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
“지금 뭐라고 하셨습니까?”
화기애애했던 분위기는 한순간에 얼음장처럼 변해버렸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직원들은 숨을 죽이며 지켜보고 있었다.
허재우 단장은 벌겋게 붉어진 얼굴로 씩씩대고 있었다.
그런 그를 향해 나는 새끼손가락으로 귀를 파고는 말했다.
“몇 번을 말합니까. 예? 당신 ‘해고’라고. 알겠어? 오늘부터 짐 빼.”
“이게 지금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입니까!”
갑작스럽게 해고 통보 받았으니 열받기는 하겠지.
하지만 처음부터 내 마음은 정해져 있었다.
눈앞에 있는 허재우부터 먼저 치우기로.
이미 그런 결심을 하고 이곳에 온 상태다.
“왜? 부당해? 그럼 영신그룹에 가서 따지시던가.”
“뭐라고요!?”
“그런데 이를 어쩌나? 이미 영신그룹에서도 우리 단장님의 해고 통보에 동의를 한 상태라서 말이야.”
그렇게 말하면서 오른손을 내밀었다. 그러자 김 비서가 기다렸다는 듯 서류 한 장을 내게 주었다.
서류를 손에 쥐고 뚜벅뚜벅 허재우 앞으로 걸어갔다.
그리고는 가슴팍에 서류를 딱 대며 말했다.
“자, 해고 통지서.”
“이익! 아무리 그룹 망나니라도 네 녀석이 나한테 이렇게 대할 수는 없어!”
해고 통지서를 쥐고 부르르 떠는 허재우가 나에게 악에 받쳐 소리를 질렀다.
그런 그를 싸늘하게 쳐다보던 나는 슥 하고 다가가서 귓가에 속삭이듯 얘기했다.
“조용히 떠날래? 아니면 여기서 더 개망신 당하고 떠날래?”
“뭐?”
“박희태 선수 이적 관련한 비리.”
“……!”
“꽤 많이 해쳐먹었더라. 박희태뿐만 아니고 꽤 많은 선수들 이적시키면서 뒷돈 챙겼더만. 이거 액수만 따지면…….”
“어떻게 그걸…….”
“그룹으로부터 고소 안 당한 걸 다행으로 여겨.”
허재우의 얼굴은 충격으로 잔뜩 일그러져 있었다.
상대의 덜덜 떠는 눈동자를 확인한 나는 눈웃음을 지었다.
“마지막 기회야. 무슨 말인지 알겠지?”
그렇게 말하면서 나는 허재우의 옷깃을 고쳐주었다.
허재우는 아무 행동도 못 하고 가만히 있었다.
그 모습을 본 직원들은 어리둥절해했다.
“뭐지? 왜 단장님이 가만히 계시지?”
“두 사람이 뭐라고 속삭이니까 상황이 끝났어!”
나는 주변이 시끄러워지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주목!”
내 목소리에 시끄러워지려던 직원들이 말을 멈췄다. 나를 바라보고 있는 직원들을 향해 준비해왔던 멘트를 날렸다.
“지금부터 고양 유나이티드의 모든 프런트 직원들은 이번 시즌이 끝날 때까지 고강도 인사 평가 기간을 가질 겁니다.”
“……!”
“성과 없는 직원들은 모두 옷 벗을 각오하세요. 알겠습니까? 사소한 행동 하나하나까지 모두 인사평가 반영될 겁니다. 이상!”
할 말을 끝낸 나는 그대로 자리를 떠났다.
내가 떠난 이후 한동안 직원들의 분위기는 꽁꽁 얼어붙어 녹아내릴 줄 몰랐다.
* * *
“도련님. 이렇게 진행해도 괜찮은 건가요?”
“뭐가?”
“허재우 단장이 비리를 저지른 만큼 내치는 건 동의합니다만, 이런 식으로 내치면 허재우도 가만히 있지 않을 겁니다.”
“알고 있어.”
구단 내 대표이사실에서 나와 단둘이 있게 되자 김 비서는 계속 걱정스러운 반응을 보이고 있었다.
사실 내 행동이 과격하긴 했다.
인정한다.
하지만 나도 아무 생각 없이 이런 짓을 벌이는 건 아니다.
“김 비서. 내 별명이 영신 그룹 망나니라는 걸 알고 있지?”
“잘 알고 있죠.”
“……나는 그걸 최대한 이용해볼 생각이야. 이른바 망나니의 구단 혁신 프로젝트. 어때?”
“예?”
“하여튼, 그런 게 있어. 그래서 말인데 김 비서가 나 대신 해줘야 할 일이 있어.”
황당해하는 김 비서에게 새로운 임무 하나를 던져주었다.
“선수단 미팅 잡아줘. 코칭스태프들부터 말단 선수까지 전부.”
“아, 넵.”
김 비서는 아까 일 때문인지 몰라도 불안한 시선을 떨쳐내지 못하면서도 그 이상 태클을 걸지는 못했다.
어쨌든 대표이사는 나였으니까.
“그리고 김 비서! 마이바흐는 잘 돌려놔!”
“…….”
참고로 내가 타고 온 마이바흐는 아버지 것이다. 그래서 아버지한테 무사히 돌려줘야 했다.
“기스 나면 큰일 나! 나 아빠한테 죽을 수도 있어!”
그런 내 말에 김 비서는 살짝 한숨을 쉬었다.
* * *
영신그룹.
“뭐라고? 허재우 단장이 해고를 당했다고?”
“예. 그래서 지금 구단 내부가 시끌벅적한 상태입니다. 부임 첫날에 대표이사가 ‘쇄신’을 위한 인사 개혁을 했다고요.”
“지태훈, 이 미친 새끼!”
비서로부터 보고를 받은 지태완은 욕설을 내뱉었다.
허재우 단장은 자신의 심복이자 현재 비밀 임무를 수행하고 있는 인물이었다.
그런 그가 막냇동생에 의해 내쳐졌다.
그것도 부임 첫날에.
“아무리 태훈이가 대표이사라고 해도 그렇게 일방적으로 단장을 잘라버릴 수는 없을 텐데?”
“그게…… 허재우 단장이 저지른 선수 이적과 관련된 비리를 알게 된 모양입니다.”
“뭐? 그게 무슨 소리야?”
허재우 단장의 비리는 지태완도 처음 듣는 얘기였다.
그러자 비서가 상세히 내막을 알려줬다.
“허 단장이 최근 2년 동안 선수들을 이적시키면서 에이전트와 합의해서 이적료 일부를 자신의 계좌로 빼돌린 모양입니다. 그 액수가 제법 크고요.”
“이거 또라이 새끼 아냐! 해쳐먹으려고 해도 적당히 해쳐먹어야지!”
“회장님도 비리를 알게 된 모양입니다. 당장 회사 차원에서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하는데, 지태훈이 그걸 또 막은 모양입니다.”
“…….”
“어떻게 할까요?”
“어떻게 하긴. 회장님까지 알게 된 이상 더 이상 데리고 있을 수 없지. 허 단장은 내쳐.”
“알겠습니다. 그럼 허 단장 쪽은 정리하는 쪽으로 가겠습니다.”
그렇게 회귀 전과 달리 허재우는 지태완으로부터 ‘손절’당하게 되었다.
허재우의 처신이 결정된 이후 지태완은 여전히 굳은 얼굴로 생각에 잠겼다.
‘태훈이 녀석이 혼자 일을 벌였을까?’
지태완은 이번 일을 지태훈 혼자서 진행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오 비서.”
“네.”
“네가 생각하기엔 어때? 지태훈, 그 망나니 새끼가 혼자 일을 벌였다고 생각하나?”
“……그간 저희 쪽 정보망을 통해 지켜봐왔을 때, 그럴 만한 인물은 아니라고 생각이 듭니다.”
“그렇지? 그럼 김 비서가 도운 걸까?”
“그럴 가능성이 크죠.”
“…….”
김유리 비서가 지태훈을 도왔을 것이라고 생각하자, 지태완의 기분이 썩 좋지 못했다.
‘망나니 녀석을 도운다고 팔자가 바뀌는 건 아닌데 말이야.’
김유리 비서는 영신 그룹 내에서도 고급 인재로 평가받고 있었다.
그런 그녀가 망나니 동생을 보좌하는 역할로만 지낸다는 게 너무나도 안타까울 뿐이었다.
언제 한 번 그녀를 자기 인물로 섭외하려고 시도했던 적이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매몰차게 그의 제안을 거절했었다.
-죄송합니다. 저에게는 지금 도련님뿐이라서요.
지태완에게는 조금 씁쓸한 기억이다.
누구보다 잘난 외모, 뛰어난 능력, 사회적으로 높은 위치를 가진 자신이었다.
그래서 누구에게 거절당하는 일은 쉽게 경험하지 못했다.
그런 그를 단칼에 거절한 인물은 김 비서가 거의 유일하다시피 했다.
“오 비서.”
“예.”
“김 비서 쪽에 사람 붙여. 그리고 뭔가 허튼수작 부리거든 나에게 바로 보고하고.”
“네.”
명령을 내린 지태완의 두 눈은 차갑게 가라앉아 있었다.
* * *
고양 유나이티드.
1983년부터 시작된 K리그 역사를 함께 해온 원년 구단이다.
그런 만큼 상당히 많은 팬들을 거느리고 있었다.
그런 상황에 시민구단에서 기업구단으로 탈바꿈하면서 절정을 찍었다.
하지만 최근 상황은 달랐다.
2년 전, K리그 역대 최저 승점으로 최하위를 기록하며 강등당한 이후 팀 분위기는 엉망이 되었다.
주축 선수들이 대거 팀에서 이탈하며 팀 전력이 무너졌다.
새로 영입된 선수들은 제대로 효과를 발휘하지 못했다.
작년에 다이렉트 1부 승격을 꿈꾸기도 했지만, 결과적으로 2부 리그 최하위라는 굴욕을 맛봤다.
이번 시즌도 마찬가지였다.
시즌이 중반까지 치러진 상황에서 최하위만 겨우 면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구단 대표이사가 바뀌었다.
“반갑습니다. 이번에 새로 부임한 신임대표 지태훈이라고 합니다.”
선수단이 모두 모여 있는 가운데, 머리부터 발끝까지 명품으로 도배한 지태훈이 자신을 소개했다.
명품으로만 도배된 것 정도가 아니다.
꽤 화려한 의자에 앉아 있었다.
그런 지태훈 옆에 김 비서가 양산을 들고 햇빛을 가려주고 있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는 선수단의 표정은 굳어 있었다.
‘와, 저 손목시계 명품 아냐? 전에 인터넷에서 봤어. 3억이던가?’
‘역시 재벌은 다르구나.’
젊은 선수들은 명품으로 도배된 지태훈을 보고 속으로 감탄하고 있었다.
하지만 코치들이나 노장 선수들은 달랐다.
아직 30살도 안 된 그가 대표이사라고 부임한 사실이 못마땅한 것이다.
게다가 그가 보여주는 태도도 이해할 수 없었다.
‘저거 완전 상또라이 아냐?’
‘재벌가 망나니라고 하더니. 진짜 듣던 것보다 더 심한 거 같은데?’
지태훈도 그런 생각을 눈치챈 듯 말했다.
“몇몇 분들 표정이 안 좋으신 모양인 걸 보니, 제가 썩 마음에 들지 않은 건가 보군요.”
그 말에 구단 마크가 박힌 모자를 쓴 남자가 나섰다.
“대표님께서 부임하시자마자 허 단장을 경질했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아아, 임 감독님.”
임태무 감독.
고양 유나이티드 제18대 감독으로 팀을 이끌고 있는 인물이다.
“아무리 대표님이라도 일을 이렇게 진행하실 수는 없습니다.”
감독이 신임대표를 향해 공개적으로 질타했다.
아무리 지태훈이 나이가 어려도 한 구단의 대표이사다.
이런 식의 공개적인 질타는 신임대표를 무시하는 행동이었다.
훈련장의 분위기가 점점 싸늘하게 식어가기 시작했다.
보다 못한 김유리 비서가 나서려는 찰나, 지태훈이 손을 들어 올리며 제지했다.
그리고 아무렇지 않게 쓰고 있던 선글라스를 벗은 뒤, 임태무 감독을 직시했다.
“임 감독님.”
“뭡니까? 제 말이 틀렸습니까?”
“임 감독님께서 우리 팀을 3년 동안 맡아주셨지요? 그간 꽤 노고가 크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잘 알고 계시군요.”
“그런데 말입니다. 그사이에 팀이 강등을 당했어요. 승격도 못 했고요.”
“…….”
“그런데 아직까지 잘 계시네요? 거 참 신기하네.”
지태훈의 팩트 폭격에 임태무는 입술을 깨물었다. 그 모습에 곁에 있던 다른 코치들이 발끈하고 나서려고 했다.
그러자 지태훈이 차갑게 얘기했다.
“당신들은 가만히 있으세요. 당신들도 다 똑같은 사람들입니다.”
“……!”
“감독이 잘 못하면 보좌라도 똑바로 하셔야죠.”
“이 새끼가! 지금 말 다했어?”
“새끼?”
지태훈은 의자에서 일어나 자신에게 욕설을 내뱉은 코치에게 뚜벅뚜벅 걸어갔다.
“…….”
꿀꺽.
185cm 장신의 키를 가진 지태훈.
그런 지태훈 앞에 서 있는 곱슬머리의 코치는 175cm.
지태훈이 무시무시한 얼굴로 내려다보자 곱슬머리 코치는 저도 모르게 잔뜩 긴장했다.
“주제 파악 해라.”
“크, 크윽!”
마치 맹수와 마주친 것 같은 기분이 든 코치는 바짝 얼어붙었다.
지태훈은 얼어붙은 코치의 어깨를 가볍게 툭툭 쳐준 다음, 몸을 돌려 선수단을 향해 말했다.
“이번 주말에 리그 경기가 있죠?”
“…….”
“우리 팀이 아주 개못한다고 소문이 나 있던데…….”
못한다는 말에 선수들이 저도 모르게 주먹을 쥐었다.
그 모습을 두 눈에 담은 지태훈이 피식 웃으며 말을 이었다.
“제가 직접 현장에 가서 지켜볼 겁니다. 정말 얼마나 개못하는지 확인해보려고요.”
“……!”
“그럼 기대하겠습니다. 수고들 하세요. 가자, 김 비서.”
그렇게 말하고 지태훈은 훈련장을 떠났다.
그가 떠난 뒤 훈련장은 한동안 흉흉한 분위기로 가득 찼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