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재벌집 막내 구단주-11화 (11/272)

11화

최근 고양 유나이티드 선수단 분위기는 다분히 혼란스러웠다.

“또 졌네.”

“진짜 이러다가 감독님 경질되는 거 아냐?”

“그, 돌아다니는 썰에 의하면 신임대표가 곽찬구 감독 만났다던데?”

“뭐? 그 감독은 파주 감독이었잖아? 설마 그 사람이 우리 구단에 온다고?”

“에이, 설마. 아무리 미친놈이라도 라이벌 팀 감독을 데려오겠냐.”

“근데 우리 대표는 미친놈 맞잖아.”

“…….”

라커룸에서 선수들의 대화를 듣게 된 임태무 감독의 표정은 굳어졌다.

‘시팔!’

임태무도 알고 있었다.

지금 구단이 묘하게 돌아가고 있다는 것을.

부임하자마자 허재우 단장부터 내쳐버린 신임대표는 이후 광폭 행보를 보이고 있었다.

특히 이번 구단 내부 인사 개혁은, 그간 구단 내 축으로 활동했던 이들을 모두 내쳐버리는 결과를 가져왔다.

그 상황을 지켜보는 임태무는 달갑지 않았다.

‘위험해. 정말 위험해.’

스스로 위험하다고 느끼고 있었다.

그동안 임태무는 구단 내에서 확고한 입지를 다지고 있는 상태였다.

하지만 최근 들어 그 입지에 점점 금이 가고 있었다.

신임대표의 광폭 행보 속에 선수들도 더 이상 임태무를 신뢰하지 않기 시작한 것이다.

언제든지 경질당할 수 있는 감독.

선수들 머릿속에 그러한 인식이 점차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임태무는 어떻게든 선수들이 그런 생각을 하지 못하게 만들고 있었다.

하지만 본인도 알고 있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점차 위기는 오고 있다고.

‘어떻게든 이 상황을 해결해야 해.’

이대로 신임대표의 의도대로 경질당할 생각은 없었다.

‘지태훈! 함부로 까불지 못하게 해주마!’

* * *

“이게 제 계획표입니다.”

곽찬구 감독은 내게 정리한 보고서를 내밀었다.

보고서에는 앞으로 감독이 되면 어떤 식으로 일정을 추진할 것인가에 대해 상세히 적혀 있었다.

“여기에는 살생부도 있군요.”

“그렇습니다. 향후 계획을 위해서라도 반드시 잡아야 할 선수와 불필요한 선수 목록도 따로 정리해두었습니다.”

살생부 목록을 살펴보니 익숙한 이름들이 보였다.

“황철호는 역시 방출 대상자로 올랐군요.”

“득점하지 못하는 스트라이커는 필요 없습니다. 듣자 하니 5억이나 받는다면서요?”

“네. 엄청 받죠.”

“그 실력에 5억이면, 차라리 1부 리그 상위권 팀에서 벤치에 놀고 있는 공격수를 데리고 오는 게 낫죠.”

“같은 생각입니다.”

황철호의 방출은 예정 수순이라고 치면 되고.

“외국인 선수들도 모두 방출 대상자군요.”

“네. 지금 외국인 선수들 중에 출전하고 있는 선수가 누가 있습니까?”

“사실상 사이버 용병들이죠.”

“그런 쓸모없는 월급 도둑들은 모두 처분해야 합니다.”

곽찬구 감독은 철저하게 능력 위주로 진행한다. 그러한 것이 지금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방출 명단을 모두 살펴본 뒤, 이번에는 잡아야 할 명단을 살펴봤다.

“박지원하고 김지우는 반드시 잡을 명단에 올라와 있군요. 이유가 있겠습니까?”

“두 선수는 30대 중반을 향해 가는 노장 선수들입니다만, 팀이 잘나가든 못 나가든 제 몫을 다해준 선수들입니다.”

“흐음.”

“그리고 중요한 건, 그 두 사람은 팀 내에서 레전드로 대우 받고 있다는 거죠.”

“그렇죠.”

박지원은 골키퍼.

김지우는 미드필더.

이 두 선수는 고양 유나이티드에서만 무려 7년을 뛰며 팀을 위해 헌신해왔다.

“이 두 선수는 향후 팀의 기강을 잡아줄 주축 선수들이 될 겁니다.”

“그렇군요. 감독님이 그렇다면 그런 거겠죠.”

이 두 명 외에도 잡아야 할 선수들이 몇 명 더 있었다.

“그리고 영입 요청을 한 선수도 있네요.”

“네. 영입 가능 여부를 떠나서 목록을 작성해 보았습니다.”

“흐음.”

너무 비싼 선수만 아니면 되는데.

그렇게 생각하고 영입 목록 선수를 살펴본 나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이거 진심입니까?”

“네. 진심입니다.”

“하하하하하!”

나는 박장대소를 터트렸다.

이야~ 이 감독 보기보다 꽤 하잖아?

“사무엘을 영입해 달라니! 하하하하! 와! 감독님! 진짜 멋진 분이시네요!”

사무엘은 파주에서 주축 공격수로 활약하고 있다.

그 말은 즉, 라이벌 팀 공격수를 영입해달라는 것이다.

심지어 오랜 기간 팀의 핵심으로 뛰어온 선수를 말이다.

“사실 사무엘과 저는 사이가 좋습니다.”

“그래요?”

“네. 만약 제가 중국으로 갔다면 그 친구는 반드시 데려갈 생각이었죠.”

“그랬군요.”

“사무엘도 이제 나이가 있는 편이라서 과거 전성기만큼의 실력은 보이기는 힘듭니다. 하지만 골문 앞에서 노련함이 존재하죠. 적어도 2부에서는 통하고도 남을 겁니다.”

파주는 과거 아시아챔피언스리그를 나갈 정도로 대단한 팀이었다.

사무엘은 K리그 내에서도 나름 인정받는 공격수였고, 파주와 영광을 함께 보낸 선수였다.

K리그 통산 251경기 120골 48도움.

50-50 클럽 가입을 얼마 남지 않았다.

50-50 클럽은 K리그 역사상 10명 정도밖에 없는 대단한 업적이다.

그중에서 외국인 선수는 과거 데니스, 에닝요, 몰리나 딱 3명만 가지고 있다.

“사무엘은 현재 재계약 협상에 난항을 겪고 있습니다.”

“왜죠?”

“계약 기간 때문이죠. 연봉이야 나이 먹으면 자연스럽게 내려간다고 해도, 계약 기간 여부는 다르거든요.”

“흠. 그렇군요.”

“올해 계약 만료되는 사무엘은 2년 또는 3년 계약을 원하지만, 파주는 1년 계약만 제시한 것으로 압니다.”

“사무엘 나이가 올해 33세죠?”

“네. 파주는 새 감독과 함께 세대교체를 진행할 예정인데, 그러다 보니 사무엘과 길게 재계약하지 않으려 하죠.”

게다가 올 시즌 사무엘은 부진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번 시즌 그가 기록한 골은 고작 4골.

시즌이 중반 이상을 향해 가는데, 4골이면 공격수로선 부진한 편이다.

하지만 그간 보여준 퍼포먼스를 생각한다면 조금은 기다려볼 수 있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식의 계약을 진행한다는 것은 뻔하다.

“역시 이재신 단장. 그 사람 때문인가요?”

“그렇죠. 보통 선수들에 대한 재계약은 단장이 진행하니까요.”

나는 순간 어떤 모습이 머릿속에 그려지기 시작했다.

어쩌면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엄청난 상황이 펼쳐질지도 몰랐다.

“전직 라이벌팀 감독과 공격수가 친정팀을 상대한다? 이거 엄청나겠군요.”

“그렇죠. 아마 K리그 역사상 굉장히 드문 일일 겁니다.”

고민할 것도 없다.

“좋습니다. 사무엘 영입은 바로 진행해보도록 하죠!”

* * *

지태훈이 곽찬구 감독과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김유리는 요를 대표와 만났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요를 대표 신성한이라고 합니다.”

“김유리라고 합니다.”

“엄청난 미인이시군요. 그것보다 이렇게 먼저 연락 주셔서 감사합니다!”

요를 대표 신성한은 올해 38세로 콘텐츠 업계 대표로 5년째 활동하고 있었다.

외모만 보면 훈남이라 불릴만했다.

다만, 김유리의 시선을 끄는 것이 있다면…….

“혹시 그 셔츠에 그려진 그림, 혹시 불멸의 황비인가요?”

“오! 맞습니다! 알아보셨네요!”

신성한은 자사에서 유통하고 있는 ‘불멸의 황비’의 주인공들이 그려져 있는 캐릭터 셔츠를 입고 있었다.

“작품에 애정이 많으신가 보네요.”

“네. 어쨌든 저희 회사 대표작이니까요. 제 입장에서는 고마운 작품이거든요.”

“그렇군요.”

“작가님한테도 셔츠 보내드렸는데, 질색하시는 바람에 매우 슬펐지만요.”

“음. 그럴 만할 것 같긴 한데요.”

“예!?”

아무래도 남녀 주인공이 뜨겁게 뽀뽀하고 있는 그림이 그려진 셔츠를 쉽게 입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그래도 대표님께서 이렇게 작품을 아껴주시니 작가님도 좋아하겠죠.”

“그렇겠죠!?”

한순간에 표정이 다양하게 변하는 신성한을 보며 김유리는 결론을 내렸다.

신성한이란 인물은 굉장히 독특한 존재라고.

좋게 말해 독특하지 나쁘게 말하면 비정상적이다.

“그런데 저를 보자고 하신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하네요.”

“이번에 저희 구단 대표이사가 바뀌었다는 건 알고 계신가요?”

“물론이죠. 제가 그래도 고양 유나이티드 팬인 걸요? 학생 때부터 꼬박 경기장 찾아가서 응원했고요.”

신성한은 그렇게 말하더니 갑자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러고는 유니폼 한 벌을 가져왔다.

“보세요!”

“아아, 네.”

신성한이 가져온 고양 유나이티드 유니폼에는 ‘김지우’ 선수의 이름이 마킹되어 있었다.

“김지우 선수 팬이신가 봐요?”

“아유! 고양 팬이라면 김지우 선수 싫어하는 사람 거의 없을걸요? 그 파이터 같은 플레이스타일을 보면 저도 모르게 확!”

“…….”

“흠흠. 어쨌든 기회가 된다면 김지우 선수 한 번 만나봤으면 좋겠네요.”

김유리는 뭔가 자신이 말려들고 있다는 기분을 떨칠 수가 없었다.

‘그렇게는 안 되지.’

김유리는 정신을 가다듬고 말을 꺼냈다.

“저희 대표님이 요를 대표님에게 관심이 많으세요.”

“그래요? 죄송하지만 저는 남자를 좋아하지는…….”

“그런 건 아니구요. 것보다 요를에서 지역 연계 사업을 추진 중이라고 들었어요.”

“아니, 그걸 어떻게 아셨데요?”

“후후. 저희 고양 유나이티드는 요를과 지역 연고 협약 사업을 진행해볼까 하는데, 대표님의 생각은 어떤지 알고 싶네요.”

“오!”

신성한은 탄성을 내질렀다.

갑작스러운 탄성에 김유리는 놀랐지만 애써 태연한 척 유지했다.

“저야 대환영이죠! 사실 예전에 꿈이 고양 유나이티드 구단주가 되는 거였거든요!”

“…….”

“뭐, 현실적으로 어려운 일이기 때문에 그 꿈은 포기했지만, 그래도 스폰서 기업이라도 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곤 했죠!”

신성한의 생각을 듣게 된 그녀는 의외로 이야기가 쉽게 풀리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 저희, 좀 더 긴밀한 대화를 나눠볼까요?”

“좋아요!”

그렇게 김유리의 입가에는 미소가 그려졌다.

* * *

“원하는 대로 이루어졌습니다.”

“그래? 김 비서, 정말 수고 많았어!”

“아닙니다. 그저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이죠.”

“그렇게 말하는 것치고 굉장히 피곤해 보이네. 이해해. 그 사람 꽤 괴짜로 소문나 있거든.”

“……그런 것 같더군요.”

“어쨌든 수고 많았어.”

김 비서는 오전에 봤을 때와 달리 수척해진 모습으로 나타나 성과를 보고했다.

다행히 요를 대표는 우리 뜻대로 해주기로 했다.

내년부터 정식으로 MOU한 스폰서 기업으로 참여하게 된다.

그렇게 해서 우리는 요를 쪽에서 자금을 지원받고, 요를은 우리를 통해 홍보를 진행할 수 있게 됐다.

그뿐만 아니라 다양한 컨셉의 사업도 함께 진행하기로 했다.

“거기 축구 작품도 유통한다며?”

“예. 최근에 <신화를 만드는 축구 감독>이란 웹소설 작품을 유통하고 있다고 합니다.”

“나도 봤었어. 재밌더라. 반응도 좋고.”

“그런데 그 작품은 무슨 이유로…….”

“그거 우리 선수들 이용해서 홍보해줄까 해.”

“홍보요?”

“어. 광고도 찍게 도와주려고. 요즘 웹소설 광고도 많이 하니까.”

“……?”

김 비서는 이해하지 못한 얼굴로 날 쳐다봤다.

그래서 나는 조금 더 설명을 해줬다.

“왜 그거 있잖아. 그, ‘깨어나라!’ 하면 막 그림자 속에서 애들이 퍽퍽 튀어나오고 하는 그런 주인공 나오는 소설.”

“……그게 뭐죠?”

가늘어진 눈으로 나를 쳐다보는 김 비서의 시선에 나는 애써 민망함을 감추며 말했다.

“하여튼, 나중에 보면 알아.”

“푸훕!”

“웃어?”

“아니요. 안 웃었는데요?”

“……어쨌든 나온 지 몇 년 된 작품인데, 그거 유명해서 영화도 나오고 애니메이션도 나오고 드라마도 나왔어.”

“그게 저희하고 무슨 상관인가요?”

“상관있지. 선수들 모델로 세워야지.”

광고를 진행하면, 단순히 그 작품만 홍보되는 수준으로 끝나지 않는다.

그 광고에 참여한 배우들도 함께 뜬다.

나는 그 광고에 우리팀 선수들을 이용해볼 생각을 했다.

물론 지금 당장은 아니고, 추후 진행할 예정이다.

“그건 그렇고, 도련님. 곽 감독님하고 이야기는 잘 진행되셨습니까?”

“응. 보고서 받아봤는데 꽤 흥미롭더라고.”

“그렇습니까?”

“응. 보고서 보여줄게. 한 번 보고 감상 들려줘.”

“알겠습니다.”

“그나저나 우리 임 감독은 언제쯤 내치는 게 좋을까?”

“이번 시즌까지는 지켜본다 하시지 않으셨습니까?”

“그럴 생각이었는데, 상황이 좀 달라졌어.”

“……?”

나는 차가운 표정을 드러내며 말했다.

“임 감독이 날 공격하려고 한다는 첩보가 들어왔거든.”

“……!”

“아무래도 그냥 둬서는 안 될 것 같아. 조만간에 내쳐야겠어. 보니까 곽 감독도 생각 이상으로 큰그림을 그리고 있고. 일찍 선임한다고 해서 문제될 건 없을 것 같아.”

이런 내 말에 김 비서는 잠시 침묵을 유지했다.

“왜? 별로야?”

“아니오. 오히려 저는 도련님 계획에 찬성하는 편입니다. 원하시는 대로. 뜻대로. 진행하시면 될 것 같아요.”

“그래? 그럼 김 비서가 그렇게 대답해줬으니까 진행해볼게.”

“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