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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환율 파동은 무역 수지 적자 급증에 따른 외환 공급에 문제가 생겨서다.
일시적인 문제이기는 하지만 그렇게 보기에도 힘들었다.
이러다간 올해 무역 수지 적자 규모가 사상 최대를 기록할 것이 분명했다.
그 기준표를 따라서 환율이 움직이다가 일시적으로 폭등한 것이니까.
거기다 최민혁 실장이 과거 발견한 한국 환율의 취약점까지 건드렸고 말이다.
그 탓에 재정 경제원은 외환 시장을 불안한 눈으로 지켜봐야만 했다.
이환채 차관은 반쯤 정신이 나간 채로 과거 최민혁 실장이 장난 삼아서 떠든 이야기를 떠올리기 바빴다. 당시 그 이야기를 믿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은근히 무시했다.
아니, 그 이후에 최민혁 실장 말이 맞다고 인정해서 따로 팀을 만들었다.
그런데 이젠 그것만으로도 부족했다. 외환 5분 대기조를 따로 만들어야 했다.
데릭 모건 이사는 의아했다.
“반도체 가격 하락에 따른 외환 공급 위축일 텐데요. 다른 외국인 투자자 역시 있을 테고, 그 정도 외환이라면 큰 문제가 안 될 겁니다.”
“맞습니다. 그래서 주말을 넘기자 일단 외환 공급 시장이 안정을 찾았습니다. 하지만 우리로서는 이대로 내버려 둘 수가 없습니다. 따라서 규제를 더 적극적으로 풀 생각입니다. 샐로먼 브러더스 같은 기업이라면 특별 대우를 해줄 생각이고요.”
“그렇습니까?”
데릭 모건 이사는 예상치 못한 이환채 차관의 반응에 눈빛을 반짝였다.
그는 이 상황을 최대한 이용하기 위해서 머리를 굴렸다.
‘최동영 상무를 도와줄 방법이…….’
“…외람된 이야기지만 한 가지 부탁만 들어준다면 못 도와줄 것도 없습니다.”
이환채 차관은 쾌재를 불렀다. 그 역시 샐로먼 브러더스의 자금력을 모르지 않았다.
“저, 정말입니까?”
“다만 조건이 필요합니다. 동아시아 투자 자금 일부를 한국으로 돌려야 합니다. 그만한 이권이 보장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본사에서도 응할 테니까.”
“물론입니다. 그게 뭐죠?”
“다름이 아니라 KM 그룹의 셋째인 최동영 상무와 관련된 일로…….”
다만 이환채 차관도 ‘KM 그룹’ 이야기를 듣자 눈살부터 찌푸렸다.
뭔가 싸한 느낌적인 느낌.
차라리 오성 그룹이 더 부담이 없었다.
거기에 악귀 같은 최민혁 실장과 엮인 일이라면 도저히 손을 댈 수가 없었다.
이환채 차관은 결국 참을 수가 없어서 바로 말을 끊었다.
“혹시 최민혁 실장과 관련된 이야기입니까?”
“어, 관계가 일부…….”
“그건 절대로 안 됩니다!”
“네?”
“최민혁 실장과 관련된 일이라면 포기할 수밖에 없습니다. 아무리 샐로먼 브러더스라도 그 부탁을 들어줄 수 없습니다!”
데릭 모건 이사는 갑작스러운 상대의 태세 전환에 혀를 내둘렀다.
‘최민혁’ 이름이 나오는 것만으로 이환채 차관의 눈빛이 바뀌었다.
이환채 차관도 뒤늦게 자신이 흥분한 것을 깨달았다. 데릭 모건 이사에게 이렇게 무례하게 대우해서는 안 되는 일이다.
“휴우, 이런 말 하기는 그렇지만 최민혁 실장님은 더 이상 건드릴 수가 없습니다.”
“네?”
이환채 차관은 데릭 모건 이사의 표정이 바뀌는 것을 보자 망설이다가 결국 입을 열었다.
“아마 최민혁 실장이 에플 지분 12%를 매각한 사실은 잘 알 겁니다. 여기까지는 다 아는 사실입니다. 문제 될 게 없습니다.”
그는 답답한지 다시 술 한 잔을 마셨다.
“하, 그런데 그 자금을 벨린 투자 미국 지사에 집어넣은 채 국내로 들여오지 않고 있습니다. 심지어 세금은 유럽 국가를 이용했습니다.”
“…탈세 아닙니까?”
이환채 차관은 가슴이 답답한지 넥타이까지 풀었다. 그는 다시 술을 몇 잔 홀로 마셨다. 도저히 답답해서 참을 수가 없었다.
“탈세는 아닙니다. 그쪽이든, 이쪽이든 세금만 내면 되니까요. 더욱이 국외 법인이고, 그곳을 경유해서 만들어진 페이퍼 컴퍼니라서 이쪽에서 손을 쓸 수는 없습니다.”
사실 재정 경제원에서도 언론을 이용해서 최민혁 실장을 압박할까 생각도 해봤다.
실제 계획도 만들었다.
그런데 뒤늦게 그 이후 대책을 두고 말이 나왔다.
최민혁 실장이 보복을 할 텐데, 그걸 감당할 방법이 있냐는 거다.
안 그래도 외환 시장이 휘청하는 상황이었으니.
더욱이 최민혁 실장만이 이런 편법을 사용하는 게 아니었다.
다른 대기업 역시 별반 다르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더 심각했다.
최민혁 실장이 10조가 넘는 천문학적인 자금을 이쪽저쪽으로 돌리자 다른 10대 대기업 역시 같은 방식을 쓴 것이었다.
“…무역 수지 적자의 갑작스러운 증가는 모두 최민혁 실장과 관련이 있습니다. 이건 재정 경제원에서 확인한 사안입니다. 그래서 더 최민혁 실장님에게 말할 수도 없었습니다.”
최민혁 실장에게 말해봐야, ‘네, 알겠습니다’보다는 ‘호, 절 감시한 겁니까? 거기에 대한 각오는 서 있겠지요?’ 라고 말할 사람이었다.
데릭 모건 이사도 처음에는 이게 무슨 일인가 싶었는데, 뒤늦게야 혀를 찼다.
‘하여간에 하루도 조용한 날이 없구나.’
결국 최민혁 실장을 직접 건드리는 방법을 쓸 수가 없었다.
“…하면 이동통신 사업 허가와 관련된 편의는 제공해 줄 수 있습니까?”
“혹시 최동영 상무 쪽입니까?”
“네. 뭐 굳이 자세한 말은 하지 않겠습니다. 다만 우리가 직접 나서고 싶지는 않습니다. 재정 경제원 쪽에서 이번 일에 직접 나서 주세요. 독점을 막기 위한 명분이 좋겠군요.”
“…독점이라, 으음, 그렇죠. 공정한 경쟁이 좋겠지요. 알겠습니다. 그렇게만 한다면 투자를 더 늘리시겠다는 말이죠?”
“뭐 그렇죠. 어차피 투자하고 싶은 기업은 넘쳐 나니까.”
그중에 ‘KM 전자’가 있다는 말까지 굳이 하지는 않았다.
이환채 차관은 그걸 냉큼 알아들었고 말이다. 그는 이 안건과 관련해서 데릭 모건 이사와 긴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특혜 몇 가지를 주는 것이지만 거래로 나쁘지는 않았다.
“핵심은 최동영 상무입니다.”
“알겠습니다. 한 사람 특혜 주는 것이야 큰 문제가 안 됩니다.”
어차피 금융 시장 개방은 이미 진행 중이다.
샐로먼 브러더스는 몇 개월 앞서서 이권을 가지는 것뿐이다.
거기의 바지사장이 최동영 상무이고 말이다.
‘가만, 정말 최동영 상무가 이자들과 손을 잡은 건가? 최문경 부회장이 원래 그 주인공이지 않았나?’
이환채 차관은 헤어지고 나서야 의문이 떠올랐지만, 곧 고개를 흔들고 말았다. 그가 그런 부분까지는 신경 쓸 필요가 없었다.
* * *
이환채 차관은 다음 날 김웅배 장관에게 보고했다.
김웅배 장관으로선 이 안건을 굳이 막을 이유가 없었다.
안 그래도 외환 시장이 심상치 않았기 때문이었다.
특히 무역 수지 적자가 문제였다.
더욱이 이와 관련된 핵심 인물이 최민혁 실장이었으니.
“최용욱 회장을 잘 좀 설득해 보게. 이번 일이라면 나름 괜찮은 거래가 될 수 있으니까. 다만 샐로먼 브러더스 쪽과의 이야기는 조심해. 괜한 구설수에 오를 수도 있으니까.”
“…알겠습니다.”
“하, 이게 뭐 하는 일인지 모르겠어. 과거라면 탈세 혐의자를 잡아들여서 조사하면 되었는데, 오히려 눈치를 봐야 할 상황이니.”
“최민혁 실장은 예외입니다.”
“뭐가? 지금 봐서는 사익 편취를 위해서 나라를 팔아먹고 있잖아.”
“KM 전자를 보면 이야기가 다릅니다. 진정 어린 납세자 모습을 보여주는 기업이니까요.”
“아, 그런가.”
“…국세청에 낸 세금 현황을 보면 그렇게 완벽할 수가 없습니다. 납세의 정석이라고 할 만합니다.”
“그런 사람이 왜 해외에서 난 수익에 대해서는 인색한지 모르겠어.”
“…그러게요.”
이환채 차관 역시 답답하기는 매한가지였다. 다만 그 역시 최민혁 실장이 벌어들인 수익 규모를 대충 알고 있었다.
원칙대로라면 수천억 단위 세금을 내야 했다.
‘하긴 나라도 원칙대로 세금을 낼 수는 없지.’
* * *
이환채 차관은 저녁 늦은 시간에 최용욱 회장에게 전화해서 약속을 잡았다.
그는 최용욱 회장 사택으로 직접 방문하기로 한 것이었다.
물론 만약을 위해서 최용욱 회장 저택 주변에 경비원을 배치했다.
괜한 구설수는 곤란해서다.
특히 언론 말이다.
두 사람 만나는 사진이 언론에 나오기라도 하면 난리가 날 일이었다.
때문에 만약 위해서 매제의 차량을 빌렸다.
게다가 그는 성환수 보좌관 한 사람만 동행했다.
그는 최용욱 회장 저택에서 이미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최용욱 회장을 봤다.
최용욱 회장은 갑작스러운 이환채 차관의 방문에 당황한 눈치였다. 그 역시 혹시나 정부와 척을 진 것이 아닌가 염려했다.
하지만 그럴 일은 없었다.
이환채 차관은 넌지시 이동통신 사업과 관련된 여러 가지 제안을 내놓았다.
최용욱 회장이 입맛대로 사업할 수 있도록 다양한 계획을 보여줬다.
“…자본만 투자하시면 됩니다. 나머지는 우리 재정 경제원 측에서 알아서 도와줄 겁니다. 인허가 문제는 걱정 안 해도 됩니다. 다른 기업과의 알력도 중재해 드리겠습니다.”
최용욱 회장은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그는 재정 경제원이 내놓은 투자 리스트를 보면서 입을 도저히 열 수가 없었다.
이런 특혜는 그 살아생전에 받아본 적이 없었다.
아니, 재정 경제원 차관이 노골적으로 특혜를 내주는 것도 말이다.
정치 비자금을 요구했다면 이해라도 할 것이다.
그런데 그런 것도 없었다.
그는 한편으로 대리만족을 느껴서 뿌듯하기는 했지만 다른 한편으로 도저히 이 상황을 믿을 수가 없었다.
“…이거, 믿어도 되는 겁니까?”
“압니다. 최 회장님이 이상하게 생각할 수 있는 것을 말입니다.”
“아니, 함정 같아서 좀 걱정됩니다.”
그는 실제로 서재에 들어와 있는 집사에게 눈짓을 줬다.
집사는 얼마 있지 않아서 다시 나타났다. 그는 곧 고개를 내저었다. 감시 인력은 없었다. 언론은 더 말할 것도 없었다.
이환채 차관은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았다.
“우리 측에서 살펴본 바로 최동영 상무가 이 이동통신 사업에 관심이 많은 것으로 파악했습니다.”
“…허허, 그거야 다른 기업도 마찬가지입니다. DL 그룹만 해도 올해만 2,000억 넘게 투자했는데, 앞으로 5년 동안 2조 가까이 더 투자할 겁니다.”
“그건 저도 압니다. 그런데 그건 또 모르는 일입니다. 일단 2,000억 투자를 다 할지 알 수도 없고, 2조는 믿기 어렵습니다. 다른 기업도 비슷합니다. 그들의 투자 여건이 좋지 않습니다. 오히려 최 회장님이 더 믿을 수 있습니다. 저희가 굳이 이런 특혜를 주는 이유입니다.”
실제로 이건 사실이었다.
한국에 있는 그만한 대기업도 요즘은 다들 바짝 긴장했다.
그들은 가능하다면 사내 지출까지 줄이는 모양세다.
사내 복지는 다 취소하고 말이다.
그런데 KM 그룹은 달랐다. 현금이 넘쳐나다 못해 주체를 못 하니까. 따지고 보면 최동영 상무가 마지막 승부수를 던진 이유였다.
“그래도…….”
이환채 차관은 최용욱 회장의 의심스러운 눈빛을 보자 그제야 슬쩍 말을 돌렸다.
“최민혁 실장님.”
“…설마 민혁이 때문에 이러는 겁니까?”
“솔직히 최민혁 실장님 도움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우리 쪽에서 직접 그런 제안을 하기는 힘듭니다. 아무래도 최용욱 회장님 도움이 필요합니다. 아, 그랬다면 좋겠다는 이야기입니다.”
“혹시 달러 때문입니까?”
“…네.”
“하긴 지난주에 갑자기 외환 시장에 혼란이 있다는 보고는 받았지만…….”
설마 그 정도인지는 최용욱 회장 역시 몰랐다.
실제로 무역 수지 적자가 늘어나고는 있다지만 실물 경제에 영향을 주지 않았다.
사람들은 아직 외환 시장 혼란의 위험성을 직시하지 못했다.
그나마 최용욱 회장은 최민혁 실장에게 경고를 받아서 반응할 뿐이었다.
이환채 차관은 최용욱 회장의 눈치를 보다가 조심스럽게 최민혁 실장이 에플 지분 12% 매각 대금을 어떻게 처리했는지 말했다.
최용욱 회장은 묵묵히 듣기만 했다. 그는 손자 최민혁을 타박하지 않았다. 오히려 내심 잘했다고 생각했다. 물론 겉으로 그렇게 말하지는 않았고 말이다.
‘달러라.’
그도 사실 내용을 알과 나서는 놀랐다.
“…좀 더 검토한 후에 연락하겠습니다.”
“부탁합니다.”
“……”
최용욱 회장은 재정 경제원 이환채 차관을 의문스럽게 쳐다보기는 했지만, 꼭 그렇게만 생각하지도 않았다. 이 일에 한 사람이 관련되기 때문이다.
‘민혁이 이 녀석이 의도한 것일까? 설마 보복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