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재벌 3세는 조용히 살고 싶다-945화 (945/1,021)

#

데릭 모건 이사는 태국 바트화 사태가 갈팡질팡하는 현황을 보면서 어떻게 해야 할지 선뜻 판단을 내릴 수는 없었다.

계획과는 달리 이익이 대폭 줄어들었다.

그렇다고 타이거 펀드와 같은 포지션을 취하기에는 너무 늦었다.

‘탐욕에 미친 새끼들.’

데릭 모건 이사는 이 일도 전부 다 ‘최민혁 실장’ 때문에 큰 그림이 일그러졌다는 것을 깨달았지만 뾰쪽한 수가 없었다.

그는 결국 다시 현실에서 도피하기 위해서 데니스 샐로먼 이사가 하는 조언에 집중했다.

“데니스 이사, 할 말이 있다고 했죠? 계속해 보세요.”

데니스 샐로먼 이사 역시 두 사람의 보고 현황을 보면서 침묵했다. 지금 자신이 진행하는 일보다는 엄밀히 이 보고 내용이 더 중요했다.

하지만 그도 데릭 모건 이사 표정을 보자 발 빠르게 말했다.

그는 자잘한 설명보다는 극단적인 예를 들었다.

“만약 차량용 애니가 상업적으로 성공한다면, 차량용 기기에 큰 변화가 생겨날 겁니다. 애니 이전과 애니 이후로 나누어질 테죠.”

애니 이전은 당연히 인공지능이 적용되지 않는 재래식 차량용 시대다.

이때는 사람이 직접 다 제어하고, 움직여야 했다.

하지만 애니 이후는 운전사가 관여하는 부분이 줄어들 수밖에 없었다.

음성과 영상 인식 기술이 있기 때문이다.

특히 모바일 애니 솔루션이 보여준 애니 완성도가 그 증거였다.

이 솔루션을 활용하면 마치 음성을 이용해서 손과 발을 대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런 자동차 기술은 먼 훗날에나 가능한 일이었다.

심지어 최민혁 실장이 죽기 전의 전생에서도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런데 애니 모바일 솔루션 덕분에 당장 현실로 성큼 다가온 것이었다.

물론 지금 당장 된다는 것이 아니다.

아직 넘어야 할 기술적인 장벽은 차고도 넘치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그 새로운 기술인 자율 주행이라는 게이트를 열었다는 것이다.

“자율 주행이라…….”

너무 허황한 주제로 다른 사람이 자신에게 보고했다면 욕설을 퍼부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 일에 최민혁 실장, HY 자동차가 관련이 있는 일이다.

심지어 상업적인 인공지능 기술도 나온 시점이었고 말이다.

더욱이 데릭 모건 이사는 이 분야를 전혀 몰랐다.

“자료를 좀 보고 나서 이야기하죠.”

“…네.”

세 사람은 다시 협의를 중단하고 말았다.

* * *

최민혁 실장은 샐로먼 브러더스 동선을 유심히 살피는 중이었다.

그는 특히 데릭 모건 이사를 비롯한 샐로먼 브러더스의 한국 지사 인물을 소홀히 하지 않았다.

이제는 자본, 인력이 된 터라 샐로먼 브러더스 한국 지사 내에 인물과도 거래했다.

그는 덕분에 데니스 샐로먼 이사의 동선 정도는 쉽게 파악했다.

“호, 생각보다는 꼼꼼하게 살피나 보군요.”

조성돈 팀장 역시 샐로먼 브러더스 내의 스파이를 통한 정보에 혀를 내둘렀다.

“다만 좀 오버스러운 면도 있습니다. 자율 주행이라니, 이건 좀 너무 나간 것 같습니다. 하지만 다른 일을 중단시키고 이 정보를 파는 것을 봐서는 심각하게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심지어 자율 주행 전문가를 호출해서 교육도 들었고 말이다.

그도 과연 이 일이 가능할까 싶어서 최민혁 실장의 눈치를 봤다.

하지만 최민혁 실장은 비웃지 않았다. 그는 물론 자율 주행과 같은 프로젝트를 당장 진행할 생각이 없었다. 좀 더 미래에나 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오버스럽기는 하지만 도대체 날 뭐로 생각하는 것일까? 이게 정말 현실성이 있다고 생각하나?’

무려 한 세대 후에도 자율 주행은 제대로 상업화되지 않았다.

그때는 센서와 같은 기술이 한 세대 더 앞서 나가도 말이다.

지금은 그렇지가 못했다. 지금 센서, 초음파 기술과 같은 부분이 자율 주행에 사용하기 위해서는 더 발전되어야 했다.

최민혁 자신은 굳이 자율 주행 기술과 관련된 부분을 할 생각이 전혀 없었다.

‘다만 이걸 이용해서 쇼하기에는 딱 좋아. 일테면 주가 조작이라든지. 흠.’

다만 그는 수상쩍은 조성돈 팀장의 시선에 어깨를 으쓱하고 말았다.

“그렇게 보지 마세요. 이 일과 관련해서는 수작을 부릴 생각이 없으니까.”

“정말입니까?”

“차량 기술은 위험합니다. 자칫하면 사람의 생명이 관련되니까.”

“그렇기는 하지만…….”

조성돈 팀장은 머뭇거렸다. 그 역시 최민혁 실장의 최측근인 덕분에 KM 전자 계열사의 기술력을 너무도 잘 알았다.

지금 말 나온 모든 기술을 취합해서 자본과 인력을 퍼부으면 못 할 것이 없었다.

최민혁 실장은 피식 웃었다.

“물론 세상에 불가능한 일은 없습니다. 하면 될 겁니다. 다만 그렇게 해서 얻을 것이 뭐가 있습니까? 설마 자동차 업계에도 빨대를 꽂아서 먹자고요?”

“으음.”

조성돈 팀장은 그제야 최민혁 실장의 의도를 깨닫고는 신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최민혁 실장은 깔끔하게 결론을 내렸다.

“자율 주행과 같은 기술에 집착하는 일은 없을 겁니다. 다만 애들 대응이 좀 이상하네요. 좀 더 정보를 파 보세요.”

“…알겠습니다.”

최민혁 실장은 보고서를 살피면서 혀를 찼다. 그는 데릭 모건 이사가 도대체 무슨 상상의 나래를 펴는지 그게 더 궁금했다.

‘정신이 나갔어.’

다만 문득 한 가지를 떠올렸다.

바로 모바일 미니 드론 말이다.

이건 상업적으로 팔 수가 없는 물건이다.

그런데 사진 증거로서 돌아다니는 중이다.

‘하긴 미니 모바일 드론이 가능했으니, 이 자율 주행도 가능하다고 생각한 걸까? 하긴 그럴 수도 있겠어. 이런 부분은 나중에 이용해 먹을 수도 있겠는데.’

* * *

데니스 샐로먼 이사가 정리한 자율 주행 기술은 꽤 그럴듯했다.

그는 최민혁 실장이 보유한 모든 기술과 HY 자동차의 이상적인 협업을 고려했기 때문이다.

다만 이 가정은 시작부터 문제가 있었다.

최민혁 실장이 애초에 HY 자동차를 믿지 않았고, HY 자동차는 여전히 최민혁 실장에 대해서 갑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더욱이 지금 최민혁 실장은 스티븐의 기조연설, 아이팟, 아이컴 매출 수량에 더 집중했다. 더 있다고 한다면 에플 주가와 공매도였다.

이번 일을 기회 삼아서 샐로먼 브러더스에게 막대한 타격을 주는 일.

바로 이것에 집중했다.

애초에 최민혁 실장이 LC 전자와 HY 전자에 손을 쓴 것도 데니스 샐로먼 이사가 헛짓을 하면서 대응했던 것뿐이었다.

물론 이런 미묘한 내막을 아는 이들은 아무도 없었다.

“…이걸 믿어야 한다니. 정말 최민혁 실장은 끔찍하군요.”

“저도 허황되다고 생각한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그렇게 볼 수가 없습니다. LC 전자, HY 전자의 생산성이 최민혁 실장을 도울 테니까요.”

“하.”

데릭 모건 이사는 바위처럼 굳은 얼굴을 한 채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그는 데니스 샐로먼 이사가 한 독단적인 의사 결정을 탓하지도 않았다.

그보다는 지금 당면한 문제가 우선이었다.

“…이게 정말 가능하기는 한 겁니까?”

“…솔직히 잘 모르겠습니다.”

데니스 샐로먼 이사도 바로 확실하게 대답하지는 못했다. 그 역시 보고하면서도 이게 말이 되나 싶었다. 그런데 그냥 허황한 이야기로 넘길 수는 없었다.

안타까운 사실은 샐로먼 브러더스가 이 기술과 관련된 인프라 쪽에 투자했다는 점이다.

바로 이지수 박사 말이다.

이때까지만 해도 그들 자신도 이렇게 기술이 발전할 줄은 몰랐다.

황당한 사실은 최민혁 실장이 그 기술을 다 가로채서 업그레이드했고 말이다.

지금 보고하는 내용이 바로 그것이었다.

제임스 러너 이사는 이런 분위기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런데 이번 일은 결국 샐로먼 이사가 자의적으로 판단해서 일을 만든 것 때문에 생긴 것 아닙니까. 가만히 놔두었다면, LC 전자와 HY 전자가 최민혁 실장과 서로 타협하기 힘들었을 겁니다. 결국, 일을 만든 우리가 고민하는 것도 웃기는 일입니다.”

“…….”

데니스 샐로먼 이사는 움찔 몸을 떨었다. 제임스 러너 이사의 말은 잔혹했다. 하지만 딱히 틀린 것도 아니었다.

LC 전자와 HY 전자를 부추긴 것은 나쁜 일이 아니었다.

심지어 최용욱 회장과 최민혁 실장을 대립하게 한 일도 괜찮았다.

다만 결과적으로 보면, LC 전자와 HY 전자가 최민혁 실장에게 굴복한 모양새를 보인 것이었다.

이 셋의 관계가 이전과는 사뭇 달라진 것이었다.

더 황당한 것은 오성 전자, LC 전자, HY 전자가 각각 역할 분담을 해서 서로 사업이 겹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사실 이 점이 더 큰 문제였다.

이번 일은 후일 두고두고 후환이 될 일이었다.

제임스 러너 이사는 이 점을 다시 걸고넘어졌다.

“한국 속담에서 긁어서 부스럼을 내지 말라고 했습니다. 이번 일은 데니스 샐로먼 이사가 독단적으로 일을 만들어서 상황을 더 악화시켰습니다!”

데니스 샐로먼 이사는 아무런 반박을 하지 못했다.

하지만 데릭 모건 이사는 굳이 그 점을 걸고넘어지지 않았다.

“제임스 이사, 데니스 이사도 나름 노력해서 한 일입니다. 굳이 그런 식으로 말해서는 곤란합니다. 조심하시기 바랍니다.”

“하, 하지만…….”

“압니다. 당신 뜻을. 하지만 데니스 샐로먼 이사가 생각 없이 한 일은 아니에요. 그저 확인하고 싶었을 겁니다. 그 이후에 보고하는 것이 맞으니까. 이사 직급으로 당연한 권한을 행사한 겁니다!”

“하지만…….”

“아니, 일단 이 일은 여기까지 합시다. 지금 우리가 진행하는 동남아시아 투자 계획이 최민혁 실장 일 때문에 흔들리니까. 그 문제부터 먼저 점검하고 나서 다시 진행하는 것으로.”

“…알겠습니다.”

제임스 러너 이사는 데니스 샐로먼 이사를 흔든 것으로 만족했다.

데니스 샐로먼 이사는 이 정도 질책으로 끝난 것에 만족했고 말이다.

두 사람은 서로 눈치를 보기만 했다.

데릭 모건 이사는 그 모습에 한숨을 내쉬기만 했다. 이번 일이 골치 아파서다. 특히 타이거 펀드의 행보가 정말 문제였다.

‘이건 손을 써야 할 것 같은데…….’

하지만 이 문제의 근원은 최민혁 실장이었다.

최민혁 실장을 밟아버려야 하는데, 도저히 어떻게 할 방법이 없었다.

아니, 일단 흔들리는 투자 상황부터 점검해야 했다.

사실 최민혁 실장의 일은 장기적으로 처리해야 할 일이지만 동아시아 투자는 당장 1~2년 안에 마무리를 지어야 하니까.

‘휴, 괜한 짓을 한 것일까?’

사실 최민혁 실장을 건드리지만 않았다면 일이 이렇게 흘러가지는 않았을 것이다.

정확히는 최문경 부회장에게 손을 떼면 끝날 일이었다.

다만 이것까지는 미처 고려하지 못했다.

* * *

최민혁은 딱히 한국의 IMF를 막을 생각을 전혀 하지 않았다. 그는 그저 최문경 부회장에게 복수하고 싶을 뿐이다.

따라서 최문경 부회장의 동료인 샐로먼 브러더스를 그냥 좌시할 수가 없었다.

때문에 태국 바트화 사태가 자신의 전생 기억과는 다르게 흘러가자 호기심을 가지고 지켜봤다.

‘타이거 펀드 때문이군.’

이유는 생각보다 간단했다.

원래 퍼부어야 할 자금보다 액수가 생각보다 많이 줄어들었다.

최민혁 실장은 그 광경을 보자 조성돈 팀장에게 지시해서 태국 정부에 지금 바트화 수작을 부리는 세력, 자금 규모 및 현재 진행되는 플랜과 관련한 정보를 넌지시 흘리게 했다.

애초에 태국 내에 KM 그룹 공장을 설립한 터라 아는 지인이 제법 있었고, 정보를 넘기는 것은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태국 정부는 당연히 발칵 뒤집혔다. 그들은 샐로먼 브러더스를 비롯한 투기 세력에 대해서 맹비난했다. 심지어 미국 정부에도 항의했다.

미국 정부는 당연히 원론적인 대답만 했다.

민간 자본에 대해서는 미국 정부가 간섭할 수 없다고 선을 그은 것이었다.

결국 태국 정부의 불만은 공허한 메아리에 불과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전혀 효과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태국 정부 역시 헤지펀드의 수법에 대해서 알자 정교하게 대응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그 덕분에 샐로먼 브러더스를 비롯한 투기 세력은 식은땀을 흘려야 했다.

이익도 많이 못 보고 말이다.

거기에 타이거 펀드는 이게 기회라도 된 것인 양 바트화 투자를 대폭 줄였다. 그 돈을 당연히 에플 주식에 퍼부었고 말이다.

아, 에플 공매도 쪽에도 같이 넣었다.

다만 최민혁 실장의 경고를 무시하지 않아서 투자 액수는 대폭 줄였고 말이다.

그런 와중에 최민혁 실장은 막 미국으로 이제 들어가서 스티븐의 역사적인 기조연설이나 들으려고 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