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재벌 3세는 조용히 살고 싶다-997화 (997/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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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제야 회의실 분위기가 어수선해졌다.

아니, 다들 뒤늦게야 탄식하고 말았다.

최민혁 실장은 보고를 받는 사람이지, 보고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결국 이 보고서 안건은 해야 할 일에 대한 테두리를 정한 것이었다.

최병연 소장이 가장 먼저 질문했다.

[혹시 이 특허를 완성해서 출원하라는 말씀입니까?]

최민혁 실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단순히 이 특허로 끝내서는 안 됩니다. 방어 특허까지 추가해야 하니까.]

[하지만 그렇게 하면 특허 출원 건수가 10,000건이 넘습니다. 비용이 너무 많이 들어갑니다. 기본 특허만 해도 수십억이 들어가는데 거기서 더 숫자를 늘리면 수백억이 들어갈지 모릅니다. 그런데 이 기술은 아직 상용화가 되지 않은 기술인데, 굳이 그럴 필요가 있겠습니까?]

최민혁은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앞으로 ITU가 알아서 특허 표준안을 만들 겁니다. 사전에 미리 덫을 파서 함정을 만들 목적인 거죠. 그렇게 생각하면 됩니다.]

그는 일단 눈을 동그랗게 뜬 채 자신을 쳐다보는 기획팀을 쳐다보았다.

[돈은 크게 신경 쓰지 마세요. 설마 제가 그런 수십억 푼 돈 아끼려고 하겠습니까? 해야 한다면 수백억이 되었든, 아니, 수천억이라도 투자할 겁니다.]

[하지만 ITU가 굳이 우리가 만든 통신 표준안을 따르겠습니까?]

[당연히 안 따르겠죠. 그러니 그들이 욕망을 떨칠 수 없게 만들어야죠. 기획안에는 그런 부분도 들어가야 합니다. 아니, 정확히는 생길 수 있는 모든 변수를 넣으세요. ITU를 비롯한 다른 나라의 입장이 있으니까.]

[으음.]

최병연 소장은 그제야 최민혁 실장의 의도를 깨닫고는 혀를 내둘렀다. 그는 이게 과연 의미가 있을까 고민하기도 했다.

물론 최민혁 실장이 내놓은 기획안이 의미가 없다는 뜻이 아니었다.

최민혁 실장은 의미심장하게 웃었다.

[너무 그렇게 고민할 필요가 없어요. 이 표준안은 ITU 측에 미끼로 던질 생각이니까. 그들이 과연 제안을 거부할 수 있을까요? 이미 테스트 프로젝트 성과가 나와 있고, 그걸 업그레이드하는 건데 말이죠.]

[…아.]

최병연 소장은 그제야 최민혁 실장의 말뜻을 알아듣고는 감탄했다. 그는 이 표준안을 독점하자고 생각했다. 이 기술을 풀면 아깝다고 생각했다. 이 기술을 공개한다는, 그런 생각 자체를 하지 않았다.

그런데 그런 식으로 일을 처리하면 걸리는 것이 너무 많았다.

더욱이 그 주인공이 최민혁 실장이었다.

당장 딴지를 거는 이들 숫자가 천 단위를 넘어갈 것이었다.

‘하지만 이익을 공유한다면 좀 다르지. 오히려 그 반대야. 어떻게 해서라도 달라붙으려고 할 테니, 최민혁 실장님은 그런 부분을 노리는 거고.’

그런데 이게 손해냐 하면 그렇지도 않았다.

특허료를 떠나서 통신업계에 끼치는 영향력이 절대적이었다.

조성돈 팀장이 두 사람의 대화를 듣다가 감탄하고 말았다.

[결국 이 보고안을 이용해서 ITU를 끌어들일 생각이시군요. 그렇게 한다면 차세대 이동 통신에 대한 영향력을 독점할 수도 있을 테니.]

최민혁 실장을 방긋 웃었다. 그는 두 사람만이 아니라 두 사람의 대화에 귀를 기울이는 나머지 기획 팀원들을 보면서 입을 열었다.

[맞습니다. 이번 일은 독점할 생각이 애초에 없어요. 그럴 수도 없고요. 그랬다가 정말 전 세계 정부에게서 왕따당합니다. 하지만 호구가 될 수는 없죠. 우리가 챙길 것은 꼼꼼하게 챙겨야 하니까. 자금이 아니면 이권이 되어도 됩니다. 필요하다면 빌딩을 챙겨도 되고요. 그러니 이번 검토는 그 관점에서 생각하면 됩니다.]

[…네.]

다른 두 사람과는 달리 기획 팀원들은 다들 고개를 갸웃하고 말았다.

최민혁 실장이 하는 말이 단순히 겉으로 드러난 것과는 많이 달라 보였던 것이다.

‘아무래도 에플 지분 매각에 따른 압박에 대한 보복 같아. 그렇다는 다른 의도도 있다는 것일까? 아, 모르겠다. 골치 아프네.’

다만 프로젝트 이상의 것을 고민하던 기획 팀원들은 다들 두 손을 들고 말았다. 지금 이 보고서를 검토하기가 쉬워 보이지 않았다.

* * *

차세대 이동통신 검토는 결코 간단한 일이 아니었다.

최민혁 실장이 내린 지시는 그냥 단순한 지시가 아닌 셈이다.

조성돈 팀장은 이제까지 경험을 살려서 기획 팀원들에게도 구체적인 지시를 내렸다.

[우선 사실 확인부터 하지.]

그는 최민혁 실장이 정의한 CDMA 관련 기술 부분을 나누어서 기획 팀에게 배분했다.

기획 팀에서 기존에 하던 일은 일단 홀딩하거나 아니면 신입에 맡겼다.

배종대 과장 역시 정성근 대리와 동행해서 우선 ETRI를 방문했다.

아, 그 전에 KM 전자 내부 프로젝트 현황 검토도 하고 말이다.

“이거 쉽지 않네.”

정성근 대리는 ETRI 연구소 입구 안으로 들어가면서 그를 타박했다.

“이제 CDMA 서비스를 시작한 마당인데, 차세대 이동통신 서비스가 쉬울 리가 있습니까?”

“알아. 내 말은 그런 뜻이 아냐. 최민혁 실장님이 딴 의도를 품는 것 같아서.”

“무슨 말씀입니까?”

“이 일이 과연 현실성이 있을까? 이미 CDMA 사업을 검토하면서 확인했잖아. 지금 기술로는 그다음 벽을 넘기가 쉽지 않아.”

“아, CDMA 속도 말인가요?”

“어. 14.4kbps잖아. 이 한계를 넘는 것만으로도 많은 무리수가 따랐어.”

“그거야 그렇지만…….”

“아니, 이봐, 정 과장. 이 기술 진입 장벽 때문에 증권가에서도 차세대 이동통신 사업에 대해서는 다들 부정적이야.”

물론 증권가가 차세대 이동통신 기술을 알고 하는 소리는 아니었다.

다만 주식 투자와 관련이 있으니까.

배종대 과장의 이야기는 이 주식 투자와 모든 것이 관련되어 있었다.

정성근 대리는 피식 웃으면서 배종대 과장을 타박하지는 않았다.

실제로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정말 그럴까?’

* * *

배종대 과장의 주장은 전혀 근거가 없지 않았다.

과거 오큘러스 프로젝트로 단단히 재미를 본 김문호 박사가 두 사람에게 설명하면서 현실적인 한계를 이야기했다.

“CDMA 전송 속도 한계가 문제가 됩니다. 이번 테스트에서 목표로 한 시스템 목표 속도는 2Mbps이니까요. 실제로 보여 드리죠.”

20MB 동영상 파일 하나를 두고 테스트는 10차례에 걸쳐서 진행되었다.

퀄컴에서 보내온 시제품 단말기를 통해서 다시 테스트 단말기로 받는 방식이다.

이 일을 주도한 건 바로 KM 전자의 최병연 소장이었다.

물론 그 이론 체계를 검토하는 곳은 다름 아닌 ETRI였다.

“CDMA 개발 경험이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기존 시스템을 변경하는 일이 쉽지는 않았지만 불가능한 것은 아니니까요.”

김문호 박사는 지금 진행하는 실험 결과를 일일이 다 설명해 주면서 배종대 과장과 정성근 대리의 눈치를 봤다. 그 역시 이번 일에 의문이 많았다.

이유는 아주 간단했다.

지금 진행하는 프로젝트 자체는 효율이 떨어져서 상업화에 무리가 따른다.

단순히 특허만 내는 것이라면 의미가 있을 수도 있다.

그런데 과연 그 특허 가치가 있느냐에 대해서는 부정적이었다.

‘MP3, MPEG-2만 해도 일본, 유럽에서 특허를 사들였으니까.’

하지만 아예 맨땅에 헤딩해서 이렇게 기술을 만드는 것은 차원이 전혀 다른 문제였다.

“…혹시 이 프로젝트와 관련해서 다른 것이 있습니까? 일테면 다른 연구소와 병행해서 개발을 진행한다든지…….”

배종대 과장은 김문호 박사의 불안한 시선에 피식 웃고 말았다.

“제가 알기로 KM 전자, ETRI 외에는 따로 투자하는 곳은 없는 것으로 압니다. 하지만 여기에 책정된 금액만 해도 1,000억이 넘습니다.”

“그렇습니까? 그러면 좀 이상하군요. 2Mbps로 메시진을 전달하기 위해서는 기존 CDMA 장비 업그레이드가 필수적입니다. 단순히 시스템이 문제가 아니라 고속 CPU가 필요합니다.”

“…그렇겠죠.”

배종대 과장은 굳은 얼굴을 한 채 고개를 끄덕였다. 정성근 대리 역시 공감했다. 두 사람은 때문에 김문호 박사의 도움을 얻어서 이 테스트 플랫폼을 더 세세하게 살폈다.

그럴수록 더는 의문이 있었다.

‘이게 가능한 건가? 정말 이상하네. 최민혁 실장님이 이렇게 현실성이 없는 프로젝트에 손을 댈 리가 없는데 말이야.’

* * *

조성돈 팀장은 기획 팀이 단기에 검토해서 올린 보고안을 정리하면서 고개를 갸웃했다. 최민혁 실장의 이전 일 처리와는 너무 달랐다.

‘리스크가 너무 크구나.’

그는 결국 최병연 소장을 만나서 협의를 해봤고, 현실적인 문제를 찾았다.

“당장 시스템에 적용할 고성능 CPU가 문제입니다. 지금 CPU는 답이 없습니다. 업체에 요청한 결과로는 2~3년이 지난 후에야 결과가 나온다고 합니다.”

최병연 소장 역시 순순히 수긍했다. 그는 이미 사전에 이런 문제를 걱정해서 최민혁 실장에게 계속 보고를 했다.

물론 퇴짜를 맞았지만.

“그나마 멀티미디어 칩은 MP3, MPEG-2 기술을 응용하면 됩니다. 이게 있으니, 이번 일을 생각이라도 하지 그렇지 않다면 무조건 불가입니다.”

“CDMA 기지국과 관련도 정보도 다시 재검토해야 합니다.”

파고 들어가 보면 KM 전자 홀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테스트 시스템을 만드는 것과 상용화는 이야기가 많이 달랐던 것이다.

‘나만 비관적으로 생각한 것이 아니야. 최병연 소장도 다르지 않구나. 아니, 이미 이 프로젝트 자체가 비관적이었다고 봐야 해.’

* * *

조성돈 팀장이 이 문제점을 취합해서 최민혁 실장에게 보고했다.

하지만 최민혁 실장은 그다지 놀라지 않았다.

“…오성 전자의 제조 기술이 필요하다는 이야기군요.”

“네. 오성 전자가 도와준다면 나쁘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도와줄지는…….”

“우리에게 녹취록이 있죠. 뭐, 콜린스 사업부 매각 건도 있고요. 오성 전자를 압박할 수단은 찾아보면 많습니다.”

“아.”

조성돈 팀장은 뒤늦게 감탄하고 말았다. 최민혁 실장은 특이하게도 오성 전자에 대해서는 편의를 많이 봐줬다.

당시에는 그저 10대 대기업 중의 하나라서 눈치를 본다고만 생각했다.

아니었다.

생각해 보면, 지금껏 오성 전자와 협업한 기록이 많았다.

물론 그 와중에 자신들의 뒤통수를 치려고 준비도 했지만 말이다.

하지만 최민혁은 사소한 일에 그다지 집착하지 않았다.

“앞으로 기업 환경은 많이 바뀔 겁니다. 우리 KM 전자도 홀로 존재할 수는 없습니다. 설사 할 수 있다고 해도 그럴 이유가 없어요. 그건 되고, 안 되고를 떠나서 일만 하면서 살 수는 없잖아요?”

“그렇습니다.”

“오성 전자가 딴짓을 한다고 해도 그걸 이용해서 적당히 이익만 보면 됩니다.”

“…네.”

조성돈 팀장은 이 부분에 찬성하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반박하지도 않았다.

최민혁 실장의 주장은 아주 현실적이었다.

이게 진정한 최민혁 실장이 아닌가 싶었다.

그는 때문에 최민혁 실장이 작성한 차세대 이동통신 기획안을 더 이상한 눈으로 쳐다보았다.

최민혁 실장은 피식 웃었다.

“이번 차세대 이동통신 사업은 긴 호흡으로 봐야 할 겁니다. 시작은 주변 관심을 끌 수도 있습니다. 적당히 자본도 유치하고요. 다만 하다가 ‘어, 어려운데?’ 할 수도 있는 겁니다. 이 일을 상업화해서 단기에 성공하겠다고 생각하면 곤란해요.”

“…정말 이 프로젝트를 제대로 할 생각이 있는 겁니까?”

최민혁은 씩 웃었다.

“물론이죠. 전 현실성이 없는 일은 안 합니다. 다만 그 시점이 언제인지는 아무도 모르죠.”

“…….”

조성돈 팀장은 입을 쿡 다물었다. 그는 습관적으로 하려던 질문을 꿀컥 삼켰다. 최민혁 실장이 저럴 때는 더 말해주지 않기 때문이다.

다만 유추할 수는 있었다.

‘다른 꿍꿍이가 있구나. 하긴 에플 주식 지분 매각 때문에 부정적인 시선을 많이 받고 있어. 그런 분위기 자체를 바꾸기에는 이만한 일도 없지.’

특히 ITU 쪽과 연결된 이익 집단은 최민혁 실장 연대를 지속할 수가 없었다.

그들도 각자 주판을 굴려야 하니까.

“하지만 특허 출원은…….”

“그건 보험이죠. 남 좋은 일만 해 줄 수는 없어요.”

조성돈 팀장은 그제야 고개를 갸웃했다. 최민혁 실장이 하는 행동이 이전과는 많이 달랐다.

최민혁 실장은 피식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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