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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 3세는 조용히 살고 싶다-976화 (976/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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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도 처음에는 어떻게 할 대안이 없었다. 최문경 부회장을 믿을 수는 없었다. 최용욱 회장 역시 별반 다르지 않았다.

그는 결국 데니스 샐로먼 이사에게 연락해서 이 사안을 말했다.

[기다려 보세요.]

* * *

데니스 샐로먼 이사는 바로 이 안건을 가지고 데릭 모건 이사를 만났다.

데릭 모건 이사 처지에서는 황당했다. 그는 최민혁 실장이 이렇게 빨리 움직일지는 상상도 못 했다. 하지만 그는 그래서 오히려 더 만족했다.

“설마 이 방법이 먹힐 줄은 몰랐습니다.”

데니스 샐로먼 이사는 어깨를 으쓱했다.

“아무래도 최민혁 실장의 가장 약한 부분이 가족인 것 같습니다. 경영 승계 문제가 시작되어서 쉽게 해결하기도 어렵습니다.”

명백한 오해였다.

최용욱 회장이 늘 그렇게 말하니, 그걸 사실로 받아들였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이런 오해가 이상하지는 않았다.

최민혁 실장도 최용욱 회장 이야기는 될 수 있는 대로 들어주니까.

“아, 그 최문경 부회장이 엮인 경영 승계 구도 말이군요.”

“네. 이제는 감정의 골이 너무 쌓여서 해결할 방법이 없습니다. 그런데 최용욱 회장은 그 간격을 가족이라는 굴레로 묶으려고 합니다.”

“흠.”

데릭 모건 이사도 처음에는 어이가 없어서 피식 웃었다. 하지만 곧 마음을 달리했다. 자신이 원하는 대로 풀려가니까. 꽤 만족했다. 다만 문제는 이게 다가 아니었다.

그도 최민혁 실장을 자극한 것까지는 만족했지만 그다음 조치가 문제였다.

최동영 상무를 더 밀어줘야 하는데, 이게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데니스 샐로먼 이사의 생각은 좀 달랐다. 그가 최동영 상무에게서 들은 이야기 중에 DL 그룹에 대한 것도 있었다.

DL 그룹이 이동통신 사업에 슬쩍 손을 뻗으려고 하는데, 자금 사정이 여의치 않다는 것이었다.

최동영 상무와 서로 이야기가 오가는 것은 그다지 이상하지 않았다.

물론 아직 결정이 난 것은 아니었다.

“굳이 최동영 상무에게 집착할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이런 정보를 얻은 것만으로 그는 역할을 다한 셈이니까요. 차라리 최민혁 실장의 다른 적을 자극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습니다.”

“누구 말입니까?”

“DL 그룹입니다.”

데니스 샐로먼 이사는 최민혁 실장을 꽤 오랫동안 상대한 터라 최민혁 실장의 가족에 대한 소소한 사실까지 다 알았다.

특히 DL 그룹이 최훈열 전무를 내세워서 하려고 했던 짓 말이다.

“DL 그룹은 아직 KM 그룹에 대한 욕망을 관두지 않고 있습니다. 비록 지금은 기업 규모가 역전이 되어서 손가락만 빨고 있지만 말입니다.”

“…설마 DL 그룹에 자금을 대주자는 말입니까?”

“어차피 KM 그룹을 통해서 하려던 일 아닙니까? 그게 DL 그룹이 되어도 상관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더욱이 DL 그룹 재정 상황이 좋지 않습니다. 이건 투자를 받는다고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닙니다.”

그가 내민 것은 DL 그룹의 최근 재무제표.

누적 적자가 산더미처럼 쌓여 가는 모양새였다.

데릭 모건 이사는 턱을 쓰다듬으면서 입맛을 다시고 말았다.

한국 내의 중견 그룹을 먹는 일이 쉽지가 않았다.

명확한 흠이 있어야 가능한 일이었다.

그런데 전혀 예상도 못 한 DL 그룹이 지금 그 상황에 놓여 있었다.

그는 고민을 거듭한 끝에 한 가지를 확인했다.

“…DL 그룹이 혹시 우리에 대해서 알고 있지 않습니까? KM 그룹에 작업을 쳤다면 그 정보를 얻었을 텐데요?”

“그건 굳이 우리가 직접 할 필요가 없습니다. 일본 지사를 이용하면 됩니다. 일본 정부도 최민혁 실장에 대한 반감이 클 테니, 그런 점을 이용하면 큰 문제가 없습니다.”

“아.”

“더욱이 DL 그룹이 빠르게 움직인다면, 최용욱 회장 역시 지켜만 보지는 않을 겁니다. 최동영 상무를 밀어줄 겁니다.”

“좋네요. 정말 훌륭합니다. 하, 이런 방법을 왜 진작 생각 못 했을까.”

데릭 모건 이사는 데니스 샐로먼 이사의 절묘한 기획에 손뼉을 치고 말았다.

제임스 러너 이사는 못마땅한 얼굴이었지만 차마 끼어들지는 못했다.

“…시간이 그렇게 많지 않으니, 한 번 빨리 진행을 해 봐요. 본사 측에는 내가 협조 요청을 할 테니까.”

“…아, 알겠습니다.”

데니스 샐로먼 이사는 꽤 만족했다. 그는 이번 기회를 잘만 이용하면 다시 자신의 입지를 회복할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었다.

다만 그도 근심이 전혀 없지는 않았다. 이 방법이 제대로 효과를 발휘할지에 대해서 말이다.

‘시기가 좀 모호한데.’

* * *

샐로먼 브러더스는 글로벌 투자 회사다. 미국을 중심으로 움직이기는 하지만 세계 곳곳을 누비면서 투자를 한다.

당연히 일본도 무시하지 않았다.

샐로먼 브러더스 일본 지사는 오히려 한국 지사보다 덩치가 몇 배나 더 컸다.

물론 이들은 일본 정부 관료와도 연결 고리가 있었다.

그들이 나서서 최민혁 실장을 타깃으로 내세운 계획에 대한 공감대를 쉽게 끌어냈다.

최민혁 실장이 한 짓 때문에 일본 정부 역시 이를 갈고 있기 때문이다.

당시 최민혁 실장의 수법 때문에 제대로 된 보복을 하지 못했다.

그들이 한국 외교부에게 정식으로 항의했는데도 말이다.

그런데 민간 투자 회사를 통해서 최민혁 실장에게 보복할 기회가 생겼다.

그들은 샐로먼 브러더스의 일본 지사 이야기를 흔쾌히 들어주었다.

일본 정부가 연결 고리가 되면 한국에 투자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무려 10억 달러 규모의 투자가 말이다.

한국 재정 경제원은 영문을 알 수가 없었다.

도대체 왜 일본 정부가 저렇게 무리수를 두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 대상이 된 DL 그룹은 더 이해하기 어려웠다.

김현탁 사장은 이 점을 이상하게 생각했다.

“일본 자금이라니. 뭐, 지금까지 일본 투자 회사에서 투자받은 것이 있으니, 이상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10억 달러는 좀 그러네요. 좀 더 시간을 가지고 검토를 해보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하지만 김현탁 사장의 부친인 DL 화재 김희찬 부사장의 생각은 좀 달랐다.

“너도 지금 우리 그룹 자금 사정이 나쁘다는 것을 알 텐데?”

“그거야 KD 통신에 대한 무리한 투자 때문입니다. 오히려 여기에 대한 구조조정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사업을 원점에서 재검토해야 합니다.”

“…이미 너무 늦었다.”

“네?”

“중국 공산당 측에 투자한 금액이 너무 많아. 여기서 투자를 줄인다면 오히려 우리를 이상한 눈으로 볼 것이 틀림없다.”

일종의 뇌물이다.

DL 그룹은 이번 KD 통신을 비롯한 계열사에 너무 무리하게 투자했다.

김상구 회장조차 인상을 구긴 채 아무런 대답을 하지 못했다.

김희찬 부사장은 한숨을 내쉬고 말았다.

“처음부터 이럴 생각은 아니었다. 하지만 사업 개편을 하기 위해서 무리수를 둘 필요가 있었어. 통신 사업의 미래는 너도 잘 알지 않느냐? TRS, 이동통신 사업에 투자를 늘리는 것이 그 이유야.”

특히 이동통신 사업의 미래 가치는 모르는 이가 없었다.

비록 국내 PCS 초기 서비스 결과가 좋지 않다고 해도 말이다.

하지만 김현탁 사장은 좀 달랐다.

“솔직히 걱정스러워서 하는 말입니다. 일본 정부가 나서서 투자를 더 늘리겠다는 것은 뭔가 다른 꼼수가 있는 것이 분명합니다.”

“하지만 그쪽에서 제안한 금리가 나쁘지 않아. 더욱이 기한도 2년이다. 나머지는 그 안에 자금을 갚으면 그만이야.”

김현탁 사장은 그 안에 못 갚으면 어찌할 거냐는 말이 혀끝에서 맴돌았지만 김상구 회장의 눈빛을 보자 차마 꺼낼 수가 없었다.

김상구 회장은 이미 결론을 정해 놓았다. 그는 지금 그저 마지막 점검을 하고 싶었다.

‘불안해.’

김현탁 사장은 이런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가 이상하게 여기는 부분은 일본 자본이 그냥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졌다는 점이다. 이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설마 최민혁 실장이 수작을 부렸다는 말인가?’

하지만 그 어디를 살펴봐도 최민혁 실장과의 연결 고리는 없었다.

오히려 다른 외국계 투자 회사의 음영이 일시적으로 보일 뿐이다.

하지만 그걸 확인하지는 못했다.

시간이 필요했다.

그런데 그도 일본 자본이 최민혁 실장을 좋아할 리가 없다는 점을 무시하지 못했다.

‘하, 모르겠다.’

* * *

DL 그룹이 갑자기 일본 자본을 받아서 수혈한 곳은 역시 이동통신 사업이었다.

안 그래도 자금 때문에 주춤했던 DL 그룹의 국내 이동통신 사업에 대한 투자가 대폭 늘어난 것이었다.

이 거래는 전광석화처럼 이루어졌다.

자금을 보내는 일본 금융 기관도, 자금을 대리해 주는 한국 재정 경제원도 다들 평상시와는 많이 다른 모습을 보였다.

이 상황에 매우 놀란 사람은 역시나 최용욱 회장이었다.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이야?’

장승일 실장을 호출해서 확인까지 해보았지만 별다른 대안을 찾지 못했다.

그 정보를 확인하는 것보다 더 빨리 자금이 집행되었다.

그는 시간을 두고 천천히 결정하려고 했는데, 이제는 그럴 수가 없었다.

지금 기회를 놓치면 DL 그룹이 먼저 다 먹을 것 같았다.

최용욱 회장은 결국 장승일 실장을 불러서 이 사업 리스크 전반을 들여다봤다.

최민혁은 곧 그 정보를 얻었고 말이다. 그는 자신이 계획한 일이지만 한국, 일본, 다시 한국으로 10억 달러가 넘는 자금이 움직인 것에 혀를 내둘렀다.

‘대단해. 역시 샐로먼 브러더스를 무시할 수는 없겠어. 어떻게 해서라도 자금 소진을 시켜야지. 역시 아무래도 이동통신 사업이 주는 유혹을 떨치기는 어렵지.’

그는 결국 자신이 원한 대로 상황이 흘러가자 조성돈 팀장을 호출했다.

요즘 사내 대규모 투자를 한 프로젝트에 의심이 어린 눈길을 보내는 최용욱 회장의 눈길부터 일단 속일 필요가 있었다.

“스마트폰 관련 정보 일부를 흘리세요. 이왕이면 슬쩍 가짜 정보를 섞는 것도 나쁘지 않죠. 다만 이쪽이 관심을 기울이는 것은 통신 쪽 같아요. 차세대 칩으로 무장한 차세대 폰 정도면 될 겁니다. 이것과 엮어서 통신 사업에 투자한다고 여기도록 하면 될 겁니다.”

“…알겠습니다.”

“아, 이왕이면 장승일 실장에게 전화해서 가짜 정보를 흘려보세요. 다만 완전히 거짓이어서는 곤란합니다. 으음, 차세대 폰이라고 하면 될 것 같네요. 기존 PCS를 업그레이드한 수준 정도면 좋고요. 완전히 틀린 이야기는 아니잖아요.”

“…네.”

“나중에 괜한 문제를 만들지 않도록 적당한 각색이 필요해요. 우리 쪽에서 딴짓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릴 필요가 있는 셈이죠.”

거짓 같은 진실.

실제로 스마트폰이 이와 비슷하기는 했다.

아주 일부만 말이다.

조성돈 팀장은 그게 어떻게 같으냐고 반박하고 싶었지만 그러지 않았다.

“…네.”

조성돈 팀장도 굳이 자세한 질문 따위는 하지 않았다. 그는 최민혁 실장의 표정만 봐도 이 일이 덫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다만 정확히 어떤 덫인지는 모르겠어. 기조연설, CES 전시회 다음 계획일까?’

* * *

장승일 실장은 갑작스러운 조성돈 팀장의 전화에도 크게 당황하지 않았다. 그는 몇 마디 이야기를 통해서 차세대 폰에 대한 정보도 얻었다.

그로서는 좀 의아한 일이었다.

다만 차세대 PCS 폰이라는 말에 수긍하고 말았다.

뭔가 새로운 폰이라고 하면 당연히 그럴듯했기 때문이다.

물론 그가 생각한 범주는 폰에서 벗어나지는 못했다.

상식적인 통화 폰 말이다.

그는 다시 최용욱 회장에게 전화해서 이 부분을 알렸다.

최용욱 회장은 고개를 갸웃했다. 손자 최민혁이 이렇게 쉽게 정보를 흘린 것을 말이다. 하지만 한편으로 수긍하고 말았다.

다만 차세대 폰이 과연 뭔지 의아했다.

‘…그렇다면 동영이 의견을 무시할 수만은 없구나.’

이유는 간단했다.

손자 최민혁이 아무리 능력이 좋다고 해도 최동영 상무가 하는 일을 무조건 막을 수는 없었다.

더욱이 이동통신 사업은 다 돈이 된다는 것을 아니까 말이다.

거기에 손자 최민혁이 따로 준비해 둔 기술도 있고 말이다.

어쩌면 이번 일만큼은 손자 최민혁이 아니라 자신이 주도할 수도 있었다.

솔직히 최용욱 회장 정도 되면 당연히 해야 할 일이고 말이다.

더욱이 다른 생각을 할 틈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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