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화
곽찬구.
고양 유나이티드의 오랜 라이벌 관계로, ‘북부 더비’를 만든 파주 유나이티드에서 선수부터 감독까지 한 인물이다.
쉽게 말해 파주 유나이티드의 레전드라고 할 수 있다.
파주에서 태어나서 지금까지 파주에서 모든 일생을 소화했던 그는, 이곳에만큼은 대통령 부럽지 않은 인지도를 갖고 있다.
오죽하면 ‘곽찬구하면 파주!’라는 말이 있겠는가.
그런 곽찬구였지만 최근 무직 생활을 하며 한가로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아이고! 곽 감독님! 오늘도 나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제가 더 고맙죠. 그쪽에서 안 불러주셨으면 아마 저는 몸에서 가시가 돋았을 겁니다.”
“하하하!”
매일 새벽에 동네 조기 축구팀에 나가서 몸을 푸는 곽찬구.
그는 이 팀, 저 팀 뛰면서 ‘용병’으로서 활약했다.
“은퇴한 지 꽤 됐는데도 실력은 여전하시네요. 그냥 감독 말고 다시 선수로 뛰시죠?”
“아이쿠! 농담도 그런 농담 마세요. 실력 있는 후배들이 얼마나 많은데요!”
“에이, 실력은 개뿔이. 요즘 파주에 뛰는 얼라들 보면 예전에 곽 감독님 같은 선수는 안 보여요.”
“하하. 그래도 한때 제가 데리고 있던 애들입니다. 다 좋은 애들이에요.”
“아, 그렇네요. 제가 실수했네요. 그래도 곽 감독님처럼 헌신하면서 뛰는 선수는 없다고 생각해요.”
조기축구팀 아저씨들과 두런두런 대화를 나누던 곽찬구에게 누군가 다가오며 말을 걸었다.
“곽 감독님! 손님이 찾아오셨는데요?”
“음? 손님이요?”
“예.”
곽찬구는 어리둥절하며 자신을 찾아온 손님이 누군지 찾았다.
그리고 곧 자신을 찾은 인물을 보고 인상을 찌푸렸다.
“당신은…….”
“안녕하십니까. 저는 고양 유나이티드 신임 대표인 지태훈이라고 합니다.”
“그쪽하고 볼일 없소. 그만 가시오.”
곽찬구는 단호하게 돌아섰다.
그에게 있어 지태훈은 라이벌 팀 구단주였다.
뼛속까지 파주 유나이티드 DNA로 가득 찬 곽찬구에게 있어 선수 시절부터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좋아하지 않았던 팀이 바로 고양 유나이티드였다.
지태훈도 그걸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의 이목을 확 끌 만한 말을 꺼냈다.
“파주 유나이티드에서 경질되신 이유를 알고 있습니다.”
“……뭐요?”
“대외적으로는 성적 부진으로 경질. 그런데 실상은 달랐죠.”
“무슨 말을 하려는 거요. 쓸데없는 말을 할 생각이라면, 나는 그쪽하고 이야기할 건 없소.”
“그저 대화를 나누고 싶어서 왔을 뿐입니다.”
곽찬구는 망설임 없이 자리를 떠나려고 했다.
서둘러 잡아야 되는 상황이건만, 지태훈은 오히려 여유로웠다.
그는 떠나려는 곽찬구의 뒷모습을 향해 한 마디 툭 던졌다.
“아무리 라이벌 팀이라고 해도, 개인적으로 파주 유나이티드를 존경하고 있었습니다. 솔직히 말해서 그쪽의 유소년 시스템과 유럽 명문 클럽 부럽지 않은 구단 내 클럽하우스 인프라 그리고 우수한 성적까지.”
“…….”
떠나려던 곽찬구가 멈칫했다.
그걸 본 지태훈의 입가에 살짝 미소가 지어졌다.
“그런 라이벌 팀에서 믿을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 사실 지금도 믿겨지지가 않고요.”
“……그래서 무슨 말을 하려는 거요?”
처음과 달리 경계가 느슨해진 곽찬구의 모습을 본 지태훈이 흐뭇한 표정을 드러내며 말했다.
“음. 여기서 이렇게 얘기하지 말고 다른 곳에서 이야기를 더 해보는 건 어떨까요?”
* * *
나는 곽찬구와 함께 근처 카페로 장소를 옮겼다.
이른 시간이다 보니 카페에는 손님이 없었다.
카페 사장으로 보이는 중년 남자가 곽찬구를 보고 화들짝 놀란 일은 덤이다.
“지태훈 대표…… 라고 했던가요?”
“네. 그렇습니다.”
“그럼 지 대표라고 부르겠습니다.”
“네. 편하실 대로.”
곽찬구는 뼛속까지 파주 유나이티드 사람이다. 앞으로 바뀌긴 할 거지만, 현재는 그렇다.
그의 기분을 맞춰주려면, 파주 유나이티드에 초점을 맞춰 대화를 진행해야 한다.
그리고 그런 내 생각은 정답이었다.
곽찬구는 처음보다 부드러워진 모습이다.
그래도 일말의 경계심 정도는 남아 있었다.
“그쪽 얘기는 많이 들었습니다. 재벌가 망나니라던데?”
커피를 한 모금 마시려다가 그대로 뱉어낼 뻔했다.
나는 침착하게 커피를 내려놓으며 대답했다.
“그렇습니다만?”
“지금 스스로 망나니라는 것을 인정하는 겁니까?”
“그렇습니다만?”
“…….”
“그나저나 감독님. 제가 망나니라는 사실이 지금 중요한 얘기는 아닌 것 같습니다.”
“크흠. 그렇지 참.”
“지금 중요한 건 감독님입니다.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파주 유나이티드에서 벌어진 그 사건이 진실입니까?”
“…….”
곽찬구는 쉽게 대답하지 못했다.
하지만 망설이는 그의 태도로 보아, 진실이 맞는 것 같다.
아니, 진실이 맞다.
왜냐하면, 회귀 전에 곽찬구가 서울 라이언스 지휘봉을 잡고 얼마 안 돼서 이 사건의 진실이 터져 나왔었기 때문이다.
회귀 전에 알고 있던 기억을 갖고 있는 내가 그 이야기를 꺼낸 것이다.
“감독님께서 경질되신 이유가 이재신 단장 때문이죠?”
“그건…….”
“알고 있습니다. 감독님 잘못 아니라는 거요. 오히려 감독님은 거절했다고 들었습니다.”
파주 유나이티드 단장 이재신은 지인의 아들을 선수로 뽑는 과정에서 부정 청탁을 저질렀다.
상당한 액수를 제시하며, 당시 감독이었던 곽찬구에게 해당 선수를 선발해 달라고 청탁했던 것이다.
하지만 대쪽 같은 성격을 가진 곽찬구가 이런 일을 두고 가만히 있을 리가 없었다.
그는 단호하게 거절했고 오히려 이런 행위를 벌이는 이재신 단장을 비난했다.
결국 그 일로 사이가 틀어지게 된 두 사람은 이후 구단 내 살벌한 분위기를 조성했다.
그러다가 이재신 단장이 자신이 가진 권력을 이용해 곽찬구를 ‘성적 부진’이라는 이유로 경질해버렸다.
실제로 그때 곽찬구 감독의 파주 유나이티드는 1부 리그 하위스플릿으로 떨어진 상태였다.
자칫 강등 위기까지 겪을 수 있었던 상황이다 보니, 팬들은 안타까워하면서도 큰 반발 없이 받아들였다.
이후 청탁 선수는 이재신의 손에 의해 구단 선수로 발탁되었다.
그 누구도 경질 사유에 ‘부정 청탁’ 사건이 연계되었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이 사건에는 구단 대표이사를 비롯해 주요 인사들이 연계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런 일이 한 번만 벌어진 것도 아니다.
이재신이 단장으로 있는 동안 ‘선수 부정 청탁’과 ‘메인 스폰서 알선 비리’ 등 다양한 사건들이 동시다발적으로 벌어졌었다.
어떻게 보면 우리와 별 차이 없는 사건들이 라이벌 팀에서도 벌어졌던 것이다.
“사실 저희 쪽에서도 최근 비슷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정말입니까?”
“예. 허 단장이 내쳐진 것도 비슷한 사유가 있었기 때문이었죠.”
“허어!”
내 말에 곽찬구도 놀라워했다.
“이번 일을 통해서 저희는 구단 체질 개선에 나서고 있는 중입니다.”
“그렇군요.”
“그래서 말인데, 저는 감독님에게 한 가지 제안을 드리고 싶습니다.”
“음?”
“저희와 함께해 주시겠습니까?”
“……!”
곽찬구의 두 눈이 동그랗게 떠졌다.
어찌나 놀랐는지 입까지 떡 벌린 채로.
* * *
“거 봐요, 도련님. 안 될 거라고 했잖아요.”
“한 번에 되는 게 이상한 일 아닐까?”
“뺨 안 맞으신 게 다행이에요.”
“김 비서, 말이 너무 심하네.”
“팩트인데요?”
곽찬구 감독과 만나고 돌아오는 길에 나는 김 비서가 운전하는 차를 타고 있었다.
우리가 탄 차는 자유로를 힘차게 달렸다.
빠르게 뒤로 사라져 가는 풍경들을 눈에 담으며 말문을 열었다.
“김 비서.”
“네, 도련님.”
“어떻게 생각해?”
“뭐를요?”
“곽찬구 감독하고 임태무 감독.”
“으음.”
김 비서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도련님께서 감독 교체를 해야 한다는 일에는 동의해요. 임태무 감독은 실력이 좋은 감독이라 할 수 없으니까요.”
“…….”
“하지만 그 대타로 곽찬구 감독을 영입한다는 발상은 아무리 생각해 봐도 아닌 것 같아요. 분명 여기저기서 반발이 생길 거예요.”
“그렇겠지.”
“여전히 저는 도련님의 생각을 이해하지 못하겠어요. 아주 짧은 시간 동안 너무 많은 일들을 벌이셨는데, 제가 생각했던 것과는 너무 많이 달라요.”
“그래? 그럼 김 비서가 생각했던 부분은 뭔데?”
“그건…… 이제라도 정신 차리신 도련님이 구단을 잘 이끈 다음, 회장님의 인정을 받아서 그룹 총수가 되는 과정을 생각했었죠.”
“그래? 그럼 맞게 행동하고 있네.”
“예?”
황당해하는 김 비서에게 나는 웃으며 말했다.
“김 비서, 잘 들어봐. 내가 왜 곽찬구 감독을 영입하려고 하냐면 말이야.”
“…….”
“바로 ‘어그로’야.”
“예? 어그로요?”
운전하던 김 비서가 화들짝 놀라며 내 쪽으로 얼굴을 돌렸다.
그 모습에 내가 깜짝 놀라며 외쳤다.
“김 비서 앞에 봐! 앞!”
“앗!”
“운전 중에 딴 곳 보면 쓰나.”
“……그건 도련님께서 어이없는 말을 꺼내서 그렇잖아요.”
“지금 상사 핑계 대는 건가?”
“…….”
“어쨌든,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어그로야. 남들보다 최대한 많은 관심을 받는 거지.”
비록 망나니였긴 했지만 회귀 이전에 구단주 노릇을 하면서 배웠던 것들이 어디로 다 사라진 것은 아니다.
큰형과의 대결에서 이기려면, 나도 큰형 못지않은 대외적인 이미지가 필요하다.
그런 이미지를 단기간에 형성하려면 강력한 어그로가 필요했다.
“곽찬구 감독의 영입은 상당한 어그로로 작용할 거야. 세상 누가 라이벌 팀 감독을 영입할 생각을 하겠어? 아마 K리그에서도 전무후무한 일일걸?”
과거 라이벌 관계에 있던 팀에서 선수 간의 이동은 여러 차례 존재했었다.
하지만 감독 이동은 드문 편이다.
이게 어떤 느낌인지 파악이 되지 않는다면, 이렇게 예시를 들어보겠다.
해외로 치면 리버풀의 전설 제라드가 에버튼이나 맨유 감독이 되는 것이다.
아니면 리오넬 메시가 레알 마드리드 감독을 한다고 생각해보라.
아마 팬들은 뒷목 잡고 쓰러질 것이다.
파주 유나이티드의 곽찬구 감독은 K리그 팬들에게 있어서 그만한 가치가 있는 인물이다.
그런 인물이 오랜 라이벌인 고양 유나이티드로 이적한다?
그럼 엄청난 어그로를 끌게 될 것이다.
“물론 이건 잠깐 동안 시끄러울 단발성 이벤트에 불과하지.”
“도련님 설마…….”
“어그로를 끌 만한 이벤트 몇 개를 더 준비하고 있어. 그게 모두 성공하면 고양 유나이티드는 성공한다.”
“…….”
어쩐지 김 비서가 내쉬는 한숨은 깊어져만 갔다.
* * *
지태훈이 대표이사로 부임한 이후, 고양 유나이티드와 관련된 기사가 계속 나오고 있었다.
문제는 그 기사가 썩 좋은 내용을 담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고성 오가는 고양 유나이티드. 새로운 대표이사 부임 이후 암초 생겼나?』
『지태훈 대표 이사를 둘러싼 부정적인 시선들. 영신 그룹 “구단 내 체질 개선을 위한 과정일 뿐.”』
『아산 유나이티드 경기 이후 라커룸에서 고성 오간 것으로 확인. 원인은 지태훈 대표?』
“햐, 이거 뭐, 화끈하구만.”
예상은 했던 일이다.
하지만 막상 겪고 보니 기분이 썩 좋지는 않다.
“김 비서. 이거 누가 벌인 짓일까? 임태무? 아니면 허재우? 아니면…….”
큰형일까?
누가 됐든 상관없다.
언젠가는 다 조질 인물들이니까.
“도련님.”
“음?”
“조사를 해보니까 허재우 단장이 친분이 있는 스포츠 기자들하고 접촉을 한 모양입니다. 임태무 감독도 거들었던 것 같고요.”
내가 따로 시키지도 않은 뒷조사를 해온 김 비서.
나는 놀란 눈으로 그녀를 쳐다보며 말했다.
“언제 그런 걸 다 조사했어?”
“……그래도 저는 좋든 싫든 도련님 사람이니까요.”
“그런 표정으로 말하니까 내가 되게 나쁜 사람 같은데?”
“……노코멘트 하겠습니다.”
“그래.”
김 비서의 도움으로 누가 이랬는지 확인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나도 가만히 있을 수는 없겠지.
“우리 쪽에서 포섭할 수 있는 기자들이 있나?”
“찾아봐야죠.”
“그래?”
“예. 언론 쪽에서 저희를 좋게 보는 사람들이 없습니다. 오히려 도련님께서 얘기하는 ‘어그로’가 잔뜩 끌리는 상황이다 보니, 이 상황을 좋아하는 사람들만 있죠.”
“역시 기레기답다.”
주워 먹을 수 있는 먹잇감이 있다면 비둘기처럼 모여드는 쓰레기들.
하지만 그것이 그들의 생태계인데 어떻게 하랴.
무조건 나쁘다고 비난만 할 수 있는 건 아니다.
“김 비서. 가서 우리 쪽으로 포섭할 수 있는 기자들 있으면 싹 다 데려와.”
“어쩌시게요?”
“어쩌기는? 우리도 언론플레이로 맞서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