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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집 막내 구단주-14화 (14/272)

14화

혼란스러웠던 구단 분위기가 조금은 바뀌었다.

고양 유나이티드가 1위 안양 썬더스를 잡은 이후 바뀌기 시작한 것이다.

“감독 한 명 바꿨을 뿐인데 이렇게 차이가 생기나?”

“솔직히 우리 팀 선수들이 못하는 건가 싶었는데, 그건 아니었네요.”

“뭐? 넌 그게 구단 직원으로서 할 소리냐?”

“아이, 농담입니다. 농담.”

“뭐, 황철호는 개 못하긴 하더라.”

“아하하!”

프런트도 모처럼 활기를 띄고 업무에 집중하고 있었다.

그런 와중에 회계 팀은 팀 분위기와 상관없이 무척 바빴다.

“대표님! 말씀 주셨던 것들 보고서로 정리해 왔습니다.”

“아! 수고 많으셨어요.”

회계 부장 정소영이 직접 제출한 보고서들을 쭉 훑어보던 나는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아직 보완해야 할 부분들은 많지만 이게 쌓이면 뭔가 바뀌기 시작하겠죠.”

“네. 분명 바뀔 겁니다!”

대화를 나누는 정소영의 표정은 밝았다.

분명 회계팀은 다른 부서에 비해 업무량이 많아 최근 밥 먹듯 야근을 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결코 힘든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포기해왔던 승진을 이루고, 드디어 그녀에게 맡는 일을 시작했기 때문이다.

내 입장에서는 나쁘지 않은 일이다.

그녀가 열심히 일 해주는 만큼 구단이 성과를 낼 테니까.

“대표님!”

“네?”

“저는 언제나 대표님 편입니다! 어떤 일이든 반드시 해결하겠습니다!”

“아, 넵.”

“그럼 가보겠습니다!”

파이팅 넘치는 정소영 부장의 모습에 나는 얼떨떨하게 반응했다.

그렇게 정소영 부장이 나간 후, 지켜보고 있던 김 비서가 한 마디 툭 던졌다.

“좋으시겠어요.”

“엉? 뭐가?”

“저 밖에 없던 아군이 늘어나셨잖아요.”

“뭐, 좋은 일이지.”

내 최종 목표는 영신 그룹의 총수가 되는 것이다.

그렇기에 지금 흘러가는 상황은 상당히 좋았다.

아군이 늘어날수록 향후 내가 세울 계획들에 있어 큰 도움이 될 테니까.

“그래도 저를 잊으시면 안 돼요. 도련님.”

“설마. 내가 어떻게 김 비서를 잊겠어?”

회귀 전, 김 비서는 그래도 끝까지 나를 도와준 인물이었다. 그런 그녀도 철없는 나의 망나니짓에 못 이겨 떠나고 말았지만.

그래도 나는 김 비서에게 많이 고마워하고 있었다.

언젠가 그 보답을 확실하게 해줄 셈이다.

“두고 봐. 김 비서. 조만간에 보답해줄 테니까.”

“네. 기대할게요.”

대답하는 김 비서의 얼굴에는 아름다운 꽃과 같은 미소가 피어올랐다.

* * *

구단이 점차 자리를 잡아가는 모양새를 보이고 있었다.

새롭게 개편된 프런트도 적응을 해나가고 있고, 선수단도 신임 감독 지휘 아래 제법 잘 진행되고 있었다.

따라서 크게 할 것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것은 정말 철부지 같은 생각에 불과했다.

“진짜 XX 바쁘네!”

“도련님. 다음 일정은…….”

“저기 말야. 김 비서. 잠깐 숨 좀 돌릴 시간 좀 주면 안 돼?”

“안 됩니다.”

“아! 쫌!”

단호박 같은 김 비서의 말에 투정을 부렸다. 그러자 김 비서는 피식 웃음을 흘렸다.

“풉! 알겠습니다. 그럼 잠깐 쉴까요?”

“아오. 그러자고. 어디 가까운 커피숍이라도 가자.”

“네.”

나는 김 비서와 함께 근처 커피숍으로 이동했다.

넓은 프렌차이즈 커피숍에 들어간 우리는 간단하게 주문을 마치고 자리를 잡으려고 했다.

그러다가 우연찮은 상황을 목격하고 말았다.

“응? 천 부장?”

마케팅 팀의 천지원 부장이 왜 여기에 있지?

분명 뒷모습이긴 해도 천지원 부장이 맞았다. 혼자 있는데, 왠지 누군가를 기다리는 모양새였다.

그 모습을 보니 왠지 호기심이 생겼다.

“김 비서. 이쪽으로 와봐.”

천지원 부장은 우리의 존재를 알지 못했다.

그렇게 그의 시선을 피해 구석 쪽으로 자리를 잡았다.

잠시 후, 어떤 여자가 천지원 부장 앞에 나타났다.

“지원 씨. 이렇게 자꾸 부르지 말랬지? 솔직히 당신 이러는 거 너무 부담되는 거 알아?”

“유정아.”

“그래서 오늘은 무슨 일로 부른 거야?”

“나 이번에 승진했어.”

“승진?”

유정이라 불린 여자는 그 말을 듣고 조금 놀란 표정을 짓더니 이내 피식하고 웃었다.

“그런 별 거 아닌 곳에서 승진하면 뭐라도 되나?”

“……말 함부로 하지마.”

“왜? 내 말 틀렸어? 어차피 망해가는 팀 아니야.”

“예전에는 그랬는데, 앞으로는 달라질 거야. 그러니까 함부로 말하지마.”

“됐어. 고작 그런 얘기하려고 부른 거면 나 이만 갈게.”

“유정아. 우리 다시 합치자.”

“……뭐?”

“나 계속 너 못 잊어. 우리 사이 관계 다시 생각해보면 안 될까?”

조금은 애원하는 천지원의 말에 유정은 어이가 없다는 듯 반응했다.

“하! 웃기지도 않네! 뭘 다시 생각해? 여전히 당신은 이기적이네.”

“우리가 정말 끝난 사이였으면, 당신이 여기에 나올 리가 없잖아.”

“그건 그간의 예의를 지키기 위해 그랬을 뿐이야. 다른 이유는 없어.”

“하아.”

“됐어. 이제는 더 이상 만날 일 없을 거야.”

싸늘하게 얘기한 유정은 그대로 떠나버렸다.

홀로 남은 천지원은 고개를 떨어뜨리고 쓸쓸한 기운을 잔뜩 풍겼다.

그 상황을 구석에서 지켜보던 우리도 씁쓸함을 감추지 못했다.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천지원 부장이 좀 불쌍해 보여요.”

“나도 그렇게 생각해.”

천지원 부장이 불쌍하긴 했지만, 그보다 내 신경을 거슬리는 것이 하나 있었다.

“그나저나 아까 그 여자, 우리 팀보고 어차피 망해가는 팀이라고 하지 않았나?”

“그랬었죠.”

기분 나쁜데.

내가 미간을 좁히자 김 비서가 슬쩍 말을 걸어왔다.

“혹시 기분 나쁘셨어요?”

“안 나쁜 게 이상한 거 아닌가?”

“으음. 평소라면 대수롭지 않게 넘어가시지 않나요.”

“그러게. 그런데 오늘은 저 말이 좀 신경 쓰이네.”

우리가 쑥덕이고 있는 사이, 카페를 나가려던 천지원 부장이 우리를 목격했다.

“……!”

“앗, 천 부장.”

나와 천지원 부장 사이에 묘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그는 우리 앞으로 뚜벅뚜벅 걸어오더니 딱딱하게 말했다.

“혹시 보셨습니까?”

“아, 음. 그게…….”

“오늘 일은 모르는 척 해주십시오.”

“음. 네. 그러죠.”

“그럼.”

천지원 부장은 나한테 인사를 하고 자리를 떠났다.

떠나가는 그의 뒷모습을 우리는 한동안 말없이 쳐다볼 뿐이었다.

* * *

“이번에 저희 계열사인 영신전자가 스웨덴 정부로부터 판매 허가 승인을 받았습니다.”

“그래. 고생 많았다. 스웨덴 외 다른 지부는 어떻게 됐지?”

“현재 TF팀으로 구성된 원정 팀이 실행한 현장 보고서를 바탕으로 진행하고 있습니다만, 다른 지역들도 빠르면 1개월 안에 본격적인 판매가 시작될 예정입니다.”

“1개월이라……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구만.”

지종윤 회장의 말에는 뼈가 있었다. 보고를 올리는 지태완은 그 이유를 알고 있었다.

바로 경쟁 회사인 태성 그룹이 비슷한 시기에 태성전자를 북유럽으로 진출시킨 까닭이었다.

안 그래도 최근 신제품 출시 이후 공격적인 사업을 진행하는 경쟁사가 마음에 들지 않았던 차였다.

그런 상황에서 태성전자가 마치 한 번 붙자는 식으로 북유럽으로 진출했다.

“듣자 하니 태성 쪽은 이달 말에는 판매를 시작한다고 하던데.”

“먼저 출시한다고 해도 무조건적인 성공을 보장하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상대는 우리가 무리하는 것을 바라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흐음.”

“오히려 저희가 상대를 역이용하는 방향으로 가는 것이 맞다고 봅니다.”

딱. 딱.

지종윤 회장은 손가락으로 책상을 툭툭 두드리며 생각에 잠겼다.

지태완은 말없이 회장의 말을 기다렸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지종윤 회장이 말문을 열었다.

“좋다. 네 뜻대로 해봐라. 어차피 이 사업은 네 생각에서 나온 거니까.”

“네. 반드시 해내겠습니다.”

“그래.”

지태완의 입에 작게 미소가 걸렸다. 이번 사업은 자신 있었다.

북유럽 진출을 성공시킨다면, 추후 총수 자리에 오를 때도 큰 도움이 될 것이다.

‘태성전자 따윈 경쟁 상대도 아니야.’

상대는 자신만만하고 있지만, 약점도 가지고 있었다.

게다가 태성전자는 북유럽 진출에 진심을 다하지 않고 있다.

‘태성 그룹도 현재 후계자 경쟁으로 정신이 없는 상태야. 태성전자의 북유럽 진출도 바로 그 때문에 벌어진 거지.’

태성전자는 태성 그룹 내에서 그리 큰 입지를 가진 회사는 아니었다.

오히려 태성 건설이나 태성 자동차가 입지가 컸다.

‘태성전자는 차기 총수 경쟁에서 떨어지는 셋째가 맡고 있지. 다른 경쟁자들이 셋째를 아예 보내버릴 생각으로 기획해서 추진한 일이지.’

쉽게 말해서 본인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벌어진 일이라는 점이다.

그래서 그쪽도 상당히 혼란스러운 상황이다.

그저 대놓고 드러나지 않았을 뿐.

‘반드시 성공한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데, 지종윤 회장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러고 보니 요즘 막내 녀석이 제법 일을 잘하는 모양이던데, 알고 있느냐?”

“네?…… 아, 네. 알고 있습니다.”

지종윤 회장 입에서 막내 지태훈의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지태완은 억지 미소를 지어 보였다.

‘젠장. 망하라고 보내놓았는데 전혀 예상 밖이었어.’

금방 망할 거라고 생각했던 것과 달리 지태훈은 예상을 깨고 훌륭하게 구단을 이끌고 있었다.

“잡음이 좀 있는 모양이다만, 그래도 그 나이에 이 정도로 일을 벌일 수 있는 건 흔하지는 않지. 그치?”

“네.”

대답하는 지태완의 속은 불편하기 짝이 없었다.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지종윤 회장은 지태훈을 칭찬하느라 바빴다.

“녀석이 그리 일을 잘해 줄 거라고 알았다면, 진즉에 맡길걸 그랬어.”

“이제 시작일 뿐입니다. 좀 더 지켜봐야죠.”

“물론 지켜봐야겠지. 하지만 말이다. 사업을 오래하다 보면 사람 보는 눈이 생긴단다.”

“…….”

“녀석은 분명 해낼 거야. 그 녀석이 이제와 달리 목표가 생긴 것 같거든.”

‘목표가 생겼다고?’

지종윤 회장의 말에 지태완은 의아해했다. 하지만 그 의문은 오래가지 않았다.

이어지는 지종윤 회장의 말이 그의 신경을 크게 건드렸기 때문이다.

“아마 너와 태훈이 녀석. 둘이 이 자리를 걸고 경쟁하게 되겠지.”

“……!”

“어쨌든 서로 좋은 경쟁을 하길 바란다. 이 애비는 너희들이 얼마만큼 성장할지 기대하고 있으니까.”

“…….”

그 말을 들은 지태완은 보이지 않게 주먹을 꽉 쥐었다.

* * *

멍! 멍! 멍!

“으! 오지 마!”

사방에서 몰려오는 개들 때문에 나는 하얗게 질려 버린 상태였다.

그런 나를 김 비서가 의아해했다.

“도련님은 왜 이렇게 귀여운 개들을 싫어하세요?”

“으! 김 비서가 몰라서 그래! 저 개들이 얼마나 사나운데!”

푸들과 말티즈, 치와와 같은 애들이 나를 둘러쌌다.

김 비서의 곁에는 의외로 골든 리트리버나 쉽독 같은 큰 애들이 붙어 있었다.

김 비서는 행복한 얼굴로 개들과 교감을 나누고 있었지만 나는 전혀 그러지 못했다.

재벌가에 들어온지 얼마 안 된 어린 시절, 뭣 모르고 다가간 개한테 물린 적이 있었다.

그로 인한 트라우마 때문에 나는 개를 가까이하지 못한다.

그런 내가 왜 개들한테 둘러싸여 있는 것일까?

이유가 있었다.

“도련님. 굳이 여기가 아니라 다른 데서 만날 수 있지 않나요?”

“으, 상대가 개 카페를 좋아하니까 일부러 여기로 온 거지!”

그렇다.

나는 오늘 아주 중요한 인물을 만나기 위해 직접 개 카페까지 온 것이다.

“그런데 정말 누구를 만나러 오신 거예요?”

“그건…….”

내가 대답하기도 전에 카페 문이 열리고 어떤 남자가 등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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