정을 드러냈다.
“치료받다가 불편한 점들은 없었습니까?”
“네, 딱히 없었습니다.”
“그래요? 혹시라도 문제가 있으면 바로 얘기해주세요. 조치 취해드릴테니까.”
“넵. 신경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진수는 진심으로 감동한 것처럼 보였다.
그런 모습을 보면서 그동안 고양의 프런트들이 선수들을 어떻게 대했는지 알 수 있었다.
그냥 병문안 한 번 왔을 뿐인데 이렇게 감동받다니.
“그럼 푹 쉬고 치료 잘 받으세요.”
나는 그렇게 말하고 병실을 나왔다.
병실에서 나오자마자 김 비서가 쓱 말을 걸어왔다.
“금방 나오시네요?”
“뭐, 선수들도 있는데 내가 오래 있어봤자 서로 불편할 뿐이야. 그리고 생각지도 못한 것들도 알아냈고.”
“강현수 선수 일 말인가요?”
“응. 아무래도 담당 의사 좀 만나봐야겠어.”
* * *
하얀 가운을 입은 차가운 인상을 지닌 남자가 나와 마주 보고 있었다.
“고양 유나이티드 대표 지태훈이라고 합니다.”
“유종호 과장입니다.”
스스로 유종호 과장이라고 소개한 그는 정말 바늘로 찌르면 피 한 방울 안 나올 것 같은 인상을 가지고 있었다.
말투도 무뚝뚝했다.
“이진수 선수의 상태는 어떻습니까?”
“뼈에 금이 갔습니다. 심각한 건 아닙니다만 아물 때까지 휴식이 필요합니다.”
음, 이렇게 얘기하고 보면 평범해 보인다. 하지만 무언가 꺼림칙한 느낌이 없잖아 있었다.
“선생님. 혹시 작년에 강현수 선수를 아십니까?”
“……그건 왜 물어보십니까?”
내 입에서 강현수라는 이름이 흘러나오자 유종호가 차갑게 반응했다.
뭔가 있구나.
“작년에 강현수 선수에게 어떤 일이 있었는지 듣고 싶습니다.”
“무엇을 듣고 싶은지 모르겠지만 작년에 강현수 선수는 경기 중 부상을 당해서 치료를 받고 돌아갔습니다.”
“그게 끝입니까?”
“그렇습니다만, 무슨 문제라도?”
“그렇군요.”
“그럼 볼일 끝났으면 이만…….”
먼저 떠나려는 유종호를 향해 나는 차갑게 한마디 했다.
“조만간 고양 병원과의 MOU 관계를 파기해야 할지도 모르겠군요.”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말 그대로입니다.”
나와 유종호는 서로를 차갑게 노려봤다. 눈에 스파크가 튀길 정도로 노려보는 그를 향해 말을 이었다.
“담당 의사가 고객이자 환자인 선수에게 해코지를 했는데 어떻게 관계를 유지시킬 수 있겠습니까?”
“강현수 선수는 아무 문제 없이 치료를 받았습니다.”
“그래요? 그런데 문제가 없다던 선수가 왜 팀을 떠났을까요?”
“그건 그쪽 사정…….”
나는 유종호의 멱살을 잡았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당황한 그가 외쳤다.
“이게 지금 무슨 짓입니까!”
“그건 내가 하고 싶은 말이다. 도대체 우리 선수한테 무슨 짓을 한 거냐?”
“자꾸 이러면 사람 부르겠습니다!”
“마음대로 해. 근데 이거 하나만 묻자.”
“무슨…….”
“너는 얼마 받았냐?”
“……!”
안쪽에서 소란이 일자 밖에서 사람들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그리고 우리 모습을 본 병원 관계자들이 놀라서 반응했다.
“교수님 이게 무슨!”
“도대체 무슨 짓입니까!”
황급히 나를 때어놓으려고 접근하는 관계자들을 향해 유종호가 차분하게 말했다.
“괜찮다! 다들 나가봐!”
“하지만!”
“나가보래도!”
우물쭈물하던 사람들이 유종호의 고함에 못 이겨 다시 밖으로 나갔다.
조용해진 가운데 유종호가 여전히 차갑게 날 보며 말했다.
“이제 그만 놓으시죠.”
그 말에 나는 잡았던 멱살을 풀었다.
그는 옷매무새를 정돈하고 살짝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진실을 이야기했다.
“단언컨대 저는 그 누구로부터 돈을 받거나 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강현수 선수 사건은 미안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자세히 얘기해.”
“그쪽은 잘 모르겠지만, 강현수 선수는 원래 허재우 단장과 임태무 감독하고 사이가 좋지 않았습니다.”
뭐? 둘이 사이가 안 좋았다고?
그게 무슨 말이지?
나는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 그가 하는 말을 들었다.
“고양 유나이티드에서 벌어지는 온갖 악행들은 여기 있는 나조차 알 정도로 악명이 자자했습니다. 그런 가운데 강현수는 그런 악행을 저지르는 자들과 대립하던 존재였죠.”
처음 듣는 얘기다.
선수들이나 다른 프런트 직원들에게서도 듣지 못했다.
하긴 강현수라는 인물은 내가 얼굴조차 모르는 인물이다.
회귀 전에도 그와는 안면조차 없었다.
“허재우 단장과 임태무 감독도 그를 썩 좋아하지 않았죠.”
“눈엣가시 같은 존재였을텐데 왜 그대로 두었습니까? 이상하지 않습니까.”
“강현수 선수의 상징성 때문이죠. 함부로 쳐냈다가 벌어질 뒷감당은 그 누구도 책임질 수 없는 부분들이니까요.”
“그러면…….”
“그러던 중에 강현수가 경기 중에 사고를 당했죠. 꽤 큰 사고였죠. 골절 피해를 입었으니까요.”
“설마…….”
“평소 눈엣가시처럼 여기던 그가 부상을 당하자 임태무 감독과 허재우 단장, 그 두 사람이 그를 방출하려는 작업을 실행했던 모양입니다.”
뭔가 머릿속에 이야기가 그려지기 시작했다.
설마 하는 마음으로 이야기를 듣던 나는 임태무와 허재우가 얼마나 양아치 같은 존재인가 새삼 다시 확인할 수 있었다.
“부상에서 제대로 회복하지도 못한 그를 억지로 경기에 다시 내보냈죠.”
“당신은 뭐 했습니까?”
“당연히 반대했죠. 하지만 그 두 사람의 압박을 이겨내지 못했습니다. 결국 강현수 선수는 부상이 재발하고 말았죠.”
이제 모든 상황이 이해가 됐다.
결국 기량이 하락한 강현수는 분노했고 구단과 대립하다가 스스로 나가게 된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의문이 있었다.
“선수 스스로 출전 거부를 할 수 있었을 텐데…….”
“협박을 당했던 모양입니다. 무슨 협박을 당했는지 저도 자세히 알지는 못합니다.”
“그런데 당신은 어떻게 이런 것들을 알 수 있었던 거죠?”
“그건…….”
유종호는 순간 고민하다가 어렵게 말을 꺼냈다.
“당사자에게 직접 들었기 때문이죠.”
“당사자에게 들었다고요? 강현수 선수 본인에게?”
“그렇습니다.”
“그럼 왜 이 이야기를 지금 한 겁니까?”
“당사자가 조용히 해달라고 부탁한 것도 있습니다만, 이런 얘기를 어디 가서 꺼내기도 어려웠던 상황입니다.”
권력 앞에서 대항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한때 구단과 대립했던 강현수도 결국 조직이 가진 권력 앞에 무릎을 꿇었던 것이다.
“안타까운 얘기지만 현실입니다.”
“…….”
“미안합니다.”
나는 어떠한 말도 할 수 없었다.
* * *
예상치 못한 진실을 듣고 난 이후 나는 곽찬구 감독과 만나 이야기했다.
“그런 일이 있었군요.”
“네. 솔직히 좀 충격적인 얘기였습니다.”
“현수 그 친구, 그런 마음고생을 겪었을 줄은 꿈에도 몰랐네요. 예전에 파주 감독이었을 때 더비전에서 많이 마주쳤었는데.”
곽찬구 감독도 상당히 놀라워하고 있었다.
심지어 이런 일이 있었는데도 그 누구도 제대로 알고 있는 사람조차 없었다는 것이 더 충격이었다.
“혹시 그 일과 관련해서 아는 직원들이 있을까요?”
“모르겠습니다. 알고 있다고 한들, 이미 퇴사하고 없을 테니까요.”
“그렇겠네요. 임태무 감독과 허재우 단장 라인을 타고 있던 직원들이 다 나갔다는 얘기는 들었습니다.”
사실상 그 두 사람과 연계된 이들은 이제 구단 안에는 없는 상태라고 볼 수 있다.
“더 이상 이런 말도 안 되는 피해를 입는 사람들이 나와서는 안 됩니다. 적어도 이 고양 유나이티드 안에서는 말이죠.”
“동의합니다.”
내 말에 곽찬구 감독이 고개를 끄덕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