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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 3세는 조용히 살고 싶다-982화 (982/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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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정말 그렇게 높아요? 제가 일전에 보고받은 바로는…….”

“그때는 아마 96% 정도였을 겁니다. 그런데 그 수치가 더 올라갔습니다. KMBOOK에서 계속 인식 성공률을 높인 것 같습니다.”

“그건 이상하잖아요. KMBOOK이 기술력이 높은 것은 인정해도 기반은 똑같지 않습니까. 우리가 노력한다면 어느 정도 따라……. 가만, 그러면 걔들은 음성 인식만이 아니라 다른 방법을 섞어서 오차를 줄인다는 말입니까?”

“…네. 그게 문제입니다.”

사실 담당 팀장은 마냥 잘 모르겠다고 말할 수는 없었다. 이번 연구는 단순히 그쪽 혼자만 하는 것이 아니라 오성 전자, 아니, 오성 그룹 차원에서 진행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맨파워는 충분했다.

기술 방향성만 알면 어떻게 해 볼 소지가 있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말이다.

그런 점을 말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그는 결국 말하고야 말았다.

“이런 말 하기는 그렇지만 KMBOOK이 진행 중인 애니에서 사용된 음성 인식 기술의 방향성만 알아도 어느 정도 도전해 볼 만합니다.”

사실 이 정도 정보를 얻는 것은 엄밀히 말해서 오성 전자에게 있어선 최민혁 실장과 협업하니, 문제가 될 것이 없어 보인다.

그런데 그게 꼭 그렇게 보기도 힘들었다.

계약을 하다 보면, 사람 마음이 바뀌게 마련이니까.

오성 전자도 언제까지 최민혁 실장의 갑질에 당하고만 살 수는 없었다.

권태성 실장은 한숨을 내쉴 수밖에 없었다. 그는 이제까지 최민혁 실장에게 시달리기만 했다. 그렇다고 이런 분위로 계속 갈 수는 없었다.

앞으로를 생각한다면, 만약 최민혁 실장과 관계가 틀어졌을 때 오성 전자 처지에서는 막대한 손실이 될 수가 있었다.

‘이대로 포기할 수는 없어. 어쩌면 이번이 절호의 기회일 수도 있어. 최동영 상무가 그렇게 나선 이상 최민혁 실장도 틈이 보일 테니까.’

* * *

권태성 실장도 꼭 최민혁 실장과 적대하고 싶지는 않았다.

하지만 비즈니스란 앞날을 예상하기 어려웠다.

이대로 일을 진행하기보단 언젠가 최민혁 실장과 대립할 때를 대비해야만 했다.

더욱이 최동영 상무가 KM 그룹 내부에서 들쑤시는 이 시기가 기회일 수가 있었다.

아니, 사실 그는 이런 기회가 찾아오기만을 손꼽아 기다렸다.

지금 이 시기를 그냥 보낼 수는 없었다.

다만 기술적으로는 도저히 최민혁 실장을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그런데 임권수 부장이 눈치를 보다가 한 가지 의견을 내놓았다.

“이런 일이 생기면 늘 하는 일이 있지 않습니까? 차라리 KM 전자의 기술을 빼오는 것이 어떨까요?”

“그건 너무 위험해.”

하지만 임권수 부장은 쉽게 포기하지 않았다.

“당연히 대놓고 그러면 문제가 될 겁니다. 돌려서 손을 쓴다면 상황이 다르지 않을까요?”

권태성 기획실장은 의아한 눈으로 임권수 부장을 쳐다보았다.

“정확히 무슨 소리야?”

“제 말은, 권 실장님이나 오성 전자 인사 팀에서 나서면 문제가 될 수도 있죠. 인재를 직접 빼돌리려고 하다가 걸리면 그럴 수 있습니다. 하지만 개인적인 인연을 이용한다면 상황이 좀 다릅니다.”

“…계속해 봐.”

임권수 부장은 자신의 말이 먹히자 쾌재를 불렀다. 하지만 그도 황광수 차장의 따가운 시선을 의식하자 어깨를 으쓱했다.

“제가 지금까지 애니 관련 보고서를 살펴봤습니다. 미국 내에 있는 엔지니어한테는 손을 쓰기 어렵습니다. 이지수 박사가 대표적입니다. 그런데 꼭 그렇지 않은 이가 한 사람이 있습니다.”

“그럴 리가 없을 텐데? 최민혁 실장은 보안 문제에 있어 그렇게 일을 허술하게 처리하지 않아.”

“저도 최민혁 실장이 기술 보안 측면을 매우 중시하는 것을 압니다. 그런데 아니었습니다. 그 능력을 인정받아서 KMBOOK 쪽과 협업하는 사람 중에 눈여겨볼 만한 사람이 있습니다. 심지어 이 엔지니어는 이지수 박사에게도 능력을 인정받아서 꽤 중요한 일을 하고 있습니다.”

권태성 기획실장은 영문을 몰라서 고개를 갸웃했다. 그로서는 완전히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실상 그로서는 알기 어려운 인물이었다.

아무리 오성 그룹이라고 해도 KM 전자의 인사를 다 아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임권수 부장은 KM 그룹, 오성 전자를 두루 거친 인물이었다. 그는 때문에 KM 전자와 KMBOOK 사이의 공통 인물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가 내민 보고서에는.

“조창호 차장?”

보고서 안에는 조창호 차장의 경력과 이력이 자세하게 나와 있었다.

특히 오성 전자 내에서 진행한 성과에 대한 것도 있었다.

“네. 보고서에 나와 있듯이 오성 전자에 있던 인물입니다. 최병연 소장 팀에 소속되어 있다가 KM 전자로 자리를 옮길 때 같이 움직였습니다.”

“…….”

권태성 기획실장은 입을 쿡 다문 채 멍하니 보고서 하나하나를 살피다가 뒤늦게 탄식하고 말았다. 그 역시 과거 이 안건을 보고 받은 적이 있었다.

실제로 조창호 차장을 아는 오성 쪽 인사들은 다 이 이직을 막아야 한다고 강력히 주장했다.

그만큼 조창호 차장의 능력은 보통이 아니었다.

문제는 이게 사내 정치 압력에 눌려서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권태성 기획실장 역시 그 점을 몰랐다. 뒤늦게야 내용을 전달받은 것이다. 그런데 그때는 이미 늦어버린 터라 조창호 차장의 이름을 보는 것만으로 가슴이 아파서 묻어두고 있었다.

“하.”

그가 탄식한 것은 KM 전자로 이직한 조창호 차장의 실적 때문이다.

자세한 내용은 잘 안 나와 있지만 KMBOOK에 가서 많은 일을 도와주는 중이었다.

심지어 그 장소가 미국이고 말이다.

더 황당한 것은 단순히 한두 가지 일을 하는 것이 아니었다.

KMBOOK, 퀄컴, ARN을 중재하는 일까지 했다.

심지어 KM 센서도 일도 같이 겸해서 말이다.

그야말로 최강의 멀티 플레이어였다.

“…돌겠군.”

임권수 부장 역시 기가 막힌 얼굴이었다. 오성 전자에서 튀어 나간 인물이 이렇게 대단한 초인재인 줄은 몰랐던 것이다.

‘최민혁 실장이 이런 사람을 빼돌렸다니.’

다만 늦어도 너무 늦었다.

“확실하지는 않지만, 애니 관련 연구에도 조창호 차장이 깊숙이 관여한 것을 확인했습니다.”

“아니, 그렇다면 더 힘들어. 우리가 조 차장에게 손을 내미는 순간 최민혁 실장은…….”

“다시 말하지만, 우리가 직접 손을 내밀지만 않으면 됩니다. 이것을 보시죠.”

권태성 기획실장은 그제야 조창호 차장에 대한 사적인 보고서를 살폈다. 주로 회사 일이 아니라 개인사와 관련된 일이었다.

그중에 빼놓을 수가 없는 일이 다름 아닌 첫사랑에 대한 것이었다.

“…설마 미인계를 쓰자는 말인가?”

“아뇨. 그런 계획이 아닙니다. 그저 자연스럽게 두 사람 사이를 이어 주면 됩니다. 서로 소통할 수 있게만 하면 됩니다. 박세영 대리에게는 그만한 것을 주면 되고요. 저흰 그저 박세영 대리의 야심을 이용하는 거죠.”

“그게 될까?”

“그래서 쉽지 않습니다. 다만 권태성 기획실장님이 잘 설득한다면 아예 안 될 일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중요한 것은 꼭 핵심 정보가 아니지 않습니까? 애니에서 사용된 음성 인식의 방향성만 알아도 되니까요.”

그도 잠깐 고민했다. 그런데 당장 현실적인 방법은 이것 외에 없었다. 조창호 차장 역시 최민혁 실장이 경호원을 따로 붙여 놓았기 때문이다.

“…으음, 하, 내가 이런 일까지 해야 할 줄은 몰랐어.”

“다 최민혁 실장 때문이죠. 전 오히려 권태성 기획실장님을 존경합니다. 다른 기업은 이러지도 못했으니까요. 요즘 재정 경제원을 보세요. ‘최민혁 실장’ 이름만 이야기해도 펄쩍 뜁니다.”

“하. 알겠어. 하지만 조심해서 진행해야 해.”

“…알겠습니다.”

권태성 기획실장은 잠깐 고민했다. 길지는 않았다. 그 역시 지금은 수단과 방법을 가릴 타이밍이 아니었다.

* * *

박세영 대리는 갑작스러운 권태성 기획실장의 호출에 영문을 잘 몰랐다.

그녀가 비록 팀 내에서 인정을 받고는 있지만, 권태성 기획실장과 직접 소통할 계급은 아니었다.

더욱이 권태성 기획실장은 최근 안건민 회장에게 직접 인정을 받았다는 이야기가 돌았다. 그만큼 전략 기획실 자리를 이미 따놓은 실력자였다.

그녀는 혹시 자신이 뭔가 큰 사고를 쳤나 싶어서 고민을 해봤다.

그런 것은 없었다.

최근에는 말이다.

‘하, 조 과장님이 또 생각나다니.’

조창호 과장은 그녀에게 나쁜 사람은 아니었다.

그녀는 조창호 과장의 프러포즈를 받고 나서 잠깐 만나기도 했다.

조창호 과장의 순수함에 감탄했다.

다만 그 만남은 오래가지 않았다.

단방향 만남은 지루해지게 마련이니까.

그녀는 불과 한 달이 채 지나지 않아서 조창호 과장에게 시간을 두자고 말했다.

조창호 과장은 어쩔 수 없이 수긍했고 말이다.

다만 문제는 회사 생활이다.

비록 같은 팀은 아니어도 같은 회사를 다니다 보니 자주 볼 수밖에 없었다.

조창호 과장은 여자 경험이 없어서인지 자신에게 집착했고 말이다.

박세영 대리는 결국 참다 못해서 팀장에게 하소연했고 말이다.

그 이후에는 조창호 과장은 마치 좀비처럼 변해 버렸다.

자신이 심한 것이 아닌가 싶었다.

하지만 그녀는 자기 마음을 배신할 수가 없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조창호 과장이 KM 전자로 이직해 버렸다.

박세영 대리의 심사는 정말 말로 형언할 수 없을 정도로 복잡했다.

그녀는 그 이후로 조창호 과장과는 다시 만날 수 없을 것으로 생각했다.

확실히 그날 이후로 조창호 과장과 다시 만난 적은 없었다.

대신 다른 소식을 들었다.

KM 전자로 이직한 후에 초대박을 쳤다는 소리.

바로 스톡옵션을 받았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안 그래도 요즘 직장인 사이에 핫한 KM 전자를 움직이는 실세로서 말이다.

박세영 대리는 그 이후로 조창호 차장의 근황을 살펴보았다.

그녀는 지라시에 가까운 정보만 듣고는 기함했다.

그녀는 권태성 기획실장에게 호출받고 가는 통로에서 조창호 차장을 떠올린 것에 스스로도 어이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권태성 기획실장은 자신을 보자마자 그 이름을 꺼냈다.

“조창호 과장, 아니, 차장은 아시죠?”

“…네.”

박세영 대리는 영문을 몰라서 권태성 기획실장을 살폈다.

옆자리에 앉은 임권수 부장이 슬쩍 끼어들었다.

“으음, 짧게 이야기하겠습니다. 아, 일단 오해는 마시기 바랍니다. 박 대리에게 미인계나 뭐 이런 거 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아니니까. 다만 우리 쪽에서 음성 인식 관련 연구가 가장 앞서 나간 것은 아시죠?”

그녀로서는 모를 수가 없었다. 자신 역시 그 프로젝트와 관련되어 있으니까.

“그런데 몇 가지 문제가 좀 생겼습니다. 음성 인식 성공률이 상업적으로 쓰기에는 아슬아슬한 수준입니다. 이대로는 실패할 확률이 높습니다.”

“…네.”

그녀도 아는 지인을 통해서 들었다. 음성 인식, 인공 지능 관련 프로젝트를 진행하지만, 결과가 쓰레기라는 사실을 말이다.

“그러면 더 말하기 쉽겠군요. 잘 아시겠지만, 이 음성 인식 기능은 엄밀히 말해서 KMBOOK의 애니에서 따왔습니다. 아, 물론 베끼지는 않았습니다. 그런데 좀 차이가 있어요. 그 차이가 뭔지를 아직 모르고 있고요.”

박세영 대리는 그제야 자신이 왜 이 자리에 와 있는지 알 수 있었다.

“설마 조창호 차장님이 애니의 음성 인식 기술에 대해서 안다는 말입니까? 그리고 저보고 그 기술을 빼 오라는 거고요?”

임권수 부장은 양손을 들어서 말했다.

“아, 이런 또 오해하신다. 그런 말이 아녜요. 그건 절대로 안 됩니다. 하지만 기술 방향이라면 좀 다르잖아요. 그건 기술을 베끼는 것이 아니니까.”

“…흠.”

그녀는 그제야 임권수 부장의 말을 알아들었다. 애니의 음성 인식 기술을 빼오라는 지시가 아니었다. 애니의 음성 인식 기능이 어떤 식으로 동작하는지 알아 오라는 뜻이다.

‘그것도 기술 도둑질이 아닌가? 아니, 나보고 할 수 있으면 아예 애니의 음성 인식 기술을 빼오라는 것 같잖아.’

얼핏 보면 별것 아닌 일 같지만 그렇지도 않았다.

오성 전자 수준이라면 그 방향성만 알아도 얼마든지 비슷하게 만들 수 있었다.

그녀는 그제야 이 묘한 지시에 혀를 찼다. 사실 거절할까도 싶었다. 그런데 그랬다가는 괘씸죄에 걸릴 것이 분명했다.

이에 대한 불이익은 인사고과로 나타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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