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화
지태훈의 거침없는 행보로 인해 곤란해진 사람들이 있었다.
바로 구단 프런트였다.
직원 휴게실에서 두 남자가 심각하게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김광수 실장은 수원으로 간다는 이야기가 있더라.”
“네? 정말요?”
“어. 각 팀에 장급 인사들은 현 대표 이사 체제에 불만이 큰 모양이야. 사실 허재우, 그 양반 라인 사람들이지만 말이야.”
“대부분이 허 단장님 라인 아니었어요? 만약 다 나가면 구단 망하는 거 아니에요?”
“그러게 말이다. 부장들이야 경력도 있고 하니 어떻게든 이직한다 해도 우리 같은 말단은 어디를 가겠냐.”
“정말 큰일이네요.”
직원들 분위기는 개판이었다.
지태훈 대표가 구단 체질 개선을 이유로 부임 첫날 허재우 단장을 잘랐다.
문제는 구단 내에 허재우 단장 사람들이 제법 있었다는 점이다.
허재우는 자신을 도우면 훗날 영신 그룹이 운영하는 영신 스포츠 쪽으로 인사이동을 도와주겠다는 명목으로 사람들을 포섭한 상태였다.
이런 상황에서 허재우가 잘려나갔다. 심지어 영신 그룹에서도 손절했다는 이야기가 들려오면서 허재우 라인을 탔던 사람들은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되어버렸다.
위기를 느낀 그들 중, 부장급 인사들은 진지하게 이직을 노리는 이들도 존재했다.
“천 과장님. 그 지태훈 대표 말이에요.”
“왜?”
“스펙이 제법 좋던데요? 하도 재벌가 망나니라고 해서 뭣도 없는 놈인 줄 알았는데, 전혀 아니던데요?”
“그래?”
“예. 천 과장님은 모르셨어요?”
“내가 거기까지 신경 쓸 겨를이 있었겠냐. 현장 업무만 돌아도 하루가 다 가는데.”
“하긴, 그렇죠.”
“그래서 신 대리, 그 대표님은 어디가 어떻게 잘나셨는데?”
“서연대학교 정치외교학과 나왔더라고요. 당시 수석까지 했다는 이야기도 있어요. 그랬다가 불미스러운 일로 그만두고 나왔다는 이야기도 있고요.”
“정말이야?”
천지원 마케팅과장은 신진호 대리의 말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서연대학교는 명실상부 국내 서열 1위에 해당되는 최고의 대학교다.
전국에서 날고 긴다는 이들만 가는 곳이다.
아무리 지태훈이 대기업 회장의 아들이라고 해도 막 들어갈 수 없는 곳이다.
심지어 그 서연대학교에 있는 정치외교학과는 TOP3 안에 들어갈 정도로 급이 높은 과였다.
지태훈이 그런 곳을 나왔다고 하자 놀랄 수밖에 없었다.
“예. 사실 지나가다가 복도에서 부장님들이 말씀하시는 이야기를 들었거든요.”
“그렇단 말이지.”
“학업 성적이 상당히 좋았데요. 그리고 성격도 처음부터 망나니는 아니었다고 하더라고요.”
“흐음. 무언가 계기가 있었던 건가?”
“아무래도 그런 것 같아요. 그게 뭔지는 잘 모르겠지만.”
“신 대리. 자네가 그 이유를 알아보면 어떨까?”
“예? 제가요?”
“어. 뭔가 촉이 온다. 잘하면 너나 나나 슬슬 결정을 내려야 할 순간이 오고 있다는 건 알고 있지?”
“…….”
“어쩌면 이 상황이 우리에게 기회가 될 수도 있어.”
“그럴까요?”
“어. 나 믿어봐. 신 대리, 지금 누가 자네를 챙겨주겠어?”
“그건…….”
신진호 대리는 고민하다가 결국 승낙할 수밖에 없었다.
“네. 한 번 알아볼게요.”
“그래. 좋은 생각이야.”
떨떠름해하는 신진호 대리와 달리 천지원 과장의 얼굴에는 미소가 그려졌다.
그리고 그런 두 남자의 이야기를 벽 뒤에서 조용히 듣고 있던 인물이 있었다.
* * *
“도련님. 직원들의 불만이 큰 모양입니다.”
“무슨 불만?”
“대표이사에 대한 불만이요. 특히 허재우 단장 라인 쪽 사람들은 대거 이직을 준비하는 모양이에요.”
“이직을 준비해? 여기가 가망 없다고 느껴진 건가?”
“아무래도 그런 것 같습니다.”
김 비서의 보고를 들은 나는 씩 웃었다.
“잘됐네. 어차피 도려낼 부분들인데, 알아서 나가주면 내 입장에서 고맙지.”
“…….”
나가지 않더라도 허재우 단장 쪽 인사들은 모조리 다 쳐낼 생각이었다.
차라리 알아서 나가주는 게 도와주는 길이다.
“도련님.”
“음?”
“모든 직원들이 도련님의 적이 될 생각을 갖고 있는 건 아닌 모양입니다.”
“그게 무슨 말이야?”
“마케팅 팀에 있는 천지원 과장하고 신진호 대리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
“두 사람이 도련님에 대해 제법 흥미가 있는 눈치더군요. 저희 쪽에서 포섭할 인물로 보입니다.”
그 말에 나는 과거의 기억을 떠올려보았다.
천지원 마케팅팀 과장.
회귀 전 기억에 따르면, 그저 평범한 직원이었다.
주어진 일 열심히 하고, 딱히 정치적이지 않았던 인물.
회귀 전에 내가 대표 이사를 하는 동안에 그저 상사와 부하직원 관계 정도에 불과했다.
신진호 대리는 아예 기억조차 없다.
그런 두 사람이 나에 대해 흥미 있어한다는 이야기를 들으니, 나도 흥미가 생겼다.
“그거 재미있네. 그럼 김 비서, 그 두 사람 조만간에 한번 보도록 하자고.”
“알겠습니다.”
“적당한 시기에 부르면 오게끔 만들어줘.”
“네.”
“김 비서. 그건 그렇고 기자들하고 만나는 건 어떻게 됐어?”
“저희와 접촉을 원하는 이들이 있긴 합니다만, 대부분 중소 언론사 기자들이었습니다.”
“지역 신문사들은?”
“허재우 측에서 손을 써놨는지, 저희에게 상당히 비협조적입니다.”
“그렇단 말이지.”
지금은 솎아내는 기간이다.
우리에게 아군이 될 자와 적군이 될 자들을 구분한 뒤, 처리하면 된다.
“우선 우리 팀이 될 기자들부터 만나보자고.”
* * *
킨택스 근처에 위치한 고급 일식집에서 나는 기자를 만났다.
“안녕하십니까, 대표님. ‘고양 스포츠’ 기자 이광진이라고 합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지태훈 대표입니다.”
이광진 기자는 1인 언론사를 운영하는 대표이자 기자였다.
올해 40세인 그는 평범한 기자들과 달리 단정한 양복 차림으로 등장했다.
머리는 적당히 왁스를 발라 넘겨 깔끔한 인상을 주었다.
‘세련된 느낌이네.’
회귀 전에는 알지도 못했던 인물이다.
그때만 해도 나는 허재우 단장의 손에 놀아난 상태다 보니, 죄다 그쪽 관련 인물들만 만났었다.
“회사가 화정역 근처인 걸로 아는데, 맞습니까?”
“예. 맞습니다.”
“개업하신 지는 얼마나 되셨습니까?”
“작년 6월부터 시작했으니, 이제 딱 1년 되네요.”
“신생이군요. 신생이면 이래저래 바쁘겠네요. 돈도 좀 많이 필요할 테고요. 그죠?”
“하하, 네.”
나는 준비한 술을 손에 쥐고 술을 따라주었다.
이광진은 공손한 자세로 술을 받았다.
술잔을 채운 다음, 자연스럽게 나는 이광진에게 술을 받았다.
술잔이 가득 채워진 상태에서 내가 빙긋 웃으며 말했다.
“한잔하시죠.”
“네.”
짠.
가볍게 잔이 부딪치고 우리는 고개를 돌려 술을 마셨다.
순식간에 비워진 술잔을 조심스럽게 테이블에 내려놓았다.
그러고 나서 이광진이 먼저 말을 꺼냈다.
“이렇게 저를 불러주셔서 감사합니다.”
“제가 더 감사하죠.”
이광진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러더니 놀랍다는 듯 말했다.
“대표님. 이런 말을 해도 되나 모르겠지만…… 대표님을 둘러싼 소문이 많습니다.”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이렇게 보니까 그 소문들이 죄다 거짓처럼 느껴지는군요.”
그 말에 나는 고개를 저었다.
“저, 망나니 맞습니다.”
“……예?”
“앞으로도 망나니일 거고요. 그러니 그 소문들은 모두 팩트입니다.”
“…….”
이광진의 얼굴에서 황당함이 잔뜩 드러났다.
그러겠지.
보통 같으면 고맙다고 넘어가는 경우가 많으니까.
하지만 나는 ‘망나니’라는 이미지를 적극적으로 이용할 계획이다.
그래서 굳이 내가 망나니라는 것을 부정할 필요가 없다.
“아, 뭐, 예. 대표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신다면, 그렇다고 해야겠죠?”
“예. 그렇습니다.”
“으, 으음.”
잠깐이지만 침묵의 시간이 흘렀다. 짧은 침묵 끝에 이번에는 내가 말문을 열었다.
“이광진 대표님이라고 부르면 될까요?”
“아, 넵. 편하신 대로 불러주십시오. 기자가 더 좋긴 하지만요.”
“그럼 이 기자님이라고 부르죠.”
“네.”
“이 기자님.”
나는 슬슬 본론을 꺼낼 때가 왔다고 느꼈다.
“제가 오늘 이 기자님을 부른 이유는 단순합니다.”
나는 젓가락으로 회를 집은 다음, 이광진의 앞 접시에 내려놓으며 말을 이었다.
“앞으로 우리가 자주 보게 될 사이가 될지 안 될지, 그걸 확인하고 싶어서 부른 겁니다.”
“…….”
내 말에 이광진의 눈이 굴려지는 모습이 보였다.
어쨌든 그도 기자다.
머릿속에서 어떤 계산을 하고 있을 것이다.
나는 그런 그를 향해 앞 접시에 놓인 회를 가리키며 말했다.
“비싼 도미 회인데, 맛을 보신 다음에 대답해주시면 됩니다. 어서, 맛보세요.”
“네? 아, 네.”
이광진은 얼떨결에 도미 회를 먹었다.
“맛있네요.”
“그렇죠?”
진심으로 맛있어하는 그를 향해 웃으면서 한마디 했다.
“앞으로 이것보다 더 맛있는 일들이 많이 벌어질 겁니다.”
“……!”
“어떻습니까? 이거보다 맛있는 것들을 먹을 준비가 되어 있으십니까?”
그 말에 이광진이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그, 제게 이런 기회를 주시는 이유를 알고 싶습니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받는다고들 하죠? 그것과 같은 이유라고 보시면 됩니다.”
“……그런가요.”
“그리고 팔은 안으로 굽는다고 하죠? 이왕이면 지역 사회에 함께 하는 이들끼리 사이좋게 어울리는 게 좋지 않겠습니까?”
“대표님 말씀이 맞습니다. 서로 함께해야죠!”
나와 이광진은 서로를 향해 환한 표정을 드러냈다. 하지만 그 표정 안에는 드러나지 않은 것들이 많았다.
“저와 함께하면 정말 많은 것들이 떨어질 겁니다. 얼마만큼 챙겨갈지는 우리 이 기자님의 노력에 달렸고요.”
1인 언론사 대표에게 주어진 선택지는 그리 크지 않다.
그렇기에 이광진의 고민은 길지 않았다.
“앞으로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대표님.”
“저야말로 잘 부탁드리죠.”
* * *
김유리는 새삼 달라진 도련님의 모습에 놀라고 있었다.
“뭘까? 도대체 뭐가 도련님을 그렇게 바꿔 놓은 걸까?”
지태훈이 회귀자라는 것을 알지 못하는 김유리 입장에서, 짧은 시간 동안 많은 부분이 달라진 지태훈의 모습이 적응되지 않았다.
지이이잉.
“응?”
그때, 갑자기 스마트폰이 울렸다.
화면을 보자 ‘회장님’이라고 큼지막하게 적혀 있었다.
‘이 시간에 회장님께서?’
늦은 시간에 걸려온 회장님의 전화에 놀란 김유리가 서둘러 전화를 받았다.
“네, 회장님.”
-그래, 김 비서. 늦은 시간에 전화해서 미안하네.
“괜찮습니다.”
-음. 다른 게 아니라, 내 물어볼 것들이 있어서 그런데 혹시 지금 볼 수 있나?
“지금요?”
-그래. 태훈이에게는 말하지 말고 오게.
마침 오늘 해야 할 업무는 끝난 상태였다.
퇴근을 앞두고 있던 그녀는 회장의 호출이 달갑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거부할 수도 없었다.
“지금 바로 가겠습니다.”
-그래. 기다리고 있겠네.
* * *
퇴근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뜨거운 물로 샤워를 하고 난 뒤 냉장고에서 양주를 꺼냈다.
비싼 크리스탈 글라스에 노란 양주를 가득 채웠다.
그리고 손에 글라스를 쥐고 천천히 창가로 걸어갔다.
대화동 킨택스에 위치한 고급 주상복합 아파트.
그곳 46층에서 내가 살고 있었다.
창문 넘어 보이는 도시의 풍경이 한눈에 들어왔다.
그것들을 천천히 감상하며 글라스에 담긴 술을 한 모금 마셨다.
“쿨럭! 쿨럭!”
크으, 개 뜨겁네!
아니, 그것보다 맛이 왜 이래?
괜히 어설프게 X폼 잡고 양주 마셨다가 재채기만 오지게 했다.
한참 재채기를 하다가 간신히 진정됐다.
“끙. 계획대로 기자들은 모두 포섭했고. 이제 남은 일들은…….”
나는 회귀 전 교도소 생활을 하면서 많은 생각들을 정리할 수 있었다.
그래서 그럴까?
회귀 후, 나의 엄청난 행동력에 큰 힘이 되어주고 있었다.
“슬슬 연락 올 때가 됐는데 말이야.”
나는 누군가의 연락을 기다리고 있었다.
생각보다 조금 지체되기는 했지만 그래도 연락은 올 것이라 믿었다.
지이잉.
그리고 마침, 기다리던 연락이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