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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집 막내 구단주-13화 (13/272)

13화

고양 유나이티드에 폭풍이 거세게 몰아쳤다.

임태무 감독이 성적 부진을 이유로 스스로 지휘봉을 내려놓은 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말이 사임이지 사실상 경질이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팀 성적을 생각해 본다면 이는 시간문제였다.

하지만 그 뒤가 문제였다.

이후 기다렸다는 듯 선임된 인물이 곽찬구였다.

이것은 그냥 아무 의미 없이 바라볼 수 없는 사건이었다.

고양 유나이티드의 라이벌 팀이라 할 수 있는 파주FC의 레전드였기 때문이다.

이에 대한 충격은 선수단에도 고스란히 미쳤다.

“지원이 형. 도대체 뭐가 어떻게 되는 건지 모르겠어.”

“나도 상당히 혼란스럽다.”

고양 유나이티드의 고참 선수이자 베테랑 플레이어로 활약하는 박지원과 김지우.

갖은 경험을 겪었던 두 사람도 작금 벌어지는 상황에 대해서는 상당히 혼란스러웠다.

“이거 전부 새로운 구단주 작품이겠죠?”

“그렇겠지. 설마 라이벌 팀 감독을 데려올 줄이야. 어디까지나 루머인 줄만 알았는데.”

“형. 형은 이번 구단주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세요?”

“글쎄다.”

“솔직히 저는 잘 모르겠어요. 이러다가 자칫 팀이 무너지면 어떻게 되죠?”

“…….”

이번 일로 인해서 선수들 사이에서 신임 구단주에 대해서 호불호가 갈리고 있었다.

그걸 박지원도 모를 수가 없었다.

어쨌거나 팀에서 가장 나이 많은 고참인 그가 팀 분위기조차 모른다는 것이 말도 안 되는 일이니까.

그렇기에 처신 관리를 잘해야 했다.

“곧 새로운 감독님하고 인사하는 시간 가질 거다. 네 마음 모르는 건 아니지만, 동생들 생각해야지. 너나 나나 완장 달았잖아.”

“그렇죠.”

대답하는 김지우의 표정은 좋지 않았다.

* * *

“오늘은 먼저 가 볼게.”

“음? 퇴근하세요?”

“응.”

“집으로 가실 거면 제가…….”

“아니야. 들를 때가 있어. 김 비서는 일 끝나면 알아서 퇴근해. 너무 늦게까지 일하진 말고.”

“아, 넵.”

평소와 달리 업무를 빠르게 마친 나는 김 비서를 두고 먼저 퇴근했다.

오늘은 중요한 볼일이 있었기 때문이다.

“여기던가.”

고양시 대화동에 위치한 유명한 초밥집.

이른 퇴근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자리는 만석에 가까울 정도였다.

“어서 오세요!”

“일행이 있는데요…… 아, 저기에 있네.”

반갑게 나를 맞이하는 직원을 뒤로 한 채 성큼성큼 걸어갔다.

“음?…… 엇!”

“반갑습니다. 괜찮으면 합석할 수 있을까요?”

“어, 음. 네.”

김지우는 상당히 당황스러운 얼굴로 어쩔 줄 몰라 했다.

그런 김지우의 맞은편에 앉은 나는 자연스럽게 주문을 했다.

“이분하고 똑같은 걸로 주세요.”

“네!”

그렇게 주문을 마친 후 나는 김지우를 향해 방긋 웃어 보였다.

“갑자기 나타나서 당황스럽죠?”

“…….”

“저도 초밥 좋아하거든요. 그리고 워낙 이 집이 유명하잖아요?”

“그, 그렇죠.”

김지우는 여전히 얼떨떨했다.

그런 그를 보며 속으로 웃음을 흘렸다.

그가 초밥 마니아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회귀 전에는 그가 뭘 먹든 아예 신경조차 쓰지 않았다.

하지만 이제는 다르다.

김지우는 앞으로 내가 실행할 계획에 중요한 인물이기도 했다.

그래서 오늘 그의 마음을 사기 위해 일부러 시간까지 내서 온 거다.

“시즌 중이라서 술은 안 될 거고. 음료수라도 시켜드릴까요?”

“음, 괜찮습니다.”

주문한 음식이 생각보다 빠르게 나왔다.

정갈하게 나온 음식들을 보니 군침이 절로 흘렀다.

“요즘 많이 혼란스러우시죠?”

“……예?”

초밥을 먹던 김지우가 멈칫했다.

무슨 소리를 하냐는 얼굴로 날 바라봤다.

“잘 모르시겠지만 나는 김지우 선수 오랜 팬입니다.”

“…….”

“한때 국가대표에서 활약도 하고, 유럽 경험도 있었죠. 많지는 않았지만.”

“…….”

“뭐, 사람들은 김지우 선수의 유럽 생활에 대해 실패했다느니 어쩐다느니 하면서 떠들어 대지만…….”

나는 젓가락질을 하며 초밥을 한 입 집어먹었다. 금방 목구멍으로 삼킨 뒤, 물을 한 모금 마시고 말을 이었다.

“다 잘 모르는 떨거지들의 헛소리들이죠. 김지우 선수 같은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에 한국 축구가 더 발전하고 있는 건데.”

“……무슨 말씀을 하고 싶으신 겁니까?”

“김지우 선수는 앞으로 우리 팀에 해줘야 할 역할이 많습니다.”

“…….”

나는 다시 초밥 하나를 더 집어 먹었다.

광어 지느러미 초밥의 쫀득한 맛이 혀를 타고 고스란히 느껴졌다.

김지우는 말없이 그 광경을 지켜보았다.

“드세요. 드세요. 괜히 제 눈치 본다고 천천히 먹지 마시고.”

“아, 네.”

“자, 그럼 계속 먹으면서 얘기하죠.”

김지우가 젓가락을 놀리며 초밥을 먹는 사이 나는 본론을 꺼냈다.

“김지우 선수 계약 기간이 꽤 남은 걸로 아는데…… 2년 남았나?”

“……그렇습니다만?”

“조만간에 계약기간 상관없이 선수들과 재계약을 진행할 겁니다. 그 안에는 김지우 선수도 포함되고 있고요.”

“……!”

“우리는 김지우 선수와 박지원 선수 같은 고참 선수들의 연봉을 올려줄 겁니다. 또한, 은퇴 이후 선수가 원하면 지도자 코스도 지원해줄 거고요.”

“……정말입니까?”

“네. 저는 이런 걸로 거짓말하지 않습니다만?”

초밥을 먹던 김지우는 부릅뜬 눈을 깜빡였다.

그만큼 많이 놀란 듯 보였다.

“일전에도 얘기했지만, 저의 구단 경영 철학은 단순합니다. ‘한 만큼 대우해준다.’ 이겁니다.”

“…….”

“그동안 김지우 선수가 구단을 위해 해준 것들에 대한 보상이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막말로 황철호 같은 먹튀에게 5억 줄 바엔 잘하고 있는 선수들 연봉을 올려주는 것이 낫다.

“일부 먹튀에 가까운 선수들은 모두 다 처분될 예정입니다. 그리고 새로운 선수들이 그 빈자리를 차지하겠죠.”

내 말을 듣고 있는 김지우의 눈과 손이 덜덜 떨리는 것이 보였다.

“김지우 선수가 앞으로 그 빈자리를 채워주는 역할을 해줬으면 좋겠습니다.”

* * *

그렇게 김지우를 시작으로 나는 선수들을 개인적으로 만났다.

따로 구단 내에서 호출해서 면담을 진행할 수 있지만, 그렇게 하면 분위기는 딱딱해진다.

게릴라 이벤트에 가까운 일이었지만 선수들의 반응은 의외로 나쁘지 않았다.

얼마 안 가 대부분의 선수들과 면담을 마친 나는 정식 감독으로 취임한 곽찬구와 만났다.

“선수들과 개인 면담을 진행하셨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아, 들으셨군요?”

“선수들 사이에서 이야기가 파다합니다.”

“그런가요?”

“반응이 좋더군요. 선수들 성향에 맞춰서 면담을 하셨더군요.”

“뭐, 그게 더 낫겠다 싶어서요.”

내 말에 곽찬구는 조용히 웃어 보였다.

“그건 그렇고 데뷔전은 기대해도 되겠습니까?”

“음, 홈 데뷔전 말씀이십니까?”

“그렇죠.”

이미 곽찬구 감독은 데뷔전을 치렀다. 다만 그 데뷔전이 홈경기가 아닌 원정 경기였다.

곽찬구 감독의 데뷔전 상대는 전남이었다.

전남을 상대로 0:0 무승부를 거두었지만 경기 내용 면에서 나쁘지 않았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번 홈경기는 리그 1위인 안양 썬더스하고 경기던데요.”

“기대해보셔도 좋을 겁니다.”

“호오. 대단한 자신감이시군요.”

“대표님만큼이겠습니까?”

“하하하하!”

리그 1위 안양 썬더스는 올 시즌 압도적인 경기력으로 결과를 만들고 있었다.

“뭐, 기대는 되겠네요. 상대는 주포가 부상으로 빠졌으니까요.”

“알고 계셨습니까?”

“모를 수가 있나요. 기사에 떡하니 나왔는데.”

올 시즌 안양 썬더스에서 가장 많은 골을 넣고 있는 레안드로.

리그에서만 무려 16골을 넣은 그가 지난 경기 경미한 부상을 당하면서 결장한다고 한다.

“상대의 속임수라는 생각은 안 드십니까?”

“속임수라…… 툭 까놓고 얘기해서 상대가 굳이 속임수를 써야 할 정도로 우리가 강팀입니까?”

“음, 그렇기는 한데, 그런 얘기를 대표이사님 입으로 통해 들으니 기분이 이상하군요.”

“팩트인걸 어떻게 합니까.”

꼴등이나 겨우 면하고 있는 우리를 상대는 크게 두려워하지 않을 것이다.

“뭐, 엄청난 걸 기대하지는 않습니다만, 약간의 변화만이라도 오면 충분합니다.”

내 말에 곽찬구 감독이 미간을 좁혔다.

“정말 그 정도만 원하십니까?”

“음?”

“지금 대표님께선 제 자존심을 건드리셨습니다.”

“…….”

뭐지?

갑자기?

생각해보니 곽찬구 감독의 자존심을 건드릴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들었다.

허나, 지금 상황에서 큰 걸 바라는 것 자체가 무리인 게 아닌가?

그런데 그런 내 생각은 얼마 안 가 싹 바뀌고 말았다.

* * *

『안녕하십니까! STV의 캐스터 이형욱입니다! 박천명 해설위원과 함께합니다!』

『네, 안녕하세요.』

『오늘 고양 유나이티드가 리그 1위 안양 썬더스를 홈으로 불러들여 상대하게 되었습니다. 이에 대해 위원님께서는 어떻게 보시는지요?』

『네, 올 시즌도 고양 유나이티드가 상당히 어려움을 겪고 있는 상황이었는데요. 구단 대표이사부터 감독까지 대규모 변화가 있었습니다.』

『그렇죠.』

『라이벌 팀에 있던 곽찬구 감독을 영입하면서 많은 논란을 일으키기는 했는데, 논란 여부를 떠나서 데뷔전 경기였던 전남전에서 생각보다 좋은 모습을 보였어요.』

『맞습니다. 그때도 저희가 생중계를 진행했었는데요. 그날 경기력이 올 시즌 고양 유나이티드 경기력 중에서 제일 좋았었죠.』

『고양 유나이티드가 득점이 떨어지는 문제가 계속 있기는 한데, 수비나 역습 전개가 상당히 일품이었습니다.』

『과연 오늘 경기에서도 좋은 모습을 이어갈 수 있을지 기대가 됩니다!』

* * *

와아아아!

곽찬구 감독의 홈데뷔전.

나와 김 비서는 스카이박스에서 경기를 지켜보고 있었다.

“도련님. 엄청 달라졌는데요?”

“그, 그러게.”

나와 김 비서는 경기를 지켜보면서 감탄하고 있었다.

리그 1위인 상대로 비비는 모습만 보여줘도 성공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런 예상을 뛰어넘는 파격적인 상황이 펼쳐지고 있었다.

“압도하고 있어.”

그렇다.

겨우 꼴찌나 면하고 있던 우리가 리그 1위를 신나게 몰아붙이고 있었던 것이다.

스카이박스 자리에 설치된 TV에서 실시간으로 중계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김지우, 측면으로 정확한 패스! 나탈이 받고 뜁니다! 황소처럼 질주하는 나탈! 크로스 올립니다! 박스 안쪽으로 향하는데요!』

『아! 골입니다! 박요한! 올 시즌 첫 득점에 성공합니다!』

『고양 유나이티드가 홈팬들의 함성으로 물듭니다!』

“그래! 좋았어!”

“와아아!”

신나게 상대를 몰아붙이던 고양 유나이티드가 마침내 선제골까지 만들어냈다.

스카이박스에서 지켜보던 나와 김 비서는 서로를 끌어안으며 기뻐했다.

그러다가 곧 정신을 차리고 머쓱해 하면 떨어졌다.

Vamos 고양!

Vamos 고양!

고양 유나이티드 홈팬들이 외치는 구호가 경기장을 울렸다.

선수들과 코칭스태프들도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벤치에서 지켜보던 곽찬구 감독도 포효할 정도였다.

그렇게 선제골이 만든 이후 고양 유나이티드는 계속해서 상대를 몰아붙였다.

안양 썬더스는 올 시즌 리그 1위 팀이라는 명성이 무뎌질 만큼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그만큼 우리의 플레이에 혼란스러워하고 있었다.

『고양 유나이티드의 코너킥. 박지원이 준비합니다. 박지원 찹니다! 올라가는데요!』

『아~~! 왔어요~~!』

『골! 골입니다!』

『우아아아!』

『두 번째 골의 주인공도 박요한입니다! 오늘 멀티골을 터트리는 박요한!』

밥값 못하는 황철호를 대신해서 선발로 출전한 박요한은 그간의 설움을 풀기라도 하듯 진가를 보였다.

두 번째 골이 터진 순간 나는 확신할 수 있었다.

“대박이다!”

아무래도 나는 엄청난 감독을 데려온 듯싶었다.

그리고 그날, 고양 유나이티드는 리그 1위 안양 썬더스를 격파하는 대이변을 일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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