샐로먼 브러더스 본사 측에서 3일 단위로 연락하는 것이 그 증거였다.
최악에 중국 투자 계획 자체를 올 스톱 해야 할지도 몰랐다.
* * *
데릭 모건 이사는 단순히 샐로먼 브러더스의 내부 인력만을 이용하지 않았다. 그는 다시 에플 이사회에 복귀해서 스티븐을 견제하는 마쿨라 이사를 만났다.
그는 차분하게 마쿨라 이사를 설득했다.
“이전과는 상황이 많이 다릅니다. 만약 최민혁 실장을 끌어내리는 일을 도와준다면, 스티븐 퇴출에 도움을 주겠습니다. 필요하다면 다시 에플 CEO로 복귀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뒤통수칠 생각이 없다는 말입니까?”
데릭 모건 이사는 평소와는 달리 감정을 드러냈다.
“우리 사정에 대해서 들었을 텐데요? 이건 우리만의 일이 아닙니다. 에플 이사회의 다른 이들 역시 별반 다르지 않을 겁니다.”
“흠.”
마쿨라 이사는 내심 욕설이 나왔지만, 겉으로 드러내지 않았다.
그는 샐로먼 브러더스도 싫지만, 스티븐을 더 증오했다.
딱히 과거 일을 따지고 싶지는 않았다.
스티븐의 배후인 최민혁 실장은 자신 앞에 있다면 총으로 쏴 죽이고 싶었다.
“하지만 제 능력으로 한계가 있습니다.”
“최선을 다해서 돕겠습니다.”
“…그러면 언론 쪽에 힘을 좀 넣어주십시오. 그걸 보고 판단하겠습니다.”
“그러죠.”
* * *
마쿨라 이사는 데릭 모건 이사의 도움을 얻어서 최민혁 실장이 연루된 ‘음모론’에 대해서 CNN과 인터뷰까지 했다.
그는 이때까지만 해도 데릭 모건 이사가 진심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니 이제는 자신의 역할이 중요했다.
[이건 용납할 수 없습니다. 누군가 압력을 넣은 것이 분명합니다!]
[연방 검사에 압력을 넣으려면 백악관 정도가 되어야 가능하지 않을까요?]
[아뇨. 꼭 그렇게 거창하게 볼 필요는 없습니다. 이번 일로 가장 큰 이익을 얻은 사람이 범인일 테니까요. 당장 스티븐과 관련된 수사가 중단되었습니다. 그다음 순서로 수사 후보에 오른 최민혁 실장을 빼놓기 어렵습니다.]
[…최민혁 실장이라면 설마 에플 지분 매각으로 220억 달러 이상 이익을 얻었다는 그분을 말하는 겁니까?]
[220억 달러가 아니라 정확히는 270억 달러가 넘는다는 소리가 있습니다. 그 덕분에 SEC, FBI에서 수사에 착수했습니다. 버몬 연방 검사가 그 수사를 지휘하는 총 책임자입니다. 그래서 끌어내린 겁니다.]
이 부분은 좀 과장이 있는 이야기였다.
하지만 마쿨라 이사는 오히려 더 과장했다.
[제 말은 그래서 이번 일을 철저히 조사해야 한다는 겁니다!]
마쿨라 이사의 말은 꽤 그럴듯했다.
그런데 아무리 미국 언론이라도 추정만으로 백악관을 조사할 수는 없었다.
아무리 연방 검사가 힘이 없다고 해도 연방 검사장의 보좌관이었다.
이 연방 검사장은 연방 법무부 장관의 직무에 따라야 했다.
그런 이들에게 다가가서 압력을 받았느냐고 질문하기는 힘들었다.
마쿨라 이사는 이런 점을 지적했고 말이다.
‘됐어. 일단 데릭 모건 이사가 도와준 이상 이번 일을 좀 더 키울 수가 있어!’
희망찬 미래.
실제로 CNN의 힘이라면 가능한 일이었다.
그런데 결과적으로 마쿨라 이사가 한 인터뷰는 방송으로 나가지 않았다.
흥분한 경주마처럼 날뛰던 CNN이 갑자기 이번 FBI, SEC의 습격 사건 보도를 다 내렸다.
그 와중에 FBI, SEC 이번 수사 담당자가 다 갈려 나갔다.
그들 역시 이리저리 다른 부서로 다 흩어지더니, 다 사라진 것이었다.
이와 관련된 기사는 아예 흔적도 없었다.
‘이럴 수가.’
그로서는 이 상황이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 * *
마쿨라 이사는 길길이 날뛰었다. 하지만 그는 데릭 모건 이사가 한 제안을 잊을 수가 없었다. 이번 일만 성공한다면, 다시 에플을 손에 쥘 수가 있었다.
그 역시 스티븐이 지금 에플 내에서 진행하는 일을 어느 정도 안다. 무조건 성공할 수밖에 없는 아이템이었다. 심지어 최민혁 실장과의 계약을 다 끊어내서 그 기술을 자기 것으로 하면 된다.
‘내 힘이 어렵다면, 다른 이의 도움을 청하면 그뿐이잖아!’
마쿨라 이사는 스티븐에 대한 증오를 쉽게 잊지 않았다.
그는 때문에 차분하게 자기 인맥을 다지면서 기회를 노렸다.
데릭 모건 이사가 한 제안 덕분에 이 일은 더 쉬워졌다.
얼마든지 자금 지원을 받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다행이라면 그걸 사용할 대상도 있었다.
미국 하원 존 스미스였다.
그는 미국 국익에 반하는 외국 투자에 대해서는 보수적인 인물이었다.
그는 대미 첨단 투자와 관련해서 리스크가 될 인물이라면 단호하게 처단했다.
최민혁 실장을 블랙 리스트로 만든 이들 중의 하나였다.
하지만 그런 그조차 최민혁 실장을 완벽하게 견제하지는 못했다.
미처 간과한 게 바로 클린턴 정부의 행보였다.
정확히는 클린턴 정부가 국익을 내세워서 존 스미스 의원의 무리수를 막은 것이다.
존 스미스가 아무리 하원에서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해도 미국 대통령의 제안을 무시하지는 못했다.
그도 일단은 구경꾼처럼 상황을 지켜봐야 했다.
그런데 때마침 터진 일이 바로 최민혁 실장의 에플 지분 초대박이었다.
“…….”
존 스미스 의원은 이 상황을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그조차 너무 큰 충격을 받아서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미국 대통령 선거 후원금이 몇 억 달러 수준 규모이니까.
일개 경영인이 자기 주식을 다우지수를 이용해서 220억 달러, 아니, 250억 달러 이상 되는 이익을 볼 수 있다는 것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최민혁 실장은 우리 미국에 있어서 최악의 적이야!’
하지만 그도 지금은 올 하반기에 치열한 재선 레이스가 예정되어 있어서 갈등했다.
재선이 끝난 후라면 클린턴 행정부도 생각을 달리하겠다는 모양새를 취한 최민혁 실장을 다시 노릴 수 있겠지만, 지금은 그랬다.
하지만 존 스미스 의원은 쉽게 자제할 수가 없었다.
최민혁 실장은 미국을 이용해서 무려 250억 달러라는 천문학적인 이익을 챙겼다. 심지어 이것도 최민혁 실장이 보유한 지분의 다가 아니란 점이다.
퀄컴, ARN, 에플, KMBOOK, 여기에 미국 방산 기업 지분과 기술까지 소유했다.
이런 자를 그냥 내버려 둔다는 말인가.
고민했다.
마쿨라 이사가 그를 찾은 것은 이 시점이었다.
“의원님, 오랜만입니다.”
존 스미스 의원은 간혹 워싱턴 모임에서 만난 마쿨라 이사를 잊지 않았다.
“그러게 말입니다. 일전 모임에서 하신 말씀은 인상 깊었습니다.”
마쿨라 이사는 씁쓸하게 웃었다. 그가 존 스미스 의원을 알 수밖에 없었던 것은 반최민혁 실장 파벌에 속하기 때문이었다.
“최민혁 실장은 중동 테러리스트보다 더 무서운 인물입니다. 그런 이를 상대로 사전에 손을 쓰는 존 스미스 의원님의 말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그렇죠.”
“삭초제근이라고 했습니다. 최민혁 실장을 반드시 제거해야 합니다.”
“맞습니다.”
그는 일단 이 정도로 대화를 끝냈다.
“제가 약속이 있어서.”
* * *
최민혁 실장은 한국 내에 정보 조직도 만들었지만, 미국 역시 무시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그 반대였다. 미국에 오히려 더 투자를 늘렸다.
단순히 KM 전자와 계열사 경호를 넘어서는 수준으로 투자를 늘렸다.
이런 노력은 단순히 무장에만 제한된 게 아니었다.
정보 조직 역시 손을 썼다.
그런데 또 단순히 내부 정보 조직에만 집중한 것도 아니었다.
필요하다면 자신의 적이었던 로비스트 역시 최대한 활용했다.
괜찮은 정보만 넘긴다면 돈으로 이들 로비스트를 회유했다.
이런 내부, 외부 조직을 총동원해서 날실과 씨실처럼 얽어놓았다.
이런 이 중에는 로버트 루빈 재무 장관의 측근인 제임스 워커 역시 있었다.
제임스 워커 역시 최민혁 실장이 벌인 에플 지분 매각 소동을 본 터라 탐욕을 쉽게 접을 수가 없었다.
그는 때문에 마쿨라 이사가 미국 하원까지 와서 존 스미스 의원을 만나는 장면을 발견했다.
그는 이 정보를 즉시 최민혁 실장에게 알렸고 말이다.
최민혁 실장 입장에서는 정보 소스를 확인하고는 어이가 없었다.
“제임스 워커라……. 이 사람은 그래도 미국 재무 장관인 로버트 루빈과는 긴밀하지 않습니까? 이렇게 중요한 정보를 넘겨도 됩니까?”
김명준 과장은 다행히 제임스 워커의 사정을 알았다.
“…딸의 특이 질환 때문에 돈이 당장 급히 필요한 것으로 압니다.”
“정말입니까?”
“확인해 보겠습니다.”
“아, 됐습니다. 그게 중요한 것이 아니라 정보가 중요하니까.”
최민혁 실장은 그럴듯하게 말하기는 했지만, 인간의 탐욕을 다시 생각했다. 돈이 필요하다면 인간은 언제라도 배신할 수 있다는 점 말이다.
‘조창호 차장은 그런 면에서 양반이야. 이런 점은 잊지 말아야겠어.’
“존 스미스 의원이라…….”
“어떻게 할까요?”
그 역시 존 스미스 의원을 모르지 않았다. 블랙 리스트 사건 때문에 보복하려고 한 적이 있었다. 다만 그때도 틈을 찾지 못했다.
“방법이 있어요?”
“확인해 보겠습니다.”
“…김 과장님, 미국 하원 내에서 영향력이 만만치 않은 사람인데, 공작하기가 쉽지 않을 겁니다.”
“그러면…….”
최민혁 실장 역시 자신의 한계를 잘 알았다. 버몬 연방 검사를 끌어내린 일은 운이 좀 따랐다. 그런데 존 스미스 미국 하원 이야기는 다르다. 존 스미스 의원을 제거하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자신의 개입 흔적을 드러내서는 안 되었다.
‘뭐가 이렇게 걸리는 것이 많아. 아, 원래부터 거추장스러운 인간이었나. 결국, 이번 에플 지분 매각이 원인이 되었다는 소리인데.’
“으음, 어차피 클린턴 캠프가 우리 측을 지원하지 않습니까? 뭐, 암묵적이기는 하지만 그걸 이용하는 것으로 하죠. 이왕이면 클린턴 정부를 이용해서 제거하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니까요. 그러니 당분간은 긴밀히 지켜보세요. 우리 주적은 최문경 부회장과 샐로먼 브러더스이니까요.”
“…알겠습니다.”
* * *
존 스미스 의원은 마쿨라 이사를 믿을 수가 없어서 아주 간단한 정보만 흘렸다.
하지만 마쿨라 이사의 입장은 달랐다. 그는 이대로 있다가는 스티븐에게 오히려 공격당해서 에플에서 다시 내쫓겨날 상황이었다.
그는 때문에 존 스미스 의원에게 몇 번이나 다시 연락했다.
심지어 데릭 모건 이사에게 부탁했다.
존 스미스 의원은 결국 다시 마쿨라 이사와 약속을 잡았다.
“…데릭 모건 이사와도 알고 지냅니까?”
“아무래도 스티븐과는 주적이기 때문입니다.”
“그 말씀은?”
“저는 절박합니다. 스티븐과 최민혁 실장을 어떻게 해서라도 끌어내려야 합니다. 이건 제가 생존하기 위한 최선의 방법입니다!”
마쿨라 이사의 어조는 절박했다.
존 스미스 의원은 겉으로는 마쿨라 이사에게 공감을 보였다. 하지만 그의 내심은 그런 것이 아니었다. 마쿨라 이사가 겉으로는 유쾌한 인물처럼 보이지만 언제라도 배신할 수 있기 때문이다.
‘스티븐을 배신한 인물이니까.’
그가 한 배신은 아주 간단했다.
‘최민혁 실장에게 정보를 흘릴지도 모르지.’
만약 그 경우라면 어떻게 될까.
아무리 자신이 하원에서 영향력이 있는 인물이라도 최민혁 실장과 1:1로 정면으로 싸운다면, 이기기 쉽지 않을 것이다.
그로서는 조심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마쿨라 이사도 존 스미스 의원의 냉정한 태도에 크게 신경을 쓰지 않았다. 어차피 두 사람이 서로 알게 된 것은 최민혁 실장 척결 때문이었다.
“제가 의원님을 찾을 수밖에 없는 이유는 CNN을 비롯한 방송사 태도가 이상해서입니다. 마치 최민혁 실장의 자금에 압박을 받는 것처럼 기존에 내보내던 최민혁 실장 관련 기사를 다 내렸습니다.”
“……”
존 스미스 의원은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그 역시 사전에 정보를 들었다. 그런데 이 정보 출처가 클린턴 캠프였다.
그쪽의 요구는 최소한 재선이 끝날 때까지만 최민혁 실장 일을 내버려 두란 경고였다.
이유는 간단했다.
클린턴 행정부의 재선 공략 중에 IT 관련 부분이 다 최민혁 실장과 관련이 있었다.
만약 최민혁 실장에게 문제가 생기면 당장 차세대 이동통신 기술 프로젝트가 중단되어 버리기 때문이다.
다만 클린턴 캠프 역시 최민혁 실장을 완전히 믿지 않았다. 그들이 굳이 최민혁 실장과 소통하지 않은 채 거리를 두는 것도 이런 이유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