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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 3세는 조용히 살고 싶다-898화 (898/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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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태성 기획실장은 갑자기 한국으로 들어온 최민혁 실장을 따라서 다시 국내에 복귀했다.

그는 국내 복귀와 동시에 최민혁 실장의 동선을 계속 살폈다.

가능하면 접촉을 많이 하려고 했다.

이유는 생각보다 간단했다.

“TI 측 반응은 어때?”

임권수 부장은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반도체 회로와 제조 공정 일부를 침해한 것은 사실입니다. 그쪽에서도 추가 검토한 결과 우리 쪽과 싸워봐야 재미없다고 생각한 것 같습니다.”

“하긴 1년이나 질질 끌었는데, 이제는 포기할 때도 되었지.”

“아무래도 우리 쪽에서 공격적으로 나간 것이 유효한 것 같습니다.”

“그렇지. 다른 특허는 어때?”

“입출력 디바이딩 기술은 이미 사전 협상에 들어갔습니다.”

“그건 확실히 끝났군. 전압 컨버팅 회로 쪽은 여전하지?”

“그 부분은 자사 특허가 있다고 주장 중입니다. 실제로 특허 출원한 것이 있는데, 일부 특허가 서로 겹칩니다. TI가 이 문제를 걸고넘어져서 거꾸로 우리 쪽에 특허 침해로 고소했습니다.”

“쓸데 없는 짓을 하는군.”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우리 쪽에서 문제 삼은 특허 23가지 항목이 다 문제가 됩니다. 최소한 소송에서 유리한 위치를 두기 위해서 무리수를 둔 것 같습니다.”

권태성 기획실장은 만족스러운 얼굴이었다. 이번 TI 소송은 이전과는 사뭇 달랐다. 이전에는 수비적인 자세만 고수했는데, 공격적인 태도로 바꾼 것이었다.

‘이게 모두 최민혁 실장에게 배운 수법이니.’

그로서는 이걸로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판단이 서지 않았다.

이제까지 최민혁 실장을 상대로 싸우면서 매일 뒤통수만 맞다가 TI를 상대로 오히려 연속 잽과 스트레이트로 상대를 녹아웃시켰다.

사전에 이 특허를 조치하지 않았다면 오히려 TI에게 뒤통수를 맞았을지도 몰랐다.

실제로 TI에 어처구니없이 뒤통수를 맞아야 했다.

그런데 거기서 물러서지 않고 최민혁 실장에게 당한 경험을 토대로 역으로 공격한 것이었다.

권태성 기획실장은 그런 점을 굳이 고려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그는 때문에 국내에 들어와서도 최민혁 실장에 대해서 열심히 살폈다.

재정 경제원 역시 빼놓기 힘들다.

최민혁 실장을 상대로 계속 잽을 날리고 있었으니까.

‘최민혁 실장이 과연 어떤 반응을 보일까?’

그건 임권수 부장 역시 다르지 않았다.

“최민혁 실장이 아무리 재정 경제원이라도 두고만 볼 것 같지는 않습니다.”

“역시 보복하겠지?”

“네. 이번 단기 외환 쇼크가 최민혁 실장 솜씨라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이번 일이 사전 예행연습이었다면 본게임은 규모가 다를 겁니다.”

“설마 진짜로 외환 위기를 만들지는 않겠지?”

“…모르죠. 최민혁 실장 성격이라면 그보다 더한 짓도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최민혁 실장이라도 한국 외환 위기를 만들 수는 없어.”

“하지만 그러지 않고서야 뉴스에 나가서 외환 위기설을 남발할 수는 없습니다. 최민혁 실장이 예언가가 아닌 이상 그렇게 말하기 힘듭니다. 그보다는 그가 외환 위기를 만드는 것이 더 합리적입니다.”

“그게 정말 가능해?”

“…말이 그렇다는 이야기입니다.”

임권수 부장은 답을 하면서도 선뜻 자기 말에 공감하지 않았다.

재정 경제원에서 도와달라는 요청을 받은 것은 딱 이 시점이었다.

바로 최근 KM 건설과 준비 중인 새 아파트 관련해서였다.

‘애니 아파트는 갑자기 왜지? 아, 인허가가 며칠 전에 나왔구나.’

인공지능 관련 규제에 묶여서 모델 하우스조차 진행할 수가 없었다.

권태성 기획실장은 사실 최민혁 실장을 따라다니면서 다양한 활동을 했다.

그는 인공지능 애니 솔루션과 오성 전자 제품과의 융합 사업 기획안을 승인받아서 따로 이 프로젝트를 진행하게 했다.

오성 전자 내에 최고의 베테랑만으로 모아서 팀을 꾸린 것이었다.

결과는 바로바로 나왔다.

단가를 생각하지 않고 밀어붙인 결과였다.

권태성 기획실장은 이 성과에 만족하면서도 단가 때문에 골머리를 앓았다. 인공지능 관련 사업 영역이 이제 막 태동해서 규모의 경제가 만들어지지 않았다. 부품 가격이 너무 비쌌다.

그도 이 문제 때문에 골머리를 앓았는데, 답은 의외의 영역에서 나왔다.

인공지능 부품 단가가 비싸면 그게 문제가 되지 않는 곳이면 되는 거였다.

바로 아파트였다.

그는 결국 KM 건설 쪽에 공동 프로젝트를 요청했다. 최민혁 실장의 눈치를 보던 KM 건설은 권태성 기획실장 제안을 거절하지 못했다.

이번 일은 어렵지 않게 성사되었다.

개발도 어렵지 않았고 말이다.

KMBOOK에서도 이번 일은 긍정적으로 생각했다.

그들 역시 자신의 인공지능 시스템이 아파트에 적용될 것이라는 것을 예측했지만, 시간이 좀 더 필요하다고 봤던 것이다.

“…요즘 미분양 물량이 늘어나서 건설 경기가 안 좋은데, 분양 분위기는 어때?”

임권수 부장이 신나서 소리쳤다.

“말도 마십시오. 아주 초대박입니다!”

그가 내놓은 것은 모델 하우스와 관련해서 문의가 걸려온 것들을 정리한 보고서였다.

이번 아파트는 입소문이 나서 질의 요청이 끊이지 않았다.

권태성 기획실장은 왜 재정 경제원에서 도움을 청하는지 알 것 같았다. 안 그래도 우성 건설 파산 이후에 건설 한파가 지속적이었다.

거기에 우성 건설 파산 이후에 중단된 아파트 건설 때문에 피해를 본 서민이 맹렬하게 시위했다.

미분양 숫자는 급격히 늘어나고 말이다.

더욱이 최민혁 실장이 최근 언론에 나와서 금융 위기설을 터뜨리면서 상황은 더 악화하였다.

“…재정경제원에서 나설 만하군.”

“저도 한번 이 아파트 알아봤는데, 정말 경쟁이 장난이 아닙니다. 입주할 때쯤이면 최하가 1억, 적어도 2억은 껑충 뛴다는 이야기가 파다합니다.”

“그렇다고 불법으로 헛짓하지 마. 그러다가 걸리면, 사내 감사 팀에서 나설 테니까.”

“……!”

임권수 부장은 몸을 움찔 떨었다. 황광수 차장 역시 굳은 얼굴을 한 채 시선을 피하고 말았다. 그는 주섬주섬 일하는 척하면서 아예 대화를 외면했다.

권태성 기획실장은 고민하던 끝에 입을 열었다.

“아마 최 실장은 이 프로젝트를 알겠지?”

“알지 않을까요? 그래도 인공지능이 적용된 미래형 아파트이니까요. 이런 프로젝트는 아직 미국에서도 진행하지 않았습니다.”

“그런가?”

권태성 기획실장은 곰곰이 고민하다가 결국 자리에서 일어났다.

“혹시 간과할 수도 있어. 최민혁 실장에게 연락해 봐. 아니, 모델 하우스에서 보자고 연락해 봐. 우리 쪽에서 한 일도 적당히 설명 좀 하고.”

“알겠습니다!”

“KMBOOK 측에서 신경을 많이 썼다고 말해봐. 그러면 최민혁 실장이라고 해도 이번 일에 관심을 보일 테니까.”

“하하하, 알겠습니다.”

임권수 부장은 겉으로는 호탕하게 대답하면서도 내심 혀를 찼다. 그는 오성 전자를 동경해서 KM 그룹에서 이직했다.

그런데 정작 오성 전자에 와서는 최민혁 실장의 눈치를 봐야 했다.

그것도 그냥 눈치가 아니었다.

안재운 회장이 요즘 최민혁 실장에게 푹 빠져서 최민혁 실장에게 잘 보이려고 아주 저자세였다.

그런데 이런 분위기에 최민혁 실장에게 찍히면, 정말 오성 전자에서 잘릴 수도 있었다.

실로 참담했다.

‘차라리 KM 전자 쪽으로 옮길 것을 그랬나?’

새삼 후회가 되었다.

그 당시에는 가능한 일이었다.

지금은.

당연히 불가능했다.

황광수 차장도 안색이 좋지가 않았다. 그는 지시받지 않아도 알아서 움직였다. 신호음이 계속 가는 중에도 자신이 이러려고 오성 전자로 이직했나 싶었다.

다만 그도 상대가 전화를 받자 곧 표정을 바꾸어서 접대 모드로 전환했다.

[KM 전자 비서실이죠? 네, 저는 오성 전자 기획실에 근무하는 황광수 차장이라고 합니다.]

[어? 설마 황 차장님이세요?]

오혜정 비서였다. 그는 기억력이 좋아서 황광수 차장 목소리를 기억했다.

[…아, 네, 맞습니다. 다른 이야기는 나중에 하시고요. 지금 저는…….]

황광수 차장은 둘러대면서 용건을 말한다고 정신이 없었다.

임권수 부장의 표정이 영 좋지가 않았다. 그는 새삼 회사를 옮긴 것을 후회했다.

‘젠장맞을. 이렇게 될 줄 알았나?!’

* * *

최민혁은 오성 전자 기획 팀에서 온 메시지를 듣고는 고개를 갸웃했다.

그도 인공지능과 아파트를 결합한 브랜드에 대해서는 이미 이지수 박사에게 이야기해 뒀다. 정확히는 인공지능을 응용할 수 있는 분야에 대해서 말이다.

다만 구체적으로 뭘 하라고 언급하지는 않았다.

‘그냥 해!’ 정도였다.

지금 다급하게 해야 할 일이 많아서 확정할 단계는 아니었다.

그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한 가지 일 때문에 분석하던 기존 보고서를 살폈다. 특히 인공지능, 아파트 관련된 분야를 말이다.

당연히 보고서에는 해당 내용이 있었다.

정확히는 정식 보고서가 아니라 첨부된 보고서에 들어 있었다.

무려 백여 장이 넘는 막대한 분량이었다.

최민혁 실장은 인공지능 미니 드론에 정신이 나가서 그 항목을 다 볼 수가 없었다. 그는 첨부 요약본만 대충 살피고 넘어갔다. 지금 다시 살펴보고서야 오성 전자 측에서 요청한 자료를 발견했다.

‘KM 건설 쪽과 협업이라…….’

제안은 어려운 것이 아니었다.

KM 건설이 짓는 아파트에 인공지능 탑재형 모델을 집어넣는 것이다.

이 일은 KMBOOK이 적극적으로 나서서 도와주었다.

당연히 이지수 박사가 한 것이 아니라 그 밑에 실무진이 직접 한국으로 와서 이 프로젝트를 공동으로 진행했다.

‘아, 들어본 적이 있어. 그런데 벌써 결과가 나온 건가?’

그로서는 상황을 알 수가 없어서 조성돈 팀장을 호출해 봤다.

“맞습니다. 초기에 계획한 것보다는 많은 인력이 투입되어서 진행한 일입니다.”

“KM 건설이 아니라 오성 전자가 주도했다는 말이군요.”

“이상하군요. 오성 물산이 있잖아요? 그쪽이 KM 건설보다 덩치가 클 텐데요?”

“…최민혁 실장님 때문입니다.”

“제가요? 에이, 솔직히 KM 건설이 뭐가 예쁘다고 이쪽을 밀어줍니까? 차라리 오성 물산 실력이 더 확실하잖아요.”

“…권태성 실장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아무래도 최민혁 실장님의 눈치를 봐야 합니다.”

“아니, 연락해서 물어보면 되잖아요?”

“그때는 최민혁 실장이 꽤 정신없이 움직인 것으로 기억합니다.”

“아, 인공지능 미니 드론에 몰입할 때였나 보군요.”

“권태성 실장은 아무래도 최민혁 실장님을 부담스러워해서 다시 묻기는 그랬습니다.”

“쯧.”

최민혁은 혀를 차면서 도대체 자신이 뭘 어떻게 했다고 권태성 실장이 비를 맞은 강아지처럼 전전긍긍한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

조성돈 팀장은 가해자인 최민혁 실장이 전혀 모르는 것 같아서 한마디 해줄까 하다가 그냥 관뒀다. 이야기한다고 고칠 것 같지가 않았다.

‘차라리 저 모습이 훨씬 낫지.’

그는 결국 논지를 돌렸다.

“네. 이번 프로젝트는 오성 전자 내의 각 가전 사업부에서 S급 엔지니어가 투입되어서 기존 모델 수정과 통합 솔루션을 만들었습니다.”

요는 이랬다.

최민혁 실장 입장과 오성 전자 처지는 전혀 달랐다.

최민혁 실장은 애니를 통한 고부가가치 사업 쪽에만 집중했다.

하지만 오성 전자는 오히려 고급 가전 분야에 초점을 맞추었다.

처음에는 그저 신기술 정도였다.

그런데 이지수 박사의 애니 솔루션이 모듈 형식으로 바뀌면서 성능이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오성 전자 쪽에서 이 프로젝트에 참여한 이들의 분위기도 그에 따라 완전히 바뀌었다.

그들은 반드시 된다고 생각해서 최선을 다해서 밀어붙인 것이었다.

조성돈 팀장은 그 사정을 제법 알았다.

“저도 직접 가본 것은 몇 차례 안 됩니다. 다만 박상기 차장은 좀 다릅니다. 그는 거리도 가까워서 계속 오성 전자 연구소를 들락날락했습니다. 제가 중간에서 KMBOOK 쪽과 다리를 놔줬습니다.”

“그래요. 꽤 중요한 것 같은데, 제가 왜 그런 내용을 가볍게… 아, 아, 미안해요. 인공지능 미니 드론에 정신이 나가 있었군요.”

최민혁도 내심 혀를 찼다. 그는 자신이 관여한 일이 아님에도 이렇게 진지하게 일이 진행된 것에 놀랐다. 당장 오성 전자가 이 프로젝트에 쏟아 넣은 투자금만 무려 200억이 넘었다.

‘아니, 어쩌면 당연하지. 내 지시가 없어도 회사는 돌아가야 하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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