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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 3세는 조용히 살고 싶다-980화 (980/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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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그 일이 KM 전자와 관련이 있는 것이 분명했다.

권태성 기획실장이 인사하면서 계속 자신의 눈치를 봤기 때문이다.

최동영 상무는 그 이유가 뭔지 대충 짐작했다. 하지만 혹시나 싶어서 확인했다.

“…제 조카인 최민혁 실장과 자주 연락하십니까? 오성 물산 일도 있고 해서 이런저런 연락을 주고받을 것 같아서요.”

“…최민혁 실장과 직접 연락하지는 않습니다. KMBOOK 측에서 엔지니어를 보내오니, 그쪽과 주로 소통합니다.”

“오성 물산 때문입니까?”

“그렇죠. 정확히는 우리 애니 타입 전자 제품과 관련이 있습니다.”

“저도 소문은 들었는데, 본격적으로 프로젝트를 진행하시나 봅니다.”

“…네.”

권태성 기획실장은 한숨을 내쉬었다. 본격적이라고 보기는 어려웠다. KMBOOK에서 딱 정해준 것만 받아서 작업을 진행하니까.

전형적인 갑을 관계였다.

그런데 여기에 대해 뭐라고 하기는 힘들다.

오성 전자는 이미 리버스 엔지니어링을 진행 중이었다.

실상 LC 전자처럼 오성 전자 내에서 따로 연구하기는 했다.

그들 역시 LC 전자처럼 조용히 베껴서 일을 진행 중이었다.

안타까운 일은 결과가 좋지 않다는 점이다.

사실 그들은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도 갈피를 잡을 수가 없었다.

아 물론 기능 구현은 다 했다.

다만 그것을 상업적으로 써먹을 수가 없었다.

“…쉽지가 않죠. 다른 세계적 기업도 다 실패한 일이니까.”

“그렇군요. 하지만 오성 전자의 능력이라면 할 수 있지 않을까요?”

“그게 그렇게 간단하지 않습니다. 기존의 전자 제품과는 격이 다른 물건입니다.”

“…놀랍군요.”

최동영 상무는 새삼스러운 눈으로 권태성 실장과 옆에 같이 자리한 임권수 부장을 비롯한 실무진을 힐끗 쳐다보았다.

그들 역시 다들 표정이 정말 좋지가 않았다.

정확히는 최동영 상무 자신의 눈치를 보는 중이었다.

그로서는 선뜻 잘 믿기지 않은 일이었다.

그 자신이 따로 조사한 바로는 KM 그룹의 전략 기획실에 있던 사람이다. 사실 알은척을 할까 하다가 관뒀다.

지금 사무실 분위기는 그가 예상한 것과는 달라도 너무 달랐다.

‘이것도 민혁이 때문이겠지? 하, 정말 경험해 보니, 전혀 다른 세상이구나.’

KM 그룹과 오성 그룹은 외형상 비교조차 하기 힘들었다.

KM 그룹은 어디까지나 틈새시장을 노리는 중견 그룹이었다.

하지만 오성 그룹은 이미 세계 시장에서 서서히 존재감을 떨치는 대기업이었다. 그야말로 한국을 대표하는 대기업 중의 하나였다.

과거라면 KM 전자 따위는 아예 쳐다보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권태성 기획실장을 비롯한 오성 전자 기획실 실무진이 자기 눈치를 봤다.

‘…정말 경험하면서도 믿을 수가 없구나.’

호가호위라.

그 말의 의미를 지금 실시간으로 체감하고 있었다.

권태성 기획실장도 묘한 점을 느꼈다. 최동영 상무의 행동 때문이다. 그가 아는 바로 최동영 상무가 굳이 자신을 만난 적이 없었다.

‘마음을 바꾼 건가?’

그럴 수 있다.

무려 KM 그룹 경영 승계 구도다.

그걸 쉽게 포기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다만 왜 하필 지금인가 하는 점이다.

‘아, 최민혁 실장이 에플 지분을 팔아 치웠지.’

탐욕.

권태성 기획실장도 쓰게 웃고 말았다. 그는 그제야 최동영 상무가 왜 갑자기 자기 앞에 나타났는지 알 것 같았다.

‘LC 전자, HY 전자에도 손을 뻗칠까?’

아마 그럴 것이다. 그런데 최민혁 실장의 성정을 잘 안다. 여기서 무리수를 뒀다가는 반드시 보복을 받을 것이다.

‘선을 넘지 않으면 되겠지.’

그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CDMA 관련 사업에 관심이 많다면, 우리 연구소를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네.”

최동영 상무는 쿨한 대답에 혀를 내둘렀다.

* * *

권태성 기획실장이 겉으로야 최동영 상무를 대접하는 것처럼 행동했지만, 꼭 그렇지도 않았다.

그는 최동영 상무를 보자 그의 욕망을 금방 읽었기 때문이다.

최민혁 실장의 뒤통수를 치는 것은 사실 매우 위험한 일이었다.

하지만 그걸 비트는 것까지 그렇지는 않았다.

최동영 상무의 욕망을 자극하는 일 말이다.

‘이런 식으로 자주 찾아오면 좋지. 지금과 같은 예민한 정보도 쉽게 얻을 수 있으니까. 일이 잘못되더라도 최민혁 실장에게 변명할 수도 있고.’

권태성 기획실장은 때문에 CDMA 관련 단말기, 교환기 관련 연구소 곳곳을 안내하면서 진행되는 상황을 하나씩 설명했다.

당연히 보안을 요구하는 일이다.

하지만 최민혁 실장은 이 핵심 기술 대다수를 가지고 있었다.

굳이 최동영 상무에게 숨길 필요는 없었다.

최동영 상무는 권태성 기획실장의 의도를 뒤늦게 알았지만 내색하지 않았다. 그는 이를 악물었다. 기분이 좋지 않았다. 조카가 만들어 둔 영향력을 이용하는 것이니까. 아니, 그는 그래서 타이밍을 잘 잡았다고 생각했다.

최용욱 회장은 이미 설득했다. 그가 최민혁을 압박하는 이상 자신 뜻대로 일을 풀어갈 수가 있었다.

그는 결국 슬그머니 CDMA 관련 합작 제안을 해보았다.

“오성 전자는 CDMA 쪽에 특히 집중한다는 소리가 있습니다. 당장 단말기만 해도…….”

“…단말기라, 사실 겉으로 봐서는 그렇다고 봐야 할 겁니다. 다만 아직 사용자가 그렇게 늘어나지 않습니다. 가입자가 극단적으로 몰리면 여전히 안정성 문제도 있고요.”

CDMA 사용자의 분위기는 당장 그렇게 좋은 편이 아니었다.

이런저런 문제가 많았고.

다른 이유가 있다면 바로 최민혁 실장 때문이었다.

에플 지분을 팔아서 천문학적인 이익을 벌었다. 그런데 CDMA 관련 특허료의 대다수가 최민혁 실장에게 간다는 이야기가 나돌았다.

데니스 샐로먼 이사가 손을 쓴 것인데, 실제로 영향을 꽤 줬다.

“그 부분은 이미 교정이 된 것으로 압니다만?”

“아, 최민혁 실장이 한 일을 말씀하시는군요. 뭐, 그렇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아직 명확하게 확인한 것은 아닙니다. 더욱이 CDMA 서비스의 성공 여부는 개인 휴대 통신 시스템에 있으니까요.”

“아, 그것도 문제군요.”

“안 그래도 그 부분은 다른 업체와 손을 잡는 방식을 강구 중입니다.”

“자, 잠깐만요. 혹시 우리 KM 그룹도 거기에 낄 수 있을까요?”

“네? 굳이 그럴 필요가 있습니까? 그 원천기술을 제공하는 곳이 퀄컴이고, 그 오너가 최민혁 실장인데 말이죠?”

“…네?”

“모르십니까? 엄밀히 말해서 CDMA 통신 관련 핵심 기술의 오너는 최민혁 실장입니다. 아마 모르기는 해도 CDMA 서비스가 적용된 국가는 전부 상당한 로열티를 내놓아야 할 겁니다.”

“…….”

최동영 상무는 잠깐 당황했다. 하지만 그는 뒤늦게 자기가 검토한 보고서 내용을 떠올리고는 허탈하게 웃고 말았다.

보고서에서 본 내용인데, 이제야 조카 최민혁 실장이 소유한 원천기술을 깨달은 것이었다.

‘하, 이것도 꼼수였구나.’

그런데 이야기 들어보니, 꼼수로 넘어가기에는 로열티 수익이 너무 많았다.

권태성 기획실장은 그 점을 꼼꼼하게 다 설명해 주었다.

‘미친.’

ETRI, 컬컴을 통해서 지분을 소유한 최민혁 실장의 방식인 터라 예민하게 보지 않으면, 오너가 누구인지 실감하기 어려웠다.

그렇게 생각하니, 황당했다.

한국은 오성 전자를 비롯한 10대 대기업과 ETRI가 손을 잡아야 하는 일이었다.

그런데 조카 최민혁은 그걸 자기 혼자 정리한 것이었다.

그것도 작년에.

최동영 상무는 다시 권태성 실장의 눈치를 보면서 조심스럽게 말했다.

“이런 말 하기는 그렇지만 저와 조카 민혁 그 녀석은 경쟁 관계에 있습니다. 뭐 대충 아실 테니, 자세한 말은 하지 않겠습니다. 그래서 저도…….”

권태성 기획실장은 의미심장하게 웃었다. 딱 자신이 원한 반응이었다. 물론 자신이 할 대답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

“…그건 잘 알겠습니다. 혹시 최민혁 실장의 허락을 구한 겁니까?”

“그건 아닙니다. 제 조카인 최민혁 실장이…….”

그는 냉랭한 얼굴로 일축했다.

“최민혁 실장님의 승인이 없으면 협업은 하기 힘듭니다.”

“네?”

권태성 기획실장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도 최동영 상무가 무슨 말을 하는지 잘 안다. 그런데 그의 말대로 할 수가 없었다.

“솔직하게 말씀드리겠습니다. 최민혁 실장의 간이 얼마나 작은지 알 겁니다. 특히 최민혁 실장은 자신이 뒤통수 맞았다면, 반드시 보복합니다. 이번 일이 그런 경우입니다. 안 그래도 최민혁 실장과 엮여 있는 부분이 많아서 최동영 상무님 제안을 들어 줄 수는 없습니다.”

“그래도 제가 민혁이는 추후 설득…….”

“아뇨. 그 확인서는 지금 보여주셔야 합니다. 그 일에 관해서는 더 듣지 않겠습니다. 더 할 말이 없다면 자리에서 일어나겠습니다.”

벌떡 일어난 권태성 기획실장은 자리에서 일어나서 바로 나가 버렸다.

“…….”

최동영 상무는 크게 당황해서 권태성 기획실장을 잡으려고 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권태성 기획실장이 단단히 겁을 집어먹었기 때문이다.

‘뭐 이런…….’

그로서는 정말 믿을 수가 없는 일이었다.

그 대단한 오성 전자의 권태성 기획실장이 최민혁에게 겁을 집어먹다니.

* * *

최동영 상무는 권태성 기획실장의 황당한 태도를 보고 나서는 한동안 입을 열 수가 없었다.

조철호 수석 부장 역시 최동영 상무의 눈치만 봤다. 그는 눈치가 빨라서 괜한 소리를 했다가는 최동영 상무를 자극할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역시 한편으로는 허탈했다.

오성 전자 내에 권태성 기획실장의 영향력은 어지간한 계열사 사장보다 높았다.

‘최근 안건민 회장에게 인정을 받아서 오성 그룹 전략 기획실 자리를 이미 예약해 놓았다는 소리도 있던데, 정말 믿을 수가 없구나.’

권태성 기획실장의 행보는 도저히 이해하기 힘든 일이었다.

그는 오성 그룹 내에서도 남의 눈치를 보지 않는 사람이니까.

‘도대체 최민혁 실장이 뭘 어떻게 했기에 그렇게 겁먹은 것일까?’

에플 지분 매각을 떠올렸다.

물론 이번에 막대한 차익을 챙기기는 했다.

단지 그것만으로 권태성 기획실장이 겁먹은 것 같지는 않았다.

최동영 상무는 너무 큰 충격을 받아서 한동안 계속 입을 열지 못했다.

그는 물론 한 가지를 확인하고 싶었다.

“권태성 실장이 저 정도밖에 안 되는 인물이었어?”

“…제가 알기로 그렇지 않습니다. 오성 전자 내에서는 임원도 함부로 못 건드리는 사람입니다. 그만큼 정치 감각과 능력이 탁월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내 조카 민혁을 왜 그렇게 부담스럽게 여기는 건가? 아니, 아예 무서워하는 것 같은데?”

“그게…….”

그도 알 길이 없었다.

사실 최민혁 실장과 권태성 기획 실장 사이의 미묘한 관계를 아는 사람은 그렇게 흔치가 않았다.

오성 그룹 내에서도 안건민 회장을 포함해서 다섯 손가락에 꼽을 정도만이 그 사안을 알 뿐이다.

더욱이 그는 권태성 기획실장에게 최민혁 실장과 관련된 일의 권한을 다 넘긴 상황이었다.

콜린스 사업부 인수가 그 좋은 예였다.

권태성 기획실장은 눈치껏 최민혁 실장이 이제 콜린스 사업을 매각하려 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그게 그가 굳이 최민혁 실장을 자극하지 않는 이유였다.

실제로 IMF도 이제 얼마 남지 않은 상황이었다.

최민혁 입장에서는 이제 콜린스 사업부를 넘겨야 할 시점이었다.

물론 최동영 상무가 이 미묘한 관계를 도저히 알 수는 없었다.

그는 결국 다른 대안을 선택했다.

“장 실장에게 연락해. 지금 당장 전략 기획실로 간다고.”

“…알겠습니다.”

* * *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지만 권태성 기획실장은 요즘도 최민혁 실장을 두려워한다. 어지간해서는 전화도 잘 하지 않을 정도였다.

최민혁 실장은 당연히 권태성 기획실장에게 먼저 만나자는 연락을 보내지 않았다.

콜린스 사업부 매각 건과 관련해서 장기 밀당을 진행 중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때문에 갑작스러운 권태성 기획실장의 전화에 고개를 갸웃했다가 용건을 듣고 나서는 덤덤하게 반응하고 말았다.

[그렇습니까?]

권태성 기획실장은 전화상으로도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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