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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 3세는 조용히 살고 싶다-897화 (897/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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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우석 심의관은 후다닥 최민혁 실장 앞으로 뛰어와서 다시 사과해야 했다.

“최 실장님, 지난 우리 재정 경제원의 일에 대해서는 다시 한번 사과드립니다.”

“…….”

최민혁도 한숨을 내쉬고 말았다. 굳이 이렇게까지 해야 할 일인지 난감했다. 그가 아무리 놀라운 능력이 있어도 정부 정책까지 간섭할 수는 없었다.

기업과 행정부는 전혀 다른 법이다.

그는 더욱이 행정부를 잘 믿지 않았다. 그들은 지금은 꼬리를 말아도 언제라도 자기 뒤통수를 칠 수 있는 집단이었다.

“아니, 그 일을 잊는다고 쳐도 우리 회사가 아주 바쁩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최민혁 실장님이 시간을 낸다면 불가능한 일은 아니지…….”

“잠깐만요.”

최민혁 실장은 결국 다른 사람 시선 때문에 1층에 있는 소회의실 중 한 곳으로 그들을 데려가서 단호하게 말을 끊었다.

“단순히 에플을 돕는 것만이 아니라 산적한 문제가 많아요. CDMA는 시작일 뿐이죠. 당장 록히드마틴 같은 방산업체에서도 계속 연락이 오니까. 그런 기업이 한둘이 아닙니다.”

김우석 심의관은 화들짝 놀랐다.

“네? 그, 그게 정말입니까?”

“예를 든 겁니다. 우리 쪽에서 그만큼 시간이 없다는 이야기입니다. 재정 경제원 쪽을 도와줄 여건이 안 됩니다.”

사실 최민혁 실장도 자세한 것은 몰랐다. 다만 록히드마틴과는 얽힐 일이 없어서 모른 척하고 있을 뿐이었다. KMBOOK이 방산업 라이센스를 얻은 후에는 메이런 프로젝트에 집중한다. 더 이상의 사업 확장은 없었다.

“하지만…….”

“더욱이 단기 외환 쇼크 문제에 대해서는 솔직히 잘 모릅니다.”

“하지만 실장님이 지적한…….”

“그건 운이 좋았습니다.”

“그건 운으로 가능한 일이 아닙니다. 어느 정도 리스크에 대한 감이…….”

최민혁은 혀를 찼다.

“재정 경제원 내에서도 이야기가 나오겠지만 지금 당장은 괜찮습니다. 어지간한 외환 충격에도 잘 버틸 겁니다.”

“하지만 최 실장님은…….”

“제가 말한 것은 여러 가지 조건을 충족되어야 외환위기 상황이 올 겁니다. 그건 잘 아시잖아요?”

“그게 문제입니다.”

“아뇨. 그 일이 딱 맞는 경우는 흔치가 않아요. 행정부에서 무리수를 둬서 일을 만든다면 몰라도 말이죠. 그건 지금부터 조심하세요.”

“그 부분에 대한 자문을…….”

최민혁 실장은 버럭 소리쳤다.

“그건 제가 할 일이 아닙니다! 저보다 지금까지 재조사한 재정 경제원이 더 잘 알 겁니다. 그러니 그만 가세요.”

같은 말의 반복이었다.

다만 그럴수록 나오는 것은 재정 경제원이 한 실책뿐이었다.

김우석 심의관은 뒤늦게야 최민혁 실장의 반응을 보고 자기 잘못을 확실히 깨달았다. 그를 비롯한 다섯 사람은 벌떡 일어나서 90도로 허리를 숙였다.

“지난 일은 다시 사과드립니다. 지금 즉시 바로잡겠습니다.”

“괜찮습니다.”

“아닙니다. 책임을 물을 담당자는 즉시 책임을 묻겠습니다. 배 과장님이 지적한 인허가 부분도 바로 반영해서 즉시 처리하겠습니다!”

“…….”

최민혁은 다섯 사람의 반응에 잠깐 침묵했다. 솔직히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나름 통쾌했다. 마치 2주 동안 쌓인 변비를 정리한 사람 같았다.

그는 힐끗 김우석 심의관을 쳐다보았다. 다른 네 사람 역시 마찬가지다. 다들 재정 경제원에서 과장급 이상의 인물이었다.

그는 의아했다.

“정말 이해할 수가 없군요. 제가 아는 정부 공무원은 이런 사소한 문제에 집착하지 않습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는 겁니까?”

김우석 심의관은 움찔 몸을 떨고 말았다. 최민혁 실장 말이 틀리지 않았다.

실상 이번 일을 재조사하자는 쪽은 아이러니하게 이환채 차관 라인 쪽이었다.

그다음도 크게 문제가 없는 것 같았다.

일이 진행되면서 손을 써야 한다는 말이 나오면서 분위기가 바뀌었다.

그런데 이번 일과 관련해서 조사한 정부의 다른 기관들 반응은 달랐다. 그들은 이번 일이 그저 우연히 일어난 일이라고 반발했다.

실제로 그러했다.

단기 외환 혼란은 이전에도 몇 번 있었다.

지나고 나면 아무것도 아닌 일이었다.

오히려 이런 사소한 일로 분란을 일으키는 이환채 차관을 씹었다.

이환채 차관은 결국 자신이 최민혁 실장에게 했던 그 방식 그대로 다른 정부 기관에 의해 결딴나고 말았다. 그는 계속 다양한 근거로 의견을 피력하기는 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몇몇 기관의 실무진을 제외하고는 국가 핵심 실무를 담당한 기관들은 다들 이환채 차관을 회의적인 눈으로 보았다.

그렇다고 김우석 심의관이 행정부 내부의 부정적인 이야기를 할 수는 없었다.

최민혁은 굳이 더 자세한 질문을 하지 않아도 김우석 심의관의 얼굴을 통해서 재정 경제원 내부 사정을 추론할 수 있었다.

“…재정 경제원 일은 재정 경제원에서 알아서 하셔야죠. 도대체 외부인을 끌어들여서 무슨 일을 만들 생각입니까?”

“…….”

“그리고 다시 경고하지만, 재정 경제원이 다시 엉뚱한 수작을 부리면 그때는 가만히 안 있을 겁니다. 단기 외환 쇼크를 진짜 경제 위기로 만들어 드리죠!”

약간은 오버한 경고와 협박.

김우석 심의관은 최민혁 실장의 협박에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는 잠깐 고민하다가 결국 자리에서 일어나고 말았다.

그는 미련이 남는지 몇 번이나 최민혁 실장을 쳐다보다가 결국 자리를 떠나고 말았다.

최민혁은 왜 굳이 김우석 심의관이 자신을 찾아왔는지 알았다. 정부 기관 내의 이번 일에 대한 반응을 떠올리면서 피식 웃고 말았다.

‘그러면 그렇지. 공무원이 바뀔 리가 없지.’

* * *

이환채 차관은 최민혁 실장의 반응을 김우석 심의관을 통해서 듣고는 혀를 찼다. 다만 곧 그는 자신을 공격한 이들을 떠올리면서 이를 으드득 갈았다.

그는 설마하니 한국은행, 금융감독원 쪽에서 딴지를 걸 줄은 몰랐다. 아니, 다른 정부 기관 역시 다르지 않았다.

각 기관 내에 단기 외환 쇼크를 바라보는 시각차가 존재했다.

의견이 나왔을 때는 공감하는 척하던 이들이 막상 하자고 말하자 즉각 반박하기 시작했다.

소장파에 해당하는 이들은 이번 일을 좀 더 자세히 조사 할 것을 주장했고, 윗선 대다수는 일시적인 현상일 뿐이라고 주장했다.

이환채 차관이 괴로운 것은 이 때문이다. 이번 일을 자신이 최초로 공론화했다.

만약 별일이 없으면, 그건 그것대로 욕먹는다. 그런데 진짜 외환 쇼크가 발생하면 대비를 잘못한 자신이 책임을 져야 한다.

그는 김우석 심의관에게 길길이 날뛰면서 책상 위에 놓인 서류를 사방으로 던졌다.

“…….”

김우석 심의관은 주섬주섬 자기 서류를 챙기다가 포기하고 말았다.

조동석 과장이 나섰다.

“차관님, 그만하시죠.”

“내가 지금 진정하게 되었어?! IMF에서 어제 뭐라고 한 줄 알아?!! 한국, 중국처럼 외채를 많이 쓰는 국가 리스크 때문에 조기 경보체제 시행 초안을 발표했어. 그거 다 우리를 노린 거잖아!!!”

그랬다.

IMF가 명분으로 내세운 것은 멕시코 사태였다. 한국이나 중국 역시 금융 위기와 무관하지 않다고 봤다.

시기적으로 보면 참 묘했다.

재정 경제원 내부에서 단기 외환 쇼크를 조사하는 시점이었다.

김우석 심의관을 인상을 찌푸렸다.

“설마 우리 내부에서 흘린 정보를 가지고, IMF가 그런 발표를 했다는 말입니까? 아무리 그래도 우리 내부 정보를 외부에…….”

“당연하잖아. 그런 놈이 왜 없겠어?!”

“…….”

그는 딱히 반박하지 않았다. 만약 이환채 차관이 이런 말을 하지 않았으면, 딱 배신자 당첨이니까.

“뭐야? 그 시선은? 내가 배신이라도 할 것 같아서 그렇게 보는 거야?!”

“그, 그건 아닙니다.”

조동석 과장은 이야기가 자꾸 산으로 가자 슬쩍 나섰다.

“지금 당장 처리해야 할 일은 외환 위기가 오느냐, 안 오느냐를 판단하는 겁니다. 그런데 최민혁 실장의 이야기를 잘 들어보면, 지금 우리 경제 수준에서는 그런 문제가 생기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이환채 차관은 흠칫했다. 그도 일부 공감하는 부분이었다. 실제로 단기 외환 위기는 일시적인 현상일 뿐이라고 주장하는 이들 태반이 비슷한 이야기를 했다.

“계속해 봐.”

“그 말은 외부 충격 때문에 외환 위기가 올 수 있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제가 생각해 봤는데, 몇 가지 조건이 있었습니다.”

정확히는 여러 가지 조건이 있었다.

단적인 예가 수출 폭락이거나 오일 쇼크였다.

“그리고 우려스러운 부분은 단기 일본 자금입니다.”

“엔화 말하는 거야?”

“네. 1년 미만으로 국내에 들어와 있는 엔 자금 규모가 생각보다 큽니다. 이 부분만큼은 어느 정도 규제해야 합니다.”

조동석 과장은 실제로 일본 엔화를 차입한 기관과 관련된 리스트를 쭉 보여주었다. 여러 기관에서 취합한 정보라서 가장 정교한 자료였다.

하지만 이환채 차관은 눈살을 찌푸렸다. 엔화 차입은 단순한 일이 아니었다. 한국과 일본 정부가 합의한 내용이었다.

만약 이걸 건드리면, 일본 역시 한국에 준 특혜 몇 가지를 중단할 것이 분명했다.

지금 정권이 그걸 허락할 리가 없었다.

중요한 점은 이게 한국 경제에 도움이 된다는 점이다.

때문에 아무런 이유도 없이 이걸 갑자기 뒤집을 수는 없었다.

“그건 안 돼. 자네도 알잖아?”

“하지만 다른 건 몰라도 이건 정말 위험합니다. 엔화를 무차별로 차입할 때와 지금은 상황이 다릅니다. 엔화가 너무 많이 들어와 있어서 만약 그 엔화를 갑자기 빼버리면, 우리 외환 시장에 쇼크를 줄 수 있습니다.”

“그건 일본 정부와 합의가 된 사안이라서 어렵다니까. 이보다는 오히려 은행에서 크게 반발할 거야. 한국은행이 이 점을 명확하게 명시했어.”

“우리 국내 기관은 무시하죠. 일본만 보면, 그쪽 사정일 뿐이죠. 만약 일본 은행이나 일본 기업이 자기들 급하다고, 만기 연장을 안 해주면 절단 나는 겁니다!”

“…….”

이환채 차관은 입을 다물고 말았다. 조동석 과장 이야기가 전혀 신빙성이 없지 않았다. 아니, 어쩌면 일본 정부가 뒤에서 몰래 일본 은행을 부추길 수도 있었다.

‘하지만 이건 이야기가 달라.’

자신이 만약 일본 엔화를 공론화하면 경제와 관련된 모든 부처가 들고일어날 것이 분명했다.

“아니, 무슨 말을 해도 이건 안 돼. 말이 나와서 하는 말이지만 최민혁 실장 이야기 말인데, 주식 투자 관련해서는 인정해. 몇 가지 IT 기술 쪽도 수긍해. 하지만 실물 경제 영향력은 제약이 있어. 최민혁 실장은 그쪽으로는 의도적으로 신경 안 쓰는 것 같으니까.”

김우석 심의관이 제동을 걸었다. 그는 오늘 날짜 조간신문을 내밀었다.

“이걸 보시면, 좀 생각이 다를 겁니다.”

[KM 건설은 오성 전자와 손을 잡았다. 이들은 최근 미국 KMBOOK에서 출시한 애니 인공 지능 솔루션을 건설에 도입해서 미래형 아파트에 도전했다!]

대문짝만 하게 나온 기사.

조동석 과장은 그 기사를 보고는 화들짝 놀랐다. 그가 최민혁 실장의 불만을 바로 반영해서 며칠 전에 인허가 쪽에 손을 썼기 때문이다.

“맙소사. 벌써 반영된 겁니까?”

“그럴지도. 이미 준비가 다 끝나 있었나 봐. 인허가 해결되기가 무섭게 일을 벌였네.”

이환채 차관이 질문했다.

“도대체 무슨 소리야? 이 기사는 또 뭐고?”

김우석 심의관은 주섬주섬 KM 전자와 관련해서 방해한 일을 말했고, 며칠 전에 관련 부분을 다 없애도록 했다고 보고했다.

“최민혁 실장님과 딜을 하려고 했는데, 안 통했습니다. 그래도 도움이 된 것 같네요. 아무래도 이미 사전 준비를 다 끝내놓았던 것 같습니다. 인허가가 나오기가 무섭게 이게 나온 것도 이유일 겁니다. 이 정도면 실물 경제에도 영향을 주는 것이 아닐까요?”

이환채 차관은 기사를 허겁지겁 읽더니, 곧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성 전자 측에 연락해서 당장 도움을 청해봐. 애니 아파트 관련해서 정보를 듣고 싶으니까.”

“…네.”

두 사람 역시 양복 상의를 챙겨서는 이환채 차관 뒤를 따르면서 오성 전자 측에 전화했다.

* * *

권태성 기획실장은 최민혁 실장과 참으로 많은 일이 있었다고 생각했다. 그는 안재운 전무의 뒤를 봐주면서 최민혁 실장과 계속 접촉했다.

미국에 있을 때는 최민혁 실장과의 만남만을 생각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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