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화
“어? 저 사람은…….”
문을 열고 들어온 남자를 본 김 비서가 반응했다.
그렇다.
남자는 외국인이었다.
살짝 까무잡잡한 피부에 훤칠한 키와 시원한 이목구비가 인상적이었다.
그리고 우리가 익히 아는 얼굴이기도 했다.
“찾았다.”
외국인의 이름은 ‘사무엘’.
파주FC의 레전드이자 K리그에서 큰 활약을 펼치고 있는 외국인 공격수였다.
“오셨어요~”
“네~ 오늘은 별일 없으셨죠?”
“물론이죠~”
개 카페의 사장으로 보이는 여자와 유창하게 한국어로 대화를 나누는 사무엘이었다.
멍!
그런 바스티안 곁으로 골든 리트리버 한 마리가 다가갔다.
김 비서에게 애교를 떨었던 그 리트리버였다.
“덕구야! 선생님 말 잘 듣고 있었지?”
덕구라니.
골든리트리버 이름이 너무나도 한국적이다.
“그럼요. 덕구가 얼마나 착한데요~ 다른 아이들하고도 잘 어울려요~”
“하하. 다행이에요.”
“내일도 오시나요?”
“아니요. 제가 내일 모래 이틀 동안 원정 경기를 치르러 가야 하거든요.”
“아아. 그렇군요.”
“원정 경기 끝난 후에 올게요.”
사장과 이야기를 마친 그는 덕구에게 목줄을 채우고 자리를 떠나려고 했다.
상황을 살피던 나는 김 비서에게 말했다.
“김 비서. 우리도 따라가자.”
“네? 아, 넵.”
그렇게 우리는 사무엘의 뒤를 따라갔다.
“사무엘 씨?”
“음?”
사무엘의 이름을 부르자 그가 몸을 돌려 나를 쳐다봤다.
나도 어디 가서 키가 작다는 얘기는 듣지 않는 편인데, 사무엘은 나와 키가 비슷했다.
그런 그와 시선을 마주하며 말했다.
“안녕하세요? 사무엘 씨 맞으시죠?”
“예. 제가 사무엘입니다만…… 아! 혹시 팬이세요?”
“예?”
“잠시만요.”
그는 덕구에게 기다리고 명령한 뒤, 내게 손을 내밀었다.
갑작스러운 행동에 어리둥절 하자 사무엘이 씩 웃으며 말했다.
“사진 찍어드릴게요!”
“……그 죄송한데, 팬은 아니고 저는 이런 사람입니다.”
나는 준비해뒀던 명함을 꺼내 건넸다. 명함을 받은 사무엘은 어리둥절했다가 금방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헉! 고양 유나이티드 대표이사?”
“네. 고양 유나이티드 대표이사를 맡고 있는 지태훈이라고 합니다.”
사무엘은 진심으로 놀란 얼굴로 나를 쳐다봤다.
라이벌 팀의 대표이사가 뜬금없이 나타났으니 놀랄 만도 하겠지.
“곽찬구 감독님으로부터 이야기를 전해들었습니다만, 혹시 괜찮으시면 어디 가서 이야기를 나눠도 될까요?”
“으음.”
사무엘은 조금 고민하는 기색을 드러내더니 이내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좋습니다. 김 비서, 근처 괜찮은 데로 가자고.”
“네, 안내하겠습니다.”
* * *
장소를 옮긴 뒤 나는 곧장 사무엘에게 말했다.
“재계약에 난항을 겪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음. 네. 그렇습니다.”
사무엘은 조금은 불편해하며 대답했다. 그런 그의 태도가 어느 정도 이해는 됐다.
라이벌 팀의 대표이사와 개별적인 만남을 가지는 것 자체도 일반적이지 못하다.
거기에 지금 사무엘이 처한 상황도 애매하다.
재계약이 난항을 겪고 있는 상황에서 라이벌 팀 대표이사를 만난 일이 드러나게 된다면 자칫 곤욕을 치를 수 있었다.
“파주FC 분위기가 상당히 좋지 않다고 들었습니다.”
“네. 아무래도 곽 감독님 일이 있다 보니…….”
“오늘 일은 저희 쪽에서 먼저 발설할 일은 없을 겁니다. 너무 걱정하지 마시죠.”
“…….”
여전히 불편한 표정을 드러내고 있는 사무엘과 달리, 그의 곁에 있는 덕구가 혓바닥을 내밀며 헥헥 대고 있었다.
덕구도 뭔가를 느꼈을까?
갑자기 벌떡 일어나더니 나와 김 비서 사이로 다가왔다.
갑자기 다가오는 덕구를 본 나는 화들짝 놀랐다.
“읏!”
“어머나~”
놀라는 나와 달리 김 비서는 덕구를 향해 눈으로 하트를 발사하며 쓰다듬었다.
그런 상반된 반응을 본 사무엘이 반응했다.
“대표이사님은 개를 싫어하십니까?”
“으음. 어릴 때 물린 적이 있어서…….”
“그렇군요. 덕구, 이리와.”
주인의 부름에 덕구를 귀를 뒤로 접고 실망스러운 표정을 드러낸 채 돌아가야만 했다.
개가 저런 표정을 지을 수가 있나?
“흠흠. 대표님?”
“아.”
사무엘의 부름에 나는 덕구에게서 시선을 뗄 수 있었다.
다시 비즈니스에 집중할 때다.
“단도직입적으로 얘기하죠. 우리는 사무엘 당신을 영입하고 싶습니다.”
“네?”
“곽찬구 감독님께서 사무엘, 당신하고 함께 하고 싶어 합니다.”
“…….”
“최대한 원하는 조건 맞춰드리죠. 곽 감독님도 그렇게 해달라고 요청하셨고요.”
“…….”
아무리 사무엘이 곽찬구 감독과 친분이 있는 사이라고 해도, 정들었던 파주FC를, 그것도 라이벌 팀으로 이적하는 일은 쉬운 결정이 아니다.
나는 좀 더 그의 마음에 쐐기를 박아야 했다.
“곽찬구 감독님께서는 복수를 위해 저희 팀으로 오셨습니다.”
“……네?”
“이재신 단장이 파주FC에 부임한 이후 구단 내부가 굉장히 흔들리고 있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그건…….”
“지금의 파주는 가능성 없는 곳입니다. 왜? 그렇게 역사적인 팀을 단장이란 놈이 단번에 무너뜨리고 있으니까요.”
직설적인 화법에 사무엘의 표정은 점점 굳어졌다.
“아무리 그래도 제가 사랑하는 팀입니다. 욕보이지 마세요.”
“사무엘. 나는 욕한 게 아닙니다. 팩트를 얘기했을 뿐이죠.”
“…….”
나는 옆에 앉아 있는 김 비서에게 사인을 보냈다. 그러자 김 비서가 가방에서 준비했던 서류를 꺼냈다.
“이재신 단장이 지금까지 파주에서 벌인 행동이 담긴 문서입니다. 확인해보시죠.”
사무엘은 움찔하며 조심스럽게 문서를 읽기 시작했다.
그에게 건넨 문서는 읽기 편하게 김 비서가 직접 포르투갈어로 번역해 놨다.
그렇기에 문서를 읽는 데 큰 어려움은 없었다.
그렇게 문서를 읽던 그는 곧 비명 같은 목소리로 외쳤다.
“거짓말!”
“거짓말처럼 느껴지십니까?”
“이건, 이건 말도 안 됩니다!”
“그렇겠죠. 저희도 정보를 모아보면서 믿어지지 않은 부분들이 많았으니까요.”
나는 여유롭게 다리를 꼬며 말했다.
“그런데 그거 아십니까? 파주FC는 이재신 단장을 경질할 일이 없다는 걸?”
“……네?”
“이재신 단장은 상당한 네트워크를 구축했습니다. 만약 이재신 단장이 걸리면 모두 다 비리로 걸려 들어가는 상황이죠.”
사실 내가 말을 하지 않았을 뿐, 파주FC는 몇 년 후에 이재신 단장을 필두로 모두 불법 비리에 걸려 구속당한다.
내가 구속당한 이후에 벌어진 사건이다.
‘공교롭게도 같은 감옥에서 만난 적이 있었지.’
같은 방에서 생활한 것은 아니지만, 사이좋게 감옥 생활을 함께했었다.
문제는 그는 얼마 안 있다가 감옥 생활을 청산하고 나갔지만 나는 계속 옥살이를 했다는 것이다.
“당신 혼자서 어떻게 할 수 있는 일은 없습니다.”
“…….”
사무엘은 손을 덜덜 떨었다.
그만큼 정신적 충격이 큰 상황이라고 볼 수 있었다.
“곽찬구 감독도 이재신 단장에 의해 희생된 인물입니다. 당신도 곧 그 사람의 손에 의해 당하겠죠.”
“…….”
회귀 전 사무엘은 파주FC에서 버림받고 이후 중국으로 떠나버렸다.
그리고 소리 소문 없이 은퇴하고 발자취를 감췄다.
K리그에서 오랜 시간 활약해 왔던 외국인 선수의 비참한 최후였다.
“우리는 능력 있는 이들이라면 출신을 가리지 않고 대우해줍니다. 제가 그렇게 만들고 있고요.”
곽찬구 감독이 사무엘만큼은 어떻게든 데려와 달라고 여러 번 부탁을 했었다.
나는 어떻게든 사무엘을 영입해야만 한다.
“사무엘. 당신이라면 이런 대우를 받을 인물이 아닙니다. 우리와 함께 정당한 대우를 받으며 정상으로 올라갑시다.”
* * *
사무엘과의 만남 이후, 시간이 며칠 더 흘렀다.
구단 내 주요 직원들이 모두 모여 전체 회의를 하는 시간을 가졌다.
“대표님. 지난번 안양 썬더스와의 경기에서 승리한 이후 일시적으로 관중 숫자가 증가했습니다만, 다시 하향세로 접어들고 있습니다.”
천지원 마케팅팀 부장이 관중 숫자 감소와 관련하여 브리핑을 하고 있었다.
“관중들이 많아지려면 제일 좋은 방향은 성적입니다만, 성적 외에도 관중들에게 자극을 줄 수 있는 무언가가 필요합니다.”
“그렇습니까?”
“경쟁 팀들의 관중 마케팅을 분석해 보았습니다. 제가 드린 보고서에도 적어놓았지만 이번 시즌 가장 많은 관중 동원력을 보인 팀은 역시 리그 1위 안양 썬더스입니다. 이번 시즌 안양의 평균 관중은 약 5600명 정도 됩니다. 최다 관중을 기록했던 경기에서는 8800명 정도 되고요.”
“흐음.”
“하지만 안양 썬더스는 단순히 성적만 좋아서 관중 동원력이 높은 것은 아닙니다. 그 예로 지난 시즌 리그 1위로 승격에 성공한 서울 다이너스티가 있죠.”
“흠. 평균 관중 2,500명? 상당히 적군요.”
“네. K리그2 평균 관중수가 3000명 정도 되는데, 평균 관중수보다 밑이죠. 심지어 서울이라는 지역적 이점까지 있는데도 불구하고요.”
“어째서 이럴 수가 있죠?”
“구단이 마케팅적인 측면을 소홀히 했습니다. 아니, 소홀했다기보단 오로지 성적이 마케팅이다는 슬로건으로 구단을 운영해왔던 것이죠.”
서울 다이너스티는 지난 시즌 리그 1위로 승격해 올라갔지만 올 시즌은 리그 최하위를 기록하며 고전하고 있었다.
조만간 2부에서 다시 보게 될 상황이다.
“그렇다면 안양 썬더스는 서울 다이너스티보다 특별한 점이 있다는 건가요?”
“네. 있습니다.”
천지원 부장은 자신 있게 설명을 이어갔다.
“매 홈경기마다 상품을 걸어놓습니다. 상품의 종류는 다양합니다. 스폰서로부터 얻은 상품을 포함하여 구단 자체 상품도 있습니다.”
“그 상품은 어떤 식으로 지급됩니까?”
“하프타임 때 사다리타기 이벤트를 진행하기도 하고, 경기 전후로 경기장 주변에 각종 이벤트 시설들을 마련해서 참여를 유도하고 있습니다.”
“호오.”
“성적에다가 다양한 이벤트 덕분에 지역에도 꽤 좋은 효과를 보이고 있는 모양입니다.”
천지원 부장의 보고를 들으니 우리도 뭔가 해야 될 것 같았다.
“지금 우리는 어떤 식의 마케팅을 진행하고 있었죠?”
“현재 저희는 하프타임에 진행하는 퀴즈 이벤트가 있고, 공식 SNS 계정을 통한 소셜 마케팅을 주력으로 진행하고 있습니다.”
“저희 보통 상품으로 뭘 걸죠?”
“지역 스폰서로부터 받은 시설 이용권이나 식사권 등이 있고 구단 자체 상품들이 있습니다.”
뭔가 좀 약하긴 하다.
“우리 팀 평균 관중은 약 2000 명 정도. 그나마 과거 1부 리그 팀에 있었기 때문에 생겼던 팬이죠. 그쵸?”
“그렇습니다.”
“하지만 이대로 가면 남아 있던 팬들도 분명 빠져나갈 테고.”
지금도 팬들은 실시간으로 빠져나가고 있다.
축구를 비롯한 프로스포츠 팀에게 있어 팬들은 생명이나 다름없다.
팬이 없다면 그것은 프로스포츠라고 평가할 수 없었다.
“확실히 뭔가 큰 거 하나가 필요하겠군요.”
어그로를 확실하게 끌 수 있는 마케팅이 필요하다.
그러면서도 지속 가능한 마케팅도 필요하고.
“시즌이 후반부로 가고 있기 때문에 남은 홈경기는 얼마 안 남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맞습니다.”
“그럼 남은 홈경기를 통해서 확실하게 시선을 끌 수 있는 마케팅이 필요하겠고요?”
“그렇죠.”
“좋습니다.”
“……?”
“그 마케팅 제가 한 번 준비해보죠.”
이야기를 듣다 보니 마침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오로지 망나니이기에 가능한 마케팅이 말이다.
그런 생각을 하며 씩 웃는 내 모습을 본 천지원 부장은 몸을 부르르 떨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