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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 3세는 조용히 살고 싶다-993화 (993/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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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L 그룹은 KD 통신 지분 인수 때문에 더 무리수를 둘 수가 없었다. 그들이 대안으로 선택한 것은 TRS 사업이고 말이다.

이 TRS 관련 컨소시엄을 만든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런데 여기에는 PCS에서 밀린 중견기업이 꽤 참여했고 말이다.

이런 과정에서도 이동통신 사업을 완전히 포기하지는 않았다.

계속 저울질한 것이었다.

실로 집요한 욕망이었다.

KM 그룹에서 TRS 사업을 챙긴 HY 전자는 이들과 경쟁자였고 말이다.

“다만 자본을 수혈받고 나서는 상황이 좀 달라졌습니다.”

“그래요?”

최민혁 실장은 조성돈 팀장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무리한 자금 수혈 때문에 DL 그룹의 상태가 상당히 나빠졌기 때문이다.

DL 그룹이 IMF를 경험하면서 줄줄이 무너지는 기업 중 하나처럼 붕괴할 것이라 확인하고는 혀를 내두르고 말았다.

같이 뛰어든 기업 역시 다르지 않았다.

DL 그룹이 리스크 관리를 위해서 손을 뻗은 기업 말이다.

‘기아도 이랬던가? 쌍용 역시 빠지지 않네.’

그러면 이야기가 좀 달라진다.

어차피 지금 자신을 의심쩍은 시선으로 다들 보고 있지 않나.

거기에 IMF는 덤이고 말이다.

죄다 관심은 에플 지분 매각을 통한 차익에 가 있었다.

그는 그들의 기대를 저버릴 수가 없었다.

특히 최동영 상무의 집착 말이다.

아직 포기한 눈치가 아니었다.

최용욱 회장은 또 과거처럼 통신 사업에 집착하고 말이다.

“이렇게 하죠. 이왕 이렇게 된 김에 일을 제대로 부려 보는 것으로 갑시다. 으음, 민수 형은 회사에 있다고 했죠?”

“현재까지는 사소한 일은 있어도 별문제가 없는 것으로 보고받았습니다.”

“그래요? 좋네요. 아, 혹시 최영란 본부장이 이번 사장단 회의에 참석하는 것으로 아는데, 언제죠?”

“최용욱 회장님을 일정을 당겨서 이번 주 금요일 오후에 진행할 예정입니다.”

“그래요? 역시 쉽게 포기하지 않네요. 그 자리에 우리 민수 형이 참석할 수 있도록 손을 써보세요. 무리가 따르기는 해도 최문경 부회장이 굳이 반대하지는 않을 겁니다. 그래도 명색이 재벌 3세 아닙니까?”

“…네.”

* * *

KM 그룹 사장단의 회의 분위기는 작년과는 사뭇 달랐다.

그 어떤 불안이나 두려움도 존재하지 않았다.

KM 반도체, KM 센서, KM DVR이 치고 나가면서 일어난 일이었다.

덕분에 KM 그룹 기획 조정실은 이 세 가지 계열사 정리에 정신이 없었다.

워낙에 추구하는 방향이 달라서 교통정리를 진행 중이었다.

KM 산업과의 연결 고리 역시 정리할 필요가 있었다.

장승일 실장은 그런 점을 내세웠고 말이다.

최민수는 사장단 회의의 한구석에 앉아서 눈치만 살폈다.

그는 전략 기획실에서 연락받고 이 자리에 오기는 했지만, 자신을 왜 불렀는지 그 영문을 잘 몰랐다.

KM 그룹 계열사 사장이 최민수에게 알은척까지 했고 말이다.

하지만 최문경 부회장이나 최동영 상무는 아예 쳐다보지도 않았다.

최용욱 회장 역시 마찬가지다. 다만 그는 눈짓으로 사장단 회의에 집중하라고 신호를 보낼 뿐이었다.

원칙대로라면 최민수는 이 자리에 있을 자격이 되지 않았다.

그는 때문에 식은땀을 흘리면서 사장단 회의의 눈치나 봐야 했다.

그런 중에 발표자로 나선 이는 최영란 본부장이었다.

[아, 발표하기에 앞서 한 가지 소식을 들었습니다. 이동통신 사업에 투자하겠다는 소리가 있던데, 그게 사실입니까?]

장승일 실장이 최용욱 회장의 눈치를 보다가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아직 확정된 것은 아니고, 검토 중입니다.]

[하,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해요? 이동 통신 시장이 아마겟돈이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무리수를 둔다는 말인가요?]

[압니다. 하지만 최민혁 실장님이 나서준다면 그런 리스크를 줄일 수 있습니다.]

최영란 본부장은 코웃음을 쳤다.

[설마 민혁이를 앞세워서 재미를 보겠다는 말인가요? 도대체 그런 생각을 한 것은 누구죠? 장 실장님이 그런 계획을 입안한 겁니까?!]

[…그건 아닙니다.]

[그러면 누구죠? 가만, 설마 우리 부회장님이 나선 겁니까? 이제까지 신사업 한다고 수백억을 날려 먹은 분이 무리수를 둔 겁니까?!]

[…너, 말이……. 하아, 아니다. 난 그런 적 없다.]

최문경 부회장도 장녀 최영란 본부장의 말에 꼬리를 말고 말았다.

그가 그러고 싶어서가 아니었다.

그저 이 자리에서 최영란 본부장과 싸우는 행위 자체가 누워서 침 뱉기였기 때문이다.

최영란 본부장은 놀랍게도 최용욱 회장에게도 단호하게 소리쳤다.

[설마 회장님이 지시한 겁니까? 이번 사업 리스크는 이미 잘 아실 텐데요. 솔직히 작년에 차입금 받아서 이동통신 사업에 들어갔다면 천문학적인 적자로 그룹이 휘청했을 겁니다!!]

최용욱 회장도 허탈하게 웃었다. 그는 설마 최영란 본부장이 아예 노골적으로 자신을 들이박을 줄은 몰랐던 것이다.

하지만 그도 바보는 아니었다. 최영란 본부장이 저러는 것은 최민혁을 믿기 때문이다. 특히 에플 지분 매각 대금 말이다.

[…최영, 아니, 최 본부장, 말이 좀 심하구나.]

[그러면 회장님답게 일을 처리해야죠. 누가 봐도 속내가 다 보이잖아요. 정말 창피하지도 않아요? 어떻게 손자를 이용하려고 합니까?!!]

[…난 그런 적 없다.]

이런 상황에 사장단 회의에 참석한 계열사 사장들은 다들 눈치만 볼 뿐이었다. 그들 역시 다들 돌아가는 분위기를 느낀 것이었다.

최동영 상무는 물론 이를 악물었다. 그는 설마 최용욱 회장이 보는 앞에서 저렇게 상대가 말을 할 줄은 몰랐다.

‘민혁이라면 저러지 않았을 텐데…….’

정확히는 그럴 수가 없었다.

작년이라면 또 모르지만 지금 최민혁의 입장은 좀 달랐다.

최용욱 회장이 최민혁 실장에게 모든 이들이 반대하는 기회를 준 사람이니 말이다.

그는 그래서 이 자리에 최민혁 실장이 나오지 않은 점에 혀를 내둘렀다.

최영란 본부장은 딱 최동영 상무의 얼굴을 봤다.

[그럼 최 상무님입니까? 설마 건설이 여유가 있다고 또 욕심을 부린 겁니까?!]

[그건 아냐.]

평소라면 그쯤에서 멈췄겠지만 작정한 최영란 본부장은 평소와는 많이 달랐다.

[공정거래위원회에서 최근 계열사끼리 싼 금리로 주고받는 대기업을 조사하는 것을 압니까?]

[그게 무슨…….]

[정말 멍청하군요. KM 그룹이 KM 건설에 빌려준 금액이 567억이라면서요? 그걸 설마 몰랐다고 이야기할 겁니까?!]

장승일 실장은 화들짝 놀라서 그것이 진실이라는 것을 보여주었다.

최용욱 회장은 혀를 찼다. 그의 지시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KM 산업이 잘나간 덕분에 남은 자금 일부를 KM 건설에 빌려준 것이었다.

작년에 말이다.

사실 KM 건설 사정이 좋아졌으니, 자금을 다시 돌려줘야 했다.

그런데 KM 건설은 그러지 않았다. 그 돈을 굴릴 생각만 했다. 더욱이 추가로 들어온 자금까지 포함해서 말이었다.

다만 이동통신 사업은 이 자금만으로 부족했다.

그래서 최민혁 실장을 이용하려 한 것이고 말이다.

최영란 본부장은 사장단 회의실을 떠나갈 정도로 소리쳤다.

[공정위가 왜 그런다고 생각하세요? 맞아요. 우리 KM 그룹이 잘나가니, 이번 기회에 길들이려고 하는 거예요. 거기에다 민혁이에게도 한 방 먹이고요. 지금 우리 KM 그룹이 겉으로 잘나가는 것 같아도 적이 많아요. 이럴 때일수록 더 몸조심해야 하는 겁니다!]

최동영 상무는 물론 쉽게 포기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렇게 말하는 너 역시 최민혁 실장에게 도움을 받아서…….]

[하,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하세요? 전 원래 AD 설계를 설립해서 독립했습니다. 절 다시 끌어들인 분은 최용욱 회장님입니다. 민혁에게 단 한 푼도 도움받은 적이 없습니다!!!]

[그거야…….]

최동영 상무는 아차 싶었다. 그는 최용욱 회장이 슬쩍 시선을 돌리는 것을 보자 탄식하고 말았다. 생각해 보면 최영란 본부장은 홀로 일어서기를 했다.

그녀의 능력을 보고 다시 끌어들인 것은 KM 그룹이고 말이다.

최영란 본부장은 이미 자신의 능력을 충분히 인정받았다.

결국 사장단 회의의 분위기는 최영란의 독무대가 되었다.

최영란 본부장은 마치 전혀 다른 사람이 된 것처럼 사장단 회의를 휘어잡았다.

“…….”

최민수는 그 모습에 큰 충격을 받았다. 최민혁이야 반쯤 포기했지만, 최영란 본부장은 이야기가 좀 달랐다. 그녀가 저렇게 성장세를 보인 것은 불과 채 1년이 되지 않았다.

그 역시 최영란 본부장이 독립해 나갈 때는 비웃고 말았다.

더는 신경 쓸 필요가 없다고 쾌재를 불렀다.

그런데 결과는 아니었다.

최영란 본부장은 사장단 회의에 나와서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다 했다.

자신 역시 KM 그룹 계열사 지분을 받았다는 것을 고려하면 자격지심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어떻게 저럴 수가 있지?’

* * *

최민혁 실장은 이번 사장단 회의에서 최영란 본부장이 날뛴 것을 보고받고는 피식 웃었다. 그가 전생에서 기억하는 딱 그녀 모습이었다.

‘처음에는 조용했지.’

그런데 KM 그룹이 분해 순서를 밟으면서 그녀의 모습이 변해갔다.

KM 그룹은 바닥으로 치달을 때, 그녀의 AD 설계는 오히려 위로 치솟았다.

코스닥 상장 이후 AD 설계 인기는 생각보다 더했다.

벤처 거품이 붙으면서 AD 설계는 꽤 자금을 마련했고 말이다.

최영란 본부장이 바뀐 것은 딱 그때 이후였다.

그녀는 이후에 소심한 기업가가 아니라 쉬헐크 최영란이 되었다.

그리고 최민혁은 쉬헐크 최영란 본부장 때문에 최민수를 굳이 사장단 회의에 참석시킨 것이었다.

“민수 형은 어때요?”

“꽤 큰 충격을 받은 것 같습니다.”

“그렇겠죠. 사촌이 논 사면 배 아프다고 하잖아요. 최영란 누나가 홀로서길 할 때 비웃었을 겁니다. 당시만 해도 자신과 영란 누나는 별 차이가 없으니까. 그런데 사장단 회의에 나가서 우리 최문경 부회장을 그렇게 밟아버렸으니.”

“심지어 회장님에게 쓴소리를 했다고 합니다.”

“할아버지에게까지요? 어, 그건 좀 오바인데…….”

“아무래도 최 실장님 때문인 것 같습니다. 이번에 에플 지분 매각으로 무려 15조가 넘는 자금을 챙겼으니 말입니다.”

“아, 그놈의 에플 지분 매각…….”

하지만 그는 곧 피식 웃고 말았다. 자신이 최영란 본부장을 밀어주는 일은 이제 KM 그룹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심지어 최동영 상무가 욕심을 부린 것도 최영란 본부장과 무관하지는 않습니다. 계속 신사업을 일구면서 주목을 받았지 않습니까? 최동영 상무와는 대조적인 행보입니다.”

“하긴.”

그는 순순히 수긍했다. 한편으로 이번 사태가 모두 자신이 시도한 에플 지분 매각 때문에 일어난 일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결국 최민혁 실장은 곰곰이 생각했다. 자신이 아무리 에플 지분 매각을 잊으려 한다고 해도 주변은 그렇지가 않았다.

‘민수 형도 그래. 확실히 욕심을 가질 만하지. 아니, 이제는 참기 어렵겠지.’

어차피 자신이 한 가지를 염두에 두고 꾸민 일이었다.

‘기범이 형이 뭔가 꿍꿍이가 있는 것 같은데, 민수 형 모습을 보면 마음이 복잡할 거야. 그리고 민수 형을 잘만 이용하면, DL 그룹을 좀 더 흔들 수 있지. 보자, 이번에는 어떻게 할까?’

최민혁은 굳이 복잡한 음모를 꾸미지 않았다. 그는 단순하게 생각했다. DL 그룹이 욕심을 낸다면 그쪽으로 유혹하면 될 일이었다.

‘어차피 빠져나올 수 없는 함정만 만들어두면 되니까.’

더욱이 앞으로 해야 할 일이 있었다.

지금은 과도기적인 시기라서 이걸 잘만 이용하면 적끼리 서로 상쟁시킬 수도 있었다.

“이렇게 하죠. KMBOOK이 안 그래도 오성 물산과의 협업 때문에 골머리를 앓으니, 그쪽 신사업 투자 때문에 에플 지분을 매각해서 자금을 마련한 것으로 가죠.”

“네? 오성 물산과의 협업에 그렇게 많은 자금이 필요하다는 말입니까?”

“일테면 핑계죠. 각자 알아서 생각할 겁니다. 아니, 이왕이면 그 생각을 좀 더 키우도록 하죠. 그럴듯한 함정만 만들면 됩니다. 어차피 저를 견제하려는 이들이 많아요. 그들도 모아서 같이 한 번에 엮어서 청소합시다.”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최민혁은 막 설명하려다가 입을 다물고 말았다. 계획이 생각보다 복잡했기 때문이다.

“아, 시간이 지나면 다 알게 될 겁니다. 지금은 우선 민수 형과 기범이 형에게 미끼를 던지죠.”

“…최민수 씨, 김기범 씨에게 말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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