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줄리엇 로버트슨 회장은 피곤한 얼굴로 대답했다.
“제가 들은 사실이 너무 충격적이라서 말입니다. 혹시 최민혁 실장님은 이미 다른 생각을 하는 겁니까?”
“다른 생각이라? 전 오직 방어적인 행동만 할 겁니다. 그러니 이상한 오해는 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그게 무슨 뜻입니까?”
“저는 공매도 세력에 대해 방어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 대안을 사전에 준비했고요.”
“혹시 지금 한국에서 진행하는 일이 그 연장선에서 진행하는 겁니까?”
“…LC 전자 일 말입니까?”
“네. 거기에 HY 전자도 있더군요. 차량용 인공지능 테스트 관련 협상이 이미 진행 중인 것으로 들었습니다.”
“…그건 도대체 어떻게 안 겁니까?”
“우리는 한국 대기업에 관심이 많습니다.”
“그래요?”
최민혁은 잠깐 고민했다. 그는 ‘타이거 펀드’와 관련된 기억을 쭉 서핑했다. 애초에 타이거 펀드는 관심이 없어서 신경을 쓰지 않은 일이었다.
“혹시 조선맥주에 대한 경영 간섭 문제도 그런 연장선 일입니까?”
“네?!”
줄리엇 로버트슨 회장은 화들짝 놀라고 말았다. 조선맥주에 대한 투자, 주식 지분 일부를 통한 경영 간섭, 일종의 사전 정지 작업이었다.
한국 정부가 금융 시장을 개방하기 전에 확인 차원에서 진행하는 일이었다.
조선맥주 경영진을 직접 압박해서 해명을 들으려고 한 일이었다.
더 큰 문제가 있다면 중간에 외수펀드를 통해서 간접적으로 주식을 사들였다는 점이다.
심지어 펀드 운영권까지 사들여서 행사한 일이었으니.
최민혁 실장은 피식 웃었다. 다만 그는 한국 이동통신의 뉴욕 주식 상장과 관련된 안건을 떠올리면서 눈살을 찌푸렸다.
타이거 펀드는 이미 이동통신 구주를 취득했기 때문이었다.
‘물량이 꽤 되네.’
사전에 준비한 건가?
그런데 막상 생각해 보면 애매한 포지션이었다.
최민혁 실장은 머리가 아팠다. 그로서도 줄리엇 로버트슨 회장의 말을 무시할 수는 없었다. 줄리엇 로버트슨 회장도 문제지만 그의 지인이 더 심각한 대상이었다.
그리고 저들은 샐로먼 브러더스와는 같은 길을 걷지는 않았다.
‘그건 내가 이미 확인한 것이니까.’
오히려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에플의 내막을 잘 모르는 이들은 에플 주가에 무슨 일이 생길지 전혀 모른다.
만약 그 일로 손해를 본다면 최민혁 실장 자신을 좋게 볼 리가 없었다.
최민혁 실장은 샐로먼 브러더스만을 외과 수술할 목적으로 움직였다. 그러니 미국 내에 적을 더 만들 수는 없었다.
“한국 이동통신에도 관심이 많은 것 같더군요. 벌써 구주 물량을 확보했으니.”
“…그 물량은 최민혁 실장님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습니다.”
“CDMA 쪽하고 연동되는 물량인데, 아니라고 할 생각입니까?”
“…뉴욕 증시 상장은 한국 정부 차원에서 이미 진행된 일입니다. 우리는 그 일을 도와주면서 일부 지분을 받은 것뿐입니다.”
“그렇습니까?”
최민혁 실장은 쓰게 웃고 말았다. 그도 이동통신 구주와 관련해서 타이거 펀드가 엮여 있다는 것은 이 자리에서 알았다.
줄리엇 로버트슨 회장의 표정이 이상야릇하게 바뀌고 말았다.
그는 최민혁 실장이 도대체 그 정보를 어떻게 아는 건지 그게 궁금했고, 그걸 굳이 이 자리에서 꺼낸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
최민혁은 정보 영역 싸움에서 자신이 이겼다고 판단하자 그제야 피식 웃었다.
“으음, 전 회장님 일에 관심이 없습니다. 그러니 오해를 마시기 바랍니다. 당장 한 가지는 확실합니다. 샐로먼 브러더스는 결코 절 이길 수가 없습니다.”
“…자신하시는 겁니까?”
“물론이죠.”
최민혁 실장은 여기까지 하고 난 후에 문득 줄리엇 로버트슨 회장을 의미심장한 눈으로 쳐다보았다. 그는 괜한 오해를 받고 싶지 않았다. 차라리 상대가 스스로 확인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했다.
“전 타이거 펀드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고 싶지 않습니다. 지금 아는 정보도 어디까지나 제 능력을 보여주는 것에 불과합니다. 그러니 정 돌아가는 진실을 확인하고 싶으면, 한국에 와 있는 샐로먼 브러더스의 데니스 샐로먼 이사를 찾아가서 확인해 보세요. 아마 그게 더 정확할 겁니다.”
“…좋습니다.”
줄리엇 로버트슨 회장은 곰곰이 고민하다가 결국 자리에서 일어나고 말았다. 그 역시 최민혁 실장과 관련된 이야기를 들은 바가 있다.
‘차라리 지금 확인하는 것이 좋겠어.’
조성돈 팀장은 줄리엇 로버트슨 회장이 사무실을 나가자 곤혹스러운 얼굴이었다.
“괜찮겠습니까?”
“어차피 샐로먼 브러더스는 바뀌지 않을 겁니다. 중요한 것은 줄리엇 로버트슨 회장이 저를 오해하는 것을 피하는 겁니다. 그게 더 중요한 일이에요.”
“…그렇게 알겠습니다. 한 번 그 사안을 추가로 확인해 보겠습니다.”
“그러세요.”
최민혁 실장은 의미심장하게 웃었다. 그는 샐로먼 브러더스의 미래를 잘 안다. 망할 회사가 줄리엇 로버트슨 회장과 협상을 할 리가 없었다.
‘난 아무래도 시선에서 피할 수 있겠지.’
* * *
데니스 샐로먼 이사는 갑자기 회사를 통해서 연락해 온 줄리엇 로버트슨 회장의 행동에 크게 당황하고 말았다.
그는 물론 줄리엇 로버트슨 회장을 두려워하지는 않았다.
다만 걱정하는 건 타이거 펀드가 벌써 몇 년 전부터 외수 펀드를 통해서 간접 투자를 해왔다는 사실이다.
600억을 투자해서 1,800억을 벌었다는 소식도 물론 포함해서 말이다.
다만 조선맥주에 투자해서는 무려 30% 가까이 손실을 봤다는 것도 안다.
그런 줄리엇 로버트슨 회장이 갑자기 자신에게 연락을 해오자 영문을 잘 몰랐다.
그런데 만나서 한 이야기는 생각보다 아주 간단한 주제였다.
“데릭 모건 이사를 만나고 싶습니다.”
“네? 갑자기 그,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타이거 펀드는 제가 알기로 한국 투자에도 꽤 큰 관심이 있는 것으로 압니다. 증권 시장 개방과 동시에…….”
“아, 물론 한국 주식 시장에도 관심이 많아요. 그래서 더 그쪽과 이야기를 하고 싶으니까. 에플 투자하고 관련해서 할 말도 있고.”
“…알겠습니다.”
데니스 샐로먼 이사는 줄리엇 로버트슨 회장의 요청을 감히 거절할 수는 없었다. 다만 그는 갑작스러운 이 상황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는 데릭 모건 이사에게 연락해서 약속을 정하면서도 넌지시 질문했다.
“혹시 갑자기 이렇게 데릭 모건 이사님을 찾는 이유를 알 수 없을까요?”
“최민혁 실장이라면 답이 되겠습니까?”
“네? 아니, 갑자기 왜 최민혁 실장이…….”
줄리엇 로버트슨 회장은 곧바로 데니스 샐로먼 이사를 째려봤다.
“데니스 이사, 설마 날 바보로 아는 겁니까?”
“아, 아닙니다.”
“쓸데없는 이야기는 하지 마세요.”
줄리엇 로버트슨 회장은 딱 이 말을 끝으로 입을 다물고 말았다.
* * *
데릭 모건 이사는 갑자기 데니스 샐로먼 이사가 줄리엇 로버트슨 회장을 데리고 나타나자 크게 당황하고 말았다.
다만 그는 이미 데니스 샐로먼 이사를 통해서 사전에 최민혁 실장이 관련이 있다는 소식을 전달받았기에 줄리엇 로버트슨 회장의 눈치만 봤다.
제아무리 샐로먼 브러더스라도 타이거 펀드의 눈치는 봐야 했다.
줄리엇 로버트슨 회장도 처음에는 한국 투자에 대한 자잘한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그는 한국 펀드에 대해 이야기를 하면서 손실을 본 것에 대한 푸념을 털어놓았다.
“이놈의 한국 회사는 왜 그렇게 경영을 이상하게 하는지 모르겠어요. 더 황당한 것은 뭘 좀 하려면 굳이 편법을 사용해서 경영진을 직접 압박해야 한다는 겁니다!”
외수펀드를 이용한 편법은 한국 내에서도 말들이 많았다.
어떻게 보면 관리 사각지대였다. 다만 워낙에 힘이 있는 이들이 엮여 있어서 증권감독원도 손을 대지 못하고 있었다.
샐로먼 브러더스 역시 마찬가지다. 그들 역시 이 방식을 이용해서 편법적으로 투자를 해왔고, 경영 간섭도 했다.
다만 이 일은 재정경제원을 통해서 암묵적으로 승인을 받은 것이었기에 별다른 문제가 터지지는 않았다.
데릭 모건 이사는 이 과정에서 한국 증시에 대해서 세세하게 파악했다.
그런데 이 이야기를 줄리엇 로버트슨 회장이 할 줄은 몰랐다.
아니, 실제로 줄리엇 로버트슨 회장이 할 말이 아니었다.
“최민혁 실장이 이 편법에 대해서 노골적으로 지적하더군요.”
“…네.”
데릭 모건 이사는 그제야 줄리엇 로버트슨 회장이 갑자기 나타난 이유를 알았다.
‘최 실장 이 새끼가 줄리엇 로버트슨 회장을 직접 보낸 건가?’
줄리엇 로버트슨 회장은 처음과는 달리 굳은 얼굴을 한 채 데릭 모건 이사를 쳐다보았다.
“미국 에플 공매도 때문에 묻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그쪽에서 이번 일을 주도한 것 맞습니까?”
“그건…….”
“에플 공매도에 대해서 다들 걱정이 많습니다. 데릭 이사, 당신이 확신을 하고 일을 진행하는 것은 압니다. 그런데 일이 잘못되면 책임을 질 수 있습니까?!”
“…무슨 말씀인지 모르겠습니다.”
데릭 모건 이사는 망설이다가 결국 모르쇠로 답했다.
줄리엇 로버트슨 회장은 데릭 모건 이사의 표정을 보면서 집요하게 에플 공매도에 대해서 질문했다. 정확히는 이 작업을 말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가 원하는 것은 이익을 볼 수 있느냐 하는 것이었다.
데릭 모건 이사는 선뜻 그 부분을 자신할 수 없었고 말이다.
‘최민혁 실장이 상대라서 문제야. 지금 뭔가 일을 꾸미는 것도 있고.’
그 일이 LC 전자, HY 전자, 오성 전자와도 관련이 있었다.
정확히는 LC 전자, HY 전자 관련 사건은 자신들 때문에 생긴 일이었다.
어처구니없게도 말이다.
이 일을 생각하면 할수록 부아가 치밀어 올랐다.
딱히 데니스 샐로먼 이사를 탓하지는 않았다.
자신이라도 결국 대안이 없다면 이 방식을 썼을 테니, 말이다.
결국 상황이 이렇게 되었으니.
이제 와서 없던 일로 할 수는 없었다.
“이번 투자는 줄리엇 로버트슨 회장님도 아시겠지만 쉽게 물러설 상황이 아닙니다. 만약 일이 우려된다면 뒤로 물러서 계시면 됩니다. 아니면 같은 배를…….”
줄리엇 로버트슨 회장은 잠깐 데릭 모건 이사를 째려보다가 쓰게 웃고 말았다.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아직도 모르는군요. 일이 잘못되어서 큰 사태로 비화하면 당신네가 책임을 져야 할 겁니다.”
“…무슨 말씀인지 모르겠습니다.”
줄리엇 로버트슨 회장은 몇 번이나 더 데릭 모건 이사에게 이야기를 해봤다. 하지만 데릭 모건 이사는 생각보다 꽤 완고했다.
‘쯧, 최민혁 실장 그 친구 말이 맞구나.’
그도 처음에는 최민혁 실장이 음모를 꾸미나 싶었지만 그건 아니라는 사실을 뒤늦게 알았다. 그렇다면 최민혁 실장이 취할 조치를 무조건 비난할 수는 없었다.
‘그게 뭔지는 모르겠지만 단순한 방법은 아닐 거야. 그래서 더 문제인데…….’
그런데 최민혁 실장이 그 정보를 말할 수는 없었다.
그건 정말 불법이기 때문이다.
* * *
줄리엇 로버트슨 회장은 데릭 모건 이사를 만나고 난 후에야 돌아가는 상황을 이해했다. 그는 최민혁 실장이 이 뭔가 하려는 일이 하고 싶어서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결국 다음 날에 다시 최민혁 실장을 찾아갔다.
최민혁 실장의 상황이 복잡하다는 것을 알자 선뜻 말을 꺼낼 수가 없었다.
그래도 한 가지 사실을 확인해야 했다.
“좋습니다. 대신 저에게만이라도 최 실장님이 계획한 일에 대한 힌트를…….”
“그게 불법이라는 것은 아실 텐데요? 그럴 수는 없습니다.”
기업 내부 정보를 이용한 일.
최민혁 실장에게는 조 단위 이익이 문제가 아니라 불법적인 행위 자체가 더 문제였다.
“설마 제가 그 정보를 악용할 것으로 생각합니까?”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래도 모를 일입니다. 더욱이 제가 미국 하원의 블랙리스트 0순위라는 것은 아시죠? 설마 모른다고 하실 겁니까?”
“아, 그거야 무슨 오해가…….”
줄리엇 로버트슨 회장도 최민혁 실장이 미국 안보에 있어 가장 위험한 인물 중의 하나라는 것을 뒤늦게 들었다. 그는 그 소식에 한참 웃고 말았지만, 막상 생각해 보니, 전혀 허황한 이야기는 아니었다.
최민혁 실장이 피식 웃었다.
“절 아직도 풋내기로 아십니까? 그 블랙리스트, 절대로 없어지지 않을 겁니다. 아니, 악착같이 이용해서 물고 늘어지겠죠. 이 묘한 상황에서 제 약점이 될 만한 정보를 흘리라는 말입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