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재벌 3세는 조용히 살고 싶다-936화 (936/1,021)

#

최민혁 실장이 전생 기억을 토대로 CDMA 서비스 초기에 생길 수 있는 버그를 최대한 잡도록 손을 썼기 때문이었다.

덕분에 CDMA 서비스는 말도 많고, 탈도 많았지만 스타트 자체는 순조로웠다.

최용욱 회장은 이런 CDMA 상황을 보면서 손자 최민혁의 판단이 틀린 것이 아닌가 의심했다. 그는 그런 중에 장승일 실장의 방문을 받았다.

그는 이미 손자 최민혁에게 뒤늦게 보고를 받은 터라 딱히 놀라지 않았다.

그저 이 상황이 어이가 없을 뿐이었다.

“첩자라…….”

자기 인사를 밀어 넣는 일.

그럴 수 있다.

그런데 그 첩자의 질이 문제였다.

장승일 실장도 눈치가 빨랐다. 그는 그래서인지 김연석 팀장에 관한 이야기를 그저 일상적인 임직원 이야기하듯이 말했다.

다만 중간에 김연석 팀장이 최씨 친척이라는 점 때문에 눈치를 봤다.

“김연석 팀장은 최문경 부회장의 먼 친척으로……. 크흠, 코넬 대학을 졸업했습니다. 미국에서 직장 생활을 6년 가까이 했고, 올해 한국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이것 역시 최문경 부회장이 중간에 간섭했다고 봐야 했다.

김연석 팀장은 의외로 조직 생활에도 잘 적응하는 편이고, 능력 자체는 나쁘지 않았다. 겉으로 봐서는 문제가 없어 보였다.

흔히 말하는 망나니 재벌 일가의 모습과는 거리가 먼 아주 유능한 인물이었다.

최용욱 회장조차 프로필을 확인하고는 혀를 내둘렀다. 이건 최문경 부회장의 인사 능력을 칭찬해야 할 일이기 때문이다.

“…이력대로라면 나쁘지는 않네.”

장승일 실장도 순순히 인정했다.

“인사 쪽에서 손을 쓴 것 같지만, 외형적으로 문제가 될 만한 인물은 아닙니다. 특혜라고 하지만 이만한 사람은 없습니다.”

“하지만 민혁이 그놈 말에 따르면, 언제라도 뒤통수를 칠 수 있다?”

“…네.”

물론 아직 뒤통수를 친 것은 아니었다.

다만 이전에 해왔던 일이 문제였다.

놀라운 사실은 이 문제와 관련해서는 엠바고가 걸렸다.

장승일 실장이 최민혁 실장에게 도움을 청해서 미리 손을 쓴 것이었다.

최용욱 회장도 ‘엠바고’란 말에 내심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이봐, 장 실장, 설마 내 귀가 먹어서 내막을 전혀 모른다고 생각해?”

“죄, 죄송합니다.”

장승일 실장은 그제야 고개를 숙이고 말았다.

최용욱 회장은 잠깐 혀를 차면서 김연석 팀장의 이력을 샅샅이 살폈다. 그런데 과거 이력 중에는 별다른 문제를 일으킨 적이 없었다.

이번에 비자금 관련해서 걸리지만 않았다면 말이다.

그래서 더 이상했다.

그 역시 중앙지검 지인을 통해서 이미 사전에 알아봤으니까.

“…도대체 민혁이 그 녀석은 이 김 팀장이 첩자라는 것을 어떻게 안 거야? 아무런 증거가 없잖아. 만약 이대로 잘라 버리면, 소송이라도 걸 텐데?”

“그게 좀…….”

장승일 실장도 선뜻 대답할 수 없었다. 회사가 아무런 이유도 없이 직원을 자를 수는 없었다. 심지어 최문경 부회장 외가라는 명분으로 말이다. 이 말은 곧 최씨 일가 라인이라는 소리이기도 했으니까.

사실 최용욱 회장이 원래라면 김연석 팀장을 오히려 중용해야 할 일이었다.

하지만 그가 지금 직면한 문제는 간단한 일이 아니었다.

최문경 부회장이 경영권 승계에 집착해서 계약상 정말 중요한 정보를 LC 전자나 HY 전자에게 알릴 수도 있었다.

‘아니, 그러고도 남을 녀석이지. 특히 민혁이가 관련된 일이라면…….’

최용욱 회장은 번민했다. 그는 그제야 손자 최민혁 실장이 왜 단호하게 손을 썼는지 알 것 같았다. 다만 자신에게 보고하지 않고 일을 저지른 것이 아쉬울 뿐이었다.

이미 김연석 팀장은 구속되었다.

“잘랐지?”

“…네.”

장승일 실장도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다. 일단 문제가 없도록 손을 써두는 것이 확실했다.

“조민호 차장 이 친구는 어때?”

“…조민호 차장은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

“그래? 잘 체크해 봐. 생각해 보면, 문경이 그놈이 요즘 조용했잖아. 어째 좀 조용하다 싶었어. 설마 이런 수작을 꾸미는 줄은 상상도 못 했는데. 그래서 이 일 때문에 몸을 사린 것 같아. 그러니 괜한 거라도 아예 문제를 만들지 마.”

여기까지 마무리.

장승일 실장은 마라톤 질주를 하기도 전에 지친 어조로 말했다.

“…알겠습니다. 하면 LC 전자와 HY 전자는 어떻게 할까요?”

최용욱 회장은 별로 고민하지 않았다.

“민혁이 그 녀석이 이미 결정했잖아. 이미 두 회사랑 너무 많이 얽혀서 극한 대립을 할 수는 없어. 대신 민혁이 녀석 말처럼 우리가 원하는 것들 요구하면 되겠지. 이번 CMOS 카메라 모듈 공급 건도 나쁘지 않아. 필요하다면 애니 모바일 솔루션 계약을 해도 될 거야.”

그는 일전에 손자 최민혁에 들은 한 가지 사실을 떠올렸다.

“HY 전자는 아무래도 자동차 쪽하고 엮여 있는 것이 많잖아. 그러니 모바일 애니를 차량에 접목하는 것을 얘길 해봐. 가전 쪽은 오성 그룹 쪽과 이미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라서 어렵다고 해.”

“…알겠습니다.”

최용욱 회장은 난감한 문제를 해결하면서도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그는 원래 건강 때문에 뒷방 늙은이로 전락할 뻔했다.

그런데 이제는 그럴 이유가 없었다.

KM 그룹 차원에서 중요한 결정을 내리고 있으니 말이다.

‘LC 전자나 HY 전자가 어떤 반응을 보일까?’

* * *

최민혁 실장은 장승일 실장으로부터 우선 확인 차원으로 최용욱 회장 이야기를 들었다.

물론 딱히 자신이 생각한 방향과 틀리지 않아서 크게 신경을 쓰지 않았다.

최용욱 회장은 늘 이랬다.

결코 무리수를 두지 않았다.

그는 때문에 LC 전자와 HY 전자의 행보를 더 살펴보았다.

여기까지는 좋았다.

압력을 넣어서 계약이 유리하도록만 하면 된다.

그건 정말 쉬운 일이었다.

갑질이었으니까.

그런데 그런 중에 알게 된 정보는 전혀 예상도 못 한 일이었다.

아니, 정확히는 알았는데 그냥 넘긴 정보였다.

바로 에플 주가.

결국 100달러를 돌파한 것이었다.

뉴욕 월가 주식 가격이 사상 최고치를 갱신하면서 일어난 일이었다.

다우존스 지수가 무려 5,920에 폐장했기 때문이다.

최근 와서 주춤하나 싶었는데, 다우존스 지수 역시 기존의 흐름을 계속 이어갔다.

이번 다우존스 주가 폭등의 기반은 역시나 에플이었다.

스티븐의 에플 기조연설을 앞두고 돌기 시작한 에플의 차기작 소문.

그게 다시 동기가 된 것이었다.

바로 애니의 인공지능이 세계 최초로 적용된 제품 말이다.

사실 이게 오성 전자를 통해서 정보가 흘러나왔는지, 아니면 LC 전자나 HY 전자 통해서 정보가 샌 것인지 확실치 않았다.

‘난 안 했으니까. 어떤 놈일까?’

최민혁 실장은 그 배후가 오히려 데릭 모건 이사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최근 자신을 몰래 지켜본 세력 중에 가장 힘이 있기 때문이다.

‘아니, 무슨 의도로 정보를 흘린 걸까?’

그는 때문에 이 사태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판단할 수가 없었다.

지금 오르는 에플 주가는 거품이 가득 낀 것이었다.

‘괜찮을까?’

그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지금 국무부 아태 차관보로 가 있는 전직 증권거래위원회 부국장 조시 로버트에게 전화했다.

도청 염려도 있지만, 딱히 상관은 없었다.

[…에플 주가가 이래도 괜찮은 겁니까?]

조시 로버트 아태 차관보는 안 그래도 최민혁 실장에게 연락하려고 했다. 그는 될 수 있으면 만나서 이야기하고 싶었다. 그 역시 도청을 염려했다.

[제가 한국으로 가겠습니다.]

역시 상황이 심상치 않았다.

[아뇨, 괜찮습니다. 뭐 불법적인 일에 관한 이야기도 아닌데, 귀찮게 비행기로 오고 갑니까. 그보다 에플 주가가 너무 염려되어서요.]

[…그건 제가 최 실장님에게 묻고 싶은 겁니다.]

[저요? 아니, 제가 뭘 했다고요?]

[애니 아파트 말입니다. 오성 전자 가전에 애니 기술이 적용되었지 않습니까? 그러면 에플에도 당연히 적용될 것 아닙니까?]

최민혁은 허탈하게 웃고 말았다. 그가 지금 진행하는 일이 에플 주가 폭등의 원인인 줄은 상상조차 못 했다.

[아, 그거요. 당연하죠. 그게 문제가 됩니까?]

[…제가 문제 삼는 것은 그 일이 아니라, 그 정보를 이용해서 혹시 에플 주가를 폭등시킨 것이 아닌가 의심하는 겁니다!]

조시 로버트 아태 차관보 목소리가 이전과는 사뭇 달랐다.

최민혁 실장은 그제야 자신의 염려가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지금 제가 한국에서 하는 일은 LC 전자 및 HY 전자와의 협상입니다. 그것 때문에 지금 한국에 와 있고요. 그런데 여기서 제가 뭘 어떻게 해야 에플 주가를 폭등시킵니까?]

[아, 자, 잠깐만요.]

조시 로버트 아태 차관보도 뒤늦게 아차 했다. 그는 다급하게 몇 군데 전화를 걸어서 최민혁 실장의 사정을 확인했다.

최민혁의 말이 틀리지 않았다.

이번 에플 주가 폭등은 최민혁 실장과 아무런 관련이 없었다.

[으음, 죄송합니다. 원래는 먼저 알아보고 연락을 하려고 했는데, 갑자기 최민혁 실장님이 먼저 전화해서 오해했습니다.]

최민혁 실장은 화내지 않았다. 그가 걱정하는 것은 앞으로 일이기 때문이다.

[기분이 나쁘지만 괜찮습니다. 그럴 수 있죠. 그런데 말입니다. 만약 제가 뭔가 해서 에플 주가에 문제가 생기면 어떻게 됩니까?]

[…서, 설마 에플 주가로 장난칠 생각입니까?]

조시 로버트 아태 차관보는 역시 최민혁 실장을 너무 잘 아는 터라 말을 더듬고 말았다. 그가 말하는 바가 간단해 보이지가 않았다.

최민혁 실장은 한숨을 내쉬고 말았다.

[불법적인 일은 아닙니다. 그보다는 방어적인 성격이 강해요. 그런데 아셔야 할 일은 그게 꼭 적들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중도 세력도 있고, 이익에 미친 집단도 있으니까요.]

[아, 그 말씀은…….]

조시 로버트 아태 차관보는 그제야 현실을 깨닫고는 입을 열지 못했다. 그는 최민혁 실장이 하는 말뜻을 그제야 알아들었다.

[…혹시 규모가 어느 정도 됩니까?]

[그거야 에플에 공매도를 건 세력 마음이겠죠?]

[…최 실장님이 먼저 에플 주가를 흔드는 것이 아니라 에플 공매도 쪽에서 손을 쓰고, 최 실장님은 방어만 하겠다는 뜻입니까?]

[그럼요. 저는 에플 대주주 중의 한 사람이니, 당연한 것 아닙니까?]

하지만 조시 로버트 아태 차관보는 최민혁 실장의 말을 액면 그대로 믿지 않았다. 그는 섬뜩한 뭔가가 더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렇지 않고서야 최민혁 실장이 자신에게 전화할 이유가 없었다.

[…알겠습니다. 에플 주가와 관련해서 한번 조사를 해보겠습니다. 필요하다면 SEC를 동원해서라도 확인해 보겠습니다.]

[좋네요. 하지만 조심하세요. 이번 일을 주도한 세력이야 압니다. 다만 그들 외에 다른 세력도 낀 것 같아서 하는 말입니다. 전 그쪽과 싸울 생각이 전혀 없습니다. 제 의견을 잘 전해주기를 바랍니다.]

[…네.]

* * *

최민혁 실장은 일단 조시 로버트 아태 차관보에게 중재를 요청한 것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 자신이야 그저 적당히 일을 벌이고 싶었다. 그가 원하는 목표는 샐로먼 브러더스를 흔들어서 최문경 부회장과의 연결 고리를 끊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와중에 너무 큰 피해를 당하는 이가 나와서는 곤란했다.

놀라운 일은 그다음 날에 타이거 펀드의 줄리엇 로버트슨 회장이 수행원 몇 사람을 데리고 비밀리에 한국에 입국했다는 것이다.

그는 다른 모든 연락을 끊은 채 곧바로 KM 전자 본사를 찾았다.

KM 전자 본사는 발칵 뒤집혔다.

줄리엇 로버트슨 회장을 알아본 이가 있었던 것이었다.

[맙소사, 저분은 줄리엇 로버트슨 회장이잖아?]

[가는 방향이 최민혁 실장님의 기획실장실 같은데, 저게 말이 되나?]

[당연한 일이잖아. 우리 최민혁 실장님의 자금 규모를 생각하면 타이거 펀드라도 와서 정중하게 조언을 청해야지.]

[야, 넌 타이거 펀드 규모를 알면, 그딴 소리 못 해. 뭐가 아쉬워서 최민혁 실장님을 직접 찾아오겠어?]

[그런가.]

KM 전자 임직원들은 다들 이야기하면서도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줄리엇 로버트슨 회장이 무려 아침 8시에 기획실장을 방문할 이유가 없었다.

하지만 사전에 연락을 받은 최민혁 실장은 한숨을 내쉬고 말았다.

“굳이 이렇게 오실 필요까지는 없는 일입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