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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 3세는 조용히 살고 싶다-975화 (975/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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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민혁은 일단 DL 그룹에 대한 고민을 접었다. 이보다는 지금 자신이 처한 일이 더 문제였다. 왜 이런 일이 갑자기 일어났는지 말이다.

그는 조성돈 팀장을 호출할까 하다가 그냥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랜만에 직원들을 만나서 이야기해 보고 싶었다.

* * *

기획실 신입 직원인 최승진은 오늘따라 머릿속이 복잡했다.

그는 주말에 만난 신입 동기를 통해서 꽤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었다.

‘KM 건설도 최민혁 실장님 때문에 난리구나.’

듣고 나서야 안 사실.

KM 건설은 다른 건설과는 작년부터 구조조정을 착실히 진행했다. 심지어 괜찮은 건설 사업도 바로 정리해 버렸다.

당시에는 건설 경기가 좋아서 사업 매각은 그다지 어렵지가 않았다.

그 자금으로 KM 건설의 부채를 빠르게 정리한 것이었다.

덕분에 지금에 와서는 한국 건설 회사 중에서 가장 낮은 부채율을 기록했다.

지역 중견 건설사가 휘청인 터라 어쩔 수 없이 구조조정을 하는 분위기와는 완전히 달랐다.

그도 대학 동기를 만나서 이야기를 듣고서야 현재 건설 경기를 체감했다.

아니, KM 건설은 여기서 끝내지 않았다. 그나마 진행하는 건설 프로젝트에 새로운 기술을 투입하기로 한 것이었다.

바로 그 유명한 애니 아파트였다.

이게 변화의 시작이었다.

이 과정에서 아파트 내의 근거리 통신망에 관한 이야기가 나왔다.

TRS가 그 대표 주자였다.

다만 KM 그룹 차원에서 이미 정리한 사업이라서 실제로 적용되지는 않았다.

하지만 다른 쪽은 달랐다.

이동통신 사업이 그중 하나였다.

단순히 개개인 통신이 아니라 지역 통신망을 하나로 묶는 사업 말이다.

이 과정에서 오히려 이동통신 사업에 관한 이야기가 더 주목을 받았다.

KM 건설 단독으로는 무리가 있어도 컨소시엄 형태라면 못 할 것도 없다.

실제로 다른 몇몇 컨소시엄에서 자본 압박 때문에 러브 콜을 던졌고 말이다.

그는 회사에 출근하자 푸념 삼아서 이 이야기를 자신의 사수인 정성근 대리에게 했다.

“어떻게 생각하세요? 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이동통신 사업에 굳이 손을 안 댈 이유가 없잖아요?”

“글쎄.”

정성근 대리도 딱히 반박하지는 않았다. 그는 그저 최민혁 실장이 이동통신 사업에 손을 대지 않는 데는 분명 이유가 있다고 생각했다.

배종대 과장이 이 모습을 보다 못해서 구박했다.

“퀄컴 오너가 최민혁 실장님이라는 걸 알면서도 그런 소리가 나와?!”

“네?”

정성근 대리는 고개를 갸웃했다.

최승진 사원이 신입 사원 패기를 믿고 강하게 소리쳤다.

“이전과는 상황이 다르지 않을까요? 지금 우리 회사 사내에 현금 보유고가 넘쳐나잖아요. 제가 아는 친구들 이야기로는 넌 은행에 취직해서 좋겠다는 소리도 나온다니까요.”

“승진 씨, 은행은 좀 너무 나갔다.”

“이번 에플 지분 매각 말이에요. 언론에서 추산한 매각 대금이 무려 13조가 넘는다는 소리가 있어요. 그럼 기존 자금까지 합치면 15조가 넘잖아요. 은행도 그렇게 많은 현금을 들고 있지는 않을 거예요.”

“…확실하지는 않잖아.”

“에이, 저도 주식 좀 압니다. 150달러일 때 에플 주식을 가장 많이 팔아치운 사람이 최민혁 실장님입니다. 더 많으면, 많았지 적지는 않을 거예요.”

“…흠.”

배종대 과장도 이 어처구니없는 신입을 어떻게 해야 할지 혀를 내둘렀다.

하지만 지방대 출신인 최승진은 깡만큼은 당당한 이였다.

“KM 건설 내의 제 친구들 이야기로는 다들 이런 방식 투자에 찬성을 보내는 쪽이거든요. 최민혁 실장님이 옆에서 도와준다면 실패할 수 없는 사업이죠.”

배종대 과장이 혀를 찼다.

“아니, 최민혁 실장님이 왜 KM 건설을 도와줘야 하는데?”

“최 실장님이 경영 승계 구도 후보 0순위잖아요. 그러니 당연한 것 아닙니까? 장차 KM 전자만이 아니라 KM 건설 오너가 될 테니까요.”

“…….”

배종대 과장은 어이가 없어서 한동안 반박하지 못했다.

그도 뒤늦게야 KM 건설 임직원이 최민혁 실장을 따른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건 그도 처음 안 사실이었다.

그리고 사내 분위기를 파악하기 위해서 기획실을 몰래 방문한 최민혁 실장 역시 다르지 않았다. 그는 손뼉을 쳐서 기획실 직원들의 시선을 모았다.

“잠깐 이야기 좀 하죠.”

* * *

오랜만에 진행된 기획실 회의 분위기는 정식 보고와는 달랐다.

다과, 음료를 먹으면서 파티처럼 하는 대화 방식이니까.

최민혁 실장은 여기에 돈을 아끼지 않았다. 그는 근처 호텔에서 공수한 음료를 기획실 직원에게 화끈하게 풀어주었다.

포도주도 덤이고.

덕분에 눈치만 보던 최승진 사원을 비롯한 신입 사원들이 입을 열었다.

“요즘 다른 계열사에 있는 친구들이 정말 저를 부러워합니다. 이게 모두 최민혁 실장님 덕분입니다. 다들 어떻게 해서라도 할 수만 있다면 KM 전자로 자리를 옮기려고 합니다.”

물론 말이 안 되는 이야기였다.

KM 전자 내에서 보직 이동은 가능해도 다른 계열사는 좀 달랐다.

다만 그렇다고 해도 당장 KM 건설 임직원들의 분위기부터가 많이 달랐다.

최승진 사원은 침을 튀겨 가면서 최민혁 실장 찬양가를 불렀다.

최민혁도 얼굴이 뜨거워지는 것을 느꼈다. 상대가 놀리는 것이 아니라 진심이라는 것을 느껴서 뭐라고 하지도 못했다.

“최승진 씨, 그런 말은 좀 부담스럽네요.”

“전 절대로 거짓말하지 않았습니다. 정말 난리라니까요.”

술이 약해서 그런지 포도주를 몇 잔 마시지 않았음에도 최승진은 자신이 들은 말을 가감 없이 말해주었다.

그때 박상기 차장이 옆에서 끼어들었다.

“최승진 사원 말이 마냥 과장은 아닐 겁니다. 각 계열사에서 최민혁 실장님을 바라보는 시선은 이전과는 많이 다릅니다.”

“그래요? 제가 한 것은 딱히 없는데요?”

“에플 지분 매각만 봐도 그렇게 보기는 힘듭니다. 하지만 이런 점보다 임직원들이 더 최 실장님을 높이 평가하는 이유는 최문경 부회장이나 최동영 상무에 대한 태도 때문입니다.”

“네? 제가 뭐 특별히 한 것은 없는 것 같은데요?”

“그걸 대단하게 보는 직원이 많습니다. 최민혁 실장님이 힘이 있지 않습니까? 두 사람을 공격하려면 방법이야 많습니다. 하지만 그런 방법을 사용하지는 않았습니다.”

‘그거야 제가 우리 첫째 큰아버지처럼 나가기는 싫으니까요.’

란 말까지 할 수는 없었다.

최민혁 실장 자신은 최문경 부회장과 싸우면서도 정작 그의 모습을 닮고 싶지는 않았다.

“애초에 최용욱 회장님이 사내 방침으로 삼은 기업 문화가 ‘가족’입니다. 그리고 최민혁 실장님의 행보가 그와 가장 일치합니다.”

박상기 차장은 안색 하나 바꾸지 않은 상황에서 최민혁 찬양가를 늘어놓았다.

다만 그가 하는 이야기는 대놓고 금칠하는 것이 아니었다.

어디까지나 있는 사실을 말하는 것이니까.

KM 건설 역시 마찬가지다.

사내 분위기가 최민혁 실장을 따르자는 쪽이다.

최동영 상무가 아무리 딴마음을 먹고 싶어도 이 흐름에서 벗어나지는 못했다.

때문에 그가 할 수 있는 신사업은 딱 정해져 있었다.

그중에 무리가 따르지 않는 신사업이 바로 이동통신 사업이었다.

최민혁도 처음에는 최동영 상무의 제안이 데릭 모건 이사가 꾸민 흉계가 아닌가 싶었지만, 꼭 그렇지도 않았다.

‘이동통신 사업이라.’

다만 자신이 이 사업을 도와줄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최동영 상무를 대상으로 말이다.

그렇다고 이 사업에 전혀 손을 대지 않을 이유는 없었다.

‘이왕이면 주식에 투자해도 되니까.’

다만 IMF를 앞둔 시점에서 무리수를 둘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하지만 그는 이보다 기획실 임직원들의 분위기에 더 주목했다.

불과 몇 달 사이에 방문한 기획실인데, 분위기가 이전과는 사뭇 달랐다.

그래 가족.

마치 한 가족처럼 기획실 직원들이 이야기를 나누는 중이었다.

그가 기억하는 이 시기의 기획실 분위기와는 너무 달라서 오히려 어색했다.

다만 그렇게 싫지는 않았다.

자신을 바라보는 기획실 직원들의 눈빛. 그리고 그들의 입을 통해서 KM 그룹 계열사 임직원이 자신을 바라보는 시각을 듣는 일 말이다.

그건 단순히 회사가 좋아서가 아니었다.

‘……이게 할아버지가 말하는 경영 철학일까?’

나쁘지 않았다.

최용욱 회장의 단점은 너무 많아서 헤아리기 어려웠다.

그런데 그에게도 장점이 있었다.

그의 경영 철학은 무시해도 될 만한 것이 아니었다.

물론 그렇다고 최동영 상무 뜻대로 내버려 둔다는 것은 아니었다.

계산은 철저해야 하니까.

‘어떻게 할까.’

* * *

최민혁은 일단 지금 상황이 나쁘지 않은 터라 무리수를 두지는 않았다.

그는 스티븐에게 전화해서 그쪽 분위기도 확인해 봤다.

역시나 나쁘지 않았다.

[다만 지금 당장은 미국에 오는 것을 자제하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최민혁 실장님이 얼굴을 보이면 분위기가 달라질 수 있습니다. 특히 투자자들 분위기가 장난 아닙니다.]

[그러죠.]

최민혁 실장 자신도 전생에서 주식에 투자했다가 대형 세력에 눌려서 치를 뜬 기억이 있다. 이번에 그 자신이 한 행동 역시 이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그는 때문에 최동영 상무의 연장선으로 DL 그룹을 한 번 살폈다.

이왕이면 일타 쌍피로 둘 다 날려 버릴 방법을 확인해 봤다.

DL 그룹은 컨소시엄 형태로 PCS뿐만 아니라 TRS에까지 다 손발을 뻗었다.

그래도 DL 그룹 자금 사정을 고려해서 투자 규모를 줄이기는 했다.

최민혁은 그제야 최동영 상무를 이용해서 DL 그룹을 같이 자극하는 것이 효율적인 일 처리라는 것을 깨달았다.

‘생각해 보면, 에플 지분 초대박 때문에 눈이 돌아가 있을 거야. 그렇다면 최동영 상무가 설치면, 그 정보를 쉽게 얻을 수 있다는 얘기잖아.’

아니면 자신이 DL 그룹에 정보를 흘리면 될 일이었다.

더욱이 이번 일 말이다.

‘어쩌면 내가 바꾼 역사 자체가 다시 원복하려는 것이 아닐까?’

그 연결 고리가 된 것은 최동영 상무고 말이다.

그는 차라리 이 상황이 잘되었다고 생각했다.

그는 이 상황을 자기에게 유리하게 이용할 필요성을 느꼈다.

물론 그 주인공은 샐로먼 브러더스가 되어야 할 일이다.

‘이번에 한 방 맞은 거 인정. 하지만 두 방 먹인다면 나쁜 선택은 아니지. 본인이 그렇게 원하는 대로 해줘야지.’

그는 곰곰이 고민하다가 이 일에 적당히 엮을 사람을 떠올려 봤다. LC 전자, 오성 전자는 같이 진행하는 일이 있어서 곤란했다.

그다음 대상은 역시 HY 전자였다.

어차피 이번 일은 실제로 사업할 생각이 없었다.

어디까지나 쇼에 불과했다.

“…HY 전자 측에 연락해서 이동통신 사업 관련 이야기를 해보자고 연락해 보세요.”

“…알겠습니다.”

조성돈 팀장은 조금 뜬금없었지만, 굳이 질문하지는 않았다.

다만 최민혁 이야기는 이것이 끝이 아니었다.

“최동영 상무 쪽에 정보가 흘러가도록 손을 써야 할 겁니다. 이왕이면 기획 조정실 쪽에 정보가 흘러가도록 두세요.”

“…네.”

“아, 이왕이면 DL 그룹을 견제할 수단이라는 식도 좋죠. 적당히 각색해서 말이죠. 저와 DL 그룹 악연을 안다면, 어느 정도는 통할 겁니다.”

조성돈 팀장은 정말 영문을 몰라서 고개를 갸웃할 수밖에 없었다. 다만 그는 질문하지 않았다. 최민혁이 또 뭔가 흉계를 꾸민다고만 생각했다.

‘재벌 3세 놀이도 스스로 포기했다고 했으니.’

다만 그는 제발 이 일이 너무 커지지 않기만을 바랐다.

HY 전자, 아니, HY 그룹은 무시해도 될 만한 곳이 아니었다.

* * *

최민혁 실장이 요청한 미팅 제안에 HY 전자의 이준기 본부장은 환호했다. HY 전자 쪽에서 그만큼 최민혁 실장을 높이 평가하기 때문이다.

조성돈 팀장은 이후 넌지시 전략 기획실에 이 정보를 흘렸다.

안 그래도 최민혁 실장을 유심히 모니터링하는 최동영 상무가 이 정보를 곧바로 파악했다.

그리고 그는 곧 최민혁 실장이 왜 HY 전자 인사를 만났는지도 알아냈다.

바로 이동통신 사업 컨소시엄 문제 때문이라는 것을 말이다.

HY 전자는 굳이 다른 기업의 도움이 필요 없었지만, 최민혁 실장의 제안만큼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들은 최민혁 실장이 원하는 요구 조건을 거절할 생각이 없었다.

최동영 상무는 크게 당황했다. 아니, 그는 분노했다. 최민혁이 자신의 아이디어를 도용했다고 판단한 것이었다.

‘설마 이 새끼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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