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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집 막내 구단주-12화 (12/272)

12화

K리그는 2023년부터 K리그1 12팀, K리그2 11팀으로 운영되고 있는 중이다.

2부 리그에 있는 고양 유나이티드는 현재 리그 9위에 위치하고 있었다.

K리그2는 총 40라운드까지 있다. 벌써 19라운드까지 치르면서 사실상 반환점을 돌 준비를 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고양 유나이티드의 상황은 썩 좋지 못했다.

구단 대표부터 시작해서 프런트가 대대적인 물갈이를 진행하고 있지만, 아직 성적이 따라와 주지 못하고 있었다.

19경기 동안 5승 3무 11패.

획득한 승점은 고작 18점에 불과했다.

경기당 획득 승점이 1점도 안 되는 상황이었다.

현재 선두를 달리고 있는 안양 썬더스가 13승 3무 2패로 승점 39점을 획득하면서, 선두와의 격차가 컸다.

고양 유나이티드보다 못한 팀은 아산과 충주뿐이었다.

19경기 동안 2승만 거둔 충주가 최하위를 기록하고 있고, 아산의 경우 득실차로 인해 고양보다 순위가 낮았던 것뿐이다.

역대 최악의 시즌이라고 평가하는 사람도 많았다.

“따라서 충분히 경질 사유가 된다고 생각합니다.”

모처럼 영신 그룹 본사로 찾아간 나는 아버지에게 임태무 감독 경질을 요청하고 있었다.

조용히 커피를 마시며 내 이야기를 듣던 아버지가 딱딱하게 얘기했다.

“너는 대표이사다. 감독을 경질할 수 있는 권한도 네가 가지고 있는데 굳이 나한테 얘기하는 이유가 뭐냐?”

“저를 너무 바보로 보시는 거 아닙니까? 아무리 권한을 갖고 있다고 해도, 구단의 모기업이 영신 그룹인 이상 보고를 안 할 수 없죠.”

“그래?”

지종윤은 마시던 커피를 내려놓았다.

그러고는 호탕하게 웃기 시작하는 것이 아닌가!

“하하하하!”

“왜 웃으세요?”

“네 녀석이 어떤 생각으로 왔는지 알고 있기 때문이다.”

“…….”

“이놈아! 감히 누굴 속이려는 게냐! 솔직하게 이야기해라!”

역시 아버지의 눈을 속일 수가 없다.

내가 무슨 속셈을 갖고 여기에 왔는지 단박에 눈치챈 것이다.

“그게…….”

“됐다. 곽찬구 감독, 그자를 영입할 생각이지?”

“알고 계셨어요?”

“그럼 몰랐겠냐?”

어이가 없다는 듯 쳐다보는 아버지를 보며 나도 어이가 없었다.

그러다가 금방 납득했다.

아버지에게 따로 보고를 올린 적은 없지만 사방에 아버지의 눈과 귀가 되어주는 이들이 존재한다.

아버지 정도 되는 능력자라면 내 행적을 조금만 조사하면 금방 알아낼 수 있는 일이다.

“태훈이 너, 백가네 셋째 아들놈에게도 뭔 짓 했지? 갑자기 천산 그룹 계열에 있는 제약회사가 경쟁 회사 하나를 인수 합병한다고 하던데 말이야.”

“다 알면서 묻지 마세요.”

“역시 그랬던가.”

아버지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나는 그런 아버지의 눈치를 살피느라 바빴다.

오랜 시간 그룹을 이끌어온 아버지의 의중을 파악하는 일은 굉장히 어렵다.

겉과 속을 똑같이 생각하면 안 된다.

“제법이로구나.”

“네?”

“뭐, 됐다. 이 얘기는 나중에 하고.”

꾸중이라도 들을 줄 알았던 나는 예상치 못한 칭찬에 놀라고 말았다.

“네가 원하는 건, 임태무 감독이 너를 방해하지 못하도록 하는 그룹의 보호겠지?”

“…….”

“임태무 감독, 완전히 능력 없는 인간은 아니야. 다만, 자기 사리사욕에 그 능력을 모조리 써서 문제지.”

“그런 사람을 계속 곁에 둔 이유가 무엇입니까?”

아버지도 임태무 감독에게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더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룹 회장이라면 단숨에 잘라버릴 수 있을 텐데도 불구하고 그냥 둔 이유를 말이다.

그러자 아버지가 또 한 번 한숨을 쉬며 말했다.

“조금 부끄러운 이야기다만, 아무리 내가 그룹 총수라도 내 마음대로 할 수 없는 경우들이 있단다.”

“……안 믿겨지는데요?”

“원래 사업이란 게 그렇단다. 필요하면 원수하고도 사이좋게 지내야 되는 척을 해야 돼. 쓸모없는 물건도 지녀야 되고.”

“…….”

“특히 이렇게 덩치 큰 회사를 운영하다 보면 정말 별의별 일들이 생기지.”

“그런가요?”

“나중에 시간이 지나면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가 될 게다.”

무슨 말인지 아예 이해를 못 하는 건 아니다. 어떻게 보면 지금의 나도 그러고 있으니까.

“뭐, 잘 됐네요. 어떻게 보면 제가 아버지 대신 똥 치우는 거니까요. 그쵸?”

“…….”

“아버지 원하는 대로 우리 좀 더 솔직해 보죠. 어때요?”

아버지는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내가 무엇을 얘기하는지 알고 계시기 때문이다.

기브 앤 테이크.

나는 아버지에게 그것을 요구했다.

뻔뻔한 행동으로 보일 수도 있지만, 이것 또한 엄연히 거래의 일부다.

아버지는 한동안 말없이 내 눈을 바라보기만 했다.

나는 그런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얼마나 흘렀을까?

아버지 입에서 묵직한 말이 흘러나왔다.

“앞으로 영신 그룹은 지태훈 대표 이사의 모든 행동에 적극 지지하고 도울 것이다.”

“……!”

“이 정도면 되겠느냐?”

아버지가 허투루 얘기하시는 분이 아니라는 것을 안다.

그렇기에 저 한 마디가 주는 효과가 엄청나다는 것을 안다.

“생각 이상인데요?”

“허나, 여기에는 한 가지 조건이 있다.”

“조건이요?”

갑자기 조건이라니.

조건이란 말에 나도 모르게 입이 말랐다. 그리고 이어지는 아버지의 말에 나는 두 눈을 부릅떴다.

“내년에 반드시 1부 리그로 승격해라.”

“1부 승격?”

“설마 그 정도도 못 할 거면서 감히 내게 거래를 시도한 것이냐?”

순간 말문이 막혔다.

지금까지 충분히 대화가 성립하리라고 생각했었는데 완전 오산이었다.

역시 아버지는 만만치 않다.

아니, 내가 부족한 게 많다.

“왜 대답이 없지?”

“그건…….”

큰일이다.

물론 팀을 승격시킬 생각이긴 했다.

하지만 내년에 당장 승격시켜 보라고?

이건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다.

만에 하나 실패할 경우 나는 정말 대표이사 자리를 내놔야 될 거다.

그렇다고 여기서 겁먹고 물러날 수 없다.

“좋아요. 반드시 1부 리그 승격하는 걸 보여드리죠.”

* * *

그렇게 지태훈이 돌아간 후, 박 팀장이 조금은 걱정 어린 의견을 냈다.

“회장님. 너무 압박 준 거 아니십니까?”

“왜? 자네도 내가 너무하다고 생각하나?”

“그게…… 아무리 막내 도련님이 정신을 차리고 뭔가 해본다고 하더라도, 1년 만에 승격을 이룬다는 건 아무래도…….”

“그래, 말도 안 되는 일이지. 자네 말도 틀리지 않아.”

“그럼 어째서…….”

어리둥절해하는 박 팀장의 반응에 지종윤 회장은 작게 웃기만 했다.

그러다가 금방 굳은 얼굴로 말했다.

“당돌한 녀석에게 어울리는 목표를 만들어줬을 뿐이네.”

“…….”

“어떤 결과를 만들어낼지 무척 기대가 되는구먼.”

* * *

며칠 후, 임태무 감독의 경질설이 담긴 기사가 뜨기 시작했다.

『임태무 감독 경질 위기. 이번 라운드가 경질 분수령.』

『칼 빼든 고양, 감독마저 경질시킬까?』

“뭐야!?”

임태무 감독은 자신의 경질과 관련된 기사를 보고 화들짝 놀랐다.

‘이 새끼가 먼저 선수를 쳐?’

안 그래도 지태훈 대표를 공격할 준비를 하고 있던 임태무 입장에서는 놀랄 수밖에 없었다.

선제공격을 당했으니 바로 반격해야 했다.

‘누군 언론플레이를 못 할 줄 아나?’

임태무는 자신이 아는 기자들에게 연락을 시도했다.

그런데…….

“오 기자님, 저 아시잖습니까? 제가 이런 걸로 경질당할 일이 없는…… 네? 뭐라고요?”

똑같이 언론플레이로 반격하려던 임태무 감독은 생각처럼 일을 벌일 수 없었다.

기자들이 기사 쓰기를 거부했던 것이다.

답답해하던 그는 시간이 조금 흘러서야 그 이유를 알게 됐다.

“영신 그룹에서 손을 썼다고!?”

임태무 감독 입장에서는 미치고 팔짝 뛸 일이었다.

그가 아무리 대단하다고 한들, 대기업이 끼어들면 이길 수 없었다.

이뿐만이 아니다.

“이봐, 신 대리!”

“…….”

말을 걸어도 대놓고 무시하는 직원들.

“남 코치! 도대체 이게 무슨…….”

“죄송합니다.”

“남 코치!”

코치들도 자신을 무시했다.

마치 왕따가 된 것 같았다.

이런 상황에서 지태훈이 환한 얼굴로 나타났다.

“안녕하십니까~ 임 감독님!”

“지태훈 대표!”

“우리 감독님께서 저한테 할 이야기가 많으신 것 같아 보이는데요?”

뻔뻔한 지태훈 대표의 태도에 임태무 감독은 분노했다.

“네놈이 그런 거지? 도대체 나한테 왜 그래!”

“왜 그럴 것 같아요?”

“뭐?”

지태훈은 성큼성큼 임태무 감독 앞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얼굴을 가까이했다.

마침 주변에는 둘밖에 없었다.

섬뜩한 표정을 드러낸 지태훈이 말했다.

“야.”

“……!”

“딱 한 마디만 할게. 좋게 해줄 때, 네 발로 나가.”

“이 새끼가 미쳤나!”

“이제 알았냐?”

“……!”

“나 미친놈이야. 당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더한 미친놈이지.”

임태무는 본능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눈앞에 있는 이 남자는 상상을 초월하는 미친놈이라고.

“당신 허재우하고 많이 해처먹었더라. 근데 내가 왜 허재우는 바로 자르고, 너는 왜 지금까지 그냥 둔지 알아?”

“…….”

“그건 말이야. 그간 구단을 위해 힘써왔던 정을 생각해서 봐줬던 거야.”

“…….”

“그런데 말이야. 자꾸 이렇게 나오면 곤란해.”

임태무는 눈만 깜빡이며 쳐다볼 뿐이었다.

“이번 일은 경고 정도야. 이후 어떤 일이 벌어질지는…….”

“크윽!”

“알아서 잘 판단하라고. 그럼 이만.”

떠나는 지태훈의 뒷모습을 보며 임태무는 절망했다.

* * *

시간이 흘렀다.

다가올 리그 경기를 하루 앞둔 날, 고양 유나이티드가 오피셜 기사를 발표했다.

『[오피셜] 고양 임태무 감독 사임!』

임태무 감독이 경질될 수 있다는 기사가 뜬 지 며칠 안 돼서, 스스로 사임했다는 기사가 뜬 것이다.

고양 유나이티드는 ‘그동안 헌신해준 임태무 감독의 앞날에 무궁한 발전을 기원한다.’는 말을 남기며 공식 발표했다.

기사를 본 고양 팬들을 비롯한 국내축구 팬들의 반응은 엇갈렸다.

-이번 시즌 못했다고 이렇게 자르냐? 실망이다.

-신임대표 오고 나서 진짜 다 바뀌고 있네.

-임태무 감독이 이렇게 나가네. 그래도 팀을 위해 몇 년을 헌신했는데.

-솔직히 경질당할 만했다고 보는데? 20경기 동안 5승은 오바 아님?

-임태무 나갔으니 양아들 황철호도 이적하냐?

-차라리 지금이라도 잘 나갔다고 생각한다^^

그러면서도 팬들은 후임 감독으로 누가 올지 궁금해했다.

-임태무 감독 후임으로 누가 오지?

-루머에는 허난 가려던 곽찬구가 온다던데?

-아직도 그걸 믿는 놈이 있음? 곽찬구가 대가리 깨진 게 아니면 어떻게 라이벌 팀으로 가겠냐?

-솔직히 작년에 제주 맡았던 신정후나 올대 대표 맡았던 차광호 감독 정도가 현실적이라고 보는데?

-아니, 곽찬구 온다니까?

-곽찬구 오면 내가 팬티만 입고 고양 시청 앞에 가서 춤춘다.

그런 상황에서 얼마 후 놀랄 만한 일이 벌어졌다.

『[오피셜] 고양 곽찬구 감독 선임!』

-ㅅㅂ? 이게 뭔일?

-이게 머선129?

-ㅋㅋㅋㅋㅋ 진짜 왔네!

-아니, 곽찬구가 왜 고양을 가!?

-야! 팬티만 입고 시청 가서 춤추겠다는 놈 어디 갔냐?

-경축 고양시청 팬티남 탄생 ㅋㅋㅋㅋ

팬들의 반응은 뜨거웠다.

특히 파주 팬들의 분노는 상상을 초월했다.

-곽찬구 이런 ㅅㅂㄹㅁ!

-유니폼 다 태웠다!

-야이 배신자 새끼야! 아무리 갈 데가 없어도 그렇지 고양을 가냐!

-X나 실망스럽다!

-파주 뭐했냐!

-아오!!!!!

-대가리 깨진 새끼!

일부 팬들은 유니폼 화형식을 진행하기도 했다.

오랜 시간 구단과 함께 한 레전드의 행보에 팬들은 크나큰 배신감을 느낄 수밖에 없던 것이다.

한편, 갑작스러운 라이벌 팀 감독 선임 소식에 고양 팬들도 놀라고 황당한 건 마찬가지였다.

-이 사람이 왜 여길 와?

-돌았?

-뭐야?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이야?

-신임대표 미친 거 아님?

-아 이 새끼 젊었을 적에 도발 세리모니한 거 생각하면 지금도 빡치는데, 뭐? 감독으로 왔다고?

-그동안 우리한테 했던 말들 사과해라!

그렇게 많은 논란을 일으킨 가운데, 고양 유나이티드의 행보는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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