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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탁 사장은 때문에 이들 협상 내용을 면밀하게 살폈다.
‘애매한데, 도대체 뭘 할 생각일까?’
고민한 끝에 내린 결론은 간단했다.
뭔가 돈이 될 수 있다는 확신 때문이다.
그가 비록 최민혁 실장을 싫어하지만, 이번 일이 기회가 될 수도 있었다.
‘아무래도 최민혁 실장을 만나봐야겠어.’
* * *
최민혁은 역시 김현탁 사장의 갑작스러운 미팅 요청을 바로 거절했다. 그는 김현탁 사장을 굳이 만날 이유가 없었다.
정확히는 자신이 KD 통신에 깔아놓은 미끼 때문이었다.
무슨 이야기를 해도 나중에 진실을 안다면 자신을 죽이려고 할 테니까.
사실 그보다 그는 설마하니 김현탁 사장조차 자신을 감시할 줄은 몰랐다.
“왜들 이렇게 내 일에 관심이 많은지.”
조성돈 팀장이 쓰게 웃었다.
“아무래도 KD 통신이 최 실장님하고 관련이 있지 않습니까? 그것 때문에 예민한 것 같습니다.”
“적자 말인가요?”
“네. 올해도 역대급 전자라는 소리가 있습니다. 그것 때문에 다들 걱정이 많습니다. 그나마 CDMA 휴대폰 판매가 부진해서 한숨을 돌렸다고 합니다만.”
사실 국내 휴대폰 판매 실정이 박살이 난 것을 좋아하는 사람은 많았다.
다만 이게 마냥 그렇게 안심할 일은 아니었다.
각종 이벤트를 남발한 덕분에 휴대폰 판매가 조금씩 살아났다.
CDMA 휴대폰 사용자는 당연히 만족했다.
그들은 이제 시작한 CDMA 서비스 음질이 이렇게 좋을지는 몰랐다.
심지어 그 흔한 음질 불량 따위는 생기지도 않았다.
퀄컴, ETRI, 그리고 휴대폰 관련 각종 대기업이 서로 머리를 맞댄 결과였다.
물론 그 배후에서 이를 조정한 최민혁 실장이 가장 큰 역할을 했고 말이다.
다만 최민혁 실장이 자신이 뭘 했다고 공식적으로 말하지 않았다.
하지만 ETRI를 비롯한 CDMA 관련 전문가들은 다 최민혁 실장이 이번 CDMA 서비스에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는 것을 잘 알았다.
그들은 최민혁 실장을 존경하면서도, 두려워했다.
최민혁 실장이 왜 일을 일부러 이렇게 어수룩하게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물론 최민혁 실장도 이런 분위기를 잘 알았다. 하지만 그는 굳이 나대지 않았다. 이미 미국 하원의 블랙리스트에 오른 것만으로 골치가 아팠다.
이번 일도 미국 상원에도 블랙리스트 후보에 오르고 싶지 않아서다.
“KD 통신의 미래에 대해서 말들이 많겠어요.”
“투자자 중 하나인 오성 전자 역시 이 일 때문에 계속 문의를 해오는 중입니다.”
“권 실장 말입니까?”
“네. 일단 최 실장님의 지시대로 바쁘다고 변명하기는 했는데, 뭐가 조처를 해야 하지 않을까요?”
최민혁은 피식 웃었다.
“제가 무슨 조처를 해요? CDMA 사업에 밀려서 IP 시티폰은 사양 산업이 되고, KD 통신은 망할 거라고 말해야 하나요?”
“…아닙니다.”
“그 쪽은 모르는 일입니다.”
“…네.”
최민혁은 IP 시티폰이라는 초대형 핵폭탄의 타이머가 동작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가능하면 그게 덩치를 키워서 중국 공산당까지 뒤흔들기를 바랐다.
‘애매한데, 미국 애들이 이 일을 그대로 둘지가 확실치가 않아.’
당연했다.
중국 공산당을 밀어준 일은 어디까지나 러시아를 견제하기 위함이다.
그런데 중국 공산당 경제가 휘청하면, 그들의 계획과는 달라지게 되니까.
하지만 최민혁 실장은 굳이 이 복잡한 문제를 더 고민하지 않았다.
그가 원하는 것은 샐로먼 브러더스의 몰락이었다.
“그보다는 KD 통신, 아니, DL 그룹 동향이나 좀 더 살펴보세요. 혹시 괜한 헛짓을 할 수도 있으니까. 지금 에플 지분 매각은 잘되고 있죠?”
“네. 특이한 동향은 없습니다.”
“혹시 모르죠. 미꾸라지 한 마리가 흙탕물을 일으킬 수도 있어요.”
“…알겠습니다.”
* * *
김현탁 사장은 계속 최민혁 실장과 만나자고 접촉 해 왔다. 그는 KD 통신 미래에 대해서 알고 싶었다. 최민혁 실장이 설사 안다고 이야기해 주지는 않아도 힌트를 잡을 수는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그 와중에 한 가지 사실을 더 보고받았다.
바로 벨린 투자의 에플 지분 매각 물량 말이다.
기존에는 샀다와 팔았다를 반복했다.
그런데 지금은 단방향으로 계속 에플 주식을 팔아치우기 시작한 것이다.
일시적인 현상일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전혀 아니었다.
김현탁 사장은 그런 중에 이대로 있다가는 정말 큰일 나겠다고 생각했다.
그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최민혁 실장에게 연락을 해보았다.
지난 일은 다 잊고 다시 만나서 어떻게 해볼 생각이었다.
[바쁩니다.]
이게 최민혁 실장의 대답이었다.
몇 번이나 부탁해도 최민혁 실장의 대답은 달라지지 않았다.
최민혁 실장이 이상할 정도로 자신을 피하는 것 같았다.
* * *
김현탁 사장도 포기하려고 했는데, 그럴 수가 없었다.
아버지 김희찬 DL 화재 부사장이 연락을 취해온 것이었다.
[벨린 투자가 왜 에플 지분을 이렇게 막 팔아치우는 거냐? 벌써 1% 넘게 팔았어. 이거 단기간에 할 수 있는 일이 아냐.]
[최민혁 실장이 지분 재조정을 할 생각이 아닐까요?]
[확신하느냐?]
[사실 최민혁 실장을 만나서 확인해 보려고 했는데, 연락을 안 받습니다.]
[최민혁 실장이 인터넷 사업 쪽에 집착하는 것으로 안다. 관련 쪽 사업을 살펴보면, 네 분야와 관련이 있으니, 이쪽을 좀 알아봐.]
김희찬 부사장답지 않은 지시였다.
하지만 김희찬 부사장 역시 인터넷이라는 새로운 아이템이 떠오르자 태도를 바꾼 것이었다.
물론 인터넷에서 당장 금융 관련 기법을 쓰기에는 문제가 많았다.
‘하지만 보안 문제가 해결된다면 상황이 좀 다르지.’
김현탁 사장은 결국 DL 그룹과 KD 통신 기획실 직원을 총동원해서 대안을 살폈다. 물론 최민혁 실장을 잊지 않았다.
그가 그런 중에 발견한 것은 세계 최고경영자포럼이었다.
‘마스터 카드가 있구나. 이 정도 연결 고리라면 최민혁 실장도 관심을 두지 않을까.’
그는 최민혁 실장이 연락을 받지 않았기에 조성돈 팀장에게 연락해서 마스터 카드와 관련된 보안 이슈를 슬쩍 흘렸다.
* * *
최민혁 실장은 미국으로 가서 스티븐의 기조연설을 도와주면서 에플 주식 현황을 살펴볼 생각이었다.
다만 이제 막바지라서 무리수를 둘 생각은 전혀 없었다.
그런데 김현탁 사장이 보내 온 정보를 무시하기는 곤란했다.
금융 산업과 인터넷의 융합이라는 주제.
이 일은 최민혁 실장 자신과도 무관한 일은 아니었다.
바로 마스터 카드와 협업 말이다.
MP3 결제와 관련해서 이미 손을 잡은 상황이다.
다만 이 협상은 둘 사이에 존재하는 좁은 의미의 협업이었다.
아이팟이 일상화되려면 마스터 카드를 뛰어넘는 대안이 필요했다.
때문에 그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스티븐에게 연락해 보았다.
그런데 스티븐 역시 이 부분에 대해서는 제대로 손을 쓰지 못했다.
메이저 음반사와 협상하는 일이 아직 완전히 끝나지 않았다.
메이저 음반사에서 계속 스티븐에게 이것저것을 요구했기 때문이다.
최민혁 실장은 전생의 기억을 다시 한번 샅샅이 살폈다.
이번 모임에 나타나는 이 중엔 넷스케이프의 주인공인 마크 엔드리슨 역시 포함되어 있었다.
‘보안 이슈인가?’
인터넷 카드 결제에서 빼놓을 수가 없는 일이 바로 보안 문제였다.
최민혁 실장은 자신이 이 시장에 끼어들기에는 늦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니, 그는 굳이 자신이 이 일을 다 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더욱이 장소도 나쁘지 않았다.
한국 언론사, 마스터 카드가 중심이 되어서 진행하는 일이었다.
그는 미국으로 가기 전에 마지막으로 이번 행사에 참석하기로 했다.
‘보안이라……. 하, 기가 막히네. 설마 도움이 될 일이 생기다니.’
바로 김현탁 사장이 의도한 일.
그는 최민혁 실장의 흥미를 더 끌었다.
‘그렇다고 만날 수는 없지.’
* * *
금융 산업과 인터넷이라는 주제는 한국에서도 이제는 무시할 수 없는 일이다.
더욱이 행사 자체가 세계 경영자 모임이었다.
이런 행사에는 한국 기업은 빠질 수가 없다.
하물며 열리는 장소가 한국이었으니까.
인터넷 사용자 수가 최근 2년 동안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그 흐름이 행사에도 큰 영향을 줬다.
어지간한 대기업 경영자라면 빠지지 않고 행사에 참석했다.
심지어 은행 관료 역시 전자 상거래 때문에 이 행사에 참석했다.
그들이 모여서 서로 이야기를 나누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김현탁 사장은 이 행사에 참석해서 마스터 카드 부사장인 폴 콘프레이를 붙잡고 집요하게 매달렸다.
“설마 마크 엔드리슨이 방문할 줄은 몰랐습니다.”
폴 콘프레이 부사장은 집요한 김현탁 사장의 반응에 부담을 느꼈다.
하지만 그는 싫다고 말할 수는 없었다.
KD 통신, DL 그룹과의 업무 협약 자체를 무시할 수는 없었다.
김현탁 사장은 더욱이 이 업무 협약을 핑계 삼아서 계속 이야기를 꺼냈다.
“…죄송합니다. 전 따로 약속이 있어서.”
“혹시 제가 같이 참여하면 안 됩니까. 어차피 금융과 보안은 한 패키지입니다. RSA 쪽에도 관심이 많습니다. 필요하다면 DL 그룹 쪽과 연결해 드리겠습니다.”
“안 됩니다.”
결국 폴 콘프레이 부사장은 거머리 같은 김현탁 사장을 밀어냈다.
그는 넷스케이프사에서 검토 중인 SSL에 대해서 관심이 많았다.
이 부분은 마크 엔드리슨과 직접 이야기할 생각이었다.
시간과 비용을 줄이기 위함이었다.
마침 최민혁 실장에게서 연락도 받았고 말이다.
MP3 결제 시스템을 이제는 확장할 필요가 있었다.
폴 콘프레이 부사장은 자신이 그 연결 고리를 할 생각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곧 행사장 전체의 시선을 끄는 인물이 등장했다.
‘최민혁 실장?’
* * *
세계 최고 경영자 행사임에도 한눈에 시선을 끄는 인물은 놀랍게도 최민혁 실장이었다.
일단 LC 전자, HY 전자, 오성 전자 쪽 인물이 최민혁 실장에 다가갔다.
그들은 최민혁 실장의 눈치를 보면서 이번에 진행된 협약에 대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어떻게 해서라도 최민혁에게 잘 보이려고 하는 행동이었다.
그중에 압권은 역시 한병수 실장이었다. 그는 마치 지금까지 아무런 짓도 하지 않았다는 듯한 표정을 한 채 최민혁 실장에게 친근하게 다가갔다.
“믿을 수가 없습니다. 설마 이 행사에서 최 실장님을 뵙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그런가요?”
그는 심드렁한 태도를 고수했다.
딱 봐서는 우연이 아니었다.
자신의 동선을 일일이 감시하고 있었다.
자신이 마침 행사에 나오자 우연을 가장해서 이 자리에 나타난 것이었다.
최민혁 실장은 그 모습에 눈살을 찌푸렸다. 다만 어차피 최용욱 회장이 중재를 한 일이라서 굳이 더 언급하지는 않았다.
폴 콘프레이 부사장은 눈치껏 최민혁 실장에게 다가가서 입을 열었다.
“오랜만입니다.”
“그러게요. 꽤 시간이 흘렀군요.”
당시 KMP-02 내에 결제 시스템 협업과 관련해서 두 사람은 몇 번 만난 적이 있었다.
당시는 그 결제 시스템이 그렇게 큰일은 아니었다.
기술적으로 클 수는 있어도 매출 자체는 크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은 상황이 좀 달랐다.
아이팟 출시 이후에는 매출 레벨 자체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폴 콘프레이 부사장은 결제 파이 자체가 커지면, 다른 업체가 끼어들 여지가 있어서 최민혁 실장에게 여러 가지 당근을 제시했다.
그중에는 당연히 보안 문제가 있었다.
“넷스케이프가 훨씬 강력한 SSL 방식을 개발했습니다. 이 방식이라면 인터넷 거래를 더욱 활성화시킬 수 있습니다. 더욱이 넷스케이프에서 이 보안 문제에 깊은 관심을 기울이는 중입니다.”
“호, 좋네요. 저도 당연히 SSL 방식을 밀어줘야겠습니다.”
“뜻밖입니다.”
“네? 뭐가요?”
“아, 최민혁 실장님이라면 늘 남보다 더 앞서는 제안을 할 것 같아서요.”
“하하하, 아무리 저라도 보안 기술까지 넘보기에는 쉽지가 않습니다.”
“그렇습니까?”
폴 콘프레이 부사장은 꽤 깊은 인상을 받았다. 최민혁 실장이라면 뭔가 좀 다를 것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이번 일만큼은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