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성돈 팀장은 뒤로 물러나면서 김명준 과장을 힐끗 쳐다보았다.
자신이 얻은 자료 태반은 김명준 과장의 정보 팀에서 올린 정보였다.
그런데 최민혁 실장은 그런 흐름조차 어느 정도 아는 것 같았다.
그러니 두 사람은 시선을 마주한 채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 뿐이었다.
‘앉아서 천 리를 본다는 사람이 있다고는 하지만 최민혁 실장님이 그런 분인지는 몰랐어.’
* * *
마이클 블룸버그 회장은 줄리엇 로버트슨 회장을 직접 만나서 최민혁 실장의 제안을 상의했다.
그런데 줄리엇 로버트슨 회장은 최민혁 실장의 제안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지금 최민혁이 처해 있는 현실을 고려하면 차세대 이동통신 사업을 MP3처럼 몰래 먹기는 힘들기 때문이다.
일단 미국 정부가 최민혁 실장의 독점을 허락할 리가 없었다.
정확히는 자신 역시 이 일을 방해할 테니 말이다.
다만 그 역시 이번 에플 지분 매각 때문에 꽤 분노했다.
이번엔 손실이 제법 컸다.
최민혁 실장이 한 이야기와는 그 규모부터가 달랐던 것이다.
사실 꼭 최민혁 실장이 에플 지분 12%를 매각해서가 아니었다.
문제가 없도록 블록딜로 조용히 거래해도 되니까.
다만 손실이야 좀 있겠지만.
하지만 최민혁 실장은 작정하고 일을 저질렀다.
그는 마이클 블룸버그 회장의 중재안을 들으면서도 그다지 믿지 않았다.
마이클 블룸버그 회장이 슬쩍 최민혁 실장에게서 받은 IP 시티폰 관련 자료를 넘겼다.
“…이건 뭡니까? 마이클 회장님의 의도는 잘 알겠지만 전 솔직히 최민혁 실장을 잘 모르…….”
하지만 그런 그도 IP 시티폰과 3G 서비스 관련 자료를 살피다가 입을 쿡 다물고 말았다.
3G 망에서 말하는 패킷 부분 때문이다.
이게 엄밀히 말하면 IP 시티폰과 겹쳤다.
두 가지 사업은 서로 분리된 것이나 영역이 어느 정도 겹친다는 소리다.
만약 3G 서비스가 본격적으로 진행된다면 IP 시티폰에 큰 타격을 줄 수 있었다.
그런데 그 역시 IP 시티폰 사업에 투자했다. 샐로먼 브러더스의 사탕발림에 놀아난 것이었다. 그런데 이건 그에게만 해당되는 문제가 아니었다. 최근 중국 투자 분위기를 타고, 꽤 많은 이들이 IP 시티폰에 투자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엄밀히 말해서 이 기술 고안자는 최민혁 실장이었다.
줄리엇 로버트슨 회장은 식은땀을 흘렸다.
“…이, 이거 정말입니까?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아직 2G 망 서비스에 잉크도 마르기 전인데, 3G 망 테스트 기기를 벌써 만들다니? 이게 말이 됩니까?!!”
마이클 블룸버그 회장 역시 한숨을 내쉬었다.
“제가 직접 확인한 결과입니다. 아니, 크리스 아몬 박사를 동행해서 검증했습니다. 크리스 아몬 박사는 여전히 한국에 남아 있습니다.”
“마, 말도 안 돼!”
줄리엇 로버트슨 회장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고 말았다.
이건 너무 나간 이야기였다.
마이클 블룸버그 회장 역시 순순히 시인했다.
“저도 직접 보기 전까지는 인정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최민혁 실장의 입장도 있지 않습니까? 요즘 마녀사냥만 당하는 처지니까요. 인공지능 기술은 수익성이 많이 남는 사업이기는 하지만 규모의 경제를 이루지 못해요. 영향력 자체는 파급 효과가 있어도 한계가 있으니까요. 그래서 아무래도 이 차세대 이동통신 기술을 공개한 것 같습니다.”
“그건 더 말이 안 되지 않습니까? 최민혁 실장이 무슨 예언가도 아닌데, 차세대 이동통신 표준을 벌써 준비한다는 말입니까?”
“예언가는 아니지만, 미리 대비했을 수도 있겠죠. 이런 상황을 말이죠.”
“으음.”
“최근 일어난 일을 보세요. 스티븐의 기조연설과 CES 전시회에 훼방 놓으려고 한 일 말입니다. 에플을 흔든 것도 있고요. 최민혁 실장은 그런 부분에 대해서 고민을 많이 했을 겁니다. 그런 상황에서 차세대 이동통신 사업은 좋은 무기죠.”
“아, 아무리 그래도 사람이 어떻게 그럴 수가 있다는 말입니까?!”
“하지만 최민혁 실장은 원래부터 그랬습니다. 에플 지분 12% 매각도 그런 일의 연장선이고, 인공지능 신사업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거기에 차세대 이동통신 사업은 연장선일 뿐입니다.”
줄리엇 로버트슨 회장은 한동안 침묵했다. 그는 결국 다시 보고서를 살폈다. 마이클 블룸버그 회장의 설명을 들으면서 말이다.
그런데 단순히 말로만 하는 압박이 아니었다.
최민혁 실장의 위협은 정말이었다.
암흑 기술 제국의 위협 말이다.
이전까지만 해도 미국 메이저 언론에서 최민혁 실장의 기술 침공에 대해서 우려를 내놓았다.
하원이 최민혁 실장을 미국 기술 안보에 있어 가장 위험한 인물이라고 규정한 것도 우연이 아닌 셈이다.
차세대 이동 통신은 그런 위험성이 실체화된 것에 지나지 않았다.
그는 이마를 잡았다.
이 일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생각하니 정신이 나갈 지경이었다.
당장 자기 사업부터 검토해야 했다.
‘이, 일단 중국 IP 시티폰 투자를 다 철회해야 해. 내가 추천해 준 지인들도다.’
그나마 다행이었다.
“…호, 혹시 이 정보를 누가 알고 있습니까? 최민혁 실장이 이미 정보를 다 공개한 겁니까?!”
마이클 블룸버그 회장은 피식 웃었다.
“제가 세계 최초라더군요. 뭐, 엄밀히 말해서 투자자를 모으는 것이니까. 줄리엇 로버트슨 회장님이 그다음입니다.”
“노파심에서 하는 말이지만 이 정보의 가치는 잘 아시죠?!”
“…제가 누구인지 알고 그런 말씀을 하시는 겁니까? 기분 나쁘군요.”
“죄, 죄송합니다. 워낙에 사안이 중요해서 말입니다.”
“압니다. 최민혁 실장도 그런 점을 아는 것 같더군요. 아마 최민혁 실장도 연방 검사의 압박을 받지 않았다면 이런 일을 하지 않았을 겁니다. 솔직히 최민혁 실장이 아무리 압력을 받아도 차세대 이동통신 사업에 무리수를 둔다면 못 할 일도 아니니까요.”
“…그렇죠.”
줄리엇 로버트슨 회장은 꼬리에 불붙은 망아지처럼 이야기에 집중을 못 했다. 그는 곧 자리에서 일어났다. 당장 만나야 할 사람이 너무 많았다.
‘젠장 큰일 났다.’
* * *
줄리엇 로버트슨 회장이 크게 당황하고 있을 때 비슷한 혼란을 경험 중인 이가 있었다.
바로 데릭 모건 이사였다.
그는 미국에 가서 급히 일을 처리하는 중이라서 최문경 부회장에게서 차세대 이동통신 관련 정보를 늦게 받았다.
부랴부랴 정신을 차린 후에 일단 마이클 블룸버그 회장에게 연락했다.
하지만 마이클 블룸버그 회장은 그의 연락을 받지 않았다.
회사로 직접 전화해도 다르지 않았다.
그는 과거 일 때문에 마이클 블룸버그 회장이 아예 자신을 터부시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다행이라면 그 와중에 마이클 블룸버그 회장과 동행한 이가 누구인지 확인했다.
퀄컴의 크리스 아몬 박사였다.
데릭 모건 이사는 괴팍한 크리스 아몬 박사를 좋아하지 않았지만, 이번에는 찬밥 더운밥을 가릴 시기가 아니었다.
그는 결국 측근과 같이 크리스 아몬 박사를 만나기 위해서 퀄컴 본사를 찾았다.
크리스 아몬 박사는 당연히 데릭 모건 이사를 만날 생각이 없었지만, 퀄컴의 입장은 좀 달랐다. 그들은 샐로먼 브러더스를 무시할 수가 없었다.
그는 결국 퀄컴 경영진의 부탁 때문에 퀄컴 본사 앞의 벤치에서 데릭 모건 이사를 만났다.
데릭 모건 이사는 크리스 아몬 이사의 찬밥 대우 따위는 신경을 쓰지 않았다.
“크리스 박사님을 뵙게 되어서 영광입니다.”
“말도 안 되는 개소리 말고, 왜 보자고 한 겁니까?”
“네?”
“나 솔직히 당신 정말 싫어해. 샐로먼 브러더스가 한 악행을 잘 아니까. 당신은 그중에 중간 보스 격에 해당하잖아.”
데릭 모건 이사는 대놓고 하는 크리스 아몬 박사의 말에 분노했지만 내색하지는 않았다.
“죄송합니다. 뭔가 오해가…….”
“아, 변명은 그만하고요. 왜 절 찾아온 겁니까?”
데릭 모건 이사는 크리스 아몬 박사의 눈치를 봤다. 그는 어떻게 말해야 할지 고민했다.
그런 태도에 크리스 아몬 박사는 짜증이 나서 버럭 소리쳤다.
“최민혁 실장의 차세대 이동통신 때문에 온 겁니까?!!”
“그게…….”
“아, 불쌍한 표정은 그만하고, 당신 추측이 틀리지 않아. 최민혁 실장이 진짜로 초대형 사고를 친 것이 맞으니까.”
“저, 정말입니까?”
크리스 아몬 박사는 굳이 최민혁 실장과 관련된 정보를 감추지 않았다.
“어차피 ITU에서 차세대 이동통신 표준 때문에 이야기가 나올 겁니다. 당신도 모를 수가 없는 내용이에요. 그러니 굳이 이럴 필요가 없지.”
“잘 이해가 안 됩니다. 최민혁 실장의 능력을 무시하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MP3도 그렇고, MPEG-2도 최민혁 실장이 고안한 것이 아닙니다. 그는 특허권자를 속여서 헐값에 사들여서 자기 욕심을 채운 겁니다. 그런 그가 어떻게 차세대 이동 통신 표준을…….”
크리스 아몬 박사는 혀를 찼다. 다만 이 부분에 대해서 최민혁의 편을 들 수는 없었다. 실상 최근 최민혁 실장에 대한 비판 이야기가 나오면서 늘 나오는 이슈였기 때문이다.
“글쎄, 그건 모르겠네요. 다만 차세대 이동 표준은 진짜예요. 나도 그런 이론은 처음 본 것이니까. 문제는 그걸 단순히 말장난으로 치부할 수가 없어요. 어느 정도 성능 검증까지 진행되었으니까.”
“저, 정말입니까? 아무리 그래도 그건 말도 안 되는 것 같아서…….”
“맞아요. 당신 말이 이상하지 않죠. 나도 아직 충격에서 헤어 나오지 못했으니까. 그런데 지금 생각해 보면, 단순히 운만은 아닌 것 같아서. 최민혁 실장은 MP3, MPEG-2 특허를 구별할 안목이 있다고 해야 할까. 굳이 번거롭게 자신이 고안하기보다는 있는 기술을 사들였고. 지금은 누구도 만든 기술이 없으니, 스스로 고안했다는 생각이 드니까.”
크리스 아몬 박사는 솔직하게 최민혁 실장에 대해 평가를 한 후에 자리에서 일어나서 퀄컴 본사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
데릭 모건 이사는 충격을 받아서 한동안 그 자리에서 망부석처럼 멍하니 앉아 있었다.
그로서는 이 상황이 도저히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다만 그도 곧 현실을 깨달았다.
정말 3G 망 통신이 현실화된다면 다시 검토해야 할 사업이 너무 많았다.
그는 창백한 얼굴을 한 채 자리에서 일어나다가 다리에 힘이 풀려 휘청하면서 넘어질 뻔했다. 다행히 경비원의 도움을 받아서 쓰러지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는 허겁지겁 차에 탑승하자 샐로먼 브러더스 미국 본사로 차를 몰았다.
‘크, 큰일났다. 주, 줄리엇 로버트슨 회장을 비롯해서 빨리 확인을 해야 해!!’
* * *
줄리엇 로버트슨 회장이 먼저 확인한 일은 IP 시티폰과 관련된 투자 사안이었다.
그는 자신이 직접 투자한 것뿐만 아니라 투자받은 이력을 다 확인했다.
물론 최민혁 실장이 보낸 보고서도 다시 몇 차례 검토했고 말이다.
결과는 생각보다 더 나빴다.
[그래도 다행입니다. 만약 이 보고서가 외부에 노출되었다면, IP 시티폰 사업은 산산조각이 났을 겁니다. 당장 IP 시티폰 관련 회사 주가는 대폭락했을 겁니다.]
그래도 위안이 있다면.
[다만 이 3G 기술 신뢰성이 문제입니다. 이거 정말 가능합니까? 아무리 이 보고서 내용이 그럴듯해도 제가 직접 보지 않고서는 믿을 수가 없습니다!]
“…….”
줄리엇 로버트슨 회장은 굳이 실무진에게 자세한 사안을 말해주지 않았다. 그 역시 최민혁 실장이 넘긴 자료 중에 핵심 되는 자료를 다 뺀 것이다.
만약을 위해서 말이다.
그는 사흘 동안 죽어라 미국 전역을 누비면서 IP 시티폰 투자를 철회했다. 정확히는 주변 시선을 의식해야 했다.
당장 자금을 다 빼고 싶었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손실 때문이었다.
그러니 IP 시티폰에 투자한 이들에게 자기 행동이 노출되지 않도록 해야 했다.
이게 사실 더 힘든 일이었다.
줄리엇 로버트슨 회장은 일단 급한 불을 다 껐다고 판단하자 조시 로버트 아태 차관보를 만났다.
조시 로버트 아태 차관보는 사정을 듣고도 그다지 놀라지 않았다. 그는 이번 일을 결사반대한 사람이었다. 최민혁 실장이 그냥 당하고 있지만은 않을 것으로 판단했다.
굳이 최민혁 실장의 연락을 받지 않은 것도 그 때문이었다.
“…최민혁 실장에 대한 압박을 중단해 달라는 말이군요.”
“대충 그렇게 이야기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