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재벌집 막내 구단주-9화 (9/272)

9화

다음 날, 고양 유나이티드의 홈페이지에 신임 대표 인사말이 올라왔다.

직원들은 신임 대표가 어떤 포부를 가지고 글을 썼는지 궁금해했다.

“헉!”

“뭐지? 미친 건가?”

“이건 망나니 수준이 아닌데요?”

대부분의 구단 직원들은 큰 충격과 혼란을 느껴야만 했다.

인사말은 다음과 같았다.

『지금까지 이런 구단은 없었다. 팬 여러분이 돈을 마음껏 쓰게 만드는 구단을 만들겠습니다.

조금만 기다려라. 너희들 통장은 우리 고양 유나이티드가 다 털어간다!』

정말 어처구니없는 인사말이었다.

그 어떤 조직의 대표도 이런 식의 인사말을 남기는 경우는 없었다.

“헐, 기사 떴다!”

“뭐라고!? 진짜네!”

“아 X됐네.”

하필 신임 대표 인사말과 관련된 기사가 뜨기까지 했다.

삽시간에 구단 내부는 혼란으로 가득찬 가운데, 대표 인사말을 올린 천지원 과장을 향해 누군가가 뛰어와 호통을 쳤다.

“천 과장!”

구단 경영지원부장 박진용이었다.

천지원은 멍하니 모니터를 바라보며 혼잣말을 중얼거리고 있었다.

“……대표에게 그런 과거가 있을 줄이야.”

“천 과장! 내 말 안 들려!”

“앗! 깜짝이야! 박 부장님. 무슨 일이세요?”

“뭐~? 무슨 일? 지금 무슨 일?”

태평한 천지원의 모습에 박진용은 화가 나서 외쳤다.

“신임 대표 인사말! 그거 어떻게 된 거야? 어! 지금 기사 뜨고 난리난 거 몰라? 구단 일이 장난이야!?”

“그래요?”

“하! 그래요? 이봐, 천 과장! 자네가 이런 실수를 저지르는 사람일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네!”

화가 머리끝까지 치민 박진용의 반응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천지원도 자신이 원해서 벌인 일은 아니었다.

“모두 대표님 지시사항이었습니다.”

“……뭐?”

“대표님께서 직접 쓰신 인사말이었고. 기자들한테 그 인사말을 가지고 기사를 올리라는 것도 대표님 뜻이었습니다.”

“뭐라고!?”

박진용은 기가 막혔다.

“천 과장! 자네는 도대체 뭐 했나? 어! 안 그래도 신임 대표 부임 이후에 우리 팀을 향한 부정적인 여론이 있는데, 대표가 그 짓거리를 하려고 하면 말렸어야지!”

“그건…….”

그때였다.

“박진용 부장님. 불만이 있다면 우리 천 과장 말고 저한테 직접 얘기하시죠.”

“……!”

어디선가 들려온 목소리에 화들짝 놀란 박진용이 황급히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그곳에는 굳은 얼굴을 하고 있는 지태훈이 있었다.

“대, 대표님.”

“박 부장님이 무엇을 걱정하고 있는지 압니다. 하지만 이걸 보면 생각이 달라질걸요?”

지태훈은 그에게 스마트폰을 넘겼다.

스마트폰에는 마침 신임 대표 인사말과 관련된 기사가 떠 있었고, 그 밑에 댓글들이 달려 있었다.

“밑에 달린 댓글을 읽어 보십시오.”

“……말도 안 돼.”

박진용은 믿을 수 없다는 듯 두 눈을 부릅떴다.

-신임 대표 패기에 지렸습니다.

-올, 꽤 하는데? 젊은 대표라고 하더니 참신하네.

-이건 웃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그래도 뭐, 그 패기 때문이라도 한 번 기대는 해본다.

-제발 돈 좀 쓰는 구단으로 만들어줘!

-기대한다!

부정적인 여론보다 오히려 기대가 된다는 여론이 더 많았다.

“자, 이제 박 부장님이 걱정할 일은 없어진 것 같습니다만?”

“…….”

박진용은 뭐라 얘기하고 싶었다.

하지만 자신을 바라보는 지태훈의 차가운 눈빛을 본 순간, 입을 다물어버렸다.

“이만 가서 일 보시죠.”

“아, 예. 실례했습니다.”

박진용은 도망치듯 후다닥 자리를 벗어났다.

그렇게 지태훈과 천지원, 둘만 남았다.

지태훈은 천지원을 향해 빙긋 미소를 지었다.

“천 과장님.”

“예?”

“며칠 이내에 인사 발령이 있을 겁니다.”

“인사 발령이요?”

“예. 사실 이 말 하려고 잠깐 들렸던 건데…….”

갑작스러운 인사 발령에 천지원은 저도 모르게 긴장하고 말았다.

그런 그를 향해 지태훈이 환한 얼굴로 얘기했다.

“앞으로 마케팅팀 부장으로 활동하게 되실 겁니다. 잘 부탁드리죠. 천 과장님. 아니, 앞으로는 천 부장님이죠.”

“……!”

그 말에 천지원은 저도 모르게 입을 떡 하니 벌렸다.

화들짝 놀란 그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려준 지태훈은 그렇게 자리를 떠났다.

* * *

“도련님. 오늘 저녁에 ‘모임’ 있으신데,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모임? 아~ 벌써 날이 그렇게 됐나.”

“취소할까요?”

최근 구단 일로 바쁜 일정을 소화하고 있는 나였다.

김 비서는 조심스럽게 모임 참석을 취소할지 물었다.

하지만 나는 고개를 저었다.

“그걸 왜 취소해? 가야지.”

“꼭 가셔야 됩니까?”

“왜? 김 비서는 마음에 안 들어?”

“……솔직히 지금 같은 상황에서 그 자리에 참석할 필요가 있는지 의문입니다.”

김 비서는 ‘모임’을 싫어한다.

이유가 있다.

그 모임은 단순한 모임이 아닌, 재벌 3세 내지 4세들이 참여하는 모임이기 때문이다.

회귀 전, 나는 이 모임을 빠지지 않고 다녔다.

모임에서는 상상을 초월하는 일들이 벌어진다.

향락과 사치의 절정!

그리고 엄청난 쾌락!

그 맛에 나는 빼먹지 않고 모임에 참여했던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평소와 달리 나는 이번 모임에 목적이 있다.

“가서 모처럼 애들 얼굴이나 좀 만나지.”

굳어지는 김 비서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그런 그녀를 향해 한 마디 툭 던졌다.

“김 비서도 같이 갈래?”

“…….”

“싫으면 퇴근해도 돼. 모임은 나 혼자 가도 되니까.”

짧은 시간 동안 고민하던 김 비서는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어쩔 수 없죠. 도련님을 모시는 제가 어떻게 빠질 수 있겠어요.”

“좋은 생각이야. 어차피 긴 시간 보낼 생각은 없어.”

시간이 흐르고 나는 김 비서와 함께 모임 장소로 향했다.

모임은 강남에서 진행됐다.

목적지인 클럽에 도착하자 클럽 문지기들이 내 얼굴을 알아보고 다가왔다.

“오셨습니까?”

“어. 다들 도착했나?”

“전부는 아니지만 일부 먼저 도착하신 분들 계십니다. 자리로 안내하겠습니다.”

“아니야. 어차피 같은 방일 거 아냐? 그냥 알아서 갈게.”

“저 뒤에 분은…….”

“내 비서.”

“넵.”

그렇게 나와 김 비서는 클럽 안으로 들어갔다.

빠른 비트가 심장을 칠 정도로 강하게 울리는 가운데, 사람들로 가득 찬 라운지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우리는 사람들 틈을 지나서 VVIP들만 갈 수 있는 전용 통로로 빠졌다.

전용 통로에는 클럽에서 고용한 경호원들과 직원들이 있었다.

그들도 나를 알아봤다.

그렇게 그들을 지나쳐 어느 한 방 앞에 서게 됐다.

-그래서 그때…….

-낄낄낄.

안에서 시끄러운 말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피식 웃으며 문을 열었다.

그러자 넓은 방 안에 다수의 인원들이 자리를 잡고 술판을 벌이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일부는 벌써부터 눈이 풀린 이들도 있었다.

‘쯧쯧. 도수가 센 양주를 저렇게 먹으니 꽐라가 되지.’

비싼 술을 마신다고 무조건 좋은 건 아니다.

그런 이들을 눈에 담고 있는 사이,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어어! 이게 누구신가? 우리 신임 대표님 아니신가?”

“그래. 그쪽은 여전히 백수 생활 중이신가?”

“백수는 시X! 우리끼리 말은 똑바로 하자. 이 몸은 경영 수업 중이라고!”

“그럼 수업이라도 똑바로 듣던가.”

“젠장! 꼴에 대표라고 지금 차별하는 거냐?”

“하하하! 그건 아니고.”

나와 대화를 나누는 이는 천산 그룹의 셋째 아들이자 나와 같은 망나니로 소문난 백태현이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명품으로 도배하고 있는 녀석은 이미 양옆으로 여자들을 끼고 있었다.

역시 회귀 전에 기억하던 모습 그대로다.

그리고 오늘 내가 이 모임에 나오게 만든 장본인이기도 하다.

“어쨌든 잘 왔다. 앉아. 앉아.”

“어.”

“그런데 오늘은 혼자가 아니네? 그 옆에 계신 분은…… 비서?”

“맞아. 이쪽은 우리 김 비서.”

“아아. 맞네. 겁나 유명하더만. 영신 그룹 초에이스라고.”

김유리는 백태현을 향해 허리 숙여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김유리라고 합니다.”

그런 그녀를 백태현이 끈적끈적한 시선으로 쳐다봤다.

그걸 본 나는 생각했다.

확 대가리를 깨 버릴까?

아니야. 참아야 해.

옛날처럼 마구잡이로 행동하면 안 된다.

지금의 나는 계획적인 망나니.

그렇게 생각하고 백태현 맞은편에 앉았다. 김 비서는 내 옆에 앉았다.

“일단 받아.”

백태현은 술잔 하나를 내 앞에 내밀고 거기에 노란 양주를 따랐다.

노란 양주가 채워진 잔을 굳은 얼굴로 쳐다보던 나는 술을 마시는 대신 다른 말을 꺼냈다.

“너 이번에 무슨 제약회사 쪽 본부장 간다는 이야기가 있던데, 사실이냐?”

“엥? 네가 그걸 어떻게 아냐?”

“사실이야, 아니야? 그것만 얘기해.”

“사실이긴 한데, 아, 시X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

“왜?”

그는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그러고는 술잔에 있던 양주를 원샷하고 말을 이었다.

“나를 싫어하는 이사 몇 놈들이 있는데, 그놈들이 계속 딴짓을 놓거든. 개새끼들.”

“평소에 잘 좀 하지 그랬냐. 만나서 밥도 먹고 술도 먹고 그랬어야지.”

“시팔, 얼굴만 보면 개때리고 싶은데, 뭐? 밥을 같이 먹어? 개 같은 소리 하네. 진짜.”

“야야, 됐고. 그래서 안 될 것 같아?”

“안 되기는 개뿔. 어떻게든 되게 하려고 움직이고는 있어.”

“그래?”

나는 속으로 웃었다.

회귀 전의 기억을 토대로, 백태현 이놈은 절대 본부장이 되지 못한다.

워낙 사고 쳐놓은 게 많다 보니, 아무리 아버지가 그룹 회장이라도 수많은 반대를 이기지 못했던 것이다.

훗날 이놈이 정신을 차리기는 하는데 그건 정말 먼 훗날의 이야기다.

“내가 도와줄까?”

“뭐?”

내 말에 백태현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내가 너 본부장 자리에 오르게 도와줄 수 있을 것 같아서 말이야.”

“정말?”

백태현은 눈을 깜빡이더니 이내 환한 표정을 드러냈다.

“이야~ 우리 지태후니~ 대표이사 달았더니 달라졌네!”

“…….”

“그래서 날 도와줄 수 있다고? 어떻게 도와줄 수 있는데?”

“그건 지금 말해줄 수 없고.”

“뭐?”

“대신 공짜로는 못 도와주고, 내 부탁 하나 들어줘.”

“뭐? 무슨 부탁? 본부장만 되면 내가 뭘 못 들어주겠냐!”

백태현은 나와 똑같은 종족이다.

이 새끼는 어떻게든 떨어지는 떡고물에만 관심을 갖는 놈이다.

그 외에는 별로 관심이 없다.

그렇기 때문에 다루기가 쉽다.

“우리 구단에 투자 좀 해라.”

“뭐? 투자?”

“어. 네가 본부장 자리에 오르면 제일 먼저 우리 구단에 스폰 좀 해달라고.”

“뭐~ 그거야 어려운 일은 아니지. 근데 어느 정도?”

“100억.”

“…….”

순간 백태현은 자신이 잘못 들었나 싶어 스스로 귀를 파고는 다시 물었다.

“뭐라고?”

“100억 투자해 달라고. 100억.”

“야, 아무리 그래도 100억은…….”

“네가 본부장 되고, 대표이사까지 오르게 만들어 줄게. 그럼 100억 정도는 아무것도 아닐걸? 어때, 콜?”

백태현은 고민하기 시작했다.

한참 고민하던 그가 대답했다.

“으으으. 좋아! 콜! 대신 날 어떻게든 본부장에서 대표이사까지 만들어줘야 한다?”

“물론이지.”

나는 백태현의 비어 있는 술잔에 술을 따라줬다.

그리고 아직까지 먹지 않고 있던 내 술잔을 잡고 백태현 앞으로 내밀었다.

“일단 한잔할까?”

“좋지.”

짠.

술잔이 부딪치고 곧 목에서 뜨거움이 느껴진다.

재채기가 나오려는 걸 간신히 참았다.

“야. 그래서 날 어떻게 본부장으로 만들어 줄 거냐?”

“가까이 와봐.”

나는 손짓하며 가까이 오게 만들었다. 그러자 백태현도 내 쪽으로 얼굴을 내밀며 가까이 다가왔다.

그런 그를 향해 귓가에 속삭이듯 얘기했다.

“너희하고 경쟁하고 있는 회사 중에 호신 제약이라고, 알지?”

“모를 리가 있겠냐?”

“거기, 지금 자금난으로 도산 위기야.”

“뭐?”

“아직 제대로 드러난 건 없는데, 곧 크게 터질 거다.”

“…….”

“너희 아버지한테 가서, 네가 호신 제약 합병 진행해 보겠다고 제안해봐.”

“뭐? 내가?”

“어. 생각보다 어렵지 않아. 너희 아버지하고 잘 이야기해서 자금 좀 지원받고 진행하면 될걸? 잘하면 금방 대표이사까지 오를지도?”

“그 말 정말이야?”

“당연하지. 짜샤. 내가 그냥 대표이사까지 됐겠냐? 다 짬에서 나오는 바이브 아니냐!”

사실 그냥 대표이사 된 거 맞다.

하지만 이놈은 그런 사실을 알지 못한다.

어쨌든 내 말에 백태현의 얼굴은 급격하게 좋아졌다.

그는 내 손을 와락 잡으며 말했다.

“친구야! 역시 너는 내 친구야!”

“…….”

“고맙다! 내가 진짜 본부장 되면 약속한 거 무조건 지킬게!”

약속을 지키는 거야 당연한 거고.

어쨌든 원하던 목표는 이룬 것 같다.

그렇게 생각하고 고개를 돌리는데, 김 비서가 놀란 눈으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그런 그녀와 눈이 마주친 나는 슬쩍 미소를 지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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