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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아침부터 권태성 기획실장에게 직접 찾아갔다.
그다음에 그녀가 조창호 차장에게 들은 이야기를 해주었다.
대부분 알아도 소용이 없는 것 위주로 말이다.
“…으음.”
하지만 권태성 기획실장은 그것만으로도 큰 충격에 빠져서 아무런 대답을 할 수가 없었다. 그도 애니 인공지능에 사용된 기술이 만만치 않다는 것을 잘 알았다. 다만 그 기술의 출처는 이지수 박사라고 생각했다. 심지어 무인 항공기에 적용된 기술도 있고 말이다.
그런데 그걸 모두 최민혁 실장이 청사진을 만들었다는 말에 할 말을 잃고 말았다.
헬렌, 이지수 박사는 덤이고 말이다.
조창호 차장은 어떻게 보면 칩 개발만 한 셈이다.
때문에 이 부분은 소홀하게 생각했다.
정확히는 박세영 대리가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것처럼 언급했다.
임권수 부장은 당연히 말도 안 된다고 소리쳤다.
“그건 말도 안 됩니다! 정말 조 차장에게 제대로 이야기를 들은 것 맞습니까?”
박세영 대리는 당당하게 소리쳤다.
“절 미인계라는 도구로 써먹고도 제 말을 안 믿는 겁니까?!!”
단호한 대답에 임권수 부장은 흠칫 놀랐다. 그는 전혀 다른 사람 같은 박세영 대리의 모습에 화들짝 놀라고 말았다.
실제로 박세영 대리의 모습은 며칠 전 모습과는 많이 달랐다.
신념으로 가득한 모습.
그건 여자에게서 보기 힘든 모습이었다.
물론 두고만 보지 않았다.
“설마 박 대리, 혹시 딴마음 먹은 거야?”
“그건 무슨 뜻이죠?”
“내 말은 혹시 조 차장에게 다시 마음을…….”
박세영 대리는 모멸적인 어조로 소리쳤다.
“멀쩡한 사원을 미인계로 이용하고도 그런 소리가 나와요?!”
“아니, 내 말은…….”
“진짜 추잡스럽네요. 자신이 지시를 내려놓고도 믿지 못하다니. 그럴 거면 왜 저를 조창호 차장에게 보낸 거죠?!”
“오, 오해야. 난 그런 의도로…….”
박세영 대리는 날카로운 눈으로 권태성 기획실장을 쳐다보았다.
“솔직히 전 권 실장님에게 크게 실망했습니다. 이게 지금 뭐 하는 짓이죠. 고작 몇 마디 말로 남의 기술을 가로챌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아니, 내 말은 그런 뜻이 아니잖아. 단지 방향성만 알 수 있다면…….”
“고작 그걸로 남의 기술을 베낄 수 있다고 생각합니까? 정말 그렇게 생각해요?!!”
사실 베낄 수 있었다.
물론 최상의 실력을 갖춘 엔지니어라면 말이다.
불행히 권태성 기획실장은 기획자라 그러지 못할 뿐이다.
결국 권태성 기획실장은 크게 당황했다. 그는 박세영 대리가 저런 말을 할 줄은 몰랐다.
“그 점은 사과…….”
“아뇨. 저에게 사과한다고 될 문제가 아니에요. 도대체 우리 오성 전자는 뭐가 부족해요? 인력이 부족해요? 자금이 부족해요? 아니면 기술이 부족합니까? 그깟 음성 인식 기술 하나 제대로 못 만듭니까?!!!”
‘그렇다’라고 차마 말할 수 없는 권태성 기획실장이었다.
임권수 부장이 결국 다시 나섰다.
“이봐 박 대리, 말 너무 함부로…….”
“됐습니다. 저 회사 때려치울 테니까. 너무 그러지 마세요. 괜한 수작을 부리면, 언론사에 이 사실을 제보할 겁니다!”
그녀가 말과 동시에 쾅 소리와 함께 책상 위에 내놓은 것은 USB 메모리 스틱이었다. 이전에 지시한 내용을 담은 녹취록이었다.
불과 얼마 전에 권태성 실장과 임권수 부장이 지시한 대화 말이다.
박세영 대리는 영악스럽게도 두 사람 말을 애초에 믿지 않았다.
그녀는 바로 USB 메모리 스틱 안에 있는 녹취록을 들려주었다.
두 사람의 안색은 시퍼렇게 변하고 말았다.
박세영 대리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지금 있었던 일을 KM 전자, 아니, 조창호 차장님에게 말하지는 않겠습니다. 하지만 절 공격하면 그렇게 할 겁니다. 그러니 조심하세요!”
매몰찬 말을 남긴 박세영 대리는 자리를 휑하게 떠나 버렸다.
“…….”
권태성 기획실장은 식은땀을 흘렸다. 그로서는 전혀 예상도 못 한 일이었다.
[바, 박 대리! 자, 잠깐 이야기 좀 하자!!!]
임권수 부장과 황광수 차장이 슬쩍 일어나서 박세영 대리 뒤를 따랐다. 그들은 만약을 위해서라도 몇 가지 확인하러 간 것이었다.
권태성 기획실장은 괜한 짓을 했다가 뒤늦게 후회했다. 다만 이번 일의 후환은 걱정하지 않았다. 박세영 대리가 약속을 지킬 것이라 확신했기 때문이다.
이보다는 최민혁 실장과 앞일이 더 문제였다.
그나마 생각한 미인계.
그것도 머리를 많이 굴려서 진행한 일이었다.
그것조차 뜻대로 되지 않았다.
‘돌겠군. 후유, 이게 잘한 일인지 모르겠어. 최민혁 실장을 공격하는 것이 이렇게 힘들어서야, 정말 미치고 환장할 노릇이야.’
* * *
박세영 대리는 오성 전자에 사직서를 바로 제출했다.
그녀는 다행스럽게도 급한 프로젝트를 끝낸 상태라서 인수인계 할 것도 그렇게 많지 않았다.
그녀는 이렇게 자신의 신상을 마무리한 후에 조창호 차장에게 연락했다.
다행히 조창호 차장은 바로 미국으로 떠나지 않았다.
[어.]
[조 과장님, 아니, 조 차장님 미안해요.]
[……무슨 소리야?]
[아, 아니에요. 만나서 이야기 드릴게요.]
[……무슨 일이라도 있는 거야?]
[별일 아니에요.]
그녀는 대충 넘겼다.
하지만 자신과 관련된 일은 말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렇지 않다면 차라리 다시 시작하지 않는 것이 좋다고 생각했다.
다행이라면 조창호 차장은 아직도 박세영 대리에 대한 미련을 떨치지 못한 것이었다.
그로서는 다시 박세영 대리가 연락할 줄은 상상도 못 했다.
그는 믿을 수 없게도 첫사랑을 다시 만난 것이었다.
그 기쁨은 말로 형언하기 힘든 것이었다.
‘최 실장님, 정말 감사합니다.’
이 일은 최민혁 실장 덕분이라고 생각했다.
최민혁 실장이 묵묵히 자기 일을 할 수 있도록 밀어줬으니까.
포기하지 않고, 묵묵히 자기 일을 했으니.
첫사랑도 다시 돌아왔다고 생각했다.
실제로 사실이 그랬다.
[고, 고마워, 나 정말 앞으로 잘할게!!!]
[……네.]
박세영 대리 역시 조창호 차장의 환호에 눈시울을 붉히고 말았다.
그녀도 조창호 차장이 얼마나 자신을 진심으로 사랑하는지 이제야 안 것이었다.
물론 조창호 차장의 능력에 비중을 더 뒀지만 말이다.
그녀는 덕분에 조창호 차장의 집을 방문할 수도 있었다.
강남 한복판에 있는 무려 48평 아파트였다.
그런데 알고 보니 이 아파트도 최민혁 실장이 성과급으로 준 것이었다.
“…이, 이걸 회사에서 그냥 줬다고요?”
조창호 차장은 푼수같이 머리를 긁적였다.
“회사에서 제법 인정받아서 그래.”
“…대단하세요. 아무리 회사에서 인정받는다고 해도 48평형 아파트를 받다니.”
“스톡옵션도 있어. 그건 나중에 이야기해 줄게.”
“…제가 상상한 것과는 정말 많이 다르네요. 조 차장님을 다시 봤습니다.”
“뭐 그 정도는 아니고…….”
다만 박세영 대리는 마음을 굳혔고, 곧 자신이 왜 조창호 차장에게 연락했는지 이야기를 시작했다. 상세한 부분까지 다 포함한 이야기였다.
조창호 차장 안색은 곧 바위처럼 딱딱하게 굳어 갔다.
그로서는 충격적인 일이었다.
배신감마저 느꼈다.
하지만 박세영 대리는 이를 악물었다. 자신이 지금 이야기를 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했다. 그렇지 않으면 권태성 기획실장이 이를 악용하고도 남기 때문이다.
‘하, 정말 이게 뭐 하는 짓인지.’
* * *
박세영 대리와 조창호 차장 관계는 실로 극적인 일이었다.
두 사람 사이는 뜨겁게 타오르나 싶었지만 그렇지도 않았다.
다시 냉각기를 가진 것이었다.
다만 외부에서 봤을 때는 두 사람 사이의 미묘한 관계까지 알기는 어려웠다.
최민혁으로서도 이 두 사람의 적나라한 사이가 담긴 사진을 포함한 보고서를 받고도 황당했다.
“…이거 정말이에요?”
“…네. 몇 번이나 확인한 사안입니다.”
조성돈 팀장 역시 믿지 못하기는 매한가지였다. 다만 강남 한복판 48평 아파트가 있는 남자에게 여자가 훅하고 넘어갈 수도 있는 일이었다.
여자에게는 그게 현실이니까.
다만 이 일을 잘 들여다보면, 권태성 실장이 시도한 미인계가 분명했다.
하지만 그게 오히려 미남계식으로 흘러갔으니.
“다른 일은 없고요?”
“…네, 현재까지로는 별일이 없습니다. 조창호 차장이 뭔가 이야기한 것 같은데, 크게 중요한 일은 아닐 겁니다.”
“그렇겠죠. 뭐, 개요만 들어서 얻을 수 있는 것은 별로 없을 테니까.”
최민혁 실장이 최근 진행한 일 중에 그렇게 단순한 개요만 들어서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었다. 업데이트를 거치면서 계속 진화를 했기 때문이다.
권태성 기획실장이 생각하고 있는 기술 수준을 이미 넘어섰다.
최민혁 실장은 굳이 지금 당장 조창호 차장을 불러서 괜히 두 사람 사이를 깨고 싶지 않았다. 박세영 대리가 오성 전자를 사직한 것을 파악했기 때문이다.
심지어 이런저런 말이 많이 나오는 관계로 말이다.
‘설마 이것도 거짓은 아니겠지?’
아닐 것이다.
그렇게 보기에는 두 사람 관계를 찍은 사진이 그 증거였다.
박세영 대리 성향이 일반 여자와는 많이 다르기 때문이다.
“오성 전자가 제 눈치만을 본다고 생각했는데, 아닌 것을 확인했네요. 이 정도만 해도 꽤 성과가 큰 셈입니다.”
“확실히 다른 기업과는 많이 다릅니다. 이렇게 발톱을 숨겼을지는 몰랐습니다.”
“아마 우리가 약해지면, 숨통을 끊으려고 할 겁니다. 그러지 않도록 조심해야죠.”
“휴우.”
조성돈 팀장도 새삼 탄식하고 말았다. 이번 일은 너무 교묘해서 오성 전자를 탓하기도 곤란했다. 물어보면 개인의 일탈이라고 할 테니까.
그런데 김명준 과장이 갑자기 걸려온 전화를 받더니 눈살을 찌푸렸다. 그로서는 영문을 알 수가 없었다.
[그게 무슨 소리야? 두 사람 사이가 좋아졌다고 했잖아?]
[그게 확실치는 않습니다. 갑자기 관계가 틀어져서 어떻게 된 일인지 모르겠습니다.]
최민혁 실장이 바로 끼어들었다.
“그게 무슨 말이에요? 설마 조창호 차장 전화입니까?”
“네. 아무래도 두 사람 관계가 틀어진 것 같습니다. 이유는 잘 모르고요.”
“하.”
최민혁 실장은 이마를 잡았다. 그도 이 일을 신경을 쓸 수밖에 없었다. 이유는 이지수 박사가 몇 번이나 전화해서 항의했기 때문이다.
그녀가 할 말은 의외로 간단했다.
처음에는 조창호 차장에게 작은 일만 맡겼는데, 이제는 어느새 자신의 손발 역할을 했다. 그 과정에서 조창호 차장의 능력이 살아났다.
특히 오성 전자에서 재직할 때 팀 내의 압력을 받으면서 다양한 경험을 쌓은 것이 그에게는 오히려 큰 도움이 됐다.
이지수 박사도 처음에는 그런 점을 느끼지 못했다. 하지만 조창호 차장이 갑자기 한국으로 가버린 후에 절절하게 경험했다.
그녀가 진행하는 모든 일이 올스톱된 것이었다.
최민혁 실장이 바로 소리쳤다.
“아, 안 되겠습니다. 조창호 차장을 한번 불러 보세요. 으음, 이왕이면 박세영 대리도 같이요.”
“……알겠습니다.”
* * *
“죄송합니다.”
조창호 차장은 최민혁 실장을 보기가 무섭게 허리부터 숙였다.
박세영 대리는 얼굴을 푹 숙인 채 조창호 차장의 눈치만 봤다.
그녀가 보일 수 없는 특이한 모습이었다.
“…….”
최민혁 실장은 복잡한 눈으로 조창호 차장을 쳐다보았다.
그는 조창호 차장에게 절대로 함부로 말할 수가 없었다.
‘생각해 보면, 조 차장은 내가 전생의 기억이 아니라 최병연 소장을 통해서 얻은 인재잖아. 그런데 그 가치가 이렇게 높다니.’
최민혁 실장은 전생의 기억을 이용해서 이제까지 참 쉽게 모든 일을 풀어갔다. 다만 그도 최근에는 그 한계를 경험 중이었다.
그중에 하나가 전생의 좁은 인재 풀이었다.
그렇게 본다면 조창호 차장은 정말 몇 안 되는 인재였다.
그것도 자신의 인맥으로 뽑은 인재 말이다.
그는 때문에 냉랭한 두 사람의 관계를 쳐다보면서 머리를 굴렸다.
아무리 봐도 두 사람 관계가 틀어진 것은 자신과 관련이 있었다.
“……제가 조 차장님을 호출한 것은 이지수 박사님이 특별히…….”
“그 전에 할 말이 있습니다!”
“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