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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일리 로엔 박사는 화들짝 놀랐다. 사진은 다름 아닌 회사 안에서의 자신의 모습이었다. 뭔가를 계속 탐하는 모습이 노골적으로 찍혀 있었다.
최민혁 실장은 우선 한 가지부터 짚고 넘어갔다.
“입사 지원서에 사내 DVR를 통한 본인 촬영 허가에 대해서 명시되어 있을 겁니다. 보안 차원에서 한 일이고, 실제로 그렇게만 사용될 겁니다.”
“…네.”
카일리 로엔 박사도 장소가 이 초호화 요트가 아니었다면 발끈했을 것이다. 아니, 740 펀드에 대해 몰랐다면 화를 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그러지 못했다.
최민혁 실장은 뜻밖에 카일리 로엔 박사가 순응하자 그의 프로필, 특히 여동생에 대한 자료를 테이블 위에 놓았다.
“샐로먼 브러더스의 장학생이나 마찬가지더군요. 그쪽에서 운영하는 재단에서 장학금과 여동생 치료비 지원을 받았고요.”
“…….”
카일리 로엔 박사는 눈을 질끈 감았다. 그는 최민혁 실장이 어설프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어쩌면 들통이 날 수도 있는 일이었다.
다만 설마 했을 뿐이었다.
그런데 벌써 자기 정보를 알고 있을 줄은 몰랐다.
최민혁 실장은 카일리 로엔 박사를 탓하지 않았다.
“전 카일리 박사님에게 실망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샐로먼 브러더스에게 놀랐습니다. 당신 같은 분을 첩자로밖에 못 활용하는 점에서 말이죠.”
“네?”
“카일리 박사님은 여동생의 난치병 치료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우리 회사에 들어온 걸 겁니다. 아직 아무런 일도 하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협상할 수 있는 타이밍입니다.”
“그 말씀은…….”
최민혁 실장은 다른 보고서 하나를 내밀었다. 그 안에는 카일리 박사 여동생의 난치병 치료를 위한 여러 가지 계획이 담겨 있었다.
물론 당장은 어려웠다.
하지만 계획 자체는 신약 개발을 위해서 고작 3년만 기한으로 두고 있었다.
카일리 박사 여동생의 임상은 가장 빨리 진행되고 말이다.
놀라운 것은 그 과정이었다.
구체적인 절차가 잘 나와 있었다.
심지어 난치병에 대해서 명확하게 치료 과정을 다 정해놓았다.
다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최민혁 실장이 전생의 메시지를 일괄적으로 정리한 것에 불과했다. 이대로 정확하게 진행된다고 하기는 힘들었다.
그는 물론 이 자료가 돈이 된다는 것을 잘 알기에 손으로 카일리 로엔 박사의 시선을 가렸다.
“…카일리 박사님은 아직 결정을 내리지 않았습니다.”
카일리 로엔 박사는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그는 여동생 난치병 때문에 개인적으로 의학을 연구한 터라 어지간한 의사보다도 잘 알았다.
그 덕에 최민혁 실장이 내놓은 자료가 진짜라는 것도 눈치챈 것이었다.
“저, 정말, 치, 치료제 개발이 가능한 겁니까?”
최민혁 실장은 미래의 카일리 로엔 박사 인터뷰에서 여동생이 죽는 시점이 13년 후라는 것을 잘 알았다.
“잘될 겁니다.”
“…….”
카일리 로엔 박사는 최민혁 실장이 가린 보고서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하지만 최민혁 실장은 잔인하게도 그 보고서를 슬쩍 조성돈 팀장에게 내밀었다.
조성돈 팀장 역시 슬쩍 보고서를 봤다. 그는 최민혁 실장이 오늘 이곳에 오기 전에 내민 이 자료를 보면서 허탈하게 웃고 말았다.
자료 내용이 너무 구체적이어서 정말 신약 개발이 이대로 가능할 것 같았다.
아, 물론 전문 인력과 자본이 필요했다. 하지만 그건 최민혁 실장에게는 너무 쉬운 일이었다. 적당한 제약 회사 하나를 인수해서 일을 진행하기만 하면 된다.
즉, 이대로 신약 개발이 가능하다는 뜻이다.
이게 말이 되나.
조성돈 팀장은 호기심을 가까스로 떨친 채 보고서를 서류함에 넣었다.
김명준 과장이 냉큼 보고서를 받아서는 다른 경호원에게 넘겼고 말이다.
경호원은 그 자리에서 즉시 사라졌다. 해당 보고서는 금고 안에 따로 보관할 것이었다.
최민혁 실장은 마치 사이비 종교의 교주라도 된 것처럼 소리쳤다.
“저 치료는 카일리 박사님이 ‘Yes'라고 말하는 순간에 바로 개발에 착수…….”
“하, 하겠습니다. 최민혁 실장님 지시에 따르겠습니다. 제발 제 동생을 살려주십시오!!!”
그 자리에서 바뀐 카일리 로엔 박사는 울부짖었다.
단순히 여동생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는 샐로먼 브러더스의 행패에 내심 배신감마저 느꼈기 때문이다.
최민혁 실장은 그의 아픈 점을 바로잡아 주었고 말이다.
다만 그는 카일리 로엔 박사의 일방적인 태도에도 한 차례 거절했다.
“계약은 시간을 두고 하는 것이 좋습니다. 이 요트에서 시간을 보내면서 한번 진지하게 고민해 보세요.”
“…알겠습니다.”
카일리 로엔 박사는 최민혁 실장의 태도에 진심으로 감격하고 말았다. 그는 샐로먼 브러더스와는 차원이 다른 태도에 한편으로는 의문도 가졌다.
* * *
카일리 로엔 박사는 초호화 요트에서 시간을 보내면서도 돌아가는 상황을 확인해 봤다. 특히 KMBOOK과 관련된 정보를 말이다.
그는 이 과정에서 록히드마틴이 KMBOOK에서 진행하는 무선 항공기 개발에 깊은 관심을 드러낸다는 것을 알았다.
이건 록히드마틴에 입사한 지인을 통해서 알게 된 사실이었다.
그는 그제야 KMBOOK에서 굳이 인력 채용을 늘린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또한 최민혁 실장의 의도 역시 마찬가지다.
[미국 국방성이 위성 감지를 이용한 미사일 발사 체계, 캘리포니아, 알래스카 쪽을 방어하기 위한 레이더 시스템에 관심이 많아.]
대기권 내에서 미사일을 요격하는 패트리어트 미사일 체제는 아직 검토 중이었다.
다만 사드를 이용한 방어 체제는 꽤 공격적으로 진행 되었다.
그런데 한 가지 문제가 존재했다.
[사드 미사일 개발이 계속 실패하는 중이라…….]
미국 국방성에서는 여전히 큰 소리로 외치는 중이었다.
그들은 이 사드를 내년 말에 한반도에 배치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런데 이런 주장은 현실성이 없었다.
[아마 힘들 거야. 카일리 박사 당신이 록히드마틴에 와야 하는데, KMBOOK이라니. 좀 아쉽네.]
[…나로서는 KMBOOK이 록히드마틴보다는 훨씬 나아. 이곳에는 기존 개발진의 텃새도 없는 상황이니까.]
[…그렇겠지.]
카일리 로엔 박사는 그제야 최민혁 실장이 원하는 것을 깨달았다. 그가 진심으로 자신을 위해서 노력한다는 것도 말이다.
그런 면에서 본다면 샐로먼 브러더스는 황당하기 짝이 없었다.
자신을 소모품으로 이용하는 것이니까.
‘내 동생 치료를 정말 해줄까?’
솔직히 의심이 하나 생기자 다른 의혹이 무럭무럭 피어올랐다.
카일리 로엔 박사는 자신의 인맥을 총동원해서 미국 국방부와 관련된 정보를 얻었다. 그런데 아무리 살펴봐도 최민혁 실장이 진심이라는 정보밖에 나오질 않았다.
‘최민혁 실장님은 정말 믿을 만한 사람이구나.’
* * *
최민혁 실장은 싱긋 웃었다. 카일리 로엔 박사에게 시간을 더 줬다. 그런데 그의 태도는 바뀌지 않았다. 오히려 그사이 자신의 열렬한 신자가 되어 있었다.
그는 슬쩍 미리 준비해 둔 계약서를 내밀었다. 그 안에는 이번 계약을 어길 때의 위약금을 포함해서 여러 가지 법적 조항이 있었다.
그는 그걸 숨기지 않았다. 손끝으로 꼼꼼하게 지적했지만 카일리 로엔 박사가 계약서를 제대로 보지도 않고 서명하자 쓰게 웃었다.
“좋습니다. 박사님을 믿겠습니다. 다만 이 부분은 위약금과 관련된 조항입니다. 그 부분은 확인해 보시고, 앞으로 잘 좀 부탁합니다.”
“하지만 제가 받은 금융 지원에 대한 위약금은…….”
“그거 다 합쳐서 800만 달러 정도 되더군요. 일시불로 쏴 드릴까요?”
“네? 그, 그게…….”
“하하하, 일단 계약금으로 800만 달러는 통장으로 입금해 드리죠. 이자가 꽤 될 겁니다. 그걸 가지고 있다가 샐로먼 브러더스 측과 계약을 해지할 때 내세요. 앞으로 돈은 걱정하지 마세요. 설마 제 앞에서 돈 걱정하실 겁니까? 우리 회사는 그냥 놀고먹어도 매해 10억 달러는 그냥 법니다.”
“…네.”
카일리 로엔 박사는 입을 다물고 말았다. 그로서는 돌아가는 상황을 알아도 최민혁 실장의 일방적인 태도를 이해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최민혁 실장도 내심 꿍꿍이가 있었다. 그는 사드 프로젝트 실패하는 과정을 잘 안다. 그것과 관련된 정보를 카일리 로엔 박사에게 주지시킨다면 사드 개발을 최대한 단축할 수 있다고 확신했다.
거기에 애니 인공지능을 결합한다면 사드 성능은 전생과는 전혀 다른 수준에 도달할 것이 분명했다.
‘그야말로 신의 방패 탄생이지.’
게다가 이건 다른 방산 시스템에도 적용할 수가 있었다.
그걸 감안하면, 800만 달러는 정말 푼돈이었다.
“…….”
카일리 로엔 박사는 이런 최민혁 실장의 꼼수를 잘 이해하지 못했다. 다만 그 역시 최민혁 실장이 돈 버는 방식을 잘 알았다.
‘내가 모르는 뭔가가 있는 건가?’
세계 그 어떤 기업도 KM 전자처럼 방만하게 운영하지는 못했다.
그럼에도 KM 전자는 정말 돈을 잘 벌었다.
최민혁 실장은 방긋 웃으면서 한 가지 사실을 더 말했다.
“특별히 달라질 것은 없을 겁니다. 앞으로 이지수 박사님과 상의해서 샐로먼 브러더스에 적당히 정보를 흘리는 것부터 하세요. 또한, 록히드마틴과도 손을 잡게 될 겁니다. 그때는 박사님이 실무 책임자로 나서주면 됩니다.”
“제가 말입니까? 하지만 제 경력이…….”
“경험이 살짝 부족한 것은 전문 인력을 투입해서 보완할 겁니다. 리더는 카일리 박사님이 하시면 됩니다. 그렇게 하세요.”
카일리 로엔 박사는 새삼 최민혁 실장의 마음 씀씀이에 놀라서 멍하니 최민혁 실장을 쳐다보다가 뒤늦게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설마 애니 인공지능을 군용 무기와 결합하실 겁니까?”
“잘 아시는군요. 아마 그 시작은 사드가 될지 모르겠습니다. 물론 협상이 잘된다는 전제로 말입니다. 협상이 체결되면, 록히드마틴 쪽에서 박사님을 밀어줄 겁니다. 그러면 카일리 박사님은 그걸 최대한 이용하면 됩니다. 그러려면 지금부터 사전 준비를 잘하셔야 되고요.”
“…….”
카일리 로엔 박사는 입을 딱 벌리고 말았다. 그는 최민혁 실장이 왜 자신과 협상한 것인지 눈치채기는 했지만, 설마 이 정도로 자신을 믿을지는 몰랐다.
‘맙소사.’
곧이어서 눈물을 참을 수가 없었다.
지금까지 세상을 살면서 이렇게까지 자신을 믿어준 이는 최민혁 실장이 최초였다.
대부분 자신을 이용하려고 했다.
하지만 최민혁 실장은 진심으로 자신과 자신의 여동생을 도우려고 했다.
샐로먼 브러더스와는 차원이 다른 모습이었다.
그는 진정으로 최민혁 실장의 인품에 반하고 말았다.
“가, 감사합… 흑흑, 정말 고맙습니다.”
“…….”
최민혁 실장은 물론 카일리 로엔 박사를 완전히 믿지는 않았다. 그는 악어의 웃음을 던졌다. 진정한 미소를 보여주었다.
그는 자신이 원하던 분위기가 만들어지자 카일리 박사가 혹할 수밖에 없는 제안 하나를 더 던졌다.
“여동생 문제도 문제지만 중요한 것은 카일리 로엔 박사님의 미래입니다. 록히드마틴과 손을 잡게 되면, 사드와 같은 미사일 방어 시스템 프로젝트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그랬다.
최민혁 실장은 자신이 하는 일이 무엇인지 명확하게 말했다.
“그건 록히드마틴에 입사해서 시다바리로 성장하는 것과는 비교할 수도 없는 명예를 당신이 가질 수 있다는 얘기입니다. 그 점을 잊지 마세요.”
“아, 네, 네!”
최민혁은 꽤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는 따가운 시선을 느꼈다. 헬렌과 이지수 박사였다. 두 사람은 수영하면서도 이쪽에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그는 슬쩍 그쪽을 향해 웃어주었다.
그는 카일리 박사와의 만남을 파한 후에 조성돈 팀장이 내민 국내 보고서를 살피다가 곧 눈살을 찌푸리고 말았다.
‘좋네, 딱 이 흐름이면 괜찮겠어. 제발 다른 문제가 안 생겼으면 좋겠어. 국내 문제는… 응? 이게 또 무슨 소리야?’
* * *
최민혁이 굳이 이지수 박사 프로젝트 점검 차원을 핑계로 잠시 미국에 와 있는 것은 국내 동향이 심상치 않아서였다.
미래 아파트 화두는 정말 듣도 보도 못한 주제였다.
처음에야 몇몇 언론사가 그저 가십성 이야기로 떠들었지만, 곧 관련 정보가 국내에 알려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