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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통신 전문가답게 최민혁 실장이 한 이야기를 기준으로 하드웨어 시스템과 프로토콜 관련된 시스템을 하나씩 정리해 갔다.
‘…꽤 그럴듯한데.’
처음에 그녀도 최민혁 실장을 믿지 못해서 그냥 한껏 비웃어주려고 했다.
그런데 그럴 수가 없었다.
논리에 비약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더 황당했다.
‘어, 이게 가능해?’
그저 논리만으로는 이렇게 정교하게 말할 수 없었다.
뭔가 구체적인 결과물이 있어야 했다.
그건 정말 이상한 일이다.
ITU 쪽이 이제 차세대 이동 통신 표준에 관한 이야기를 꺼내는 타이밍이니까.
설사 관련 기술이 있다고 해도 이론과 가정에 불과했다.
2G망 상업 서비스 잉크가 마르기도 전에 차세대 이동통신 이야기가 나왔다. 심지어 4세대 표준과 연결 고리도 포함해서 말이다.
하지만 헬렌은 반사적으로 자신이 과거 논문을 썼던 논리를 기반으로 해서 최민혁 실장이 말한 정보 퍼즐을 맞추었다.
최민혁 실장은 새삼 헬렌의 능력에 화들짝 놀랐다.
‘역시, 헬렌!’
[아, 맞네요. 이거였어!]
최민혁 실장은 헬렌의 반응에 내심 쾌재를 불렀고 말이다.
그리고 최민혁 실장의 질문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안 그래도 몇 가지 더 질문할 것이 있습니다. CDMA2000 전송률 제어와 관련된 제어 방식과 관련된 부분인…….]
헬렌이 천재라는 것은 여기서 드러났다. 그녀는 최민혁 실장이 말하는 차세대 이동 통신을 모름에도 부족한 정보를 메꾸어 주었다.
물론 이게 다 옳은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이미 정답을 아는 최민혁 실장에게는 감로수나 마찬가지였다.
[아, 맞네요. 정말 훌륭합니다. 진짜 대단해요.]
최민혁 실장의 탄식은 과장이 아니었다.
그는 진심으로 놀랐다.
헬렌의 능력에 말이다.
과거 전생에서는 헬렌이 해주는 교육을 제대로 챙기지도 못했다.
지금에서야 헬렌의 전문성을 알아본 것이었다.
헬렌은 최민혁 실장의 칭찬이 싫지 않았다. 때문에 그녀는 최민혁 실장이 원하는 질문에 일일이 다 대답해 주었다.
[…정말 기가 막히네요. 헬렌의 능력이 이 정도인지는 몰랐습니다. 정말 세계 최고의 통신 전문가입니다!!!]
[…….]
헬렌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녀는 따가운 이지수 박사 의 눈총을 받으면서 어깨를 으쓱했다. 오늘따라 그녀는 이상할 정도로 최민혁을 도와주고 싶었다.
‘질투하나?’
* * *
헬렌은 자신이 한 일로 이지수 박사가 타박할까 염려해서 무려 2시간에 걸쳐서 최민혁 실장에게 통신망 강의를 해주었다. 그녀는 여기에 그치지 않았다. 최민혁 실장이 보낸 자료를 일일이 확인해서 다시 보내주기도 했다.
이지수 박사는 오히려 그런 모습이 이상했다.
“웬일이야?”
“어, 안 그래도 이와 관련된 초청이 있어서 고민했었거든.”
“응? 그게 무슨 소리야?”
헬렌은 피식 웃으면서 자신의 자리에 가서 뒤지다가 곧 한 가지 초청장을 가져왔다.
“ITU 초청장?”
ITU는 국제전기통신연합으로 세계 통신 표준을 연구하는 곳이다.
필요하다면 이해 단체에 권고도 하고 말이다.
ITU의 영향력은 CDMA 이후에 점점 커졌다.
다만 GSM, CDMA를 둘러싼 갈등 때문에 욕도 많이 들었다.
그래서인지 ITU는 차세대 이동통신 표준과 관련해서 단일화 목표를 세웠다.
ITU가 헬렌에게 초청장을 보낸 것은 이런 맥락 때문이었다.
“표준화 난립 때문이야?”
“어, 안 그래도 CDMA에 대해서 말이 많았잖아. 그런 사태를 피하고 싶은가 봐.”
이지수 박사는 조금 전의 통화 내용을 떠올리고는 고개를 갸웃했다.
“가만, 최민혁 실장님도 관련이 있는 건가?”
헬렌은 최민혁 실장이 요구한 질문, 자신의 답변, 추가 자료를 살피면서 혀를 찼다.
“당연하잖아. 표준 협회에 가면 빠지지 않는 이름이 최민혁 실장이니까.”
이지수 박사의 눈빛이 반짝거렸다.
“그래?”
“말도 마. 최민혁 실장이 먹는 로열티가 압도적이니까. 심지어 CDMA 관련된 로열티 규모가 전 세계 탑이라는 소리가 있어.”
“하긴 퀄컴 오너이기도 하니까.”
“그게 크지. 다른 MP3, MPEG-2와는 달리 지분으로 로열티를 먹는 것이니까.”
“하면 차세대 이동통신은 자신들이 단일 표준화해서 다 먹겠다는 소리야?”
“그렇다는 이야기가 있어. 안 그래도 그 이야기를 하려고 했는데…….”
지금 최민혁 실장이 언급한 내용을 그들이 안다면 난리가 날 일이었다.
이지수 박사도 그제야 상황을 인식했다.
“괜찮은 거야? 최민혁 실장님이 이런 상황을 모를 리가 없을 텐데, 왜 그런 문제는 언급하지 않은 거야.”
“글쎄.”
하지만 헬렌은 골치 아픈 내용을 머릿속에서 비운 채 자신이 최민혁 실장과 관련이 있는 자료를 다시 몇 차례 걸쳐서 살폈다. 탄식이 절로 나왔다. 그녀는 도저히 이 자료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이럴 수가 있나.”
“왜 그래?”
이지수 박사도 헬렌이 살피는 자료 일부를 받아서 고개를 갸웃했다. 그녀도 전화상으로 듣기로는 단순한 아이디어 특허인 줄 알았다.
그런데 아니었다.
정확히는 너무 정교한 논리라서 단순히 아이디어로만 보기는 힘들었다.
다만 MP3 특허와는 많이 달랐다.
부족한 부분이 많았다.
오류도 꽤 있었고 말이다.
헬렌이 그 부분을 교정해 주었다.
따라서 이번 일은 최민혁 실장이 독자적으로 한 일이 아니었다.
그래서 더 황당한 상황이었다.
“…이대로 구현할 수도 있겠는데? 이게 말이 되는 거야?”
헬렌도 진지했다.
“그 정도가 아니야. 이건 단순히 머리로 만든 아이디어가 아니야.”
“…….”
이지수 박사도 입을 다물고 말았다. 그녀도 주섬주섬 자료를 넘기다가 이 자료의 가치를 뒤늦게야 깨닫고 말았다.
“……!”
물론 두 사람이 차세대 이동통신 표준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
그래도 경험이 있다.
이 이론이 된다, 안 된다는 정도는 파악할 수 있었다.
헬렌은 그제야 탄식하고 말았다.
“ITU가 엿 됐네.”
“…아직 ITU 쪽에서는 표준 작업이 제대로 진행 안 되었지?”
“진행이 뭐야. 그냥 바쁜 사람들 초청해서 시간만 낭비하고 있지. 그에 비해서 이 자료는……. 하, 최민혁 실장이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몰라. 그래도 재미있겠다. 나도 이 일을 도와줄게.”
“뭐, 그러든지.”
헬렌은 툴툴거리면서도 싫어하지는 않았다. 그녀는 이보다 최민혁 실장이 지금 진행하는 일이 뭔지 그게 더 궁금했다.
‘다만 아쉬운 점이 있다면 핵심 기술이랄 수 있는 부분은 대부분 다 빠진 것 같아. 설마 의도적으로 이렇게 만든 것일까?’
설사 그렇다고 해도 이 자료는 정말 믿기 힘든 결과였다.
‘가만, 내가 이 자료를 완성했잖아? 하, 이거야 원. 내 능력이 뛰어난 거야. 아니면 최민혁 실장의 능력이 탁월한 거야?’
아니, 두 사람의 시너지가 그만큼 컸다고 봐야 했다.
이지수 박사도 그런 점을 느껴서인지 더 집중해서 자료를 살폈다.
‘이거 정말 간단한 자료가 아니야!’
* * *
조성돈 팀장은 갑작스러운 기획 팀 호출에도 딱히 놀라지 않았다.
최민혁 실장은 가끔 이런 일을 벌였기 때문이다.
다만 그 안건이 뭔지 궁금했다.
‘최동영 상무나 샐로먼 브러더스 때문일까?’
기획 팀 역시 오랜만에 최민혁 실장의 호출에 고개를 갸웃했다.
그런데 오늘 회의에는 뜻밖에도 최병연 소장을 비롯한 특허 팀도 같이 자리했다.
조성돈 팀장이 고개를 갸웃했다.
“설마 특허와도 관련이 있습니까?”
최병연 소장은 이미 최민혁 실장에게 최근 자료를 주면서 몇 가지 사실을 들었다. 그러니 굳이 기획 팀에게는 보안 사안이 아니었다.
“보안 프로젝트와 관련이 있습니다.”
“가만, 어떤 쪽입니까?”
“차세대 이동통신 쪽입니다.”
“아.”
조성돈 팀장은 크게 놀라지 않았다. 차세대 프로젝트와 관련된 이야기는 늘 나왔다. 최용욱 회장이 직접 찾아오기도 했다.
하지만 최용욱 회장도 자세한 정보를 듣지는 못했다.
최민혁 실장이 특히 감춘 정보가 바로 차세대 이동 통신 기술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탈도 많고, 말도 많은 프로젝트 숫자가 모두 5가지였다.
각 프로젝트에 들어간 비용이 200억이었으니, 모두 1,000억이 투자된 셈이다.
하지만 최병연 소장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
이 프로젝트는 최민혁 실장이 일방적으로 밀어붙여서 진행됐다.
덕분에 과시적인 성과는 나왔지만, 상업적으로 쓸 수가 없었다.
이건 추후 문제의 소지가 될 수도 있었다.
최민혁 실장은 회의 가장 늦게 나타났는데, 이런 점까지 언급하지 않았다.
그는 이보다 ‘차세대 이동통신 기획안’ 문건을 기획 팀에게 나눠 줬다.
물론 비서를 통해서 말이다.
다들 아름다운 비서의 모습에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 * *
회의 시작은 나쁘지 않았다.
다만 기획 팀은 보고서를 살피면서 고개를 갸웃하고 말았다.
특히 배종대 과장은 고개를 갸웃했다.
[가만, 이거 최동영 상무님이 하려고 한 그 프로젝트 아냐?]
정성근 대리가 볼멘소리를 했다.
[에이, 내용이 아주 다르잖아요. 최동영 상무가 말한 이동 통신 사업은 2G망이 기준이잖아요. 전혀 다르네요.]
[야, 정 대리, 꼭 그런 식으로 타박해야 해?!]
[괜한 이야기 해서 회의 분위기 흐리니 하는 말이죠.]
[아니, 내가 무슨 말을 했다고 그러는 거야? 정말 이해가 안 되네.]
[다른 분들 표정부터 보고 그런 말씀을 하세요.]
아니나 다를까 기획 팀원들의 표정이 다들 이상했다.
그들은 물론 최민혁 실장의 눈치를 보면서 배종대 과장에게 계속 신호를 보냈다.
하지만 배종대 과장은 최민혁 실장이 있어도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았다.
사실 KM 전자에서 최민혁 실장의 위치는 사장 그 이상이었다.
최민혁 실장은 인사 총책임자나 마찬가지다.
그럼에도 배종대 과장은 그런 최민혁 실장을 그다지 신경 쓰지 않았다.
기획 팀은 다들 혀를 내둘렀다.
정성근 대리가 보다 못해서 한마디 했다.
[이 자료가 꽤 중요한 것 같으니, 조용히 지켜만 보는 것으로 해요!]
두 사람이 지방 방송으로 시선을 끌자 박상기 차장이 나서서 일축했다.
[두 사람도 좀 그만하지. 최 실장님이 계신 이런 자리에서는 조심 좀 하자.]
[……죄송합니다.]
정성근 대리가 나선 덕분에 다시 침묵이 감돌았다.
최민혁 실장은 활기찬 회의 분위기에 그저 미소만 지었다.
차라리 자신에게 아부하는 것보다는 이게 훨씬 나았다.
최소한 무슨 문제가 있으면 제대로 지적할 테니까.
설사 최민혁 실장이 묵인했다고 해도 배종대 과장 역시 눈치가 있어서 자료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기획 팀 역시 다들 두 사람의 이야기를 듣자 어느 정도 힌트를 얻었다. 다만 그들은 기획안을 살피면서 고개를 갸웃했다.
보고서라면 자세한 사안이 나와 있어야 하는데 그런 내용이 없었다.
전체적인 개요, 도식, 기술, 특허를 중심으로 정리되어 있었다.
그 특허는 첨부 항목으로 붙어 있었는데, 구체적인 내용은 나와 있지 않았다.
신기한 것은 그렇게 작은 내용인데, 다 연결이 된다는 점이다.
그 특허 항목은 모두 3,000건이 넘었다.
제목과 요약으로 만들어진 특허이니, 딱히 이상할 것도 없었다.
한 페이지에 무려 30건이 넘는 예도 있으니까.
이 내용을 잘 이해를 못 하는 기획 팀들은 그저 고개를 갸웃했다.
결국 배종대 과장이 이를 참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
[……정 과장님, 이 보고서는 이상하잖아.]
정성근 과장, 아니, 대리는 쓰게 웃었다.
[그러지 좀 마세요. 이해가 안 되면, 좀 기다려 봐요. 최 실장님이 결국 자세한 설명을 해줄 테니까.]
다들 그제야 수긍했다.
확실히 이전의 최민혁 실장이 작업한 방향과는 많이 달랐다.
기획 팀 대다수는 영문을 몰라서 눈치만 살폈다.
하지만 최병연 소장만큼은 달랐다. 그는 이 특허가 뭔지 모를 수가 없었다. 자신이 진행하는 프로젝트의 최민혁 실장의 지시와 다 연결 고리가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마치 전체 작품에서 핵심 연결 고리만 떼서 연결한 것처럼 보였다.
그런데 최민혁도 이러고 싶어서 이런 것이 아니었다. 그 역시 이 보고안을 전부 다 이해하는 것은 아니었다. 헬렌의 도움을 얻어서 전체 감만 잡고 있을 뿐이다.
[제가 여러분을 갑자기 호출한 것은 이 차세대 이동통신 기획안 때문입니다. 여러분에게 하고 싶은 말은, 지금 이 보고서 안에는 빈 내용이 많습니다. 그 부분을 메꿔서 보고서를 완성하란 뜻입니다.]
[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