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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집 막내 구단주-5화 (5/272)

5화

“도련님. 이렇게 도발해도 괜찮은 건가요?”

“왜? 불안해?”

“솔직히 좀 불안합니다. 아무리 봐도 이건 좀…… 뒷감당 어떻게 하시려고요.”

“다 계획이 있어서 벌인 일이야.”

“그 계획, 저도 좀 알려주실 수 없나요? 분명 저한테 도와달라고 하셨으면서 왜 저도 모르는 일들이 마구 벌어지는 거죠?”

걱정으로 가득한 김 비서의 말에 나는 대수롭지 않게 반응해줬다.

그런 내 반응이 김 비서의 심기를 거스르는 모양이었다.

한참을 잔소리하던 김 비서도 지쳐서 더 이상 이야기하지 않았다.

“얘기 다 끝났으면, 이제 내 얘기도 좀 해도 될까?”

“무슨 얘기하실 건데요?”

“일이지.”

“일이요? 지금 퇴근 시간인데…….”

“알아. 오늘 하든 내일 하든 하기만 하면 돼.”

“무슨 일이죠?”

나는 김 비서에게 사람 좀 만나달라고 얘기했다.

“사람을 만나달라고요?”

“응. 곽찬구라고 알아?”

“알아요. 파주FC에서 선수부터 감독까지 뛰었던 사람이잖아요.”

“오, 공부 좀 했나봐?”

“그래도 도련님의 비서니까요.”

역시 김 비서답다.

영신 그룹 내에서도 여기저기서 탐을 낼 정도로 능력 있는 김 비서.

준비 또한 철저하다.

이런 김 비서가 곁에 있어서 마음이 조금 놓인다.

“그런데 그 사람은 왜요?”

“그 사람 좀 만나려고.”

“……왜요?”

“왜긴. 우리 팀에 데려오려고 그러지.”

“아, 데려오려고…… 네!? 뭐라고요!?”

“뭐 그렇게 놀라.”

대수롭지 않은 내 태도에 김 비서가 벌컥 소리를 높였다.

“안 놀랄 수가 없잖아요!, 이 사람은 라이벌 팀 감독이었잖아요!”

“아! 김 비서 귀 아파!”

“…….”

“뭐, 어때. 됐고, 가서 이 사람 요즘 뭐하고 지내는지 알아봐줘.”

“정말이지…….”

“싫어?”

“후우. 네, 분부대로 하죠.”

어쩔 수 없다는 듯 수락하는 그녀의 모습을 보고 나는 웃음이 나오려는 것을 억지로 참았다.

싫어도 어쩌나.

그럼 본인이 대표이사 하시던가!

* * *

“하하하!”

회장실에서 보고를 받은 지종윤 회장은 호탕하게 웃었다.

“취임하자마자 허 단장을 자르고, 다음 날에는 훈련장에 가서 선수단 전체를 도발했다고?”

“그렇습니다.”

“하하하! 역시 누구 아들인지 배짱 한번 두둑하구만!”

그런 회장의 반응에 박준후 비서팀장은 우려를 나타냈다.

“회장님. 걱정되지 않으십니까?”

“걱정을? 내가?”

“허 단장 일이야 그렇다 쳐도……그 외에 다른 일들에 대한 구단의 여론이 좋지 않습니다. 혁신을 추구하기에는 너무 지나칠 정도로 과격합니다. 이건 뭐랄까…….”

“망나니답게 일하는 거지. 안 그런가, 박 팀장?”

“…….”

회장이 직접 자기 아들을 향해 망나니라고 칭하자 박 팀장은 저도 모르게 입을 다물었다.

“아무리 내 아들이라도 망나니가 맞긴 하지.”

“저, 회장님 아무리 그래도…….”

“그런데 말이야. 망나니라고 해도 능력이 있다면 얘기가 달라지지.”

“예?”

“내가 눈이 틀리지 않았어. 조만간 그 녀석이 큰일 하나 해낼게야.”

오랜 기간 회장 곁에서 활동해오던 박 팀장은 회장의 분신처럼 활동해오던 인물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그라고 해도 이번만큼은 이해가 되질 않았다.

망나니 지태훈.

지종윤 회장의 막내아들이란 타이틀이 없었다면 진즉에 축출돼도 이상하지 않았다.

박준후 비서팀장도 지태훈에 대해 부정적인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오죽하면 지종윤 회장이 고양 유나이티드를 대놓고 버리는 건가 생각하고 있으니까.

“이사회를 비롯해서 내가 고양 유나이티드를 버린다고들 생각하고 있지. 하지만 그건 큰 오산이야.”

지종윤 회장은 마치 박 팀장의 생각을 꿰뚫어 보기라도 한 것처럼 얘기했다.

회장의 눈동자는 서늘했다.

서늘한 눈빛에 박 팀장은 긴장했다.

“나는 녀석이 가진 능력을 믿었네. 그러다가 드디어 그 녀석의 능력이 터질 때가 온 게지.”

그렇게 말하는 회장은 차가운 미소를 드러냈다.

“그러니까 박 팀장도 지켜보라고.”

“……그러죠.”

* * *

와아아아!

고양 유나이티드의 홈구장, 고양 종합 운동장에는 팬들의 함성으로 가득 찼다.

팡!

고양 유나이티드의 공격수 황철호가 힘차게 때린 슈팅이 허무하게 골대 뒤 관중석 쪽으로 날아갔다.

그 모습을 지켜본 팬들의 입에서 아쉬운 탄성이 쏟아져 나왔다.

“역시 개못하네.”

VIP좌석에서 빨대가 꽂힌 콜라를 쪽쪽 마시며 지켜보고 있던 내가 한 마디 툭 던졌다.

그러자 함께 있던 구단 관계자들의 표정이 좋지 못했다.

“대표님. 그렇게 얘기하시는 건 좀…….”

“개못한다는 걸 개못한다고 얘기하지, 그럼 뭐라고 얘기합니까?”

“그건…….”

“아, 그럼 X나 못한다고 말해야 하나?”

구단 내 홍보 실장을 맡고 있는 김광수의 표정이 굳어졌다.

그런 그를 보니 나는 조금 더 괴롭혀주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전반 30분. 상대는 우리보다 1순위 높은 아산 유나이티드. 그런 팀을 상대로 30분을 몰아치면서 무려 7번의 기회를 만들었지만 결과는 여전히 무득점.”

“그, 그래도 축구를 하다보면 이럴 수도 있고 저럴 수도 있는 법 아닙니까?”

“그렇죠. 그래서 우리가 최하위인 거죠. 아! 충주 덕분에 꼴찌는 아니구나. 이거, 충주한테 고마워해야 하나?”

“…….”

“상위권 팀들은 기회를 1번이라도 놓치면 온갖 질타가 이어집니다. 그런데 우리는 뭡니까?”

“…….”

“뭐? 이럴 수도 있고, 저럴 수도 있어?”

“…….”

“이보세요. 홍보 실장님.”

김광수는 이제 울상을 짓고 있었다. 팩트 폭격 앞에 그는 속절없이 무너지고 있는 것이다.

그런 그에게 결정타를 날렸다.

“어디 가서 그런 소리할 거면, 우리 팀 홍보 실장이라고 말하지 마세요. 아시겠습니까?”

“…….”

그렇게 김광수 홍보 실장은 완벽하게 무너져 내렸다.

그런 그를 뒤로 한 채 나는 계속 경기를 지켜보고 있었다.

경기는 예상대로 누가 누가 더 못 하나의 대결로 향하고 있었다.

내가 신랄하게 우리 팀을 까긴 했어도, 상대도 우리만큼 못했다.

팡!

“아!”

상대 팀에 있는 이름도 모르는 선수가 냅다 갈긴 슈팅이 골대 뒤로 로켓처럼 날아갔다.

“진짜 도긴개긴이다.”

회귀 전에도 느꼈던 것을, 회귀 후에도 똑같다.

K리그 경기는 극과 극이다.

K리그의 1부 리그 상위권 팀들의 경기력은 유럽 빅리그 못지않을 정도로 재미있고 박진감 넘친다.

하지만 하위권 팀들의 경기력 수준은 완전히 다르다.

선수들이 열심히 그라운드를 누비지만, 허무할 정도로 기회를 만들지 못하거나 날려버리기 일쑤다.

K리그에 대해 반감을 갖는 사람들에게는 이런 이유도 한몫한다.

‘이래놓고 무작정 K리그를 봐달라고 할 수 없지.’

현실이다.

냉정한 현실을 인정해야 한다.

하지만 현실을 인정했다고 해서 거기서 끝내면 안 된다.

발전을 하려는 노력을 보여야 한다.

‘이제는 달라질 거야.’

회귀 전에는 구단 대표이사였어도 관심이 없었다. 그저 대표라는 직함에 취해 떨어지는 콩고물이나 주워 먹으며 지냈다.

그러나 이제부터는 다르다.

내 손으로 뒤바뀔 것이다.

* * *

경기는 결국 0:0 무승부로 끝났다.

같은 무승부라도 난타전 무승부는 차라리 낫다. 보는 재미라도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무승부는 재미도, 감동도 느낄 수 없다.

아니, 경기력이라도 훌륭했으면 모를까, 그렇지도 않으니까 문제다.

경기가 끝난 후, 나는 김 비서와 함께 선수단이 있는 라커룸으로 향했다.

라커룸 분위기는 좋지 않았다.

“경기 아주 잘 봤습니다.”

나를 본 선수들과 코치들의 표정은 좋지 못했다.

“무슨 일이십니까?”

임태무 감독이 내 앞을 가로막듯 등장했다.

나는 그런 그의 얼굴을 보며 차갑게 미소를 지었다.

“정말 개못하네요.”

“뭐라고요?”

“개 못한다고요.”

“지금 말 다했습니까!?”

임태무 감독이 화를 참지 못하고 내게 언성을 높였다.

잔뜩 벌게진 얼굴로 나를 노려보는 그를 향해 차갑게 얘기했다.

“그럼 처음부터 잘하셨어야죠. 프로는 실력과 돈으로 얘기하는 거 아닙니까?”

“지 대표!”

“내 말이 틀렸습니까? 다들 이걸로 밥 벌어먹고 사는 프로들인 만큼 잘 알아들었을 거라고 생각하는데요?”

“이 새……!”

“나는 당신들에게 돈을 주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당신들은 나에게서 받은 돈만큼 실력을 제공할 의무가 있고요. 그래, 당신.”

나는 손가락으로 한 선수를 가리켰다.

멍하니 서 있던 그 선수는 내 지목을 받고 화들짝 놀랐다.

“황철호 선수. 아까 전·후반 합쳐서 6번의 개인 기회를 얻었는데 모두 날렸더군요.”

“그, 그건…….”

“구단이 당신에게 들이는 비용이 얼만 줄 알아?”

“…….”

“작년에 당신을 타 구단에서 데려오는데 들인 이적료만 3억. 그리고 당신 연봉만 해도 5억. K리그2 평균 연봉이 1억이 안 되는데, 당신 연봉은 엄청나게 높단 말이지.”

“…….”

“그런데 당신이 여기서 보여준 건 뭐였지? 작년 시즌 겨우 9골. 올해는 3골. 어째 작년보다 더 못해.”

“지태훈 대표! 그만하세요! 왜 가만히 있는 선수를……!”

“조용히 하세요, 임 감독님. 황철호 선수는 진즉이 처분되었어야 할 선수였습니다. 그런데도 구단에 남아 있을 수 있었던 이유가 뭐겠습니까?”

나는 씩씩대는 임태무 감독을 차갑게 노려보며 말했다.

“바로 임 감독님, 당신 때문이죠. 정상적인 구단이라면 당신과 황철호 선수는 사이좋게 손 붙잡고 나갔어야 된단 말입니다. 아시겠습니까?”

“…….”

“앞으로 구단 체질 개선을 시작할 겁니다. 아니, 이미 시작했죠. 여러분들 중에서 과연 살아남는 사람이 몇 사람이나 될지 기대해보죠.”

그렇게 말하고 몸을 돌려 나가려는데, 임태무 감독이 발악하듯 외쳤다.

“건방진 놈! 네가 축구에 대해서 뭘 알아!”

“…….”

“어린 녀석이 아버지 빽으로 낙하산으로 구단 대표가 된 주제에 감히 뭐가 어쩌고 어째?”

선 넘네.

나가려던 나는 걸음을 멈추고 쓱 고개만 돌려 임태무 감독을 쳐다보았다.

“그 얘기는 끝까지 살아남으신 뒤에 하시죠. 그럼 이만.”

라커룸 밖으로 나왔다.

그러고는 천천히 복도를 걷는데 라커룸 안에서 괴성이 들려왔다.

으아아아!

임태무 감독의 괴성 소리가 복도를 울리는 가운데, 천천히 복도를 걸어가던 내 곁으로 김 비서가 다가와 말을 걸었다.

“도련님. 괜찮으세요?”

“어.”

회귀 전, 나는 임태무 감독과 사이가 좋았었다.

장기집권을 꿈꾸는 임태무 감독 입장에서 나 같은 호구 대표가 좋을 수밖에 없었다.

아무것도 모르던 나는 임태무 감독을 아버지처럼 믿고 따랐던 적도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조금 지나고 보니 임태무 감독도 허재우 단장과 한패였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 두 사람의 농간에 의해 나는 억울하게 교도소로 들어가게 됐다.

그랬던 내가 회귀하게 된 이상, 더 이상 두 사람의 농간에 놀아날 일은 없다.

“김 비서. 곽찬구 감독 일은 어떻게 됐어?”

“네, 조사해보니까 현재 파주에서 지내면서 동네 조기 축구팀에서 운동을 하며 지낸다고 해요.”

“그게 끝이야?”

“아뇨. 조기 축구팀 생활은 그저 취미 정도일 뿐이고, 새로운 직장을 구하는 것 같더라고요.”

“그래?”

“예. 곽 감독을 원하는 팀들이 있는데, K리그 내에서 파주FC 외에 다른 팀들로는 이적할 생각이 없다고 하나 봐요.”

“정말 뼛속까지 레전드구만. 그래서 해외에서 불러주는 팀은 있고?”

“중국 갑급 리그에 속한 허난에서 러브콜이 들어온 모양이에요. 하지만 세부 계약 조건이 곽 감독의 마음에 들지 않은 모양이에요.”

“그렇군.”

“어떻게 할까요?”

나는 회귀 전 기억을 떠올려 보았다.

회귀 전 곽 감독은 결국 허난으로 향한다.

하지만 그곳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지 못한다.

곽 감독은 감독으로서 제법 실력을 갖춘 인물이다.

그런 그가 성공하지 못한 이유는 하나다.

성격이 대쪽 같고 한결같기 때문이다.

자신의 소신을 굽히지 않은 그 성격이, 구단 프런트와 매번 트러블을 일으켰다.

결국 그는 허난에서 방출되었다.

이후 다시 K리그로 돌아온 그는 무슨 이유에서인지 친정팀인 파주FC가 아닌 서울 라이언스 감독으로 돌아오게 된다.

그리고 그곳에서 엄청난 성공을 거두게 된다.

그런 곽찬구 감독은 앞으로 내가 추진할 계획에 있어서 반드시 필요한 인물이다.

“내가 직접 곽 감독하고 만나봐야겠어.”

“예?”

“김 비서. 곽 감독에게 연락해. 한 번 만나서 이야기 좀 나눠보자고.”

“넵. 그렇게 진행할게요.”

그렇게 나의 다음 행보는 정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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