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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 3세는 조용히 살고 싶다-1019화 (1,019/1,021)

“…일단 최문경 부회장의 동선부터 철저하게 살펴봐. 뭘 하는지 놓치지 마. 난 윗선에 이번 일을 보고할 테니까.”

“…알겠습니다.”

오성 전자 기획실 직원들은 다들 굳은 얼굴을 한 채 얼굴을 펴지 못했다. 자칫하면 KD 통신 투자로 막대한 손실을 볼 수가 있기 때문이다.

결국 누군가 그 일에 관한 책임을 져야 하는데, 자칫하면 부장급 선에서 옷을 벗어야 할 사람이 나올 수가 있었다.

‘하, 돌겠네.’

* * *

권태성 실장은 오성 전자 사장에게 직접 보고할 수는 없었다.

전략 기획실에서 먼저 연락이 왔기 때문이다.

그는 덕분에 안건민 회장을 다시 만났다.

안건민 회장은 묵묵히 듣기만 했는데, 평소와는 달리 안색이 좋지가 않았다.

KD 통신 투자가 문제였다.

지금 당장은 투자를 철회하기도 힘들었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난 후에야 투자 철회가 가능했다.

다만 그때쯤에 가서는 상황이 더 나빠질 수도 있었다.

전략 기획실 최학준 실장은 권태성 기획실장을 차가운 눈으로 압박했다.

다행히 안건민 회장이 중재해서 별다른 일은 터지지 않았다.

물론 이걸 권태성 실장 책임 탓으로 몰기에는 그랬다. 당시 KD 통신 투자 역시 전략 기획실 차원에서 검토가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안건민 회장이 대신 권태성 실장에게 지시한 것은 콜린스 사업부 인수를 가능한 이른 시일 안에 끝내라는 것이었다.

권태성 실장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이번 일로 인해서 자칫하면 지금 자리도 지키기 어렵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이런 상황에서도 성급하게 일을 처리하지 않았다.

일단 최문경 부회장과 최민혁 실장의 근황부터 살피기로 했다.

최문경 부회장은 이런 권태성 실장의 입장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 역시 부회장답게 조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기에 권태성 기획실장이 한 말을 믿지 않았다.

오성 그룹의 상황도 지금 좋지가 않았다.

만약 오성 그룹 차원에서 구조조정을 한다면 KD 통신 투자금을 막대한 손실을 감수하고서라도 회수할 수가 있었다.

그런데 생각할수록 화를 가라앉힐 수가 없었다.

이 교묘한 상황을 만든 주범이 누구인지 모를 수가 없었다.

최민혁 실장은 지금쯤 팝콘을 먹으면서 배를 잡고 웃을 것이다.

자신의 처지를 비웃으면서 말이다.

‘민혁이 이놈을 그냥 둘 수는 없어.’

최문경 부회장은 오성 전자의 권태성 실장의 표정을 다시 떠올리면서 머리를 계속 굴리다가 결국 제임스 러너 이사에게 전화를 걸어서 약속을 잡았다.

[감사합니다. KD 통신 경영과 관련해서 긴히 할 이야기가 있습니다.]

[…네.]

* * *

제임스 러너 이사는 데니스 샐로먼 이사가 한국으로 복귀한 일을 좋아할 수가 없었다. 비록 그 상대가 최민혁 실장이라고 해도 말이다.

그는 때문에 데니스 샐로먼 이사가 움직이는 것을 보면서 다른 대안을 강구했다.

결국 그가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최선은 한국 검찰을 이용하는 것이다.

최문경 부회장을 통해 한국 검찰에 넌지시 아이디어를 주고, 잘 진행하는지 지켜봤다. 아니, 정확히는 정부 쪽의 고위 관료를 통해서 도움도 주고 말이다.

그런데 차세대 이동통신 관련 정보가 돌기 시작한 후에 계획은 엉망이 되었다.

심지어 버몬 연방 검사가 스스로 새벽에 사임한 후에는 계획이 다 망가졌다.

황당한 것은 정경수 감찰부장 역시 압력을 받고는 병신같이 스스로 그만뒀다는 점이다.

‘하, 뭐 이런 병신이 다 있냐.’

보통 권력에 집착하는 이라면 악착같이 물고 늘어지게 마련이다.

그런데 정경수 감찰부장은 특이했다.

아니, 검찰 돌연변이였다.

제임스 러너 이사 역시 이 사태를 보면서 원점에서 계획을 재점검했다.

그제야 그가 알게된 게 차세대 이동통신과 대척점에 있는 것, 바로 IP 시티폰 사업이다.

제임스 러너 이사는 부랴부랴 자신의 인맥을 총동원해서 이 사업을 검토했다.

그는 타이거 펀드가 몰래 지분을 매각한다는 소식도 들었다.

그때는 그저 웃기만 했다.

‘인내심이 고작 이 정도야? 세계적인 헤지펀드라는 말이 아깝네.’

하지만 그도 자료를 확인하고 난 지금은 식은땀마저 흘렸다.

IP 시티폰의 치명적인 단점은 역시 전화를 걸기만 할 수 있다는 점이다.

IP 기능을 이용하면 받는 것은 된다.

다만 이건 무선랜 서비스가 잘될 때의 이야기였다.

무선랜 시스템이 잘 동작하지 않으면 문제가 된다.

최민혁 실장이 시범으로 보여줄 때처럼 잘되는 건 매우 제한적인 경우였다.

게다가 알다시피 투자 대비 설치할 수 있는 설비는 한정되어 있으니, 이 기능이 모든 곳에서 제대로 동작할 리가 없었다.

사용자가 굳이 이런 불편을 감수할 이유가 없었다.

그런데 여기에 차세대 이동통신 경쟁자가 태어났으니.

하필이면 이 기반을 제안한 주인공이 바로 최민혁 실장이었다.

‘당했다.’

제임스 러너 이사는 그제야 과거 최민혁 실장이 IP 시티폰 사업을 왜 넘겼는지 깨달았다. 그는 다른 사람과는 달리 최민혁 실장의 야비한 수작을 확신했다.

그런데 문제는 대책이 없다는 거다.

KD 통신에 들어간 자금이 너무 많고, 적자 폭이 너무 커서 지금 당장 손을 뗄 수가 없었다.

‘다른 투자자가 타이거 펀드의 행보를 안다면 정말 난리가 날 거야.’

다행이라면 타이거 펀드의 줄리엇 로버트슨 회장이 몸을 사린 것이었다. 그는 차세대 이동통신과 IP 시티폰의 비교 우위에 대해서는 절대로 언급 안 했다.

지금처럼 중국 매출만 부각하게 시킨 후에 다른 투자자에게 지분을 쪼개서 넘겼다.

그 수법이 실로 교활했다.

[감사합니다. KD 통신 경영과 관련해서 긴히 할 이야기가 있습니다.]

최문경 부회장에게서 연락이 온 것은 이 문제 때문에 한참 고민을 할 때였다.

제임스 러너 이사는 솔직히 최문경 부회장을 만나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했다.

그가 할 이야기는 뻔했다.

하지만 지금은 샐로먼 브러더스 역시 자기 문제만으로도 골치가 아팠다.

그들이 한 투자는 다른 대주주와는 규모가 달랐기 때문이다.

다만 피할 수는 없었다.

최문경 부회장은 아니나 다를까 사무실을 방문하기가 무섭게 본론부터 들어갔다.

“IP 시티폰 사업 말입니다. 앞으로 들어갈 자금만 해도 추가로 12~15억 달러가 넘을 텐데, 앞으로 사업 매출은 괜찮은 겁니까?”

“…….”

제임스 러너 이사는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최문경 부회장과 동행한 권재홍 비서실장은 도저히 참을 수가 없어서 앞으로 나섰다.

“KD 통신 적자는 서비스가 제대로 진행되면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제임스 러너 이사가 말씀하셨습니다. 실제로 중국 사용자가 200만이 넘으면서 규모 자체는 나쁘지 않습니다. 문제는 실제 사용자 숫자가 얼마 안 된다는 겁니다.”

“…….”

제임스 러너 이사는 또 대답하지 못했다. 사실 IP 시티폰의 문제는 사용자 숫자가 아니었다. 그 사용자 중에서 IP 시티폰을 사용하는 사람이 많지가 않다는 점이다.

이유는 아주 간단했다.

서비스 반대쪽 사용자의 숫자가 그렇게 많지 않기 떄문이다.

가입자 숫자가 200만 명이라도 이들이 모두 IP 시티폰 서비스 영역에 있지는 않았다.

이들을 위한 인프라를 깔기 위해서는 지금도 손실이 어마어마한데, 또 천문학적인 자금이 들어가야 했다.

그래.

중국은 아직 인프라가 안 되어서 그렇다고 하자.

그러면 한국은.

안타까운 사실이지만 한국 역시 중국과 별반 다르지가 않았다.

그냥 유선폰으로 전화하면 될 일인데, 굳이 불편을 감수할 이유가 없었다.

그랬다.

불편.

이 사소한 것 때문에 사용자들이 적극적으로 IP 시티폰을 사용하지 않은 것이다.

당시에는 신기술에 대한 기대 때문에 간과한 사소한 일이었다.

그런데 소비자는 냉정했다.

최문경 부회장은 말을 하면서도 점점 불안을 떨칠 수가 없었다. 그도 말하면서 뭔가 싸한 기분을 느낀 것이었다.

‘설마 이것도 민혁이 이놈의 계략일까?’

IP 시티폰 사업 인수할 때 보였던 최민혁 실장의 표정 말이다.

“…정말 이대로 두고만 볼 겁니까?!!”

제임스 러너 이사는 한숨을 내쉬었다.

“이건 간단히 결정할 사안이 아니라서 확인하려면 시간이 필요합니다.”

“아니, 지금은 시간을 끌 수가 없어요.”

“무슨 말입니까?”

최문경 부회장은 단호하게 소리쳤다.

“정경수 감찰부장 사임 말입니다. 아직 얼마 지나지 않아서 지금은 이슈로 크게 키울 수 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더 지나면 효과가 없습니다. 수를 쓰려면 지금 이걸 이용해서 민혁 그놈의 동선을 묶어야 합니다!!!”

“…알겠습니다. 제가 두 시간 안에 다시 연락하겠습니다.”

제임스 러너 이사도 최문경 부회장의 말을 무시할 수가 없었다.

“더 늦으면 곤란합니다. 다른 일과는 많이 달라요. 이번이 민혁이 그놈을 감옥에 집어넣을 절호의 기회에요. 정 감찰부장 외압은 불법입니다!!!”

“…네.”

제임스 러너 이사는 증거가 없지 않냐는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최문경 부회장의 태도가 이전과는 확연히 달랐기 때문이다.

‘하긴, 지금은 최민혁 실장을 압박하는 방법 외에는 없어. 어떻게 해서라도 시간을 끌어야 해.’

이 일에 걸린 돈이 20억 달러는 가볍게 넘어간다.

* * *

최민혁 실장은 김명준 과장에게 지시해서 최대한 정보와 인력을 갈아 넣었다.

따라서 최문경 부회장과 제임스 러너 이사의 만남과 같은 정보는 쉽게 얻었다.

다만 그들이 한 대화 내용이 문제였다.

그런데 굳이 이 내용까지 들춰볼 필요는 없었다.

두 사람이 움직이는 동선만 보면 답이 나오니까.

“권재홍 비서실장이 다시 정경수 전 감찰부장을 만났다는 말입니까?”

“네. 이미 예측한 일이라서 크게 걱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하지만 최민혁 실장은 고개를 내저었다.

“그건 모르는 일이에요. 거짓도 계속 진실이라고 우기면 진실로 만들 수 있으니까.”

“네?”

최민혁 실장은 미래에 있을 정치 공작 이슈를 떠올렸다. 처음에는 거짓 제보로 시작했는데, 결국 그걸 진실로 만들어서 상대를 감방에 보내는 거 말이다.

최문경 부회장이 꼭 그렇게 못 할 것이라 장담할 수는 없었다.

“우리 큰아버지를 얕잡아 보지 마세요. 절대 포기하지 않는 사람이니까.”

김명준 과장은 내심 ‘최민혁 실장님이 더하십니다!’라고 생각했지만 그걸 말하지는 못했다.

“…너무 걱정이 많으십니다.”

최민혁은 피식 웃었다.

“이번 일은 어떻게 보면, 농작물 수확이나 다르지 않습니다. 마지막까지 절대로 방심하지 말고, 철저하게 지켜보세요.”

“…알겠습니다.”

“특히 샐로먼 브러더스는 얕잡아 보면 안 됩니다. 아무래도 국제적으로 노는 애들이니까. 지금 중국 쪽의 투자 역시 그런 연장선의 하나입니다. 다만 오히려 기회일 수가 있어요. 중국 공산당 측과 긴밀한 이야기를 했는데, 이제 와서 사업을 다 접는 건 중국 공산당을 엿 먹이는 행위이니까.”

“중국 공산당이 이를 갈겠군요.”

“네. 그게 아마 대단히 큰 부담일 겁니다.”

‘거기에 한부 그룹’ 역시 빼놓을 수가 없었다.

최민혁 실장은 이들의 역학 관계를 잘만 이용한다면 샐로먼 브러더스에게 치명타를 줄 수 있는 것 같았다.

‘그들이 최문경 부회장을 손절매하게 만들어야 해. 아니면 최소한 관계가 나빠지도록만 해도 나쁘지 않아.’

* * *

제임스 러너 이사는 데릭 모건 이사와 데니스 샐로먼 이사를 호출해서 최문경 부회장과 한 일을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그는 눈치라고는 모르는 사람인데, 오늘만큼은 두 사람의 눈치를 봤다.

심지어 그 싫어하는 데니스 샐로먼 이사에게도 살갑게 굴었다.

데니스 샐로먼 이사는 평소와는 달리 입을 딱 벌린 채 경악했다. 다행이라면 이 일은 자신과 그다지 관련이 없었다.

데릭 모건 이사는 대화를 듣는 내내 계속 한숨을 내쉬었다.

그 역시 바보는 아니었다. 차세대 이동통신 정보를 얻자 자신의 인맥을 총동원해서 확인까지 했다.

확인하면 할수록 나오는 것은 비관적인 사실이었다.

‘줄리엇 로버트슨 회장이 그래서 조용히 움직이고 있었구나. 하, 돌겠네.’

그런데 자신은 줄리엇 로버트슨 회장과는 많이 달랐다.

IP 시티폰만이 아니라 이 사업을 이용해서 중국 정부 쪽에도 연결 고리를 만들었다.

만약 갑자기 이 사업을 접는다면, 손실만이 문제가 아니었다.

자칫하면 중국 공산당에게 찍힐 수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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