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성돈 팀장이 슬쩍 눈치를 봤다.

“안 그래도 인허가 때문에 말이 많았습니다. 담당 공무원도 계속 윗선에 이야기했습니다. 그랬는데도 영 지지부진하더니 이번에 재정 경제원에서 손을 쓴 덕분에 바로 이 프로젝트를 론칭할 수 있었나 봅니다.”

최민혁 실장은 이미 사전에 준비를 다 해놓아서 일이 바로 진행된 것을 확인했다.

“…재정 경제원을 협박한 것이 도움되었나 보군요.”

“그렇죠. 최 실장님 입장에서는 그저 단순한 협박이지만 재정 경제원이 느낀 수위는 전혀 달랐을 겁니다.”

“그 정도로 압박하지는 않았어요. 아니, 대체 제가 얼마나 무서우면 그렇게 오해하는 겁니까? 제가 뭘 할 거로 생각한 거랍니까?”

“아마 최 실장님이 외환 위기에 따르는 수준으로 뭔가 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 그걸 누가 믿습니까?”

조성돈 팀장은 최민혁 실장의 눈치를 보면서 슬쩍 한마디 했다.

“그런데 의외로 믿는 사람이 많습니다. 오성 전자의 기획실에서도 계속 문의 전화가 옵니다. 아니, 다른 대기업 기획실도 다르지 않습니다.”

“…도대체 제가 무슨 능력으로 그런 사태를 만들 수 있다는 거죠?”

“그건 그렇게 중요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건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한다는 거죠.”

조성돈 팀장의 어투가 약간은 신랄했다.

최민혁 실장의 지난 행보를 살짝 비판했다.

실제로 최민혁 실장의 지난 행보는 말이 많았다.

지하철 가판대에 있는 찌라시를 보면, 최민혁 실장 우주인 설도 나오고 있었다.

“하하하.”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면서 조성돈 팀장을 째려봤다. 내심 억울했다. 자신은 그냥 화를 냈을 뿐이다. 그게 그렇게 무서운 협박일 수는 없었다.

“모델 하우스나 보러 가죠. 권태성 실장도 한번 만나보고 싶으니까.”

“…알겠습니다. 그쪽에 미리 연락해 놓겠습니다.”

* * *

김홍수는 KM 전자가 2천 원 할 때부터 들어가서 재미를 잘 봤다.

그는 주식 투자로 초대박을 친 덕분에 언론 인터뷰까지 했다.

그의 원래 직업은 부동산이었으니.

김홍수는 KM 전자 주식으로 진짜 부자가 되었다.

중간마다 단기 거래로 재미도 많이 봤다.

KM 전자 주식을 튀겨도 보고, 삶아도 보고, 찢어도 봤다.

하지만 요즘 KM 전자 주가는 이전과는 사뭇 많이 달랐다.

시작은 역시 콜린스 사업부 매각 루머.

거기에 에플이 이번 CES 전시회에서 내놓는다는 차세대 MP3 플레이어도 문제였다.

KM 전자에서 곧 출시한 차기 모델과 에플의 제품이 서로 많이 닮았다. 결국, 미국 시장에서 KM 전자의 MP3 플레이어 예상 판매수는 줄어들었다.

그나마 위안이라면 KM 전자는 보유하고 있는 현금성 자산, 아니, 현금만 무려 4조가 넘을 것이라는 말이 나왔다.

거기에 추론으로 콜린스 사업부 매각 후에 들어오는 자금까지 합치면 무려 7조가 넘는다는 설이 돌았다.

7조라니.

다만 주가는 현금을 보고 오르는 것이 아니었다.

회사 미래 가치가 그 주가를 좌우했다.

이러니 KM 전자 주가는 조정을 거칠 수밖에 없었다.

단기로 등락을 반복하면서도 꾸준하게 주가는 내려갔다.

다행인 점은 40만 원에 걸쳐서 더 폭락하지는 않았다.

아주 가끔 주식 시장이 어려울 때는 37만 원까지 추락했지만, 다시 반등했다.

김홍수도 슬슬 KM 전자 주식이 질렸다. 하지만 그는 최민혁 실장을 믿기 때문에 KM 전자 주식을 완전히 정리하지는 않았다.

그는 결국 다른 종목을 찾았다. 실제로 KM 전자 성공에 고무되어서 무리하게 투자했다가 30%를 단숨에 날렸다.

김홍수가 쓴맛을 보고 나서 결정한 것은 KM 전자와 관련된 종목이었다. 바로 KM 그룹 계열사 쪽의 주식이었다.

실제로 KM 그룹 주식은 꾸준하게 상승했다.

하지만 KM 전자 같은 초대박 주와는 격이 많이 달랐다.

그가 그러다가 발견한 것은 KM 건설이었다. 이 회사에서 미래형 아파트를 건설하겠다는 뉴스를 봤다.

‘이거다!’

하지만 김홍수가 아무리 기다려도 미래형 아파트 소식은 나오지 않았다.

주식 동호회에 가면 늘 나오는 이야기로 소문만 무성했다.

그는 하도 답답해서 KM 건설 쪽에 연락해 봤다.

[죄송합니다. 정부의 인허가 문제 때문에 정식으로 론칭할 수가 없었습니다.]

김홍수는 어이가 없었다. 하지만 그도 뾰족한 수가 없었다. 그는 결국 기다렸다. 분명히 기회가 올 것으로 생각했다.

아니나 다를까 드디어 허가가 나왔다.

‘기회다!’

* * *

김홍수는 즉시 자기 일가족뿐만 아니라 동생, 외가 쪽 사람까지 다 불러 모델 하우스로 갔다. 다들 불만이 많았다.

그는 혹시 사람이 몰릴 것을 염려했는데, 다행히 그가 제일 빨랐다.

그의 가족이 모델 하우스에 들어가기가 무섭게 줄이 길게 늘어섰다.

열 명, 스무 명 늘어나는 줄이 어느 사이에 백 명을 넘어섰다.

하지만 그 이후로는 가속이 붙어서 이백 명이 훌쩍 넘었고, 삼백 명, 사백 명, 그리고 천 명을 돌파해 버렸다.

소문을 듣고 온 기자들은 이런 특이한 광경을 취재하기 바빴다.

모델 하우스 취재하러 왔다가 오히려 그 열기에 집착한 것이었다.

“세상에!”

세상 사람이 모두 바보가 아니었다.

KM 전자, KM 건설, 오성 전자가 서로 힘을 합친 프로젝트라 기대가 높았다.

김홍수를 열심히 씹던 김홍수의 아내조차 슬쩍 입을 다물었다.

김홍수 일가족은 다들 혀를 내둘렀다. 그들은 갑자기 모델 하우스 앞에 늘어선 줄에 경악한 것이었다. 이런 줄은 처음이었다.

하지만 김홍수 일가족은 모델 하우스 안으로 들어가서는 화들짝 놀라고 말았다.

[애니 하우스는 미래형 아파트의 기준을 제공합니다. 음성 인식, 영상 인식을 비롯한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합니다.]

갑자기 들린 음성.

설명이 음성으로 이어졌다.

놀라운 것은 아파트 거실에 있는 TV가 자동으로 켜졌다는 점이다.

그 화면 안에는 엘프처럼 생긴 아름다운 아이가 나와서 설명을 시작했다.

애니가 손짓할 때마다 아파트 내에 있는 모든 전자 제품이 자동으로 동작했다.

냉장고, 전등을 시작으로 해서 오디오 쪽도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겉으로 봐서는 그저 외형상 쇼와 비슷해 보였다.

놀라운 것은 정말로 불편하지가 않았다.

직관적인 형태로 명령해도 동작은 아주 정확하게 했다.

손가락으로 허공에 손짓만 해도 커튼이 자동으로 움직였다.

앞뒤로 흔들면서 약간 변화를 줘도 놀랍게 인공지능이 알아먹었다.

집 구석구석에 설치된 CCTV 카메라를 통해서 말이다.

“아, 저게 KM 센서의 DVR이구나.”

그의 아내는 멍하니 모델 하우스를 구경했다.

“그게 뭐야?”

“컴퓨터가 영상 이미지를 해석해서 그 의미를 알아보는 거야.”

“맙소사 그런 것도 가능해?”

“그러게. 놀라운 일이지. 아날로그 CCTV에 비하면 혁명이나 마찬가지이니까.”

“아니, 내 말은 그런 기술이 있는데, 왜 사람들이 모르는 거야?”

“그거 KM 센서의 DVR 수출 때문에 뉴스에서도 난리였잖아.”

“아, 그게 그거였어? 하지만 가격이 워낙에 비싸서 국내에서는 팔지 않는다고 하던데?”

“옵션이 그렇잖아. 일반 기본형은 400만 원으로 저렴하니까.”

“헉? 4, 400만 원이라고? 아니, 그 가격이 저렴하다는 소리야?”

“그러게.”

김홍수 역시 헛웃음을 짓고 말았다. 하지만 그는 투자자 입장이었다. 회사에 수익이 많이 날수록 자신에게 이득이었다.

‘다만 KM 센서 주식을 못 구했어. 비상장 주식도 구할 수는 있다고 하던데, 나오는 주식 물량이 없으니.’

대안으로 선택한 것은 KM 센서 모기업인 KM 산업이었다.

실제로 KM 산업 주가는 KM 센서 때문에 20~30% 가까이 더 올랐다.

TV 화면 한쪽에는 이 커튼 시스템에 관한 설명이 쭉 이어졌다.

오동작하는 경우에 본인이 직접 손을 쓸 수 있도록 말이다.

“…….”

김홍수 일가는 다들 이제는 침묵했다. 너무 충격적인 기술에 그저 영문을 몰라서 어리둥절했다. 도대체 이게 어떻게 가능한지 알 수가 없었다.

“와, 세상 정말 많이 변했다. 한국 기업이 이런 것까지 다 만들 수 있다니!”

* * *

경악과 의문이었다.

그런데 이 애니 아파트 솔루션은 기술적으로 어렵지가 않았다.

인공지능 기술만 있다면 말이다.

물론 그 인공지능 기술이 문제였다.

이걸 상업적으로 구현하기란 당대 기술로는 불가능했다.

일반인이야 그 내막은 잘 몰라도 어렵다는 것 정도는 안다.

김홍수 일가족만 혁신적인 모델 하우스에 놀란 게 아니었다.

김홍수 일가 다음 순서로 모델 하우스에 들어온 재정경제원의 이환채 차관 역시 다르지 않았다.

“……!”

그 역시 너무 큰 충격에 빠져서 아무런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이건 좀 너무하네.”

조동석 과장이 툴툴거렸다.

“이 일 때문에 오성 그룹도 난리가 났습니다. 이 일에 전력을 기울이기 위해서 경기도 쪽에 있는 공장을 따로 재편했습니다.”

이환채 차관은 자신의 방문 소식을 듣고 미리 나온 권태성 실장을 의식하면서 조동석 과장에 반문했다.

“그 정도야?”

“네. 단순히 일부 공장을 재편한 것이 아닙니다. 이 애니 솔루션 제품을 위한 전략 거점을 만들면서 다른 사업부도 대대적인 구조조정을 진행했습니다.”

오성 전자는 전국에 분산된 공장을 한곳으로 모아서 다시 재편한 것이었다.

지역별로 재편 화해서 아예 지방화 시대를 대비했다.

언론에서는 연일 이 상황을 보고했다.

지방화 전략에 맞추어서 선제적으로 움직였기 때문이었다.

전자는 광주 쪽에, 중공업은 군산 쪽에, 신소재는 여천 지역으로 관련 인프라를 하나로 모았다. 반도체와 관련된 사업은 아예 수원 쪽으로 몰아넣었다.

이환채 차관은 그제야 얼마 전부터 오성 전자가 대대적인 구조조정을 진행한다는 소식을 들었다는 걸 떠올렸다. 그땐 그저 정부의 지방화 시대에 따른 조치라고만 생각했다.

“이미 작년에 구조조정을 했잖아?”

“그것과는 또 다릅니다. 아예 산업 인프라 자체를 선택과 집중을 통해서 경쟁력을 올렸습니다. 그 과정에서 대규모 구조조정을 진행한 터라 언론에서는 잘 모를 겁니다.”

사실 김우석 심의관도 최민혁 실장 때문에 안 사실이었다.

“정확히는 오성 전략 기획실에서 최민혁 실장을 벤치마킹한 것 같습니다. KM 그룹이 딱 이런 식으로 구조조정했기 때문입니다.”

“KM 그룹이라… 요즘 잘 나간다면서? 주가도 엄청 올랐다고 하고.”

“최근 조정장을 거치면서 KM 그룹 계열사 주가가 좀 내리기는 했지만, 작년과 비교하면 평균적으로 300% 이상 폭등했습니다.”

“…놀랍군.”

이환채 차관은 김우석 심의관에게 찬양에 가까운 최민혁 실장 관련 이야기를 들으면서 김홍수 일가의 분위기를 살폈다.

그들 반응을 보면 이 모델 하우스 가치가 어느 정도인지 알 것 같았다.

그리고 분양 신청과 관련해서 담당자와 협의하는 중에 이쪽저쪽에 전화하는 김홍수 일가의 모습을 보면서 김우석 심의관은 한숨만 내쉬었다.

“이런 아파트가 미분양이 될 리가 없겠죠.”

조동석 과장 역시 다르지 않았다.

“이런 아파트 가격은 설사 외환 위기가 와도 폭등할 것 같네요.”

“기가 막혀서 더 말이 안 나와. 최민혁 실장은 최악의 상황까지 다 고려한 것 같으니까.”

“그러게요.”

이환채 차관의 낯 뜨거운 이야기에 침묵하던 권태성 기획실장이 자세한 설명을 해주었다.

“이 아파트는 미래 지향적이면서도 가족처럼 편안한 분위기를 유도하고 있습니다. 기존 공동체와 같은 느낌을 반영한 것이죠.”

“…타사에서는 이런 시도가 없겠죠?”

“당연합니다. 우리 오성 전자로서도 상당히 부담스러운 프로젝트였습니다.”

단순히 들어간 비용만 200억 정도였다. 하지만 오성 전자 인프라를 다 합치면서 그것보다 두 배 이상이 들었다.

기존 오성 전자가 가진 가전 노하우가 없었다면 절대 불가능한 일이었다.

“KM 건설은 이 애니 하우스를 단순히 국내만이 아니라 해외 고급 하우스에 반영할 것이라고 합니다. 국내 시공에서 시행착오를 쌓아서 수출 쪽도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놀랍군요.”

“KM 건설의 시공 경험이나 기술은 국내에서 알아줍니다. 아마 효과가 나쁘지 않을 겁니다. 단가가 좀 비싸기는 해도 이 미래형 하우스 가치를 생각한다면 꼭 그렇게 보기 힘듭니다.”

“…그렇겠죠.”

이환채 차관은 멍하니 애니 하우스 이곳을 만져보면서 습관적으로 대답만 했다. 그는 이 애니 하우스도 최민혁 실장 작품이라는 것을 이미 들었다.

그는 최민혁 실장이 언제 이런 프로젝트를 진행할 수 있었는지 알 수가 없었다.

[도, 도착했습니다!]

드디어 나타난 이는 다름 아닌 최민혁 실장과 그 일행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