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재벌 3세는 조용히 살고 싶다-935화 (935/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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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거를 없애던 이들은 경찰 특공대의 몽둥이에 피투성이가 된 채 바닥에 쓰러졌다.

“…….”

박두영 부장검사는 그제야 침묵했다. 단순한 대기업의 비자금 조성이라고 생각했는데, 그 정도 스케일이 아니었다.

‘…이거 괜찮나?’

비자금 규모가 결코 KM 그룹에만 국한되어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다만 그는 최민혁 실장의 경고도 들었기에 혹시나 하는 마음에 서류를 살피다가 고개를 갸웃했다.

‘…최문경 부회장의 이름이 없잖아.’

설마 했다.

하지만 그는 자료를 살피면서 혀를 내둘렀다. 심지어 유령 법인 사장에게 넌지시 질문했을 때 그들도 ‘최문경 부회장’에 대해서는 전혀 몰랐다.

‘…쉽지 않겠네.’

* * *

사실 대기업이 회사 자금을 숨기는 것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었다. 오너 재산을 위해서가 아니라 정치 비자금을 위해서라도 이 일을 반드시 해야 했다.

다만 이런 일이 실제로 적발되는 경우는 흔치 않다.

중앙지검의 검사라고 해서 자기 멋대로 이런 범죄 현장을 공격할 수는 없었다.

이를 잡기 위해선 명백한 증거가 필요했다.

그런데 대기업은 막대한 자본을 이용해 전관 변호사를 투입한다.

그러니 이 범행 현장이 적발되는 경우는 정말로 흔치 않다.

만약 그런 경우가 있다고 해도 검찰 수사관이 정보를 흘리기 때문에 잡기가 어려웠다.

박두영 부장검사가 한 압수수색은 그런 점에서 본다면 쇼킹한 일이었다.

덕분에 중앙지검은 이 일로 인해서 며칠 동안 소란스러웠다.

너무 충격적인 일이기 때문이다.

물론 이 압수수색에 앞서서 최민혁 실장 방문이 있었던 터라 최민혁 실장 관련 이야기도 계속 나왔다.

박두영 부장검사는 그야말로 꽃놀이패를 쥔 셈이었다.

다만 아쉬운 점은 있었다.

김연석 팀장이 입을 다물었다.

현장에서 잡힌 이들 역시 다들 묵비권을 행사했다.

그런데 이게 묘한 것이 그들은 각자 자신이 담당한 부분만을 알았다.

범행의 전체 그림을 잘 몰랐다.

박두영 부장검사는 이 때문에 꽤 골치를 앓았다. 그는 김연석 팀장이 아니라 그 배후인 최문경 부회장을 잡고 싶었다.

그는 우선 최민혁 실장과 상의해서 장승일 실장을 참고인 신분으로 호출했다.

“…솔직히 잘 모릅니다.”

“설마 그룹 전략 기획실 실세란 분이 이 비자금 세탁에 대해서 전혀 몰랐다는 말입니까?”

장승일 실장은 자신 앞에 놓인 정리된 비자금 내역을 확인하면서 혀를 내둘렀다. 그가 보기에는 규모가 장난 아니었다.

그는 그제야 최민혁 실장의 괴랄했던 미소를 떠올렸다.

“물론 그룹 전략 기획실장 신분으로서 지금 심정이 참담합니다. 이번 일에 우리 회사 직원이 연루된 것 말입니다. 하지만 김연석 팀장은 회사에 입사한 지 불과 삼 주가 채 안 되는 사람입니다.”

“그게 더 이상한 것 아닙니까?”

“압니다. 저도 책임을 통감합니다. 그런데 이번 인사는 인사 팀 쪽에서 주도한 일입니다. 저도 아무런 이유도 없이 인사 팀에 이의를 제기할 수는 없습니다.”

“전략 기획실 실장님이 말입니까?”

“하, 아니, 전략 기획실 실장이면, 전략 기획만 잘하면 됩니다. 인사 쪽은 전략 기획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습니다. 그쪽은 그쪽 전문가가 알아서 할 일입니다!”

똑 부러진 대답.

장승일 실장이 평소 사내에서 어떻게 행동했는지 알 수 있는 행동이었다.

장승일 실장은 서슬 퍼런 중앙지검 안에서도 할 말은 다했다.

다만 그 역시 자신의 책임을 통감했다.

“거 잘 아시는 분이 왜 이러십니까? 정 궁금하면 최민혁 실장님에게 문의해 보세요. 이번 일의 배후가 최 실장님이라는 것은 잘 알지 않습니까?”

비자금 배후가 아니라 이번 수사의 배후 말이다.

박두영 부장검사는 크게 당황했다. 그는 귀를 기울이고 있는 수사관과 관련 검사를 손짓해서 사무실 밖으로 쫓아버렸다.

“…오해가 될 만한 말은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렇습니까? 하지만 다시 말하지만, 우리 전략 기획실에서는 모르는 일입니다. 다만 최 실장님에게 며칠 전에 이상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설마 이 일과 관련해서 말한 겁니까?”

“아니 그건 아닙니다. 전 김연석 팀장이 이런 일을 한다는 것을 이제 알았습니다.”

“KM 그룹 내의 중요한 정보는 내부 인물이 흘리지 않으면 알 수가 없어요.”

“그러니까 그게 전략 기획실은 아니란 겁니다.”

“가만, 그 말씀은…….”

“…잘 아시지 않습니까? 이만한 비자금을 준비할 사람이 누구인지. 설마 최민혁 실장님이 이 푼돈에 욕심낼 거로 생각합니까?”

“…알겠습니다.”

박두영 부장검사는 ‘푼 돈’이라는 말에 허탈하게 웃고 말았다. 하지만 에플 주가의 비정상적인 급등으로 늘어난 최민혁 실장의 에플 주식 가치에 비하면 용돈 수준은 맞았다.

‘에플 주가도 설마 이번 일과 관련이 있는 것일까?’

그는 이런저런 음모론을 떠올리다가 쓰게 웃고 말았다.

* * *

박두영 부장검사가 몰라서 장승일 실장을 소환한 것이 아니었다.

절차 문제가 있어서다.

그는 기본적인 소환 인물을 어느 정리하고 나서 결국 최문경 부회장을 호출했다.

최문경 부회장은 다른 대기업 회장처럼 휠체어를 타고 나타났다.

중환자 코스프레였다.

소식을 듣고 몰려든 기자들 수십 명을 카메라를 미친 듯이 그 장면을 찍었다.

그는 막대한 돈을 들인 전관 변호사를 앞세워서 묵비권을 행사했다.

박두영 부장검사는 그 모습에 놀라기도 했지만 취조 관련 자료를 정리하면서 정말로 탄식하고 말았다. 최민혁 실장이 과거에 왜 그렇게 신중하게 행동했는지 그제야 깨달은 것이다.

놀랍게도 김연석 팀장과 최문경 부회장 사이에 연결 고리가 없었다.

있다고 한다면 먼 친척이라는 것뿐이었다.

명절 중에 가끔 서로 보는 사이 말이다.

김연석 팀장이 정리하려 한 자료 역시 마찬가지다.

이 대다수 자금의 오너는 겉으로 봐서는 김연석 팀장이었다.

물론 최문경 부회장의 표정이 좋다는 뜻은 아니었다.

그의 안색은 딱 심지에 불을 붙이면 폭발하는 로켓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분노를 억지로 참았다.

그게 실로 놀라운 일이었다.

이런 부분은 추가 수사와 재판을 통해서 조율을 해야 할 일이었다.

최문경 부회장을 당장 현행범으로 몰 수는 없었다.

‘와, 기가 막히네. 이런 사람이 또 있었다니. 최민혁 실장의 열화판을 보는 것 같구나.’

덕분에 박두영 부장검사가 나서서 질문해도 얻을 것이 별로 없었다.

전관 변호사가 문제였다.

“박두영 검사가 벌써 중앙지검의 부장검사라니. 허 참 세월이 빨라. 내가 기억하는 박 검사는 이제 막 검사로 임용되어서 초보 순경처럼 빨빨거리기만 했는데, 말이야.”

그 시절에 전관 변호사는 담당 지검장이었다.

실제로 멋모르던 시절에 박두영 검사는 지검장을 존경했다.

“아, 네.”

박두영 부장검사가 아무리 최민혁 실장 백이 있다고 해도 선배 검사 출신 변호사를 함부로 할 수는 없었다.

그로서는 이 정도에서 만족해야 했다.

나머지는 재판에서 다루어야 할 일이다.

특히 KM 그룹과 거래하는 회사를 통한 자금 세탁 관련 부분 말이다. 이 부분은 최문경 부회장과는 직접적인 거래가 없었다.

‘아쉽네. 하지만 이 일이 끝은 아니잖아. 최민혁 실장이 노골적으로 손을 썼다는 이야기는 다른 계획도 있다는 것이니까.’

실제로 최문경 부회장은 이를 악문 채 참고 있었다. 그는 지금 이 사태를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김연석 팀장은 외가 친척을 떠나서 자신이 정말 아끼는 이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는 누구보다 이 사태가 왜 일어났는지 잘 알았다. 자신이 한 일에 대해서 조카 최민혁이 보복했다는 것을 말이다.

‘민혁 이 새끼가.’

다만 기가 막혔다.

안 그래도 조심하고 있었으니까.

가능하면 급한 일을 정리하기 전에 최민혁 실장을 자극하고 싶지 않았다.

데니스 샐로먼 이사가 와서 헛소리만 하지 않았다면 말이다.

‘젠장 실수야. 이번 일을 마무리하고 나서 들어갔어야 했는데…….’

* * *

최민혁 실장은 최문경 부회장이 중환자 코스프레한 모습을 TV 뉴스로 보고는 배를 잡고 낄낄거렸다.

그렇게 통쾌할 수가 없었다.

김연석 팀장의 가치를 안다면 말이다.

김연석 팀장은 최문경 부회장이 숨겨둔 최고의 한 수였기 때문이다.

그는 장승일 실장을 곧바로 호출해서 김연석 팀장이 아니라 이후의 일에 집중했다.

“우리 최문경 부회장을 흔들었으니, 다음 일을 하죠. LC 전자 쪽에서 챙길 것은 챙겨야죠. 물론 거절할 수 없는 제안을 할 겁니다. 일테면 CMOS 카메라 모듈을 공급하는 방법말이에요. 거기에 애니 모바일 솔루션을 넣으면 딱이겠네요.”

“…CMOS 카메라 모듈을 덤으로 밀어넣자는 말씀이군요. 으음.”

장승일 실장도 김연석 팀장 일이 있어서 최민혁 실장의 제안에 의문을 표하지 않았다.

그는 때문에 곰곰이 이 문제를 생각했다. 최민혁 실장의 말은 일리가 있었다. KM 그룹 계열사에서 CMOS 타입 카메라 모듈을 개발한 것은 사실이다. 다만 아직 실전에 적용하지는 못했다.

KM DVR 사업이 갑자기 폭주하면서 다른 사업은 뒤로 밀린 것이었다.

그래서 이게 문제였다.

핸드폰 업체가 순순히 말을 들을 리가 없었다.

다만 장승일 실장도 휴대폰 사업의 미래에 대해서 알 수는 없었다.

“수요가 있을까요? 아무리 LC 전자를 압박한다고 해도 들어줄 만한 일이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오히려 갈등만 커질 뿐입니다.”

최민혁 실장은 피식 웃었다.

“당연히 시장이 있죠. 따지고 보면 제가 한 일은 다 이 시점에 휴대폰 사업을 염두에 둔 겁니다.”

장승일 실장은 그제야 한 가지 사실을 떠올렸다.

“혹시 IP 시티폰 사업이 이 휴대폰 사업과 겹쳐서 몰락할 거로 생각한 겁니까?”

최민혁 실장은 그저 웃기만 했다.

“…그랬군요.”

장승일 실장은 굳이 더 묻지 않았다.

솔직히 그 역시 당시만 해도 휴대폰 산업의 장래가 밝다고 생각했다.

다만 휴대폰 사업, IP 시티폰 사업, CDMA 사업, 기지국 관련 사업, 통신 서비스 사업에 대한 큰 그림을 그릴 수는 없었다.

그건 장승일 실장이 무능해서가 아니라 사업 범위가 너무 광범위해서였다.

당장 CDMA 사업만 해도 퀄컴을 위시해서 미국 정부도 얽혀 있었다.

이런 사업의 패러다임 변화는 그로서는 상상조차 할 수가 없었다.

그런데 지금 보면 최민혁 실장은 이미 작년부터 이 거대한 밑그림을 그린 채 일을 밀어붙인 것이었다.

‘경악스럽구나.’

장승일 실장은 최민혁 실장을 안다고 생각한 자신에 대해서 자책하고 말았다.

최민혁 실장이 이미 당시에도 충분한 대안과 방안을 제시했고, 그 이후로도 묵묵히 일을 밀어붙였기 때문이다. 다만 한 가지를 더 짚고 넘어갔다.

“이번 일은 최민혁 실장님이 본격적으로 나서주는 것이 좋지 않을까요? 상대가 상대인 만큼.”

“아뇨. 그 반대입니다. 제가 나서면 오히려 역풍이 불 수 있어요. 그쪽에서도 단단히 준비를 할 테니까. 하지만 그쪽에서 한 대로 최용욱 회장님이 중간에 중재자로 나선다면 일이 오히려 쉽게 풀릴 겁니다.”

“…네.”

“자존심을 내세울 필요가 없으니까요.”

“아, 그렇죠.”

“더욱이 이번 일의 배후는 데니스 샐로먼 이사일 겁니다. 다만 이들이 나섰기에 LC 전자가 빨리 이빨을 드러낸 겁니다. 차라리 잘된 거죠. 이전처럼 질질 끌면 그건 그것대로 안 좋습니다. 지금 이 상황에서는 데니스 샐로먼 이사보다는 LC 전자와 HY 전자와의 관계를 재정립하는 게 훨씬 낫습니다.”

“…유념하겠습니다.”

장승일 실장은 혀를 차면서 이를 최용욱 회장에게 어떻게 보고해야 할지 머리를 굴렸다.

‘일단 회장님에게 보고는 해야겠어.’

* * *

CDMA 휴대폰 사업은 이미 마지막 장벽을 넘어선 지 오래였다.

통신업체 역시 이 CDMA 서비스를 준비하는 중이었다.

LC 그룹 역시 다르지 않았다.

LC 정보통신이 CDMA 휴대폰 단말기 홍보에 나선 것이었다.

여기에는 통신 회사 역시 빠지지 않았다.

이들은 막대한 자본을 퍼부어서 TV 광고에 전념하는 중이었다.

올해부터 시작된 휴대폰 가입 실적이 좋지 않기 때문이다.

첫날 신규 가입자가에 고작 210명에 불과했다.

이유는 당연히 서비스 지역이 제한적이기 때문이었다.

여기에 빠지지 않고 거론된 것은 휴대폰 보급 문제였다.

게다가 이런 결과의 밑바닥에는 퀄컴의 보수적인 태도 역시 한몫했다.

그들은 서비스 품질 완성을 위해서 너무 세세한 것을 팠다.

거기다 그 배후에는 최민혁 실장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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