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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 3세는 조용히 살고 싶다-1020화 (1,020/1,021)

미국 정부도 주적인데, 여기에 적이 하나 더 생기는 셈이었다.

특히 문제가 되는 것은 미국 클린턴 행정부의 반응이었다.

그들은 최민혁 실장에게 열광했다.

애초에 샐로먼 브러더스는 클린턴 행정부에 찍힌 상황이었다.

이제는 일이 정말 어렵게 된 것이었다.

데릭 모건 이사는 두 사람을 차례대로 쳐다보면서 한마디했다.

“다른 것을 다 떠나서 IP 시티폰의 미래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합니까?”

“…그게.”

두 사람 다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지금 현황만 봐서는 판단하기가 쉽지 않았다. 미묘하게 IP 시티폰 매출이 늘어난 것도 한 문제였다.

물론 우려되는 부분이 많기는 했지만 그건 또 모르는 일이다.

사업 실적이 다시 좋아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사실 최민혁 실장의 차세대 이동통신 이슈가 없다면 이런 고민조차 하지 않았을 것이다.

데릭 모건 이사는 굳은 얼굴을 한 채 일축했다.

“진지하게 대답해야 할 겁니다. 이번 일은 우리 샐로먼 브러더스도 막대한 손실도 피할 수가 없습니다. 아니, 지금 판단 여부에 따라서 정확히는 손실 규모가 다르겠죠. 중국 공산당을 적으로 돌리는 것은 별개로 해도 말이죠.”

중국 공산당을 상대로 설득할 수는 있다.

그런데 과연 그자들이 자신의 말을 들을까.

아니면 중국 공산당을 무시했다고 생각할까.

후자가 답이다.

데니스 샐로먼 이사는 제임스 러너 이사가 입을 쿡 다물고 있는 것을 보자 어쩔 수 없이 나섰다.

“다른 것을 다 떠나서 최민혁 실장의 능력은 인정하지 않습니까? 그런 그가 IP 시티폰을 정리했을 때는 다 근거가 있었을 겁니다. 일테면 IP 시티폰 사업이 차세대 이동통신에 밀려서 사라진다는 것을 예측했을 겁니다. 그러니 당시 피해자 코스프레를 하면서 IP 시티폰을 넘겼을 겁니다.”

“…확신합니까?”

데니스 샐로먼 이사는 어깨를 으쓱했다.

“저도 미래를 예측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최민혁 실장의 능력은 믿습니다.”

“휴, 좋습니다.”

데릭 모건 이사는 결국 고심을 거듭했다. 그는 두 사람이 별다른 의견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사실 지금 이 시점에서 판단을 내리기가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래도 그는 이 문제를 그냥 넘길 수가 없었다.

“두 분은 일단 모든 자원을 총동원해서 대안을 한번 찾아보세요. 이야기는 그다음에 하죠.”

“…알겠습니다.”

* * *

샐로먼 브러더스는 결코 작은 회사가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였다. 미국 내에서 다섯 손가락에 꼽히는 세계적인 투자 회사다.

기술에 대한 탁월한 안목을 가진 전문가 수도 많았고, 협력업체는 더 많았다.

데릭 모건 이사 역시 이 본사 자원을 최대한 활용했다.

실제로 샐로먼 브러더스 본사 역시 데릭 모건 이사의 요청을 무시하지 않았다.

이전과는 상황이 많이 달랐다.

중국 투자와 엮여 있기 때문이다.

아차 잘못하는 순간에 손실이 얼마가 될지 알 수가 없었다.

이런 절박함.

다행히 데니스 샐로먼 이사의 지인인 킬리언 시몬스 이사가 답을 찾았다. 그는 데릭 모건 이사 요청 때문이 아니라 데니스 샐로먼 이사를 돕기 위해서 괜찮은 아이디어를 내놓았다.

“휴스 네크워크 시스템?”

“장비 테스트 회사인데, CDMA와 TDMA 성능 검증을 주로 했습니다.”

휴스 네크워크 시스템은 통신 검증 업계에서는 공인을 받은 곳이다.

이들이 실제로 조사한 CDMA의 성능은 TDMA와 비교하면 많이 떨어지는 것으로 보였다.

설사 CDMA 성능이 개선되어도 아날로그 방식과 비교하면 2~3배 정도 차이가 날 뿐이다.

데릭 모건 이사는 CDMA 사용자가 급증할 때 통신 수용 용량이 급격히 떨어진다는 실험 보고서도 확인했다.

“…이건 문제 아닌가요?”

데니스 샐로먼 이사는 킬리언 시몬스 이사에게 들은 터라 이 문제점을 더 잘 알았다.

“수용 용량 문제는 직접 확인해보 지 않았기에 알기는 어렵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사용자 숫자가 급격히 늘어나는 시점이라서 그 한계를 안 겁니다.”

“아, 이게 또 이런 문제가 있었군요.”

데릭 모건 이사는 그다지 놀라지 않았다. 사실 당연히 일어날 일이다. 어떤 시스템이라도 완벽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데니스 샐로먼 이사는 한 가지 점을 더 지적했다.

“TDMA 방식에 비해서 안테나 부품이 10배 이상 많아야 하는 단점도 있습니다. 이러면 투자비가 대폭 늘어날 수밖에 없습니다.”

데릭 모건 이사는 ‘투자비 증가’란 말에 피식 웃고 말았다.

IP 시티폰의 투자비를 생각하면 요즘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한다.

“좋네요. 일단 미국 언론을 통해서 한번 작업해 보세요. 아무리 최민혁 실장이 존재감을 드러내도 안 되는 일을 가지고 집착하지는 않을 테니까.”

“…알겠습니다.”

“최문경 부회장 측에게는 기다려 달라고 이야기를 전하죠.”

“…네.”

* * *

CDMA 시스템의 근본적인 이슈가 갑자기 미국 언론에서 터져 나왔다.

그 소스가 휴스 네트워크 시스템이라서 가볍게 넘어가지 않았다.

CDMA 시스템은 클린턴 캠프가 미는 몇 안 되는 공약 중의 하나였다.

미국 백악관 역시 갑작스러운 사태에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이 뉴스가 차세대 이동통신에 악영향을 준 것은 말할 것도 없다.

CDMA 시스템에 가장 큰 역할을 한 이가 최민혁 실장이기 때문이다.

최민혁 실장도 이 뉴스를 보고 나서는 고개를 갸웃했다.

‘이상한걸?’

CDMA 성능에 대한 문제 보고서는 사전에 터져 나오기는 했다.

다만 그 시점이 지금이 아닌 몇 달 후 였다.

한참 뒤에야 터질 것이 몇 개월 앞당겨서 발생한 것이다.

조성돈 팀장 역시 이에 당황했다.

“…확인해 본 결과 휴스 네크워크 시스템의 지적이 틀리지 않습니다.”

최민혁은 피식 웃었다.

“너무 걱정 마세요. 몇 가지 교환기 운용 체제와 단말기 쪽 수정만 하면 됩니다.”

“네? 그, 그게 정말입니까?”

최민혁 실장은 조성돈 팀장이 놀라는 모습을 보면서 혀를 찼다.

“성능 하락과 관련한 여러 가지 업데이트를 해왔습니다. 그 자료를 잘 살펴보면, 이와 유사한 문제가 생길 것이라는 예상할 수 있어요.”

“네?”

“당시에 땜질식으로 처리했기에 단점이 있었던 것뿐입니다.”

최민혁 실장은 과거 자신이 지시한 자료를 슬쩍 들춰서 살펴보다가 몇 가지를 내놓았다.

각각 단편적으로 처리한 일이었다.

그런데 그걸 유기적으로 잘 엮으면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다.

리만제타 함수를 이용해서 간섭 정도를 제어하는 방식이다.

이 방식은 근본적인 CDMA 대역폭 자체를 늘려주는 건 아니었다.

다만 지금 현존한 CDMA 시스템의 효율을 최대한 올려줄 수는 있었다.

비록 TDMA에 비해서 성능이 떨어지기는 해도 상업적으로는 문제가 없었다.

“…아, 아니 이, 이걸 도대체 어떻게 아신 겁니까?”

조성돈 팀장이 평소와는 달리 놀라는 이유가 있었다.

답에 대한 과정이 없었다.

최민혁 실장은 그저 리만제타 함수를 이용했다고 말했을 뿐이다.

정확히 그 함수를 이용해서 이 알고리즘을 어떻게 만든 건지에 대한 답이 없었다.

“그게 중요한가요? 결과가 중요하지.”

“그건 그렇지만…….”

조성돈 팀장은 최민혁 실장이 또 말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보이자 혀를 찼다.

최민혁 실장은 바로 구박했다.

“정 알고 싶으면, ETRI 쪽에 한번 확인을 해보세요. 이미 힌트와 답이 있는 이상 중간 풀이는 쉽게 찾아낼 테니까.”

“…알겠습니다.”

* * *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시는군요. 최민혁 실장님의 그 말을 믿는 겁니까?”

이게 ETRI 오현종 실장의 답변이었다.

“…네.”

조성돈 팀장은 배종대 과장과 같이 ETRI를 방문한 후에 타박만 들었다.

하지만 오현종 실장은 말로만 하지 않았다.

“일단 보여 드리죠.”

바로 최민혁 실장의 아이디어를 적용한 테스트 결과였다.

수정된 시스템에서는 수용 용량이 급격히 늘어나도 별다른 문제가 일어나지 않았다.

TDMA에 비해서는 큰 문제가 없었다.

오현종 실장은 다른 ETRI 연구원과 같이 결과를 살피면서 감탄했다.

“잊고 있었어요. 최민혁 실장님이 어떤 분인지 말입니다.”

“그 말씀은…….”

“아, 죄송합니다. 제가 말이 좀 심했죠. 너무 최민혁 실장님을 얕잡아 보는 것 같아서 그랬습니다. 그리고 이건 원하신 자료입니다.”

오현종 실장이 내놓은 것은 ETRI 연구원이 매달려서 정리한 최민혁 실장의 아이디어 분석 자료였다.

수학적인 전개를 통해서 깔끔하게 효율을 계산한 것이었다.

이 알고리즘을 이용한 업데이트가 지금 보여 주는 결과물이었다.

“…정말 최민혁 실장님 말대로군요. 아니, 그러면 최민혁 실장님은 답을 어떻게 찾은 겁니까?”

“…모르죠.”

오현종 실장을 비롯한 ETRI 연구 팀들은 다들 그런가 한 얼굴이었다.

그들은 차세대 이동통신 작업을 하면서 최민혁 실장에 대해 의심 자체를 하지 않았던 것이다.

“아, 이거 발표는 오늘 오후에 진행될 겁니다.”

“…알겠습니다.”

* * *

휴스 네트워크 시스템의 발표 후 단 3일 만에 이루어진 ETRI 발표는 외신에서도 관심을 둘 정도로 놀라운 결과였다.

CDMA 시스템의 한계가 있다는 지적과 동시에 그 해결책이 나왔기 때문이다.

굉장히 충격적인 결과였다.

애초에 일이 이렇게 커질 일이 아니었는데, 샐로먼 브러더스가 나선 덕분에 일이 고약하게 흘러간 것이었다.

덕분에 ETRI 명성은 CDMA 분야에 한해서만큼은 세계를 쩌렁쩌렁 울렸다.

그리고 최민혁 실장의 명성은 ETRI 뒤에 숨은 탓에 그렇게 주목을 받지 않았다.

최민혁 실장 딴에는 이번만큼은 자신이 늘 해온 재벌 3세인 자신이 조용히 살고 싶다는 약속을 지킨 셈이다.

“…….”

데릭 모건 이사는 이 삼일천하 결과를 보면서 한동안 입을 열 수가 없었다. 최민혁 실장이 나서지 않으려고 하지만 이미 ETRI 내에 아는 사람은 최민혁 실장이 이 문제를 바로 해결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는 결국 최문경 부회장이 한 제안을 심각하게 생각해야 했다.

이제 시간이 별로 없었다.

최민혁 실장을 어떻게 해서라도 수사 대상에 올려야 했다.

“가만, 그런데 만약 최민혁 실장이 검찰 조사를 받으면 어떻게 됩니까?”

제임스 러너 이사가 단호하게 대답했다.

“다른 것은 몰라도 차세대 이동 통신 프로젝트는 늘어질 겁니다. 제가 확인한 바로는 아직 명확하게 결정 나지 않은 부분이 많습니다. 거기에 대한 키는 최민혁 실장이 다 쥐고 있을 겁니다.”

“그래요?”

하고 싶은 말은 많았다.

그런데 다른 대안이 없었다.

이번 휴스 네트워크 시스템 계획이 무너진 것은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이해할 수가 없네. 아무리 천재라고 해도 아직 사용자 숫자가 제대로 늘어나지도 않았는데, 대안을 어떻게 찾지? ETRI가 정말 세계 최고의 연구진이라서 그런 걸까?’

말도 안 되는 추론이었다.

“…좋습니다. 그러면 이렇게 하죠. 일단 원래 계획했던 일을 끝까지 한번 밀어봅시다.”

“혹시 정 감찰부장을 말씀하시는 것 같은데, 당장 미국 버몬 연방 검사가…….”

데릭 모건 이사는 찬밥 더운밥을 가릴 상황이 아니었다.

“그 버몬 연방 검사 말입니다. 그것으로 시작하죠.”

“네? 그 말씀은…….”

“당장 버몬 연방 검사 문제를 키우면, 정 감찰부장 일도 다시 이슈화할 수가 있어요. 그건 최문경 부회장과 이야기해서 타이밍을 한번 맞춰보세요.”

“…알겠습니다.”

“우리에게 다른 대안이 없어요. 이번 일을 어떻게 해서라도 성공시켜야 합니다.”

평소와는 전혀 다른 데릭 모건 이사는 창백한 안색으로 말했다. 세상 무서울 것이 없었던 그의 평소 모습과는 너무 달랐다.

“…….”

두 사람은 반박할 수가 없었다. 지금은 머리를 굴릴 때가 아니었다. 곧바로 행동으로 옮겨야 했다. 이대로 물러날 수는 없었다.

걸린 판돈이 너무 많았다.

아니, 실상 중국 공산당이 더 심각한 문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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