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재벌집 막내 구단주-10화 (10/272)

10화

모임을 마치고 돌아가는 길.

우리는 한동안 말이 없었다.

그러다가 김 비서가 먼저 말을 걸었다.

“도련님.”

“왜?”

“오늘 백태현과의 만남. 다분히 의도된 만남이군요?”

“응. 맞아.”

순순히 인정했다.

그러자 김 비서는 조금 뜸을 들였다가 말을 이었다.

“왜 제게는 자세히 말씀을 해주지 않으셨습니까?”

“굳이 말할 필요는 없었다고 생각했으니까.”

내 대답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일까?

김 비서의 얼굴은 굳어졌다.

그런 그녀의 얼굴을 보니 왠지 내 마음이 불편해졌다.

“혹시나 해서 하는 말인데, 내가 김 비서를 무시했다거나 한 건 아니야. 이건 그냥…….”

“알고 있어요.”

알고 있다고 대답하는 것치고 말투에서 조금은 불만이 느껴진다.

“다만, 도련님께서 무슨 일을 꾸미는지 비서로서 알지 못한 사실이 아쉬울 뿐이죠.”

“……미안. 다음번에는 얘기할게.”

“네.”

그렇게 대화가 끝날 무렵, 김 비서가 운전하는 차가 우리집 앞에 도착했다.

“도착했어요.”

“그래. 오늘도 고마워. 김 비서.”

인사하고 차에서 내리려는데, 갑자기 김 비서가 날 붙잡았다.

“도련님.”

“음?”

“혹시 다음 계획은 무엇인지 알려주실 수 있으세요?”

“다음 계획?”

아무래도 김 비서 입장에서는 내가 대책없이 일을 저지른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생각해보니 나를 믿어달라고 했는데 김 비서에게 너무 말을 하지 않은 것도 문제가 될 수 있었다.

“투자자들을 만날 거야.”

“투자자들이요?”

“응. 우리가 목표한 일을 추진하려면 뭐니 뭐니 해도 ‘머니’ 아니겠어?”

“그렇군요. 그럼 다음번 투자자는 누구를 생각하시는 거죠?”

김 비서의 은근한 물음에 나는 조금 고민했다가 대답했다.

“김비서. 혹시 ‘요를’이라고 알아?”

“요를?”

“응. 지역에 자리 잡고 있는 중소업체야.”

아마 김 비서는 잘 모를 것이다.

아니, 고양특례시 사람도 잘 모를 거다.

왜냐하면 지금은 별 볼 일 없는 작은 회사니까.

하지만 앞으로 1년 뒤면 다르다.

(주)요를.

한국 콘텐츠 시장을 바꿔놓을 전무후무한 기업으로 성장할 회사였으니까.

“김 비서. 혹시 웹소설이나 웹툰 좋아해?”

“소설은…… 잘 안 보지만 가끔 웹툰은 봅니다.”

“그럼 ‘불멸의 황비’라고 알아?”

“그거 옐로초콜릿에서 연재하는 작품이잖아요. 설마?”

“맞아. 그 회사가 유통하고 있는 작품이야.”

“아!”

현재 요를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작품은 중, 하위권 작품들뿐이다.

그나마 ‘불멸의 황비’가 대표작이라고 할 정도로 중박 이상의 작품이 없다.

연매출 5억도 안 되는 별 볼 일 없는 회사가 1년 뒤에 어떻게 한국 시장을 지배하는 콘텐츠 기업이 될 수 있었을까?

이유는 하나다.

대박 작품이 터져 나왔기 때문이다.

올해 말쯤에 대한민국을 넘어 전 세계를 강타할 초 메가 히트 작품 ‘유리구슬’이란 작품이 출시되기 때문이다.

유리구슬은 순수 매출만 무려 1조 가까이 기록할 정도로, 한국 콘텐츠 시장을 흔들어놓았다.

‘요를이라면 우리에게 부족한 자금을 대줄 아군으로서 충분하지.’

회귀 전 이맘때쯤에 요를 대표는 지역 연계 사업을 추진했었다.

‘우리가 나서면 충분히 가능성 있어.’

단순히 지역 연계 사업 때문이 아니다.

‘요를 대표가 엄청난 축덕이란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은 많지 않아.’

심지어 고양 유나이티드의 오랜 /팬이기도 했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데 김 비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도련님.”

“응?”

“그 요를 대표 만나는 일. 저한테 맡겨주실 수 있으실까요?”

“김 비서가? 왜?”

“그건…….”

김 비서는 조금 이내 표정을 가다듬고 말했다.

“도련님의 비서로서 그 역할을 하고 싶을 뿐이에요.”

“흐음.”

이건 예상 밖의 일인데?

김 비서가 나서겠다니.

원래 이 일은 그 중요성 때문에 내가 직접 나서려고 했다.

게다가 김 비서는 이 일 말고도 할 일이 많다.

“…….”

하지만 김 비서의 타오르는 눈을 보니 왠지 생각이 달라졌다.

“김 비서.”

“네.”

“소식 기다릴게.”

“네!”

“그럼 조심히 들어가.”

나는 그렇게 김 비서를 두고 집으로 들어갔다.

* * *

도움이 되고 싶었다.

홀로 집으로 돌아가는 김 비서는 그렇게 생각했다.

도시의 야경을 눈에 담으며 그녀는 달라진 지태훈의 모습을 떠올렸다.

‘도련님은 내가 도움이 된다고 얘기하지만…… 실질적으로 내가 뭘 한 건 없어.’

지태훈이 처음으로 자신에게 도와달라고 부탁했었다.

하지만 아직까지 김 비서가 그렇다 할 활약을 한 적은 없었다.

그런 상황이 김 비서에게는 묘하게 상처로 다가왔다.

오랜 시간 지켜봐왔던 재벌가 도련님이자 상사다.

때로는 비서로서, 때로는 누이로서, 지태훈을 옆에서 보필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엇나가는 지태훈을 보며 속으로 안타까운 마음이 들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런데 이제는 아니었다.

지태훈은 완전히 달라졌다.

그가 달라진 이상, 그녀 또한 달라져야만 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신도 공을 세워야 했다.

그래야 달라진 지태훈 옆에 당당히 함께 설 수 있다고 생각했다.

“반드시 결과물을 내겠어. 그래야만 해.”

그날 밤, 김 비서의 각오는 평소와 달랐다.

* * *

“그런데 말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한 가지 의문점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신 대리?”

“그것은 바로, 왜 지태훈 대표는 늘 김 비서의 차를 타고 출퇴근을 하냐는 것입니다.”

“…….”

마치 모 시사 프로그램의 유명 MC를 따라하는 신진호 대리의 모습에 천지원은 어이가 없었다.

“그래서 뭘 알아냈는데?”

“아, 그게 말이죠. 과거에 운전면허 취소를 당했답니다.”

“뭐?”

“강남 한복판에서 폭주족처럼 페라리 몰다가 사고 냈데요. 그것도 술 먹고.”

“…….”

“20대 초반에 벌어진 일인데, 사고 터지고 나서 회장님이 다시는 면허 따지 말라고 했답니다.”

당시 인명피해는 없었다.

그룹 차원에서 손을 썼기에 대외적으로 알려지지도 않았다.

하지만 그룹 내에서만큼은 이 일을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화제였었다.

“그래서 지금까지 면허 없이 지내고 있다?”

“네. 그래서 김 비서님이 직접 대표님 모시고 출퇴근하고 있는 거죠.”

“김 비서도 골치 아프겠네.”

“그렇겠죠.”

천지원은 살짝 한숨을 내쉬었다.

“그것보다 과장님. 흐흐흐. 아니, 이제는 부장님이라고 불러야 되겠네요!”

“…….”

“부장님. 저는 영원히 부장님 편인 거 아시죠? 딸랑딸랑. 저는 부장님의 충실한…….”

“고만해! 고만해! 새꺄!”

“히히히.”

예정대로 천지원은 부장으로 승진하게 되었다.

지태훈 대표가 약속대로 그를 승진시켰기 때문이다.

천지원 부장뿐만이 아니다.

구단 전체 대규모 인사이동이 발생되면서, 구단은 술렁이고 있었다.

“이번에 경영지원팀이 완전 난리던데요.”

“그렇지. 머리부터 발끝까지 싹 바뀌었으니까.”

기존에 구단 재무팀으로 있던 경영지원팀은 구단 회계와 지원팀으로 분리되었다.

그리고 기존 경영지원팀 수장이었던 박진용 부장은 현장 지원팀 부장으로 발령이 났다.

사실상 좌천됐다는 이야기가 많았다.

그리고 새롭게 경영지원팀과 회계팀에는 각각 유지원 부장과 정소영 부장이 임명되었다.

유지원과 정소영은 모두 과장으로 있었다가 승진되었다.

“유지원 과장이야 그렇다 치고, 정소영 과장은 우리 구단에서 첫 부장직으로 승진한 여성이네요.”

“그렇지. 정소영 과장 본인도 몰랐던 눈치던데?”

“예? 정말요?”

“어. 안 그래도 아까 정 과장, 아니, 정 부장하고 만났었거든.”

정소영 부장은 올해 40세인 여성이었다. 그녀는 20대 후반에 말단 직원으로 들어와서 현장과 사무직을 오고 가며 실무 경험을 쌓았다.

분명 다른 이였다면 부장 이상의 승진이 가능했지만, 한동안 과장에서만 계속 머물렀다.

말할 수 없는 이유들이 존재했었다.

내심 승진을 원했던 정소영 과장은 지쳐가고 있었고, 이직과 퇴직을 고민하고 있던 차였다.

그랬던 그녀는 이번 신임 대표 손에 의해 승진에 성공했다.

그것도 구단에 큰 영향을 끼치는 회계팀 부장으로 말이다.

“이번 인사이동 관련해서 대표님에 대한 호불호가 갈리고 있네요.”

“뭐, 안 갈릴 때가 있었나?”

“그렇기는 한데요. 그래도 이번 인사이동은 완벽한 편 가르기라는 말이 있어요.”

“원래 누구든 신임 대표가 오면 그래. 전임 대표 때도 안 그랬었냐?”

“으음. 그렇죠.”

“그냥 말 만들기 좋아하는 사람들 얘기에 너무 귀 기울일 필요 없어.”

“부장님. 전부터 느꼈던 건데요.”

“뭐?”

“묘하게 대표님 편이시네요. 혹시?”

“나는 그냥 팩트만 얘기했을 뿐이다. 흠흠.”

신진호가 묘한 시선으로 쳐다봤지만 천지원은 애써 무시했다.

그러다가 속으로 생각했다.

‘지태훈 대표. 생각보다 추진력 있고 과감해. 괜히 적으로 돌렸다간 피만 볼 수 있겠어.’

내심 신임 대표 라인을 타는 선택을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아직 더 지켜봐야겠지만, 천지원의 촉으로는 지태훈 대표는 보통내기가 아니라고 느꼈다.

‘어디까지 할지 지켜볼 만하겠어.’

* * *

“승진 축하해요. 정소영 부장.”

“가, 감사합니다. 대표님.”

나는 정소영 부장을 대표실로 호출해서 대화를 나눴다.

“갑자기 승진하게 돼서 놀랐죠?”

“네? 네. 솔직히 제가 승진할 거라고는 생각을 못 했어요.”

“맞아요. 원래대로라면 승진을 못 했죠. 앞으로도 쭉.”

나는 알고 있다.

정소영이 회귀 전에 어떤 대우를 받았는지.

고양 유나이티드라는 구단은 엉망진창이었다. 특히 요즘은 드문 남성 중심으로 된 인사 체계가 심한 편이다.

그런 상황에서 정소영은 우직하게 살아남아 있던 능력자였다.

‘멋모르고 쫓아낸 기억을 떠올리면 지금도 이불킥 감이야.’

회귀 전 기억을 떠올리면 소름이 돋았다.

-아줌마는 집에 가서 애나 보쇼.

-뭐, 뭐라고요!?

-못 들었습니까? 이제 그 정도 했으면 눈치껏 나가지? 어!

-이, 이, 개새끼!

막 온몸에 피부가 바늘처럼 솟는 기분이다.

어우~ 소름끼쳐!

어떻게 이런 짓을 저지를 수 있었을까.

회귀 전에는 무개념 망나니였다면, 이제는 다르다.

나는 계획된 망나니.

그리고 개념도 조금은 갖춰져 있다.

“이제는 다릅니다. 앞으로 능력 있는 사람만이 제대로 대우를 받을 겁니다.”

“대, 대표님.”

“정 부장님은 능력 있는 분이니까 앞으로도 확실하게 대우해 드릴 겁니다.”

정소영은 감동받은 눈으로 나를 쳐다봤다.

딱히 기쁘게 해줄 생각은 없었다.

하지만 정소영이 가진 능력은 확실히 대우받을 만했다.

회귀 전에 나에게 모욕당하고 강제로 쫓겨난 정소영은 이후 인천으로 향했다.

거기서 정소영의 능력은 제대로 빛을 발했다.

인천의 재무팀장을 맡은 정소영은, 매년 적자로 허덕이며 재정난에 문제가 많았던 팀을 단숨에 흑자 구단으로 만들었다.

‘아무튼 대단한 사람이야. 이제라도 잘해줘야지.’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데 정소영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사실 저희 집에는 애가 둘이에요.”

“그렇습니까?”

“네. 남편하고 맞벌이로 일하고 있지만 생활이 그리 넉넉한 편은 아니었거든요.”

“흠. 남편은 무슨 일을 하고 있죠?”

“프로야구팀에서 직원으로 일해요.”

“프로야구팀?”

“네. 고양 버팔로라고…….”

“아.”

고양 버팔로.

지역에서 잘나가는 야구팀이다.

KBO 정규리그, 한국시리즈 우승을 여럿 달성했던 명문팀.

고양 유나이티드가 한창 열심히 삽질하고 있을 때, 고양 버팔로는 승승장구했다.

그런 팀에서 남편이 일하고 있었다니.

“올해도 승진이 안 되면 이직하려고 했었거든요. 만약 이직이 안 되면 그만둬야 하는데 그렇게 되면 집이…….”

“힘들었겠죠. 아무튼 이제는 그런 걱정 안 해도 됩니다. 팀이 잘 되면 이것저것 많이 챙겨드릴 거니까요.”

정소영은 이제 나를 향해 존경의 눈빛으로 쳐다보고 있다.

“대표님만 믿고 열심히 일하겠습니다!”

“예. 반드시 그렇게 해주세요.”

“네! 반드시 그렇게 할게요!”

그렇게 구단에는 계속해서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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