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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집 막내 구단주-17화 (17/272)

17화

고양 유나이티드 프런트 직원들은 현(現) 대표를 향해 부정적인 생각이 조금씩 사라져가고 있었다.

천지원 부장도 마찬가지다.

이제는 현(現) 대표라인의 주력 인사가 되었다. 그렇지만 대표를 향한 의문은 계속 존재했다.

지금도 아예 사라진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전에 비하면 많이 사라졌다고 볼 수 있었다.

‘사내 정치로 가득했던 구단이 대표를 중심으로 해서 돌아가고 있어.’

부임하자마자 전(前) 단장과 감독을 내쳐버렸다. 이후 그 두 사람의 측근으로 활약해오던 직원들도 모조리 다 내쳤다.

아직 그들과 관계된 인사들이 남아 있기는 했지만 겨우 숨만 붙은 채 지내고 있었다.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다 내쳐질 수 있지만, 그렇게 되면 구단 운영이 멈춰버리게 된다.

어떻게 보면 생각보다 대표가 현명하다고 볼 수 있었다.

‘채찍과 당근도 제법 쓸 줄 알아.’

마치 폭군처럼 구단 내부를 도륙했던 지태훈은 최근 연승 가도를 달리는 팀 분위기에 맞춰 구단 직원들에게도 포상을 주었다.

비록 많은 금액은 아니지만 보너스를 받게 된 직원들의 행복도는 상승했다.

이제는 현(現) 대표를 향해 충성하려는 직원들도 보이기 시작했다.

물론 대놓고 드러내는 사람은 없었다.

이유가 있었다.

바로 대표의 기행 때문이었다.

지태훈의 행보는 여전히 호불호가 갈렸다.

그가 보여주는 파격적인 기행이 구단 내부에서도 여전히 많은 말들을 만들어 내고 있었다.

물론 아직까지 나쁜 결과는 없다.

하지만 과연 언제까지 이런 결과가 나올지 알 수 없었다.

자칫 나쁜 결과라도 나온다면 지금까지 쌓아왔던 것들이 모두 무너질 수 있었다.

‘생각보다 더한 일들도 벌어질 수 있겠지.’

천지원 부장도 걱정이 되는 건 사실이었다.

하지만 대표에 대한 믿음이 있었다.

그가 보여주는 기행 속에는 은근한 신뢰가 존재했기 때문이다.

‘부임 이후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빼먹지 않고 홈경기를 직관하고 있어.’

어쩌면 별거 아닌 일로 치부할 수 있었다.

하지만 천지원 부장은 이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알고 있었다.

프리미어리그 같은 대형 리그에서 구단주 또는 사장이 직접 경기를 관전하는 일은 종종 볼 수 있었다.

하지만 K리그에서는 굉장히 드문 일이었다.

형식적으로 어쩌다 한 번 보거나 라이벌 경기를 할 때 잠깐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 전부다.

그런 상황에서 지태훈은 지금까지 홈경기를 한 번도 거르지 않고 나오고 있었다.

‘망나니라고 불리는 사람치고 묘하게 성실하단 말이지.’

그렇게 생각한 천지원 부장은 살짝 한숨을 내쉬었다.

그런 그의 앞에는 경기를 관전하고 있는 지태훈 대표가 있었다.

“천 부장! 어떤 것 같습니까?”

해맑게 웃고 있는 지태훈 대표.

그런 그를 천지원 부장은 떨떠름하게 쳐다보며 반응했다.

“무, 무엇을 말입니까?”

“이러면 좀 팔리겠죠?”

“…….”

천지원 부장의 눈앞에 있는 지태운 대표의 모습은 평상시의 정장 차림이 아니었다. 상의에는 구단 유니폼을 걸치고, 양손에는 응원봉을 들고 있고 있었다. 거기에 머리에는 응원 머리띠까지 써 구단 매장에서 파는 응원복 풀 코스튬 차림이었다.

그뿐만이 아니다.

구단에서 판매하는 대표 먹거리를 옆에 두고 먹고 있었다.

“매출이 늘어야 하는데!”

“…….”

“천 부장님, 대답해보세요!”

* * *

“지난번에 진행했던 영신그룹 인턴 이벤트는 성공적으로 마무리되었습니다.”

“훌륭해!”

김 비서의 보고에 나는 흡족한 표정을 드러냈다.

영신 그룹 3개월 단기 인턴으로 뽑힌 행운의 주인공은 어떤 20대 여자였다.

경품 당첨 후 진행된 인터뷰에서 자신은 학생 때부터 고양 유나이티드를 응원해온 열성 팬이라고 밝혔다.

좋아하는 선수는 박지원 선수라고 밝힌 건 덤이다.

어쨌든 그 행운의 주인공은 그다음 주부터 바로 인턴 생활에 들어갔다.

“외부에서도 반응이 뜨겁습니다. 또 이런 이벤트 안 하냐고 문의가 폭발적으로 들어오고 있다고 합니다.”

“훌륭해.”

“단발성 이벤트로는 효과가 있습니다만, 이것도 잠깐일 뿐입니다. 다음 홈경기에서는 관중수가 다시 원래대로 돌아갈 수 있습니다.”

“그렇겠지. 안 그래도 그에 대한 대비책도 준비했어.”

매번 영신 그룹 인턴을 경품으로 내걸 수는 없다.

하지만 그에 못지않은 큰 상품들이 대기하고 있다.

그건 바로……

고양시 지역 특산품이다.

여기에는 마케팅팀 부서의 노력이 있었다.

그들은 협업이 가능한 지역 기업들을 선별한 뒤, 그들과 최대한 가성비 있는 가격을 조율한 뒤 스폰서 계약을 체결했다.

덕분에 우리도 꽤 괜찮은 상품들을 확보할 수 있었던 것이다.

“뭔가 하나씩 자리가 잡혀가는 느낌이네요.”

“그렇지?”

그렇게 김 비서와 대화를 나누던 중 문득 지난 기억이 떠올랐다.

-팀장님. 이제는 대표님입니다.

박준후 팀장을 향해 또렷하게 말하는 김 비서의 모습은 내 기분을 묘하게 만들었다.

“김 비서.”

“네?”

“김 비서가 보기에는 내가 어떤 것 같아?”

“무슨 뜻이죠?”

“그냥 말 그대로.”

김 비서는 조금 생각했다가 대답했다.

“잘하고 계십니다.”

“그래?”

“네. 이제는 대표님이라 부를 정도로요.”

그렇구나.

“부족한 부분도 아직 많지만 도련님은 충분히 훌륭한 대표님이 되실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김 비서의 진심 어린 말에 괜히 내가 더 부끄러워졌다.

그래도 기분은 좋았다.

“실망시켜서는 안 되겠는걸?”

“후훗.”

내 말에 김 비서는 작게 웃었다.

* * *

프로축구연맹에서 주최하는 정기 이사회가 주중에 열렸다.

나는 프로축구연맹으로부터 이사회 초청을 받고 가게 되었다.

“에, 그럼 지금부터 정기 이사회를 진행하겠습니다.”

프로축구연맹 사무 건물에서 진행된 정기 이사회에서는 다양한 안건들이 논의되었다.

나는 구석진 자리에 앉아서 팔짱을 낀 채 상황을 지켜봤다.

“처음 안건은 이번에 연천FC 창단과 관련된 안건입니다. 아시다시피 연천FC는 작년 5월에…….”

안경을 쓴 머리 하얀 아저씨가 안건을 발표했다.

이 아저씨의 정체는 사무국장 박종우.

과거 축구 선수 출신이었던 그는 은퇴 후 행정가의 길을 선택한 인물이었다.

다양한 직책들을 맡으며 행정가로 활약해오던 그는 현재 연맹 사무국장을 맡고 있었다.

그런 박종우 옆에는 또 다른 남자가 있었다.

인자한 분위기를 풀풀 풍기는 이 남자가 바로 현 한국 프로축구연맹의 총재 석정원이다.

석정원은 본래 축구인은 아니지만 오랜 시간 K리그를 후원해왔던 대한 그룹의 회장이기도 했다.

현재 한국 축구에서 최고 실세라고 볼 수 있었다.

‘김 비서가 저 석정원이란 사람에게 잘 보이라고 했지.’

오늘 이사회에 참석하기 전에 김 비서가 신신당부한 부분이 있었다.

바로 석정원과 좋은 관계를 맺으라는 것이다.

향후 영신 그룹 총수를 목표를 한다면, 석정원의 신뢰를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 이유를 물으니, 김 비서는 이렇게 대답했다.

“모르셨어요? 예전에 석정원 회장의 따님분하고 지태환 본부장하고 혼담 추진했다가 깨졌잖아요.”

그 말을 듣고 나서야 기억이 났다. 무슨 일인지 모르겠지만 형의 혼담은 깨졌다.

문제는 기업 간에 혼담은 정략결혼이 많다는 것이다.

게다가 형은 장남이다. 대기업의 장남에게 있어 정략결혼은 의무에 가깝다.

그런데 그걸 깨버렸으니 후폭풍은 만만치 않았을 터.

“그날 혼담이 깨진 이후로 석정원 회장은 지태완 본부장을 굉장히 못마땅하게 생각하는 모양이에요.”

“아마 형은 다른 음흉한 계획이 있었던 거겠지.”

“네?”

“아니야. 아무것도. 어쨌든 그 사람을 우리 편으로 만들어라, 이 말이야?”

“그렇죠.”

“그런데 과연 우리 편이 되어줄까? 이미 영신 그룹 전체를 안 좋게 보는 거 아냐? 게다가 나는 망나니라고. 영신 그룹 망나니. 누가 좋아하겠어?”

“물론 그럴 수도 있겠죠. 하지만 시도해서 나쁠 건 없어요.”

나는 김 비서의 말도 충분히 일리 있다고 판단했다.

“그래. 알았어. 한 번 시도는 해볼게. 결과는 장담할 수 없지만.”

“네.”

김 비서와의 대화를 떠올리다 보니 어느새 시간이 많이 지났다.

“……이것으로 오늘 이사회 안건을 마치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오늘 여기 계신 분들에게 소개해드릴 분이 있습니다.”

약 1시간가량 진행된 이사회도 어느덧 끝나가고 있었다. 이사회를 마무리하기 전, 박종우 사무국장이 이사회 사람들에게 나를 소개했다.

“새로 고양 유나이티드 대표로 취임한 지태훈 대표입니다. 인사 부탁드립니다, 지태훈 대표.”

“아, 반갑습니다. 지태훈입니다.”

짝짝짝.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서 이사회 사람들에게 인사했다.

이사회 사람들도 나를 향해 가볍게 박수를 쳐주며 환영의 뜻을 보였다.

“이미 아실 분들은 아시겠지만 최근에 젊은 지태훈 대표의 활약 덕분에 고양 유나이티드 성적이 오르고 있어요. 덕분에 K리그를 향한 외부 관심도 오르고 있고요.”

박종우의 말에 나는 겸손하게 대답했다.

“아직 부족한 부분들이 많습니다.”

이러한 내 태도에 이사회 직원들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한쪽에서 속닥거리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별명이 망나니라고 하지 않았어?”

“맞아. 나도 그렇게 들었어.”

그 말을 듣게 된 나는 피식 웃었다.

“저에 대한 소문을 들으신 분들이 있으신 것 같군요. 뭐, 그 소문들에 대해 부정할 생각은 없습니다,”

나는 이사회 인원들과 한 명씩 아이컨택을 하며 말을 이어갔다.

그러다가 석정원 회장과 눈이 마주친 후 나는 힘을 주어 말했다.

“다만, 앞으로는 달라질 겁니다. 저와 고양 유나이티드는 이제 시작이니까요. 그러니까 앞으로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그렇게 말하는 나를 바라보는 석정원 회장도 흥미로운 표정을 드러내었다.

* * *

이사회가 끝나고 참여한 인원들이 한 명씩 자리를 빠져나갔다.

그런 상황에서 나는 눈치를 살피며 천천히 나가려는 척하다가 밖으로 나가려는 석정원 회장의 모습을 보고 후다닥 따라갔다.

“저 총재님?”

“음?”

복도를 걷던 석정원 회장이 멈춰섰다. 그러고는 몸을 돌려 의아한 눈으로 나를 쳐다봤다.

“지태훈 대표? 무슨 일입니까?”

“아, 그게 그러니까…….”

나는 미리 준비했던 말을 꺼냈다.

“가변석 설치 관련해서 문의드리고 싶은 부분이 있는데요.”

“가변석?”

“네. 고양 유나이티드 홈구장으로 사용하고 있는 종합운동장 내에 트랙 부분에 가변석을 설치하려고요.”

“호오. 그렇군요.”

“그런데 이 가변석 설치 과정에서 저희가 무작정 진행할 수는 없을 것 같아서 문의를 드리게 되었습니다.”

“이해했습니다.”

석정원 회장은 고개를 끄덕이며 반응했다.

‘먹혔군. 다행이야.’

다행히 가변석 얘기가 먹힌 것이다.

처음부터 무턱대고 우리편이 되어달라고 할 수는 없다. 대신 그의 관심을 이끌만한 것으로 먼저 대화를 진행해보자는 생각이 먹혔던것이다.

“그럼 지 대표는 가변석을 어느 정도로 생각해두시고 있습니까?”

“1만 석 정도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 말에 석정원 회장의 표정이 묘하게 바뀌었다.

“흠. 그곳 종합운동장이 상당히 규모가 큰 경기장인데, 그곳에 가변석을 설치하려면 먼저 해당 경기장 시설관리위원회와 대화를 해봐야될 겁니다.”

“아, 그렇군요.”

“가변석 규모가 지나칠 정도로 큰 정도만 아니라면 아마 큰 문제없이 진행되겠죠. 그런데 예산은 됩니까?”

“아, 예산이요? 네, 되죠. 뭐, 그 정도야 문제 될 것은 없죠. 아하하.”

“그렇군요.”

석정원 회장의 눈빛이 달라졌다. 마치 아버지처럼 포식자의 눈을 하고 있다.

나도 모르게 침을 꼴깍 삼켰다.

혹시 내가 뭐 실수했나?

그런데 갑자기 석정원 회장이 크게 웃음을 터트렸다.

“역시 젊은 대표라서 그런가? 일 처리가 화끈하구먼! 마치 내 옛날 모습 보는 거 같구만! 하하하!”

“예?”

“뭐, 가변석 설치건은 내가 힘을 좀 써보겠습니다. 그쪽 시설관리위원회 담당자하고 모르는 사이도 아니니까요.”

“아, 넵. 감사합니다.”

“그럼 앞으로 기대하겠습니다. 또 보죠.”

석정원 회장이 손을 내밀었다.

나는 얼떨결에 그와 손을 마주 잡았다.

가볍게 악수를 한 뒤, 그는 인자한 미소를 보인 뒤 자리를 떠났다.

그런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나는 머리를 긁적였다.

“뭐, 잘 된 거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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