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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잠깐 고민하다가 곧 떨쳐 버리고 말았다.
이미 다 과거다.
그 역시 솔직히 얻은 것이 많았다.
생각해 보면, KM 그룹의 성장세가 없었다면, 지금 진행하는 일 태반을 쉽게 풀 수도 없었다.
새로 사람을 수백 명 뽑아서 일을 풀어가는 것이 간단할 리가 없었다.
최민혁은 이보다 최용욱 회장이 지적한 부분을 곰곰이 생각해 봤다.
그는 상대 역시 최용욱 회장처럼 복잡하게 일을 만들 수 있다고 생각했다.
“사실 줄리엇 로버트슨 회장이 이렇게 우리를 주의 깊게 쳐다보는 것은 가볍게 생각할 일이 아닙니다. 한국 쪽이야 제가 어떻게 한다고 해도 미국 쪽은 다르니까.”
“그러면 다른 이들도 움직일 수 있다는 말씀이군요. 밀리아머 쪽일 수도 있고, 록히드마틴일 수도 있겠군요.”
“아니면 미국 국방성이 직접 움직일 수도 있습니다. 혹시 모르니, VIP에 대한 경호를 더 늘리세요. 이 일은 이번에 확인하고 가죠. 시간이 오래 걸리는 일도 아니니까.”
“…알겠습니다.”
대답한 이는 조성돈 팀장이 아니라 옆에서 유령처럼 서 있던 김명준 과장이었다.
최민혁 실장은 두 사람의 등을 물끄러미 쳐다보면서 쓰게 웃고 말았다. 그 자신이 과거에 뿌린 씨앗이 싹을 틔워서 서서히 덩치를 키워간다는 것을 느꼈다.
최용욱 회장의 조언처럼.
그 여파는 생각처럼 간단하지 않을 것이다.
‘원래는 중국 공산당 쪽에 폭탄을 터뜨릴 생각이었는데, 미국 쪽의 사태가 너무 커지지 않기를 바라야지. 아니, 최소한 오해를 받지 않는 수준까지만 가도 될 거야.’
* * *
줄리엇 로버트슨 회장의 방한 소식은 미국 언론에서도 꽤 다루었다.
한국 경제 개방 물결과 같이 일어난 일이라서 가볍지가 않았다.
한국 정부 쪽에서는 이번 일에 대해서는 노코멘트로 일관했다.
그들은 당황스럽기만 했다.
줄리엇 로버트슨 회장 정도의 거물이 사전에 한국 정부에 연락도 주지 않고, 최민혁 실장만을 찾은 후에 떠났기 때문이다.
솔직히 그들 역시 줄리엇 로버트슨 회장의 방한을 사전에 알았다.
그렇지만 상대가 먼저 연락해 오기만을 기다렸다.
그런데 아니었다.
그냥 한국 정부를 패싱한 것이었다.
미국 언론은 이런 점을 놓치지 않았다.
박소연 역시 이 뉴스를 보면서 헛웃음을 짓고 말았다.
뉴스에서 줄리엇 로버트슨 회장을 다루면서도 최민혁 실장의 얼굴을 옆에 같이 놔두고 언급했기 때문이다.
‘대단하네.’
그녀가 놀라워한 것은 최민혁 실장이 아무런 행보를 보이지 않았음에도 미친 듯이 기사가 만들어졌기 때문이었다.
‘역시 보스다워.’
박소연은 원래 군에 있을 때 김명준 과장을 따르는 대표적인 측근 중의 한 사람이었다. 그녀는 문영식 과장과 같이 김명준 과장의 신뢰를 받았다.
그리고 김명준 과장이 군을 떠난 후에도 여전히 군에 남아 있었다.
박소영은 당시 고민을 많이 했다. 김명준 과장이 군을 떠난 후에 외톨이가 된 탓에 군 생활에 적응하기 쉽지 않았다.
정확히는 군 내부의 정치 때문에 말이다.
그런 문제들로 많이 갈등하는 중에 김명준 과장의 스카우트 제안을 받았다.
일고의 여지가 없었다.
바로 군대를 그만뒀다.
그녀도 이때까지만 해도 KM 전자 경비 팀 한 부서를 책임지는 팀장 정도의 일을 생각했다.
아니었다.
KM 시큐리티란 회사에 팀장급으로 발령을 받은 것이었다.
‘KM 시큐리티가 뭐지?’
KM 그룹 계열사로 나와 있지도 않았다.
뒤늦게야 이 회사의 오너가 최민혁 실장이라는 것을 알았다.
무려 100% 지분을 다 쥐고 있었다.
박소영은 이때 이후로 회사의 미래에 대해서는 고민하지 않았다.
그녀 역시 KM 전자의 아성(?)에 대해서는 잘 알기 때문이다.
연봉뿐만이 아니라 신의 직장이라는 터무니없는 회사 복지까지 말이다.
박소영이 이걸 체감한 것은 첫 번째 경호 임무로 미국에 와서다.
그녀는 자신이 묵게 되는 곳이 허름한 호텔 정도일 거라고로 생각했다.
하지만 전혀 아니었다.
흔히 미국 드라마에서 나오는 번쩍번쩍하는 초호화 펜트하우스였다.
“…와.”
박소영은 군대를 그만둔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적응을 잘할 수가 없었다.
무려 100평이 넘는 이 초호화 펜트하우스는 다른 무엇보다 전망이 장난 아니었다.
저 멀리 해안가가 그대로 드러난다.
해가 뜰 무렵에 보이는 경치는 무릉도원이 부럽지가 않았다.
그녀는 말로만 들어본 KM 전자의 복지에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이게 어떻게 가능할까.
알고 보니, 이 펜트하우스의 소유자가 다름 아닌 벨린 투자였다.
즉 최민혁 실장 소유였다.
그리고 이런 펜트하우스의 숫자는 언론에 알려진 것보다 더 많았다.
‘이걸 그냥 두면 안 되나?’
박소영은 욕심을 가까스로 버렸고, 곧 자기 일에 집중했다.
‘경호도 할 만해.’
* * *
박소영은 경호 팀 팀장으로서 자기 일에 결코 소홀하지 않았다.
그녀는 물론 시작부터 자신을 얕잡아보는 백인, 흑인 경호 팀을 가볍게 손을 봐서 군기를 잡았다. 그녀의 실력은 김명준 과장에 비할 바가 아닐 뿐이지, 한국 특전사 내에서도 상대가 그렇게 많지가 않았다.
그런 그녀도 가끔은 혼란스러울 때가 있었다.
“소영 씨, 좋은 아침.”
“…네.”
같은 여자로도 도저히 질투조차 느낄 수가 없는 눈부신 여신인 이지수 박사 때문이었다.
다만 한 사람은 좀 달랐다.
바로 헬렌.
그녀는 마음에 들지 않는 얼굴로 자신을 쳐다보았다.
“…….”
박소영은 시선을 슬쩍 피하고 말았다. 그녀도 아는 것이다. 헬렌이 놀랍게도 레즈비언이라는 것을 말이다. 사실 그녀에게는 쇼킹한 일이었다.
그녀는 다른 경호 팀원과는 달리 이 미묘한 진실을 알고 나서는 헬렌과 거리를 뒀다.
그런데 그럴 수가 없었다.
늘 가까운 거리에서 경호를 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녀도 처음에는 이 불편함 때문에 이 보직을 포기할까 싶었다. 그런데 초호화 펜트하우스 때문에 그럴 수가 없었다.
이 자리에서 물러나면 초호화 펜트하우스는 끝이기 때문이다.
‘씨발.’
그녀는 새삼 오너인 최민혁 실장의 꼼수에 치를 떨었다.
그녀도 남 눈치를 보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런데 최민혁 실장만큼은 좀 달랐다.
그녀는 때문에 쿡 참아야 했다.
다만 스트레스는 생각처럼 쉽게 사그라지지 않았다.
그런데 오늘은 평소와는 달랐다.
갑자기 나타난 차량 4대가 그들을 가로막은 것이었다.
박소영은 그들을 상대로 엎어치기의 정석을 보여주었다.
거의 2m에 가까운 덩치가 2m 높이로 떠올랐다가 바닥에 충돌해서 컥컥거리는 장면은 환상 그 자체였다.
다급하게 서로 총기까지 꺼내려고 했지만.
다행히 상대측에서 막았다.
그들도 쉽게 생각한 이지수 박사 경호 팀의 실력에 크게 당황한 것이었다.
그런데 이런 일이 일어난 이유가 있었다.
이지수 박사가 가장 뒤늦게 차량 뒷좌석에서 나온 인물을 알아봤다.
“카스 프리먼 차관님?”
미국 국방성 카스 프리먼 차관은 힐끗 박소영 팀장과 아직도 바닥에서 컥컥거리는 경호원을 교대로 살피면서 혀를 찼다.
그는 박소영 팀장이 거느린 경호 팀을 보자 혀를 내두르고 말았다.
“…잠깐 이야기 좀 하지.”
“…알겠습니다.”
이지수 박사도 카스 프리먼 차관의 제안을 거절하지는 못했다.
박소영 팀장은 뒤로 슬쩍 물러난 후에 우선 이 정보를 한국의 김명준 과장에게 보고했다.
* * *
최민혁 실장은 이미 이지수 박사의 가치를 잘 아는 터라 보안에 손을 많이 썼다. 김명준 과장은 그걸 잘 알았다.
그가 굳이 박소영 팀장을 스카우트까지 해서 미국으로 보낸 이유였다.
다만 상대가 카스 프리먼 차관 같은 거물이 꼬일 줄은 몰랐다.
최민혁 실장은 오히려 당연하게 생각했다.
“이제 똥줄이 좀 타나 보네요.”
“좀 과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아마 무인 항공기도 항공기지만 사드 때문일 겁니다.”
“인공지능 기술을 사드에 적용한다는 말씀입니까? 하지만 지금 사드도 아직 말이 많은데, 그게 의미가 있겠습니까?”
최민혁 실장도 순순히 그 점을 인정했다. 그는 전생 기억으로 사드 미래가 어떻게 되는지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이다.
다만 그는 최종적으로 사드 개발이 성공한다는 것을 잘 알았다.
‘하지만 사드도 한계가 좀 있지. 물론 애니를 융합시킨다면 그 가치는 더 급등할 거야. 그야말로 신의 방패나 마찬가지이니까.’
카스 프리먼 차관이 그런 미래를 그리는지는 알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도 바보가 아닌 만큼 이지수 박사가 접목할 수 있는 방산 기술은 잘 알 것이다.
“절대로 방해하지 말라고 하세요. 그 어떤 행동도 하지 말고요. 카스 프리먼 차관이 원하는 대로 그대로 두라고 하세요. 이지수 박사가 절 배신하는 일은 없을 테니까.”
확신하는 이유는 간단했다.
전생에는 이보다 더한 환경 아래에서도 이지수 박사는 최민혁을 저버리지 않았다.
오히려 그 반대였다.
“…알겠습니다.”
조성돈 팀장은 최민혁 실장의 반응이 신기한지 질문하려다가 말았다. 그 역시 최민혁 실장이 선별한 이들이 얼마나 유능하고, 믿을 만한지 잘 알았기 때문이다.
‘하긴 최 실장님이 사람 보는 눈은 세계 최상급이니까.’
* * *
이지수 박사는 신기한 눈으로 박소영 팀장을 힐끗 쳐다보았다.
그녀도 직접 보지 않았다면 믿지 못할 광경이었다.
박소영 팀장 키는 고작 해봐야 170에 불과했다.
그런데 무려 130㎏에, 2m 가까운 덩치를 허공으로 던져 버렸다.
안다.
유도라는 것을.
유도가 상대 힘을 이용한 것도 안다.
다만 그걸 직접 행한다는 것이 그저 놀라울 뿐이었다.
‘최민혁 실장님이 믿을 만한 사람이라고 소개는 했지만 정말 놀랍구나.’
이지수 박사는 다시 카스 프리먼 차관에게 시선을 돌렸다.
KMBOOK 본사와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카페에서 두 사람은 서로 바로 입을 열지 못했다.
경호원 분대가 와 있는 터라 카페 사장은 그게 신기한 지 커피를 내 온 이후로도 그들을 쳐다보기만 했다.
카스 프리먼 차관은 혀를 찼다. 그는 이지수 박사가 고작 이런 자리에서 이야기하자고 할 줄은 몰랐다. 차라리 KMBOOK 본사라면 모르겠지만.
하지만 이지수 박사의 입장은 좀 달랐다. 그녀는 굳이 카스 프리먼 차관을 KMBOOK으로 끌고 가서 눈총을 받고 싶지 않았다.
“무슨 일이시죠?”
카스 프리먼 차관은 잠깐 머뭇거렸다. 그도 이지수 박사를 잘 안다. 테일러 박사와 밀리아머 일도 아주 잘 알았다.
당연히 그는 그 일에 끼지 않았다. 그저 암묵적으로 묵인했다. 그로서는 차라리 그게 낫다고 생각했다. 미국의 국익을 위해서라면 말이다.
그런데 이제는 상황이 좀 달라졌다.
최민혁 실장이 끼어든 이후에 상황에 너무 큰 반전이 일어났다.
심지어 최근 일도 문제였다.
최민혁 실장이 한국에서 진행하는 일 말이다.
‘에플 주가 폭등도 문제야. 도대체 최민혁 실장이 무슨 수작을 부리는 건지. 조시 로버트 아태 차관보에게 물어봐도 횡설수설하기만 하니.’
조시 로버트 아태 차관보는 나름 체계적으로 설명하기는 했다.
하지만 받아들이는 사람의 입장은 달랐다.
특히 최민혁 실장을 경험하지 못한 이들은 말이다.
하지만 그도 안다. 에플 공매도, 이 일의 배후를 말이다. 정확히는 자신의 지인 말이다. 자신이 이 자리에 있는 것도 돌고 돌아서 압박을 받았기 때문이다.
“메이런 프로젝트 말입니다. 그건 미국의 자산입니다.”
이지수 박사는 피식 웃었다. 헬렌은 옆에서 눈을 부릅뜨고 지켜보다가 커피를 내뱉고 말았다.
“제가 메이런 프로젝트 관련 자료를 다 넘겨줄까요?”
“…아닙니다.”
카스 프리먼 차관은 이지수 박사의 말의 의미를 잘 알았다. 이미 이지수 박사가 메이런 프로젝트에서 챙길 것은 다 챙겼다는 것을 알았다.
“…모듈형 인공지능도 따지고 보면, 우리 국방성에 지분이 있습니다.”
이지수 박사는 어이가 없었다.
“그 정보는 어디서 얻었는지 모르겠습니다. CIA, NSA를 동원한 것 같은데, 그러면 더 잘 아시지 않아요? 그건 메이런 프로젝트와 무관해요. 최민혁 실장님이 밑그림을 만든 프로젝트니까.”
카스 프리먼 차관 역시 보고를 받았다. 물론 믿지는 않았다. 말이 되어야 믿을 것 아닌가. 차라리 이지수 박사가 혼자 만들었다면 오히려 믿었을 것이다.
“아니, 그게 가능이나 한 일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