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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 실장님, 접니다. 한 가지 일이 생겨서 연락드렸습니다. 마쿨라 이사가 절 방문해서…….]
* * *
최민혁 실장은 에플이 받는 일련의 압력 내용을 대체로 알고 있었다.
다만 그도 스티븐에게서 이 사안을 들을 줄 알았다. 그런데 그런 이야기는 전혀 없었다. 기술적인 지원 부분에 대한 감사만 전했으니.
그는 스티븐의 상황을 이미 어느 정도는 알고 있는 터라 기다렸다.
결국은 스티븐이 다시 전화해서 자기 사정을 말했고 말이다.
‘내심 갈등이 있었나 보군.’
그럴 수 있다.
아니, 이미 우려한 바였다.
데릭 모건 이사가 그렇게 날뛰었는데, 스티븐을 회유할 수도 있었다.
엄밀히 말해서 KM 전자의 특수성이 없었다면 유혹에 넘어갈 수도 있는 일이다.
사실 이번 일에는 데릭 모건 이사 외에 다른 세력이 끼어든 것 같았다.
그들 세력은 여러 갈래로 나누어져 있고 말이다.
최민혁은 물론 이들 세력까지 신경을 쓰고 싶지는 않았다. 그는 지금 샐로먼 브러더스, 밀리아머, 록히드마틴에만 집중하고 싶었다.
‘최종적으로는 우리 첫째 큰아버지이지만.’
스티븐 같은 인물이 무조건 자신을 따를 것이라 장담할 수는 없었다.
‘당장은 상관없지. 독립도 결국에는 힘이 있어야 가능한 일이니까.’
그는 스티븐에게 연락받고 난 후에 이제까지 관련된 보고도 같이 통보받고 나서 혀를 내둘렀다.
‘생각보다 더 많구나.’
자신이 조사해서 확인한 내용 이외에 스티븐의 다른 인맥을 통해서 들어온 압력도 있었다.
‘더욱이 매력적인 제안도 많았다는 것이 흥미롭군. 스티븐이 딴마음을 먹었다면 내 뒤통수를 칠 수도 있었겠지. 아, 이것 때문에 고민이 좀 있었나 봐.’
이름만 대면 알 만한 IT 기업.
그 명단이 쭉 나와 있었다.
하지만 지금 당장은 현실적으로 어려운 일이었다.
애니 인공지능이라는 테마가 나온 이상 말이다.
그는 스티븐이 여러 가지 견제를 받으면서 고민을 한다는 것을 알았다.
‘하지만 에플의 이번 제품 가치는 스티븐 스스로도 잘 알 테니, 큰 문제는 없겠지. 내가 기술적으로 도와준 것도 있으니까.’
다만 그렇다고 해도 스티븐이 이제는 돌아가는 사안을 좀 알 필요가 있었다. 일부 미니 드론과 관련된 정보는 안다고 해도 거기서 더 나아간 정보는 제대로 잘 모르기 때문이었다.
압도적인 기술 격차라면 스티븐이 적어도 10년은 배신하지 않을 것이다.
송도연 로봇과 관련된 정보는 제임스 감독을 비롯해서 아는 이들이 극소수였다.
물론 이 프로젝트에 관여한 이들은 수백 명이 넘었고, 관련 회사 역시 백여 곳이 넘었다. 다만 이들은 지엽적인 부분만을 알았다.
스티븐 역시 별반 다르지 않았다.
그는 기조연설의 주인공이지, 그 무대 효과 감독은 아니었다.
최민혁은 이제 기조연설에 앞서서 마무리 작업을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스티븐이 송도연 로봇을 보면 깜짝 놀라겠죠?”
조성돈 팀장은 어깨를 으쓱했다. 그는 제임스 감독을 통해서 송도연 로봇의 정체성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사실 로봇이라고 하기에는 모호합니다. 어떻게 보면 편법이지 않습니까?”
“어쩔 수 없잖아요. 이 짧은 기간 안에 그만한 성과를 낸 것만으로도 기적이니까. 이지수 박사가 아니었다면 그런 결과가 안 나왔을 겁니다.”
“그건 그렇습니다. 다만 록히드마틴의 대응이 많이 달라졌습니다. 적극적으로 매달리는 모양새입니다. 심지어 밀리아머 역시 구경만 하고 있지 않는 상태입니다. 끝장을 볼 각오로 매달리니까요.”
“샐로먼 브러더스는 어때요?”
“안 그래도 보고드리려고 했는데, 에플 공매도 쪽에 손을 쓰는 것 같습니다.”
“드디어 움직인 건가요? 아마 그들로서는 선택의 여지가 없을 겁니다.”
“공매도가 급증한 것도 그 때문인 겁니까?”
“그렇죠. 공매도에 맞추어서 SEC, IRS, FBI가 움직이는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지금부터 작업해 둬야 에플 주가를 끌어내리기 좋으니까요. 스티븐에게 작업한 것은 투 트랙 전략일 테니까.”
에플 공매도와 스티븐 공격은 어떻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에플 주가는 그렇게 크게 출렁이지는 않았다.
에플 주가가 조정장인 것도 있지만 에플을 둘러싼 소문이 너무 많았기 때문이다.
“전 공매도하고 관련된 세력이 그렇게 많은지 몰랐습니다.”
“그게 다 하나의 조직은 아니에요. 단지 돈이 된다고 생각하기에 매달리는 거죠.”
“…최 실장님은 그들을 반목시켜서 서로 견제하게 할 생각입니까?”
최민혁 실장은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 주적은 그들이 아닙니다. 그들 전부를 적대할 필요가 없습니다. 현실적으로 그들 전부와 싸워 이길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도 안 되고요. 마이클 블룸버그만 해도 반대로 움직이고 있잖아요?”
“…네.”
최민혁 실장은 잠깐 자신이 말하고 나서야 최근 자신이 적에 대해서 소극적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당하기만 했다는 뜻이다.
그는 이 상황을 그대로 둘 수는 없었다.
보복은 필연이었다.
누구를 타깃으로 삼을까 고민했지만 금방 가장 쉬운 대상을 떠올릴 수 있었다.
그 자신이 최용욱 회장에게 조심하란 말을 듣기는 했지만, 선을 넘지만 않으면 될 일이었다.
‘역시 사드가 좋겠지. 가장 말이 많이 나오고, 당장 5억 달러 이상의 추가 예산이 필요하니까. 미국 상원에서도 문제 삼은 것이 이 일 때문이고 말이야.’
고민은 길지 않았다.
“마크 프랭클린 소령을 호출해 주세요.”
“…네.”
조성돈 팀장은 의아하기는 했지만, 굳이 질문 따위는 하지 않았다. 그도 이제는 굳이 최민혁 실장에게 묻지 않아도 속내를 알기 때문이다.
‘스티븐에게 손을 쓴 것 때문에 보복하려는 걸까? 하긴 에플에 들어간 자금, 기술, 인력만 해도 만만치 않으니.’
* * *
메이런 프로젝트의 책임자인 자레드 해리스 대령은 침묵했다.
그는 일단 분위기부터 파악하기 위해서 이지수 박사에게도 손을 쓰지 않았다.
이런 그의 행동이 나쁜 선택은 아니었다.
이지수 박사는 빠르게 기존 메이런 프로젝트과 관련된 업무를 파악했다. 심지어 기존에 같이 협력한 업체와의 채널도 다시 열었다.
그들 대다수는 이지수 박사에게 열광했다.
심지어 이번 메이런 프로젝트와 관련된 국방성 직원조차 말이다.
그로서는 어이가 없는 일이었지만 꾹 참았다.
자레드 해리스 대령은 덕분에 이지수 박사가 뭘 하는지 금방 이해할 수가 있었다. 그녀가 메이런 프로젝트를 다시 들여다보는 것에 대해 말이다.
이지수 박사는 심지어 밀리아머에서 얻은 특허를 조금씩 사들였다.
자레드 해리스 대령은 굳이 그 일을 막지 않았다. 오히려 도와주었다. 그가 알고 싶은 건 이지수 박사가 그걸 가지고 도대체 뭘 하려는지, 그게 궁금했다.
그도 처음에는 잘 몰랐는데, 뒤늦게야 한 가지 사실을 알았다.
이지수 박사는 KMBOOK에 들어간 이후에 메이런 개량판을 고안했다. 다만 이 결과물은 기초가 좋지 않았다.
메이런 프로젝트의 성과물이 필요했던 것이다.
이지수 박사는 이 두 가지를 합쳐서 부족한 부분을 메꿔 나가기 시작했다.
그 과정에서 시제기 하나가 정상적으로 동작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 일은 해프닝으로 끝났다.
다들 그렇게 알았다.
하지만 자레드 해리스 대령은 그들과는 좀 달랐다. 그는 이지수 박사에게서 눈을 떼지 않았기에 이 사소한 것도 놓치지 않았다.
그는 덕분에 이지수 박사가 메이런 프로젝트 기반 자료를 토대로 해서 통합한 새로운 시스템, 애니 인공지능을 유심히 지켜봤다.
그리고 이 인공지능 애니는 기존의 인공지능과는 많이 달랐다.
놀랍게도 모바일에도 적용할 수 있었다.
지능형 모듈하에서 따로 분리된 인공지능이 탄생한 것이었다.
게다가 슈퍼컴퓨터를 이용하면 이 인공 지능 발전을 더 가속화시킬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작업은 이미 KMBOOK 내의 슈퍼컴퓨터에서 진행 중이었다.
자레드 해리스 대령이 슬쩍 이지수 박사를 만나서 압박한 것은 바로 이 안건 때문이었다.
“이지수 박사, 이건 보안 위반입니다!”
필요하다면 이지수 박사가 연구한 인공 지능을 압수할 수 있다는 뉘앙스도 추가했다.
이지수 박사가 그다음에 보인 행동은 바로 시제기 하나를 추락시킨 것이었다. 그것도 마치 자폭 드론처럼 말이다.
“…….”
자레드 해리스 대령은 그제야 자신이 뭔가 큰 착각을 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지수 박사가 원하던 것은 이미 다 얻었다.
그녀는 메이런 프로젝트를 이용해서 기존 애니의 부족한 점을 메꾸기를 원했다.
이미 그 작업은 다 끝나 있었다.
자레드 해리스 대령은 크게 당황해서 일단 한 걸음 물러났다.
지금처럼 이지수 박사와의 극단적인 대립은 곤란했다.
마크 프랭클린 소령을 통해서 들은 바로 지금의 애니 인공지능 시스템을 다 이해하는 사람은 이지수 박사 한 사람뿐이었다.
그가 최민혁 실장의 방문을 받은 것은 바로 이 문제를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고민할 때였다.
“우리 이 박사님을 건드렸다면서요?”
“네? 그게 무슨…….”
자레드 해리스 대령은 크게 놀랐다. 그도 마크 프랭클린 소령에게 갑질을 하지만 최민혁 실장에게는 그럴 수가 없었다.
‘사드 보고서가 정말 최민혁 실장의 솜씨일까?’
최민혁 실장은 자레드 해리스 대령 사무실에 놓인 소파에 조폭처럼 풀썩 앉으면서 손바닥으로 맞은편을 탁탁 내리쳤다.
이 앞에 와서 앉으라는 신호였다.
자레드 해리스 대령은 분노하기는 했지만, 최민혁 실장의 지시를 따를 수밖에 없었다. 그는 곧 사무실에 나타난 이지수 박사를 힐끗 쳐다보았다.
이지수 박사는 영문을 잘 몰라서 고개만 갸웃했다.
“…메이런 프로젝트에도 요즘 자금이 많이 필요하다고 들었습니다.”
자레드 해리스 대령은 자신은 생각한 것과는 좀 다른 이야기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 정도까지는 아닙니다. 더욱이 메이런 프로젝트 성과도 있어서 기대를 많이 하는 눈치입니다.”
정확히는 오성 물산에서 내놓은 애니 아파트를 말하는 것이었다.
최민혁은 피식 웃었다.
“노파심에서 미리 하는 말이지만 메이런 프로젝트에서 말하는 인공지능과 상업적으로 사용되는 애니는 전혀 다른 겁니다.”
“네?”
“두 가지 프로젝트 뿌리는 똑같아도 설계 개념 자체가 달라요.”
최민혁 실장은 미리 준비해 둔 애니 아파트 관련 애니에 적용된 하드웨어, 관련 프로그램을 구체적으로 보여주었다.
무인 항공기에서 사용되는 시스템과는 근본적으로 많이 다른 부품이었다.
정확히는 메이런 프로젝트에서 사용된 프로그램을 가전제품에 적용하는 게 불가능했다.
성능 때문이었다.
최민혁은 KMBOOK 오너답게 중요한 몇 가지 칩을 구체적으로 비교하면서 하나씩 설명했다.
“…….”
자레드 해리스 대령은 눈살을 찌푸렸다. 그가 내세울 명분 중의 하나도 그 안에 속해 있었다.
그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마크 프랭클린 소령을 호출했다.
마크 프랭클린 소령은 사무실 안으로 들어왔다가 분위기를 파악하고는 묵묵히 보고서를 살핀 후에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최민혁 실장은 피식 웃었다.
“사전에 일을 만들까 하는데 미리 선을 긋고 싶어서요. 무인 항공기와 애니를 이용한 상용 제품은 같을 수가 없어요. 심지어 에플의 아이팟에 적용된 기능은 또 다릅니다.”
이지수 박사가 슬쩍 나서서 각 애니 모듈별로 특화된 특성을 설명했다.
“이 각각의 애니 블록은 인터페이스를 토대로 경험치를 쌓아 나가요. 따라서 하드웨어가 다르면 동작 자체가 같을 수가 없어요. 이번 시제기 추락은 그런 점을 간과해서 생긴 사고였어요.”
물론 거짓말이었다.
정확히는 최민혁 실장의 말처럼 무인 항공기를 자폭 드론으로 사용할 수 있나 확인해 본 것이었다. 마치 사드 요격 미사일처럼 말이다.
실제로 무인 항공기 궤적 변화를 통해서 일부 확인했고 말이다.
그런 내막을 잘 모르는 자레드 해리스 대령이 강하게 반박하려고 했다.
최민혁 실장이 슬쩍 이 일에 끼어들었다.
“이 박사님 말이 진실입니다. 출발점이 메이런 프로젝트라고 해서 모든 시스템이 다 동일한 것은 아닙니다. 그건 메이런 프로젝트를 이용하는 사드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그도 ‘사드’ 이야기가 나오자 흠칫 놀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