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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 3세는 조용히 살고 싶다-1010화 (1,010/1,021)

차세대 이동통신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KD 통신 말이다.

KM 그룹 기획 조정실은 발칵 뒤집혔고 말이다.

“자, 장 실장, 정말 이 사실을 몰랐어?!!!”

장승일 실장은 아침부터 찾아와서 자신의 멱살을 잡고 흔드는 최문경 부회장의 행동에 그저 흘러내린 안경만 위로 올렸다.

“저도 안 지 얼마 되지 않습니다.”

“그게 말이 돼? 차세대 통신 개발할 때 들어가는 자본과 인력이 어디 한두 푼이야? 이걸 봐. 일본 정부가 하는 걸 보라고!”

최문경 부회장이 비교 상대로 내놓은 자료는 일본 정부가 진행하는 차세대 이동통신 관련 자료였다. 정확히는 표준화 자료였다. 일본은 자체 표준화 서비스 작업에 착수한 것이었다.

교활한 점은 유럽을 끌어들였다는 점이다.

혹시라도 갈라파고스 군도처럼 될까 봐 잔술수를 굴린 것이었다.

장승일 실장 역시 조사해서 안 사실이었다.

“…그건 아직 시작 단계입니다. 실상 미국 역시 자신만의 차세대 이동 통신 표준화를 진행하는 것으로 압니다. 아직 하나도 결정된 바가 없습니다.”

“아니, 그러면 민혁이 그놈은 뭔데? 도대체 그 기술은 어디서 튀어나온 거야? KM 전자에서 분명히 자본과 인력을 퍼부었을 텐데, 아니, ETRI 쪽과 협업했다는 것은 또 뭐야? 그걸 KM 그룹 컨트롤 타워에서 몰랐다는 것이 말이 돼?!”

“…….”

장승일 실장은 입을 쿡 다물고 말았다. 그 역시 자괴감을 느끼는 부분이었다. 아니, 솔직히 최민혁 실장에게 배신감마저 느꼈다.

‘그렇게 고생해서 최 실장님을 도와줬는데…….’

최문경 부회장은 그제야 장승일 실장의 표정이 바뀐 것을 확인하고는 멱살을 놔주었다.

그는 자신을 뚫어지게 쳐다보는 기획 조정실 직원들을 힐끗 째려봤다.

다들 시선을 돌리기 급급했다.

그제야 최문경 부회장은 자신이 지나쳤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도 이건 정말 아니었다.

“그래, 민혁이랑 내 사이가 나쁜 것은 인정해. 하지만 그래도 KM 그룹 내의 같은 소속이잖아. 그룹 차원에서 영향을 받은 일을 몰래 한다는 것이 말이 돼? 아버지도 이 사실을 몰라!!!”

“…보안 때문에 그랬을 겁니다.”

“하, 장 실장, 아직도 민혁이 그놈을 옹호하는 거야? 진짜 한심하다!”

하지만 장승일 실장은 태도를 바꾸지 않았다.

“…전 다 이유가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어쩌면 최 부회장님에게 정보가 흘러… 아, 아닙니다.”

“하, 씨발, 장 실장, 정말 너무한 것 아냐? 날 도대체 어떤 놈으로 보는 거야? 내가 그룹 차원에서 다루어야 할 보안 사안을 외부에 막 흘릴 거로 생각해?!!!”

장승일 실장은 ‘네’라는 말이 턱끝까지 올라왔지만 번들거리는 최문경 부회장의 얼굴을 보자 차마 그러지 못했다.

최문경 부회장은 그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는지 한 시간 가까이 횡포를 부리다가 결국 기획 조정실을 나가고 말았다.

구길모 차장이 그제야 다가왔다.

“괜찮습니까?”

“아니, 솔직히 기분이 안 좋아.”

“…최민혁 실장님이 이렇게 일을 처리한 이유가 있을 겁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최용욱 회장님이 방문했을 때 보여주지 않았던 프로젝트가 차세대 통신 프로젝트였을 겁니다.”

“그럴지도.”

하지만 그도 오늘만큼은 최민혁 실장에게 이야기를 듣고 싶었다. 솔직히 이 상황이 답답했다. 게다가 차세대 이동통신 기술을 살피면서 확인한 몇 가지 걱정되는 바를 잊을 수가 없었다.

‘최 실장님은 이게 IP 시티폰과 겹치는 것을 안다면 왜 사전에 그 정보를 말하지 않은 것일까? 아니, 정말 몰랐던 것일까? 아니면 차세대 프로젝트 성과가 몇 년 후에나 생길 일이라고 생각한 것일까?’

“최 실장님에게 연락해서 약속을 잡아.”

“…지금 방문하시게요?”

“어.”

* * *

장승일 실장은 의외로 최민혁 실장이 KM 전자 본사에 있다는 연락을 받자 구길모 차장만 대동한 채 득달같이 달려갔다.

“와, 오랜만입니다. 잘 지내셨죠?”

“네. 최 실장님 덕분에 요즘 정신이 없습니다.”

“어? 그래요? 혹시 우리 최 부회장이 깽판을 또 쳤나요?”

“최민혁 실장님 일 때문에 저를 열심히 괴롭히더군요.”

“아, 저런.”

최민혁 실장은 그다지 놀란 얼굴이 아니었다. 그는 영 심드렁한 표정이었다. 당연히 최민혁 실장으로서는 속내를 내보일 수가 없었다. 차세대 이동통신은 당장 KD 통신하고 사업이 서로 겹쳐서 문제가 된다.

그 사실을 자신이 사전에 알았다고 하면 곤란해질 게 뻔했다.

장승일 실장도 어지간해서는 속내를 잘 드러내지 않았지만, 이번만큼은 한 가지를 확인하고 싶었다.

“저에게 귀띔이라도 해줄 수 있지 않았습니까?”

최민혁은 단단히 삐친 장승일 실장의 표정을 보면서 잠깐 침묵했다.

그는 장승일 실장이 이전과는 사뭇 다른 표정인 이유를 모를 수가 없었다.

솔직히 그도 가끔 눈곱만큼 고민하기는 했다.

“으음,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보안 때문입니다. 뭐, 눈치를 챘겠지만, 차세대 이동통신 표준은 KD 통신하고도 사업권이 겹치니까.”

“하면 차세대 이동통신 관련 정보를 알면 최문경 부회장이 투자를 철회할 것이라 예상한 겁니까?”

명확한 사실은 아니다.

실제로 직접 경쟁해 봐야 알 수 있는 부분이었다.

다만 최민혁 실장은 전생의 기억으로 그 결과를 알 뿐이다.

“그렇죠. 그게 괜한 오해의 소지도 있죠.”

물론 반드시 그렇게 될 것으로 예측했다.

다만 지금은 그런 생각을 해서는 곤란했다.

적당히 모르쇠 태도가 중요했다.

장승일 실장이 그렇게 생각하도록 말이다.

실상 KD 통신에 대한 투자 철회는 간단한 일이 아니었다.

그것은 곧 KM 그룹 전체에 대한 투자 손실로 이어진다.

그 손실 금액도 무시할 수 있는 정도가 아니었다.

‘더욱이 지금 이 시기에 최문경 부회장의 대규모 투자가 실패하면, 타격이 불가피할 거야. 당장 최민혁 실장님이 아니라 최영란 본부장님에게도 밀릴 테니까.’

장승일 실장은 어느 정도 짐작한 상황을 최민혁 실장에게 직접 듣자 한숨을 내쉬고 말았다. 최민혁 실장을 못 믿어서가 아니었다.

KM 그룹의 상황을 염려한 것이었다.

KM 그룹 자체적으로는 손실이 줄어들어서 이익이 된다.

하지만 최민혁 실장으로서는 경쟁자인 최문경 부회장을 돕는 일이었다.

굳이 그럴 이유는 없었다.

장승일 실장은 그제야 최민혁 실장이 무슨 고민을 한 것인지 깨달았다.

“…혹시나 해서 하는 질문인데, 차세대 이동통신 표준 경쟁에서 승산은 있습니까? 서로 손을 잡은 일본과 유럽, 따로 독자 표준을 준비하는 미국을 이길 수 있습니까?”

최민혁 실장은 의미심장하게 웃었다.

“장 실장님은 어떻게 생각해요? 제 승산 말입니다.”

“…솔직히 잘 모르겠습니다.”

정확히는 비관적이었다.

다만 최민혁 실장의 이전 성과를 보면 그렇게 보기는 힘들었다.

여기에 이전과는 다른 한 가지 문제가 있었다.

기존 특허는 이미 있던 특허를 사들이거나 응용한 것에 불과했다.

그런데 차세대 이동통신 표준은 아예 새로운 표준을 정립하는 일이다.

그 난이도가 비교할 바가 아니었다.

최민혁 실장은 그제야 씩 웃었다.

“판단 내리기 어렵죠? 그런 점을 고려하면, 차세대 이동통신 문제를 쉽게 말할 수가 없었습니다. 지금 결과물은 어떻게 보면 ETRI, 최병연 소장, 이지수 박사, 헬렌의 도움을 얻어서 나온 결과물로, 그 누구도 예측하기 힘든 겁니다.”

“으음.”

장승일 실장은 그제야 최민혁 실장을 이해했다. 지금이야 차세대 이동통신 결과물이 나왔다. 그런데 그 전에는 그 일을 장담하기가 어려웠을 것이다.

최민혁 실장은 어깨를 으쓱했다.

“에플 지분 매각 덕분에 문제가 생기지 않았다면, 솔직히 차세대 이동통신을 진행하지 않았을 겁니다. 인공지능이 우선이었죠. 그런데 지금 인공지능 기술로는 많은 한계가 있어요. 그 대안으로 차세대 이동통신을 택한 것뿐입니다.”

“알겠습니다. 하면 앞으로는 어떻게 하실 생각입니까?”

최민혁은 어깨를 으쓱했다.

“차세대 이동통신을 다 먹을 수는 없어요. 그건 힘듭니다. 아무래도 이권을 나눠야 할 상황으로 흘러갈 겁니다.”

장승일 실장은 그제야 자신이 하고 싶은 진짜 질문을 던졌다.

“하면 우리 KM 그룹은 아예 이 사업에 뛰어들 수 없는 겁니까?”

“…그건 잘 모르겠네요.”

최민혁 실장은 묘한 미소를 짓은 채 대답을 하지 않았다.

그가 원하는 것은 역시 그만한 이권이었다.

‘KM 그룹 지분인가? 그건 쉽지 않을 것 같은데…….’

“후유, 알겠습니다. 회장님에게는 제가 알아서 보고 올리겠습니다.”

“고마워요.”

“…다음에는 이런 일이 생길 때 최소한 귀띔이라도 해주셨으면 합니다.”

“그러죠.”

* * *

최용욱 회장은 장승일 실장이 방문해서 하는 이야기를 묵묵히 듣기만 했다. 그는 별다른 표정 변화를 보이지 않았다.

다만 KD 통신 문제가 나오자 화들짝 놀랐다.

“정말 KD 통신과 차세대 이동통신 사업권이 겹치는 건가?”

“아무래도 차세대 이동 통신 표준이 패킷 통신을 포함하기 때문입니다.”

“하면 확실한 것은 아니란 소리군.”

“아마 최민혁 실장님도 그런 사실까지 예상하지는 못한 눈치입니다.”

“정말 그럴까? 민혁이 그놈이 몰랐다고? 하면 굳이 KD 통신에 대한 투자금을 회수하라고 경고할 이유가 없잖아.”

“그거야…….”

장승일 실장도 그제야 아차 싶었다. 지금 돌이켜보면 최민혁 실장도 나름 최악의 상황에 대비해서 알게 모르게 손을 쓴 셈이다.

그때는 몰랐다.

하지만 지금 와서 보니, 최민혁 실장에게는 다 계획이 있었던 셈이다.

최용욱 회장은 새삼 손자 최민혁 실장의 노림수에 몸을 떨었다.

“내 손자지만 이제는 무서워.”

“…….”

장승일 실장은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았다. 최용욱 회장도 잠깐 고민하기는 했다. 하지만 그로서도 손자 최민혁에게 뭐라고 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기획 조정실 내에 차세대 이동 통신 프로젝트 팀을 신설해서 한번 세세하게 살펴봐.”

“최 실장님이 원하는 것은 지분인데, 그 제안을 들어주실 생각입니까?”

최용욱 회장이 피식 웃었다.

“공짜로 지분을 달라는 것도 아니잖아. 미래 가치를 고려해서 교환하자는 건데, 그 제안까지 무시할 수는 없지.”

“…알겠습니다.”

장승일 실장은 최용욱 회장의 지분 일부가 최민혁 실장에게 넘어가면, 경영권 승자는 최민혁 실장이 될 확률이 높다는 것을 깨달았다.

‘하지만 최문경 부회장이 쉽게 물러날 것 같지는 않아. 이번 대검 감찰부장 일도 있으니. 휴우, 대비를 단단히 해야겠어.’

* * *

최민혁 실장은 장승일 실장과 긴 미팅을 한 후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 역시 괜한 오해를 받고 싶지 않아서다.

‘이미 많이 늦었지. 지금 와서 투자를 철회하기란 쉽지가 않을 거야. 더욱이 확실한 것도 아니잖아. 직접 경험해 보지 않으면, IP 시티폰이 망한다는 것을 모르지.’

그는 이보다 장승일 실장이 떠난 후에 곧바로 최용욱 회장에게 보고할 것으로 생각했다.

때문에 최용욱 회장의 전화를 기다렸다.

아니나 다를까 불과 두 시간 남짓 지난 후에 최용욱 회장에게서 주의에 가까운 전화를 받고 나서는 혀를 찼다.

일단 급한 집안일부터 해결하자 그제야 박두영 부장검사 일을 떠올렸다.

‘박 부장검사 염려가 단순히 걱정은 아니었어.’

그도 가볍게 생각한 대검찰청이 자신을 노리는 줄 이제야 안 것이었다.

‘박두영 부장검사를 너무 믿었나? 아니야. 그의 직급으론 한계는 있으니까. 하긴 부장 검사로서 얻은 정보 자체는 한계가 있겠지. 아니, 대검 감찰부장 때문에 몸을 사린 건가?’

그는 다급히 김명준 과장에게 지시해서 자세한 내막을 알아 오라고 지시했다.

결과는 반나절이 채 걸리지 않았다.

“…빠르네요.”

김명준 과장은 굳은 얼굴을 한 채 말했다.

“사전에 염려되어서 검토 중인 사안이었습니다. 아무래도 검찰 쪽의 움직임이 이상했습니다.”

“어? 그래요? 설마 이번 에플 지분 매각 차익 때문인가요?”

“네. 아무래도 액수가 액수인 만큼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으려고 한 것 같습니다.”

“흠.”

최민혁 실장은 턱을 쓰다듬으면서 검찰 관련 보고서를 꼼꼼히 읽었다.

사실 그도 이런 일은 예상했다.

정치권이 그냥 있지 않으면 할 일이라곤 뻔했다.

검찰 조직을 이용하든, 아니면 국세청을 이용하려 했을 것이다.

‘국세청은 이미 넉아웃이 된 상황이니, 검찰 쪽이 맞겠지. 특히 대검이라면 아직 나에게 제대로 된 쓴맛을 보지 않았어. 거기에 윗선에서 지시를 내렸다면, 가만히 있을 이유가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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