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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 3세는 조용히 살고 싶다-986화 (986/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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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품 오더를 맞춰주기 위해서 미친 듯이 움직여야 했다.

거기에 기술 안정화는 덤이고 말이다.

최민혁 실장이 무리수를 둔 덕분에 KM 센서는 후유증에서 아직 벗어나지 못했다.

그건 KM 반도체 역시 다르지 않았다.

아직 기반이 안정화되지 않은 터라 여전히 불협화음이 터져 나오는 중이다.

장승일 실장은 골치가 아팠다. 그는 최동영 상무가 왜 갑자기 일을 벌이려고 하는지 원망스러웠다. 하지만 그도 이번 요구를 무시할 수는 없었다.

“최 실장님에게 한번 연락해 보겠습니다. 만약 그룹 차원에서 신사업을 검토해야 한다면, 한번 자세히 알아보겠습니다.”

최동영 상무는 냉정하게 말했다.

“우리 최 회장님의 원칙은 공정한 기회입니다. 그 점을 잊지 말기 바랍니다.”

“…알겠습니다.”

* * *

장승일 실장은 최동영 상무의 주장에 대해서 골치 아파하면서도 무시하지는 못했다.

그것은 벌써 올해 들어서 반도체 누적 반도체 수출 규모가 무려 300억 달러를 돌파해서다.

68년에 반도체 사업을 착수한 이래로 기념비적인 실적이었다.

놀라운 점은 100억 달러 이익이 불과 1년 사이에 생겨났다는 점이다.

특히 올해 들어와서 수출 규모가 폭증한 것이 그 증거였다.

전략 기획실은 이 반도체 실적을 분석하면서 차세대 반도체 먹거리를 조사해야 했다. KM 반도체는 어떻게 보면 이에 대한 선행 기업이었다.

구길모 차장도 이 부분만큼은 최동영 상무를 무시할 수는 없었다.

“아무래도 KM 산업이 독보적으로 매출을 끌어올리면서 다른 계열사가 무시된 것은 사실입니다. 특히 KM 건설의 최동영 상무는 그룹 내에서 배제되었습니다.”

최동영 상무가 억울하다고 내세운 것은 역시 자신은 그룹 지시대로 움직인 것밖에 없다는 사실이다.

그는 KM 그룹 기획 조정실에서 내려준 지시를 묵묵히 따랐다.

결국 KM 건설은 국내 건설 경기 위기 상황에서도 안정을 찾았다.

다만 그 덕분에 문제가 생겼다.

바로 기업의 성장.

KM 건설은 재무적으로 안정되었지만 정작 미래의 캐시 카우를 얻지 못했다.

애니 아파트가 있기는 하지만 이것은 너무나 먼 미래의 일이었다.

우선 오성 물산이 주도하는 일이라서 KM 건설은 꽤 기다려야 했다.

황당한 것은 최민혁 실장이 이 일을 아예 도와주지 않는다는 점이다.

오성 물산은 그 때문에 최근에 와서 KM 건설을 찬밥 대우했고 말이다.

일테면 오성 물산은 KM 건설을 툭툭 건드리면서 최민혁 실장의 반응을 떠본 것이었다.

하지만 최민혁 실장은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구길모 차장은 이런 점을 걸고넘어졌다.

“솔직히 이 일 때문에 말이 많습니다. 다들 최민혁 실장님 능력을 인정하면서도 정작 계열사는 챙겨주지 않는 데 대해 불만을 품고 있습니다.”

장승일 실장은 한숨을 내쉬고 말았다. 그도 정작 보고를 받기는 했지만, 성장을 우선으로 한 터라 신경을 쓰지 못한 일이었다.

“…그 이야기는 다시 보고서를 작성해서 올려봐.”

“오늘 저녁까지 바로 올리겠습니다.”

* * *

최민혁 실장의 능력이 독보적이라는 것을 이제는 KM 그룹 임직원들도 모를 수가 없었다. 그들은 당연히 최민혁 실장이 자기 계열사를 챙겨줄 것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현실은 그렇지가 못했다.

최민혁 실장은 KM 전자 자기 측근은 알뜰하게 챙기는데, KM 그룹 계열사는 아예 타인 회사보다 못한 대우를 해줬다.

이건 KM 그룹 계열사 측에서 KM 전자 측과 사업 협조를 할 때 두드러지게 드러났다.

그런 불만은 하나둘씩 쌓였고 말이다.

장승일 실장도 이런 불만이 있다는 것을 듣기는 했지만, 이 정도인지는 몰랐다.

‘에플 지분 매각 초대박 때문일까? 하긴 차익만 15조가 넘는다는 소리가 있으니.’

KM 전자는 그야말로 하루하루가 돈 파티였다.

그런데 KM 그룹 계열사 수중에는 단 한 푼도 떨어지지 않았다.

아니, 있기는 했다.

내년 경제가 어렵다는 것을 전제로 한 구조조정만 진행했으니까.

그야말로 커피 믹스 하나까지 쥐어짰다.

‘…이건 문제구나.’

장승일 실장은 그제야 최동영 상무가 왜 하필이면 이시기에 나대는지 알 것 같았다. 지금 시기가 정말 딱 적기였다.

이에 구길모 차장을 비롯한 기획 조정실 직원을 다 호출해서 회의를 열었는데.

구길모 차장이 마치 대표처럼 나서더니 불만을 토로했다.

“솔직히 KM 건설이 일 처리를 못한 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그건 알아.”

“하지만 KM 건설 입장은 다릅니다. 죽어라 장 실장님 지시만 따랐는데, 아예 그 점을 무시하니까요. 오직 최민혁 실장님에게만 집중했지 않습니까?”

“구 차장, 자네는 내가 최민혁 실장님을 일방적으로 민다고 생각해?”

“저는 아니라고 봅니다. 하지만 그룹 내에서 말들이 많은 것이 사실입니다.”

“아니, 자네가 그런 의견을 낸다고?”

“최문경 부회장일 때도 말이 많았습니다. 그때는 최문경 부회장 눈치 때문에 내색하지 못했고요. 하지만 지금은 다르지 않습니까? 최민혁 실장님도 자기 기회를 놓치지 않아서 성공했는데, 최동영 상무에게도 기회를 줘야지요?”

“…진심으로 하는 소리야?”

구길모 차장은 차가운 장승일 실장의 시선에 움찔 몸을 떨었다. 하지만 그는 자기 내심을 말할 수는 없었다. 최동영 상무 측에서 제안해 왔다는 사실을 말이다.

이 제안은 그에게 부귀영화를 약속하는 것이 아니었다.

이보다는 승진, 인센티브와 같은 여러 가지 혜택이 있을 뿐이다.

그의 처지에서 지금 최민혁 실장을 지지한다고 해서 콩고물이 떨어지는 것도 아니다.

최민혁 실장은 자기 측근이 아니면, 특별한 인센티브를 주지 않기 때문이다.

‘조 차장 경우가 그렇잖아.’

그도 조창호 차장의 인센티브 소식은 인사과를 통해서 우연히 들었다. 보상으로 나간 믿을 수 없는 지분 말이다.

“아니, 그렇잖습니까. 최용욱 회장님의 경영 철학 자체가 모든 임직원에게 공평한 기회를 주는 겁니다. 그런데 최민혁 실장님만 일방적으로 밀어주는 것은 공평하지 않습니다. 혹시 누가 압니까? 최동영 상무님 역시 최민혁 실장님 못지않을 실적을 낼지 말입니다.”

“하, 이봐, 구 차장.”

“…네.”

“…설마 돈 받았어?”

“아, 아닙니다.”

“정말이야? 내가 확인해서 문제가 생기면 가만히 안 둘 거야!!”

“절대로 아닙니다!”

장승일 실장은 잠깐 구길모 차장을 째려봤다. 그도 구길모 차장 입장을 무시할 수가 없었다.

월급쟁이 신세.

지금처럼 경영 승계 싸움이 있을 때 어느 라인에 붙느냐가 중요했다.

그게 곧 생존 문제이니까.

장승일 실장 자신 역시 별반 다르지 않았다. 그는 최용욱 회장 측에 섰다가 최민혁 실장 라인으로 갈아탔으니 말이다.

그 자신은 지금 미래를 생각할 필요가 없었다.

하지만 구길모 차장은 좀 달랐다.

그는 혹시나 싶어서 한 가지를 지적했다.

“혹시 기획 조정실의 다른 친구도 자네랑 비슷해?”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정말 날 속일 생각이야?!”

차갑게 굳어진 장승일 실장의 표정에 구길모 차장은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그는 장승일 실장이 단단히 화가 났다는 것을 깨달았다.

“…사실 잘 모르겠습니다.”

“쯧, 휴우, 그래, 뭐 이해를 못 하는 건 아냐. 하지만 자네가 나서서 경고해. 괜히 돈 받다가 걸리면 그냥 놔둘 수 없으니까. 아니면 아예 걸리지 말든지.”

“…아, 알겠습니다.”

그는 구길모 차장을 한동안 째려봤다. 그런데 무조건 그를 탓할 수는 없었다. 최동영 상무가 자꾸 이곳저곳을 찔러보는데, 흔들리지 않을 임직원은 없었다.

그건 회의에 참석한 다른 임직원들 역시 마찬가지다. 그들 역시 불만이 많았다. 차별 대우 말이다. KM 전자와 다른 KM 계열사 간의 차이 말이다.

‘하긴 KM 전자와 다른 계열사 간에 차이가 너무 심하긴 하지.’

* * *

장승일 실장은 이런저런 일 때문에 그냥 자리만 지킬 수는 없었다. 그는 이번 기회에 최민혁 실장을 직접 찾아갔다.

“요즘 핫한 소문 잘 듣고 있습니다.”

최민혁 실장은 갑자기 자신을 찾아온 장승일 실장에게 그다지 놀라지 않았다. 다만 그는 과로에 절어 있는 장승일 실장을 보자 이전처럼 괴롭힐 수는 없었다.

“에플 지분 매각 건 말입니까?”

“그것도 있고요. 요즘은 콜린스 사업부 매각 이야기가 더 많이 나옵니다.”

“아, 그거야 이제 슬슬 정리할 때가 되었으니까요.”

“…정말 콜린스 사업부를 매각하실 생각이군요.”

“다 아는 사실 아닙니까? 이미 우리 할아버지도 묵인한 사안이니까.”

“하긴.”

그도 최민혁 실장이 에플 지분 매각 초대박 사실을 잘 안다. 그 막대한 돈이면 콜린스 사업부를 정리해도 그다지 부담되지 않았다.

더욱이 시기적인 것도 있고 말이다.

장승일 실장은 몇 가지 소소한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는 최민혁 실장이 KM 전자 입사 이후에 자신이 한 기여에 대해서도 설명했다.

“…딱히 제가 최민혁 실장님에게 보상해 달라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최민혁 실장님은 이미 많이 먹지 않습니까? 그룹 차원에서 좀 도와주십시오.”

“설마 최동영 상무 일을 말하는 겁니까?”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그걸 지금 말이라고 하세요? 아니, 본인이 신사업을 하고 싶으면, 본인이 알아서 해야죠.”

“아시지 않습니까. 신사업 리스크가 얼마나 큰지 말입니다.”

“모르겠네요.”

“지금 경제 상황 말입니다. 강달러 때문에 일본 엔화가 직격타를 받았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올해 무역 수지 적자는 200억 달러를 넘어설 것이라 예상합니다. 경제를 모르는 사람이라도 이 상황에서 신사업이 어렵다는 것을 잘 압니다.”

“그러면 신사업을 안 해야죠.”

“하지만 시기적으로 최동영 상무는 이번이 마지막 기회입니다. 이번에 성과를 내지 못한다면 경영권 레이스에서 탈락이니까요.”

“할아버지가 그걸 원하지 않는다?”

“네. 회장님도 최민혁 실장님이 바탕이 없을 때는 밀어줬지 않습니까. 최소한의 도움을 달라는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그건 최민혁 실장님에게 어렵지 않은 일입니다. 그저 손가락 하나만 까딱할 일 아닙니까?”

“하. 제가 그런 능력자도 아니고요. 설사 그렇다고 해도 세상 참 쉽게 살려고 하시네요.”

최민혁은 당연히 삐딱하게 받아쳤다. 그는 아직 후계 구도가 완전히 끝나지 않은 시점에서 KM 그룹을 밀어줄 생각이 없었다.

“하지만 단적인 예를 들면 KM 센서는…….”

“그건 저도 원하는 것이 있어서 한 일입니다. 일종의 변덕이죠.”

“…변덕이라니.”

장승일 실장은 그다지 놀라지 않았다. 그가 최민혁 실장에게 조심하는 것은 이런 이야기를 들을까 염려한 것이었다.

최민혁 실장이 피식 웃었다.

“우리 셋째 큰아버지가 이번이 마지막 기회라고 되는 양 설치는 것 같은데, 제가 그 일을 도와주는 게 이상한 것 아닌가요?”

“하지만 이번 일은 그룹 차원에서…….”

“우리 할아버지 생각은 알 것 같아요. 최동영 상무에게 기회를 줄 셈이죠. 공평한 기회라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하지만 제 입장은 어떻게 되는 거죠?”

“압니다. 최 실장님에게 불만이 생긴다는 것을요. 하지만 그룹 회장이라면 그 정도 대범함이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모르겠네요. 전 바쁜 일이 있어서 이만 일어나겠습니다.”

“네? 자, 잠깐만…….”

하지만 최민혁 실장은 이미 자리를 비우고 난 다음이었다.

* * *

장승일 실장은 결국 최민혁 실장의 냉랭한 반응 때문에 최용욱 회장을 찾아갔다.

그런데 최용욱 회장 서가에는 이미 다른 손님이 와 있었다.

바로 최동영 상무였다. 그는 장승일 실장을 보자 정중하게 눈인사를 했다. 물론 하던 이야기를 멈추지는 않았다.

“DL 그룹은 이미 이동통신 사업자 선정에 참여하면서도 TRS 사업을 포기하지 않고 있습니다. 오히려 아버지가 포기한 덕분에 더 이 TRS 사업에 집착하는 것 같습니다.”

“재정 상황이 좋지 않을 텐데, 아, 이번에 일본에서 다시 출자를 받았다고 했지.”

“TRS 자가망 구축을 위해서 비용이 많이 들어가서입니다. 이런 투자를 이용해서 경찰청, 한전에도 영업한다는 전략입니다.”

물론 이건 DL 그룹 혼자 하는 것은 아니었다.

컨소시엄을 해서 하는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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