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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 3세는 조용히 살고 싶다-987화 (987/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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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동영 상무 역시 지금 말하면서도 내심 가슴을 졸였다.

그 역시 조카 최민혁이 아니었다면 이 사업에 뛰어들었을 것이다.

KM 건설 내의 자금으로 말이다.

올 연 초만 해도 KM 건설 구조조정 후에 쌓인 현금이 넘쳐났다.

그 자금을 어떻게 해서라도 굴리고 싶었다.

그도 조카 최민혁 실장보다 자신이 더 낫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최문경 부회장이 조카에게 된통 당하는 것을 보자 몸을 사렸다.

그의 마음에 큰 변화가 온 것은 에플 지분 12% 매각 때문이었다.

과거 최민혁 실장이 에플 지분을 사들인다고 할 때 그 자신도 미친놈이라고 욕했다.

그런데 아니었다.

수백만 명의 집단 지성이 틀렸다.

오히려 최민혁 실장이 옳았다.

최동영 상무는 그때 이후로 최민혁 실장이 한 주장을 자세히 분석했다. 어떤 일도 대충 넘기지 않아서 TRS 사업 본질을 깊이 들여다봤다.

“전역에 TRS 사업 인프라를 깔면, 그 이후로 수익성이 확보된다는 계산을 한 것 같습니다. 하지만 과연 그렇게 될지는 의문입니다.”

최용욱 회장은 흥미로운 눈길로 최동영 상무를 쳐다보았다. 그도 최동영 상무가 자신에게 이렇게 적극적으로 어필하는 것은 처음 경험하는 일이었다.

“왜지?”

“제2 이동통신 사업과의 경쟁 때문입니다. 이 사업이 활성화되면, TRS 사업 일부를 잠식할 겁니다. 그렇게 되면 결국, 제한적인 시장만 남을 겁니다. 시간이 갈수록 더 어려워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건…….”

“네. 민혁이가 한 주장입니다. 전 아버지가 TRS 사업을 정리한 것이 최상의 선택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그 대안을 준비하지 않은 것이 실책이라고 생각합니다. TRS 사업을 대리한 이동통신 사업은 포기하지 말아야 합니다. 지금이라도 컨소시엄에 합류해도 늦지 않습니다. 아직은 이동통신 사용자가 그렇게 늘지 않으니까요.”

“앞으로는 다르다는 이야기냐?”

“네. 전 그렇게 생각합니다. 민혁이가 이와 유사한 주장을 했는데, 그게 다 맞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민혁이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허, 아예 대놓고 그런 주장을 할 줄은 몰랐구나.”

“지금이 아니면 영원히 기회가 없으니까요.”

다만 최동영 상무는 KM 전자와 비 KM 전자 계열사 간에 늘어나는 불만에 대해서는 굳이 자세하게 말하지 않았다.

그저 자신을 낮출 뿐이었다.

최용욱 회장은 눈을 감았다. 최동영 상무는 굳이 최용욱 회장을 압박하지 않았다. 그는 참는 자가 승리할 것이라 확신했다.

‘민혁이 능력이 탁월한 것은 사실이지. 하지만 편 가르기가 너무 심해.’

사실 딱히 최민혁 실장을 탓할 일은 아니었다.

지금 KM 그룹은 최민혁 실장에게 남이나 마찬가지였다.

아니, 최민혁 실장은 솔직히 KM 그룹 다른 계열사에 관심이 없었다.

최문경 부회장만 아니라면 말이다.

최용욱 회장은 뒤늦게 탄식하고 말았다. 자신이 판을 만들기는 했지만 자기 뜻대로 흘러가지 않는 이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하지만 그조차 손자 최민혁을 불러 잔소리를 할 계급은 되지 않았다. 오히려 요즘은 최민혁이 부담스러울 지경이었다.

“하, 이걸 좋아해야 할지 모르겠구나. 문경이 그 녀석 때문에 민혁이가 그나마 그룹에 신경을 썼다니.”

장승일 실장은 최민혁 실장에 대해서 말할까 하다가 그만뒀다.

최용욱 회장이 먼저 입을 열었다.

“장 실장이 고생이 많아. 하지만 자네도 들었다시피 지금 상황이 이래. 최 상무 말도 일리가 있잖아. 지금과 같이 긴박한 상황에서 최 상무에게 뭔가 인센티브를 줄 수밖에 없어. 민혁이 그 녀석이 KM 전자 기획실장을 맡은 것도 그 일이었으니까.”

“…알겠습니다. 최민혁 실장님에게는 제가 다시 말해보겠습니다.”

“민혁이 그 녀석도 생각보다 잔정이 많아서 자네 부탁을 무시하지는 않을 거야.”

“…네.”

장승일 실장은 그다지 자신이 없는 투로 대답하고 말았다. 자신이 만나본 최민혁 실장은 찔러도 피 한 방울 나지 않을 정도로 냉혈한 기업가였다.

‘하긴 그게 좋기는 해. 다만 이번에는 좀 더 조사를 해봐야겠어.’

* * *

최민혁이 국내에 있는 동안에 에플 내에서도 많은 일이 있었다.

최민혁 실장이 매각한 지분을 얻은 이들이 에플 이사회에 속속 합류했다.

그중에는 마쿨라 이사가 리더가 되어서 스티븐을 계속 압박했다.

기조연설과 CES 전시회에도 시비를 걸었다.

[비용이 너무 많이 들어갑니다!]

스티븐은 최민혁 실장 도움을 얻어서 기조연설을 준비하기는 했지만 여러 가지 비용을 추가해 주어야 했다.

덕분에 이 과정에서 생각보다 큰 비용이 들어갔다.

한화로 1,000억이 넘었다.

다만 당시에는 이 자금을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투자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마쿨라 이사는 이런 점을 계속 이사회를 동원해서 걸고넘어졌다.

에플 이사회가 열리면 스티븐의 막연한 주장을 무시하고는 했다.

[스티븐은 이게 문제입니다. 늘 말하는 것이 미래입니다. 그런데 그 미래가 정해진 겁니까? 지금 현실이 그 미래를 정하는 방아쇠입니다. 게다가 그 현실이 거지입니다. 그런데 뭔가 된다는 말입니까? 솔직히 기조연설을 왜 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물론 스티븐도 이에 대한 대답을 해주었다.

하지만 마쿨라 이사의 반응은 한결같았다.

기승전 스티븐 탓이었다.

스티븐은 에플 이사회를 상대하는 것만으로 진이 빠지고 말았다.

거기다 간혹 지인 파티에 가서 안 좋은 이야기도 들었고 말이다.

최민혁 실장이 미국 내의 분위기를 알고자 전화를 했을 때 스티븐이 할 말은 딱 정해져 있었다.

[당분간은 미국에 오지 않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최 실장님이 이곳에 나타나면 제 입장이 생각보다 안 좋아집니다.]

[…알겠습니다.]

[죄송합니다. 최민혁 실장님을 탓하는 것이 아니라 최민혁 실장님의 이미지에 안 좋습니다. 지금은 피해 있어야 합니다!]

[…그러죠.]

최민혁도 스티븐의 입장을 대충 예상했다. 그 자신이 매각한 에플 지분 12%가 문제였다. 자신이야 천문학적인 자금을 챙겼지만 말이다.

‘기존 2조 6천억, 15억 달러를 포함해서 한화로 대략 15조가 조금 넘는다고 했나?’

달러로 대략 220억 달러, 한화로 약 15조가 넘는 금액이었다.

여러 가지 세금을 비롯한 잡다한 비용을 다 제외한 금액이다.

벨린 투자 계좌에 꼽히는 총액수였다.

정확한 것은 아니었다.

대략 추정해서 그 정도일 뿐이다.

최민혁 실장은 고민하다가 조성돈 팀장을 호출해서 미국 사정을 좀 더 살피기로 했다.

“아, 안 그래도 최영란 본부장이 지금 미국에 가 있습니다.”

“그래요? 잘되었어요. 지금 국내 사정을 한번 알려보세요. 이왕이면 최동영 상무 일도 좋고요.”

여기까지 말한 후에 곰곰이 생각해 봤다.

최훈열 전무와의 싸움은 최훈열 전무의 비리에서 시작되었다.

이 경우는 최민혁 실장이 최훈열 전무를 공격해도 이상하지 않았다.

최문경 부회장 역시 다르지 않았다. 다만 이 경우는 최훈열 전무보다는 어려운 싸움이었다. 최문경 부회장은 자기 약점을 잘 드러내지 않았다.

그런데 최동영 상무는 어떨까?

그는 최훈열 전무나 최문경 부회장 경우와는 차원이 달랐다.

최동영 상무는 평판도 낮지 않았다. 이런 이를 상대로 최훈열 전무에게 한 것처럼 한다면, 외부에 좋은 이미지를 줄 수는 없었다.

패륜 이미지 말이다.

‘아니, 그렇게 몰고 가겠지. 언론에 몇 가지 기사만 던져 줘도 그렇게 만드는 것은 어렵지 않으니까. 생각보다 심각하잖아?’

최민혁은 이를 으드득 갈았다. 생각해 보니, 이 그림이 자신에게 불리했다.

그는 그제야 최동영 상무가 왜 그렇게 당당한지 알 수 있었다. 최동영 상무는 나름 조커를 쥐고 있던 셈이다.

‘그렇단 말이지…….’

대안이 필요했다.

최영란 본부장이 그 답이었다.

최문경 부회장의 장녀 최영란 본부장 vs 최문경 부회장 셋째 동생 최동영 상무전 말이다.

“여유가 된다면 국내로 들어오라고 해주세요. 최동영 상무 일을 맡겨도 괜찮을 것 같으니까.”

“…네.”

조성돈 팀장은 혀를 찼다. 최민혁 실장이 최동영 상무를 상대로 마음대로 하다가는 좋은 이미지를 얻기가 어려웠다.

최동영 상무가 이걸 이용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아니, 어쩌면 벌써 그런 계획을 짰을 수도 있겠지.’

그러니 최영란 본부장은 그 대안으로 나쁜 카드는 아니었다.

아니, 가장 이상적인 그림이었다.

* * *

미 국무부는 백악관 근처에 자리 잡고 있는데, 6명의 차관, 수십 명의 차관보급으로 구성된다. 그곳에서 미국 외교 정책을 컨트롤한다.

해외에서 미국 국력과 관련한 다양한 활동을 행사하는 만큼 그 영향력은 막강했다.

최영란 본부장은 자신이 비록 KM 산업 본부장으로 재벌 3세이기는 하지만 이 미 국무부 위세에는 숨을 죽였다.

그녀를 수행한 이들 역시 다들 마른침을 삼키기는 매한가지다.

비록 KM DVR 공급 계약 때문에 이 장소를 찾기는 했어도 말이다.

미 국무부 직원이라면 최영란 본부장에게 갑질을 해도 이상하지 않았다.

심지어 동양인이니, 인종차별까지 겸해서 말이다.

하지만 그녀를 접대하는 미 국무부 직원은 전혀 그렇지가 않았다.

자신을 파르빈 라미네즈 국장이라고 밝혔는데, 마치 경호원처럼 최영란 본부장을 접대했다.

덩치가 190이 넘었으니, 그 위세가 결코 만만하지 않았다.

그 뒤를 따르는 국무부 경호 팀은 별개로 하더라도 말이다.

그런데 이들이 이러는 것은 이유가 있었다.

미 국무부 건물 내에 KM DVR를 설치해야 했다.

이 KM DVR은 기존 판매품과는 달리 풀옵션에, 추가적인 커스텀 항목이 들어갔다. 일테면 레이저 감시를 비롯한 추가적인 장비였다.

워낙에 단가가 비싸서 일반인이 쓸 수 없는 제품이었다.

아니, 엄밀히 말해서 돈이 많아도 이 장비를 사용할 수는 없다.

메이런 프로젝트에서 사용된 기술도 포함하기 때문이다.

그나마 미 국방부라서 그 기술을 사용할 뿐이다.

최영란 본부장은 기가 팍 죽어 있는 KM DVR 엔지니어에게 일일이 지시를 내리면서 파르빈 라미네즈의 눈치를 봤다.

“…생각보다는 일이 많네요.”

“아무래도 보안 규칙을 따라야 하니, 쉽지는 않을 겁니다. 하지만 우리 측 보안 담당자가 직접 도와줄 겁니다. 보안 규칙을 포함해서 말이죠.”

미 국무부 보안과 관련된 일이다. 당연히 제약 조건이 많았다. 일테면 설비 장비에 대한 보안 말이다. KM 센서에는 그다지 좋은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다르게 보면 꼭 그렇지도 않았다.

미 국무부 내에서 보안 설비를 설치했다는 것만으로 최고의 영업이 되니까.

최영란 본부장은 겉으로는 잔뜩 쫄아 있어 보이지만 내심은 휘파람을 불었다. 그녀는 이제 2~3년 광고비를 아꼈다고 쾌재를 불렀다.

미 국무부가 늘 언급될 때면 KM DVR 장비가 나올 테니 말이다.

다만 그녀도 미 국무부 대응이 의아했다. 굳이 자신을 이렇게 높여줄 필요는 없었다.

당장 그녀를 둘러싼 경호원이 그 대답이었다.

마치 VIP처럼 그녀를 경호하고 있으니 말이다.

“굳이 이렇게까지 안 해주셔도 되는데…….”

파르빈 라미네즈 국장은 지금까지는 영혼 없는 어조로 말하다가 슬쩍 말을 바꾸었다.

“솔직히 최민혁 실장님에게 할 말이 많습니다.”

“네? 그러면 직접 전화해서…….”

“전화를 안 받습니다.”

“그러면 미국으로 오라고 해서…….”

“안 옵니다.”

최영란 본부장은 그제야 파르빈 라미네즈 팀장 같은 사람이 나와서 자신을 접대하는 이유를 깨달았다.

‘어쩐지.’

지금 자신을 대하는 미 국무부 직원 반응은 오버도 너무 오버였다.

하지만 그녀는 마음이 뿌듯했다.

최민혁 실장 덕이기는 하지만 이런 대접도 나쁘지 않았다.

실제로 미 국무부를 오가는 많은 타국 외교관은 그녀 일행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그들끼리도 의견이 오가고 말이다.

‘영업이다!’

최영란 본부장은 일단 외부 일은 그저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그런데 파르빈 라미네즈 팀장의 반응이 좋지는 않았다.

“최민혁 실장님이 벌인 때문에 미국 국내 사정도 좋지 않습니다. 비록 IMF에 손을 썼기는 하지만 반발 역시 만만치 않습니다.”

“아, 네, IMF라…….”

그녀는 슬쩍 입을 다물었다. 도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결국 제한적인 정보와 타박만 들었다.

그녀는 그때야 최민혁 실장이 영향력이 얼마나 대단한지 새삼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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