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재벌 3세는 조용히 살고 싶다-1011화 (1,011/1,021)

최민혁 실장은 스티븐의 기조 연설, 에플의 CES 전시회에 신경 쓰는 중에 이런 잡다한 입을 접했음에도 오히려 피식 웃었다.

‘우리 최 부회장이 벼랑 끝으로 몰렸다는 신호니까. 샐로먼 브러더스 역시 예외는 아니고. 그러니 이렇게 날 물고 늘어지겠지.’

이럴 때일수록 조급해져서는 곤란했다.

다만 전생에서는 그러지 못했다.

자신의 성미를 견디지 못해서 무리수를 뒀다가 오히려 역공을 당한 경우가 많았다.

새로운 아이템으로 다시 도약할 수 있을 때, 그런 일을 당했으니.

그때는 최문경 부회장에 대해서 치를 떨었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 보면 최문경 부회장을 탓할 문제만은 아니었다.

자기 스스로 여유를 가지고 사건을 풀어나갔다면 그런 일은 생기지 않았을 테니까.

이 대검찰청 문제가 그랬다.

검찰 조직은 결코 만만히 봐서는 안 될 곳이다.

최민혁 실장은 그제야 좀 마음이 편해졌다. 그는 보고서를 느긋한 시선으로 살폈고, 역시 미묘한 문제를 찾아냈다.

“…대놓고 대검이 절 수사한 것은 아니군요.”

“최민혁 실장님이 불법을 저지른 것은 없으니까요. 다만 과거 주식 매매할 때 작전주 몇 곳이 있었지 않습니까? 그걸 계속 파고든 것 같습니다.”

“설마 절 주가 조작범으로 엮으려고 한 겁니까?”

“네. 그렇게 조사했지만, 결과적으로 최민혁 실장님과의 연결 고리를 찾지 못했습니다.”

주가 조작을 한 세력과 최민혁 실장과는 연결 고리 자체가 없었다.

아무리 검찰이라고 해도 없는 죄를 만들어 내지는 못한다.

물론 정말 하려고 하면 못 할 것도 없다.

다만 상대가 억만장자 최민혁 실장이라는 게 문제였다.

어설프게 공격했다가는 대검찰청이 날아갈 수도 있기 때문이다.

최민혁 실장은 그제야 박두영 부장검사가 왜 몸을 사린 것인지 알았다.

다만 그는 자칫 무리수를 둔다면 오히려 안 좋은 상황에 놓일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때문에 다시 한번 더 보고서를 꼼꼼히 읽어 봤다.

“…결국 차선책으로 박두영 부장검사를 선택했군요. KM 전자, 에플 주식으로 재미를 단단히 봤으니, 뭔가 비리가 있다고 생각했고요.”

“맞습니다. 다행이라면 박두영 부장검사가 처신을 제대로 한 덕에 별다른 혐의점을 찾지는 못했습니다. 최근 대검에서도 결국 박두영 부장검사에 대한 수사를 포기했고 말입니다.”

최민혁 실장은 보고서에 적힌 박두영 부장검사의 차익을 확인하고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서, 설마 100억이 넘은 겁니까?”

“…KM 전자 초기 주식 매입 멤버였고, 에플 주가가 1달러일 때 사들였습니다. 그러니 차익 규모가 엄청날 수밖에 없습니다.”

“대단하네요. 김 과장님은 제 옆에 있으면서 정보를 다 듣고도 이런 이익을 실현하지 못했잖아요?”

김명준 과장은 혀를 찼다.

“…인정하겠습니다.”

“그러게 뭐 했습니까. 옆에서 먹거리 주면 알아서 챙겨야죠.”

“…죄송합니다.”

최민혁 실장은 김명준 과장이 스스로 자책하는 모습을 보자 피식 웃었다. 그도 김명준 과장이 저런 감정 변화를 보이는 것을 처음 봤다.

‘하긴 박 부장검사가 생각보다 돈을 많이 벌었어. 내 경우와도 또 다르잖아.’

“이 정도 금액이라면 좀 문제가 되겠어요. 상식과 맞지 않으니. 결국, 이것을 명분으로 여전히 포기하지 않은 인간이 있다? 그게 정경수 대검 감찰부장이란 말인가요?”

“박두영 부장검사 말이 맞다면, 아마 사실일 겁니다. 야심이 많은 인물이라서 더 그런 것 같습니다.”

“탐욕이 많은 검사군요.”

“꼭 그렇지도 않습니다. 최문경 부회장이 손을 썼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최민혁 실장은 그다지 놀라지 않았다. 최문경 부회장이라면 당연히 쓸 수법이었다.

이제까지는 박두영 부장검사를 앞세워서 방어한 터라 문제가 없었다.

게다가 최근 차세대 이동통신 문제로 검찰 문제를 소홀히 했는데, 그사이에 일이 터진 것이었다.

“우리 첫째 큰아버지가 말인가요? 그분이라면 그럼 꼼수를 쓸 만하군요.”

“이미 몇 달 전부터 검찰 쪽과 계속 만났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아마 그 일이 최민혁 실장님을 타깃으로 삼기 위한 움직임이었던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이번 최영란 본부장님 때문에 더 매달린 것 같습니다.”

“아, 그럴 수도 있겠군요. 복수 차원이라. 당연히 일어날 일이죠. 대검 분위기가 어수선해서 사전 정보를 얻지 못했겠군요.”

그는 턱을 쓰다듬으면서 고민했다. 가볍게 볼 일은 아니었다.

박두영 부장검사를 고른 건 나쁜 선택은 아니었다. 차라리 다른 검사보다는 박두영 부장검사가 무럭무럭 자라는 것이 훨씬 나았다.

“그러면 보자. 누가 좋을까요. 검찰에 압박을 넣을 수 있는 인물 말입니다. 아, 꼭 검찰 쪽 본인이 아니어도 되니, 으음, 이환채 재정경제원 차관은 어때요?”

김명준 과장은 모호한 표정을 지었다.

“다른 인물이 좋지 않을까요? 그쪽하고는 너무 많은 일이 있어서…….”

최민혁 실장은 오랜만에 전생의 기억을 살펴보았다. 마침 괜찮은 정보를 찾아냈다.

“그럴 수도 있죠. 하지만 사람은 별반 차이가 안 날 겁니다. 더욱이 재정 경제원은 지금 경제 위기 상황을 덮기 위해서 다양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어요. 그중에 연구 개발과 관련된 부분도 있죠. 차세대 이동통신 표준이라면, 거절하기 힘든 제안일 겁니다.”

“설마 한국 정부도 이번 일에 끌어들일 겁니까?”

최민혁 실장은 피식 웃었다. 그도 뒤늦게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에플 지분 매각 처리 때문에 서두르다가 간과한 점 말이다.

“아니, 차세대 통신 사업을 하면서 정부 빼고 할 수 있다고 생각하세요? 아무리 미국 정부와 비교하면 쓸데없다고는 해도 한국 정부를 빼놓기 어렵죠. 한 번 약속을 잡아보세요. 그렇게 거절하지는 않을 겁니다.”

“…네.”

***

최민혁 실장의 추측은 틀리지 않았다.

최근 한껏 말이 많이 나온 한국 경제 위기 상황 덕분에 재정 경제원은 요즘 정신을 반쯤 놓고 있었다.

이들은 결국 청와대의 요청에 따라서 과학 기술 혁신 특별법까지 만든 후에 이를 명분 삼아서 국면 전환을 모색했다.

이 법안의 의미는 아주 간단했다.

연구 개발 투자 비용을 대폭 늘린다는 것이니까.

이 안에는 당연히 정보 통신과 관련된 내용도 포함했다.

다만 정부에서 진행하는 일이니만큼 효율 자체는 별로 없었다.

그저 국가 보조금만 노리는 이들이 대다수였다.

보기에만 그럴듯한 계획을 가진 이들인 것이다.

하지만 재정 경제원 입장에서는 늘 해오던 일이라서 다른 대안이 없었다.

물론 실제로 도움이 될 만한 기업은 없었다. 이들은 괜히 정부와 엮여서 좋을 것이 없다고 생각한 것이었다.

이환채 재정 경제원 차관은 의도한 바와는 다른 분위기에 당황했다.

다만 흥미로운 것은 이런 중에 알게 된 한 가지 사실이었다.

바로 ETRI에서 차세대 이동통신 표준 작업을 한다는 소식 말이다.

심지어 테스트 시제품까지 만들어서 테스트한다는 이야기가 있었다.

너무 황당한 내용이라서 성환수 보좌관을 직접 ETRI에 보냈다.

“오현종 팀장을 만나서 이야기를 해봤는데, 제대로 말을 안 합니다.”

“…그게 도대체 무슨 소리야? ETRI는 정부 기관 연구소 아냐?”

“외부에서 투자를 받아서 진행한 프로젝트라서 어쩔 수가 없다고.”

“…….”

이환채 재정 경제원 차관은 황당해서 한동안 입을 열 수가 없었다.

일단 ETRI가 진행한 연구 시작 자체부터 잘못된 것이다.

정보 통신 관련 사업을 하면서 윗선에 보고를 하지 않았다는 것이 말이 안 된다.

심지어 그 중간 과정은 아예 정부 쪽과는 담을 쌓았고 말이다.

그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질문했다.

“…설마 그 투자처가 최민혁 실장이란 소리는 아니겠지?”

“…맞습니다.”

이환채 차관도 결국 분노해서 소리쳤다.

“뭐? 그게 도대체 무슨 소리야?! 차세대 이동통신같이 국가적인 프로젝트를 민간 투자자에게 투자를 받아서 진행했다고?!!!”

성환수 보좌관은 얼굴을 들지 못했다. 이건 그의 실책이 컸다. 특별법을 만들면서 관련된 ETRI 측 실무진과 이야기를 해봐야 했다.

아니, 검토하기는 했지만 대충 했다.

뒤늦게야 안 진실은 황당 그 자체였다.

“정확히는 ETRI 측에서 개발을 시작한 것이 아닙니다. 최민혁 실장이 KM 전자 인력과 기술을 이용해서 진행한 일이라고 합니다.”

“아니, 그러면 ETRI 측에서는 도대체 뭘 한 거야?!”

“그게…….”

성환수 보좌관은 망설였지만 이환채 차관의 차가운 눈을 보자 다급하게 말했다.

“ETRI 측은 CDMA 관련 시스템을 개발한 경험이 있는 터라 그 부분만을 담당했다고 합니다. 실제로 핵심 기술은 최민혁 실장이 다 제안했습니다!”

이환채 차관의 상식으로는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차세대 이동통신이 그렇게 쉽게 될 것 같았으면 정부에서 고민하지 않을 리가 없다.

현실성이 너무 많이 떨어져서 가능성이 없다고 순위에서 밀린 것이었다.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하아, CDMA도 그랬다고 했지.”

아이러니한 사실이지만 CDMA 관련 연구에서 ETRI는 어떻게 보면 시다바리 역할만 했다. 핵심은 최민혁 실장이 다 했고 말이다.

있다고 한다면 퀄컴이 알아서 도와준 부분이 꽤 있다.

그런데 퀄컴 오너 역시 최민혁 실장이기도 했으니.

이환채 차관은 또다시 반복되는 이 악순환을 믿을 수가 없었다.

그는 최민혁 실장을 정말 이대로 놔두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 역시 간간이 듣기로는 최민혁 실장에 대한 검찰의 움직임이 있다는 것을 알기에 김웅배 장관에게 직접 보고하기로 했다.

‘최민혁 실장에게 빨리 손을 써야 해.’

다만 그런 그도 버몬 연방 검사의 사임 소식을 듣자 그럴 수가 없었다.

그는 최민혁 실장의 술수에 이젠 공포마저 느꼈다.

김명준 과장에게서 전화가 온 것이 딱 이 무렵이었다. 최민혁 실장과의 미팅 제안이었다.

그로서는 거절할 수 없는 제안이었다.

[…알겠습니다.]

***

이환채 차관은 김웅배 장관의 최측근인 인물로, 재정 경제원 내에서 고위 관료였다. 그는 기업가가 오라고 한다고 해서 갈 사람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 반대가 정상이었다.

기업인이 재정 경제원을 직접 찾아와서 을이 되어야 했다.

하지만 최민혁 실장은 이야기가 전혀 달랐다.

그가 을이 되어야 했다.

그는 급한 마음에 성환수 보좌관만 대동한 채 최민혁 실장의 별장을 향했다.

시골 한구석에 위치한 이 별장은 대략 300평 넓이의 전원주택이었다. 거기에 최근 실내 장식을 새로 한 터라 여타 시골 건물과는 많이 달랐다.

최민혁 실장은 이 저택 정원에서 다과를 마시는 중이었다.

이환채 차관은 차를 주차하게 시킨 후에 조심스럽게 최민혁 실장에게 다가가서 인사했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정중했다.

그 어떤 불만도 그의 얼굴에는 보이지 않았다.

회의 자리에서는 최민혁 실장을 그렇게 씹었고, 필요하다면 검찰까지 동원해서 압박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런데 이 자리에서는 마치 영업 사원같이 활짝 웃었다.

“그러게요. 앉으시죠.”

하지만 최민혁 실장은 자리에서 일어나지도 않았다. 심지어 인사조차 하지 않았다. 재정 경제원 차관을 면전에 두고 말이다.

하지만 이환채 차관은 오히려 최민혁 실장의 눈치를 보면서 맞은편에 앉았다.

성환수 보좌관은 영 불편한지 이환채 차관 등 뒤에 조용히 섰다.

두 사람은 차세대 이동통신에 어떻게 해서라도 숟가락을 올리고 싶었다.

이왕이면 이 프로젝트에 몇 년 전부터 투자했다고 말해주면 더 좋고 말이다.

사실 말도 안 되는 일이지만 그렇게 해야 한다. 차세대 이동통신에 정부가 관여하지 않았다면 그게 진짜 무능한 일이었다.

‘생각해 보니, 이거 정말 큰일이구나. 최민혁 실장이 독단적으로 개발했다면 그냥 바보가 되잖아?’

최민혁 실장은 힐끗 두 사람의 표정을 조용히 살폈다. 차세대 이동통신에 대한 정보를 얻은 것이 분명했다. 그렇다면 두 사람이 할 고민은 뻔했다.

그는 오히려 시간을 질질 끌면서 두 사람이 더 초조해지기만을 기다렸다.

초조라는 꽃이 싹을 틔울 시간 말이다.

이환채 차관이 참다못해서 성환수 보좌관에게 눈짓했다.

최민혁이 마침 그 모습을 봐서 선수 쳤다.

“검찰에서 절 내사한다는 소문이 있더군요.”

이환채 차관은 무슨 말부터 해야 할지 최민혁의 눈치만 보다가 화들짝 놀랐다.

“네? 그, 그게 무슨 말입니까? 내, 내사라뇨, 그건 말도 안 됩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