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니 시스템, 무인 항법 시스템, 인공지능, 신경 제어 칩, 컨트롤 칩이 다양하게 결합된 결과물이 바로 KALI 2.0이었다.
조창호 차장은 불가능한 프로젝트라고 늘 말하고 다닐 정도로 어렵다.
이 결과물은 스티븐의 기조연설과는 전혀 다른 것이었다.
최민혁 실장은 전생의 기억과 교차 검증하면서 이 기술의 가치가 차세대 이동 통신 못지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ARN에도 적용이 가능해. 가만, 이미 ARN 연구 팀에서도 합류했구나.’
그랬다.
ARN 연구 팀 20명이 슬그머니 KALI 2.0 프로젝트에 합류해 있었다.
조창호 차장이 이들 칩 개발 실장 역할을 맡았고 말이다.
이지수 박사, 헬렌, 조창호 차장이 이룬 성과물은 눈부시다는 말로도 부족했다.
최민혁 실장은 스티븐의 기조연설을 최대한 이용한 결과물에 눈을 쉽게 떼지 못했다.
‘하, 이럴 수도 있구나.’
그가 원래 송도연을 이용해서 기조연설에 써먹으려고 한 것은 MP3 홍보 때문이었다.
그런데 이제는 본말이 전도되어서 MP3보다 KALI 2.0이 더 중요해졌다.
물론 이 KALI 2.0을 이루는 요소 중의 하나가 MP3, PEG-2였다.
전혀 관계가 없지는 않았다.
다만 아쉬운 점은 있었다.
너무 방대한 연구 결과라서 구체적으로 뭘 적용해야 할지 정하기가 힘들었다.
‘뭐, 이건 다른 연구 팀에서 활용할 수 있도록 해주면 되겠지. 당장 ARN 기술에 업그레이드될 테니까. 그건 ARN 가치에 큰 영향을 주지.’
다른 말로는 ARN 주식 가치가 시간을 두고 폭등한다는 뜻이다.
KMBOOK의 연구 성과는 굳이 자신이 지시할 필요가 없었다.
최민혁 실장은 새삼 자신이 KMBOOK 연구에 굳이 손을 댈 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심지어 그는 굳이 서두를 필요도 없었다.
그는 이보다 자신이 벌여놓은 일이나 함정으로 이용한 성과물을 정리하는 것이 오히려 낫다는 것을 깨달았다.
‘IP 시티폰도 이제 정리를 해야지.’
다만 조금 아쉬운 점은 존재했다.
할 수만 있다면 3~4년 묵혀 놨다가 터뜨리는 것이 훨씬 나은 대안이었다.
그런데 이게 또 그러기도 쉽지가 않았다.
휴대 통신 서비스는 결과가 좋지 않았다.
이제 겨우 10만 돌파니, 뭐니 그런 이야기가 나왔다.
오히려 IP 시티폰이 기존 시티폰보다 IP 기능을 활용했다는 측면에서 강점을 보였다.
특히 중국 쪽에 시범 서비스를 한 덕분에 가입자 숫자가 200만 명을 돌파했다.
이 뉴스 덕분에 국내에서 IP 시티폰을 바라보는 시각이 좀 달라졌다.
다만 역시 말이 나오는 것은 패킷 통신이다.
특히 차세대 이동통신에서는 이 패킷 통신을 포함하고 있다.
아무래도 이론적으로 두 서비스 간의 비교 우위가 확 드러난다.
다만 다들 아직은 나온 성과를 기준으로 볼 때 결론을 내리기가 어려울 것이다.
최민혁 실장은 이 점을 활용한다면 꽤 재미있는 결과가 나올 것으로 생각했다.
그는 김명준 과장을 호출해서 최근까지 진행한 결과를 원점부터 확인해 보았다.
“일단 정경수 전 감찰부장 상황은 어때요? 일이 완전히 매듭지어진 건가요?”
“재정 경제원이 작정해서인지 잘 마무리가 된 것 같습니다.”
“외압 때문에 감찰부장이 물러나는 일인데, 대검찰청에서는 아무런 말이 없어요?”
“네. 아무래도 그 배후가 최민혁 실장님이라는 이야기가 퍼져서 그런지 다들 눈치만 보는 중입니다. 괜히 찍히는 것을 피하려는 것 같습니다.”
“혹시 저에 대한 불법 내사 때문인가요?”
“…네.”
내사는 불법이다.
더욱이 최민혁 실장은 아무런 죄를 짓지도 않았고 말이다.
만약 외부에서 이 사실을 안다면 대검찰청은 미사일이라도 맞은 것처럼 난리가 날 일이다.
게다가 최민혁 실장이 그 사실을 안다는 것이 문제였다.
최민혁 실장의 성격을 봐서는 이 일을 이용해서 대검찰청을 완전히 해체하고도 남으니까.
최민혁 실장은 예상치 못한 오해 때문에 한숨을 내쉬고 말았다.
“제가 대검찰청을 어떻게 건드립니까? 그 사람이 저를 이상한 괴물로 보는군요.”
“국세청의 상황을 보면 그렇게 말하기도 힘듭니다.”
“그 경우와는 좀 다르죠.”
“국세청이나 검찰청이나 똑같습니다.”
“정말 그렇게 생각합니까?”
“…….”
김명준 과장은 딱히 반박하지 않았다. 그는 지금 최민혁 실장이 왜 다 끝난 일을 걸고넘어지는지 솔직히 그게 이상했다.
최민혁 실장이 씩 웃었다. 그도 막상 자신이 지금 하려는 일이 꼭 오해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하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이번 정경수 전 감찰부장 일 말입니다. 이대로 끝낼 수는 없죠. 우리 부회장님의 작품이니, 한 번 더 삶아서 끓여봅시다.”
“…어떻게 말입니까?”
“IP 시티폰의 치명적인 약점을 거론해서 우리 최문경 부회장을 흔들어보는 거죠. 어떻게 해서라도 절 공격하게 말이죠. 제가 만약 검찰에 체포된다면, 차세대 이동 사업도 차질이 생기잖아요.”
“…설마 바보가 아닌데, 그렇게까지 움직일까요?”
“그렇게 하게 만들어야죠. 김 과장님이… 아니다, 조 팀장에게 정경수 감찰부장을 한번 만나 보라고 하세요. 아, 만나기만 하면 됩니다. 상황 체크 형식으로 말이죠. 그리고 그 정보를 우리 부회장님에게 흘리세요. 그러면 참 생각이 많아질 겁니다.”
“…알겠습니다.”
김명준 과장은 최민혁 실장의 얼굴에 떠오른 흉악한 미소를 보자 혀를 차고 말았다.
‘…꼭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나?’
* * *
김명준 과장은 딱히 최민혁 실장의 계획을 좋아할 수가 없었다.
그 지시를 들은 조성돈 팀장 역시 마찬가지다. 하지만 그는 별다른 반론을 제시하지 않았다.
이제까지 최민혁 실장 옆에 있으면서 많은 것을 봐왔기 때문이다.
그는 정말 정경수 감찰부장을 조용히 만났다.
그 자리에서 몇 가지 안부와 앞으로의 방향에 관해서 이야기했고 말이다.
“정말입니까? 하면 최민혁 실장님이 이전 일을 다 잊기로 한 겁니까?”
“그건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이 일을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정 감찰부장님이 물러난 것도 고려한 것 같습니다.”
“그래요?”
“네. 최민혁 실장님은 정 감찰부장님이 왜 그만둔 것인지 이해할 수가 없다고 했습니다.”
정경수 감찰부장은 피식 웃고 말았다. 그는 조성돈 팀장이 하는 말이 잘 들어보면 교묘하게 사실을 피해 간다는 것을 깨달았다.
‘내가 녹취하고 있다는 것을 아는 걸까?’
정경수 감찰부장은 만약을 대비해서 두 사람의 대화를 녹음 중이었다.
하지만 조성돈 팀장은 그것까지는 모르는 것 같았다.
“사실 최 실장님은 다른 점을 걱정 많이 했습니다. 차세대 이동통신 말입니다. 만약 검찰에서 일이 터지면, 그 일이 연기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차세대 이동통신이라면 설마 3G 서비스를 말하는 겁니까?”
“오, 아시는군요.”
“…간혹 기술 뉴스에서 언급되니까요. 하지만 이제 시작한 2G가 걸음마 단계인데, 벌써 3G가 가능한 겁니까?”
“그렇죠. 그래서 최민혁 실장님이 참 대단한 거죠. 다들 이 일 때문에 난리입니다.”
“…네.”
IP 시티폰 이야기도 장황하게 늘어놓았다.
정경수 감찰부장은 왜 최민혁 실장에 대한 내사가 진행되다가 중단된 것인지 뒤늦게 깨달았다. 당장 2G 서비스만 해도 한국만이 아니라 일본, 미국을 비롯한 여러 국가가 연결되기 때문이다.
그는 결국 최민혁 실장의 진정한 영향력과 능력을 알자 잔뜩 쫄아서 조성돈 팀장의 이야기를 듣기만 했다.
그로서는 전혀 상상도 못 한 일이었다.
그는 자신이 예상도 못 한 일에 엮였다는 것을 깨닫고는 혀를 찼다.
‘젠장, 완전히 꼬였네.’
* * *
정경수 감찰부장은 최민혁 실장 내사와 관련된 일이 영 지저분하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그는 권재홍 비서실장이 자신을 찾아와도 이상하지 않다는 것도 알았다.
다만 그는 자신이 해 준 말에 권재홍 비서실장의 얼굴을 조심스럽게 살폈다.
“정말 단순 안부만 물었다는 말입니까?”
정경수 전 감찰부장은 그의 표정을 살피고서야 조성돈 팀장의 말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이제 이 일에 관여하는 것 자체가 피곤했다.
“그게 좀 이상했습니다.”
“외압이라든지, 협박은 없었습니까?”
그는 권재홍 비서실장과 이야기하다가 이대로 넘길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전혀요. 아, 혹시 성환수 보좌관 대화 녹취록이 있는데, 한번 보여줄까요?”
권재홍 비서실장은 실제로 녹취록 전부가 아닌 일부를 받았다. 그로서는 이 상황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최민혁 실장의 행동이 앞뒤가 맞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경수 전 감찰부장도 한 가지 점에 고개를 갸웃했다.
“참, IP 시티폰 이야기를 했습니다.”
“네? 그 이야기는 뭐죠?”
“차세대 이동통신하고 IP 시티폰이 겹친다는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그 일 때문에 최문경 부회장이 압박할 수도 있다고…….”
“차세대 이동통신을 막기 위해서 정경수 감찰부장님의 사임을 이용할 수 있다는 소리입니까?”
“네. 전 그렇게 들었습니다. 다만 그 내막까지는 잘 몰라서…….”
“…네.”
권재홍 비서실장은 잔뜩 굳은 얼굴을 한 채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그로서는 전혀 생각을 못 한 일은 아니었다.
다만 정경수 감찰부장의 사임은 이미 끝난 일이라서 간과한 것뿐이다.
‘그런데 정경수 감찰부장 사임을 염려했다는 소리인가? 하긴 최민혁 실장이 직접 재정 경제원에 손을 썼다는 이야기가 있으니.’
“…알겠습니다. 으음, 외람된 질문인데, 앞으로 어떻게 하실 생각입니까?”
정경수 전 감찰부장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이번 일을 잘만 이용하면 최문경 부회장에게 한자리 얻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일테면 KM 그룹 법무 팀 이사 자리 말이다.
그런데 결과적으로 상황이 복잡하게 꼬여 있었다.
자신은 해보기도 전에 감찰부장을 사임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이 넘긴 녹취록의 일부 파일이 아니라 파일 전체 이야기를 하려다가 조용히 입을 다물고 말았다.
“…변호사 개업이나 해야죠.”
권재홍 비서실장은 아직 확실치 않은 녹취록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흐음, 알겠습니다. 제가 다시 연락드리겠습니다.”
“네!”
정경수 전 감찰부장은 권재홍 비서실장 눈치만 봤다. 그는 잘만 하면 기회를 또 얻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하긴 재정 경제원의 외압 때문에 그만뒀으니.’
* * *
최문경 부회장은 최근 정경수 감찰부장을 이용한 계획 때문에 딴 일에 신경 쓰지 못했다. 그는 이번에는 반드시 최민혁 실장을 감방에 보낼 것이라 믿었다.
아니면 유치장에라도 보내서 그 이슈를 좀 더 키울 생각마저 했다.
그런데 아니나 다를까 결과는 실패였다.
‘하, 정말 일이 쉽지가 않네.’
하지만 최문경 부회장은 정경수 감찰부장 일을 쉽게 잊지 않았다.
외압을 받아서 사임한 일이니.
이 사건을 최민혁 실장과 잘 엮기만 해도 최민혁에게 한 방 먹일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 일이 진행 중에 차세대 이동통신 이슈가 터졌다.
그로서는 정말 카운터를 제대로 맞았다.
솔직히 불안하기는 했다.
그는 여러 대학 연구소에서 용역을 맡겨서 분석까지 해보았다.
하지만 이제 막 시작 단계인 이동통신 서비스와 IP 시티폰을 비교하기가 쉽지 않았다.
오히려 IP 시티폰이 매출 현황만 봤을 때는 훨씬 나았다.
중국의 사용자 200만이 그 증거였다.
최문경 부회장은 때문에 갈피를 잡을 수가 없었다.
더 심각한 문제는 이미 겁을 집어먹고 투자를 철회한 이들이다.
‘타이거 펀드 이 개새끼들은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어.’
그 대표 주자가 타이거 펀드였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대놓고 투자 자금을 회수하지는 않았다.
그것은 그들에게도 손해이니까.
결국 중국의 급증한 사용자를 이용해서 물타기 중이었다.
하지만 상황이 여기서 끝은 아니었다.
KD 통신에 꽤 많은 자금을 출자한 오성 전자 역시 눈치를 보는 중이었다.
자칫하면 아차 하는 순간에 KD 통신이 공중 분해될 수도 있었다.
최문경 부회장은 때문에 이 일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쉽게 판단을 내릴 수가 없었다. 일단 당장 지분을 매각하기도 쉽지 않았고, 정리한다 해도 손실이 너무 컸다.
‘샐로먼 브러더스도 만만치 않게 엮여 있잖아. 이미 투자금을 회수하기에는 늦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