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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 3세는 조용히 살고 싶다-896화 (896/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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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한 사람은 뜻밖에도 정성근 대리였다.

그런데 그가 무슨 특별한 기술을 내놓은 것은 아니었다.

주파수와 위상 오프셋 알고리즘을 중간에 추가하는 기술을 사용했다.

그런데 이 기술은 이미 최민혁 실장이 퀄컴, ETRI 통해서 몇 차례 검증을 진행한 기술과 유사했다. 아니, 심지어 4~5차례 업그레이드를 더 진행했다. 게다가 특허 출원은 올해 초순에 했고 말이다.

캘리포니아 내에서 진행하는 CDMA 테스트에서 확인했다.

조성돈 팀장은 이 기술과 관련된 보고서를 한국 언론을 통해서 기사화했다.

결국 이슈는 불과 채 2주일을 넘기지 않았다.

“…그거 다 이미 최민혁 실장님이 했던 일 중의 하나입니다.”

“에이, 난 몰랐어. 솔직히 기획 팀에서도 그거 기억한 사람은 정 대리뿐이었어.”

“아닙니다.”

“그런 말 하지 마. 정 대리가 고생하는 것을 모르는 사람이 누가 있어.”

“…….”

정성근 대리는 배종대 과장 말에 황당해서 입을 다물고 말았다. 늘 자신을 공격하던 사람이 배종대 과장이었다.

하지만 배종대 과장 진심은 아니었다.

“내가 설마 정 대리의 뒤통수를 치겠어? 난 말이야 정 대리 앞통수를 칠 사람이야!”

“…그런 표현은 좀 자제해 주세요.”

“내가 바뀔 거로 생각해? 난 안 바뀌어. 나는 늘 변함없는 사람이니까.”

정성근 대리는 배종대 과장의 개소리를 그냥 무시해 버렸다.

다만 그는 배종대 과장의 진심을 읽을 수 있었다.

늘 알게 모르게 자신을 밀어준 사람이 배종대 과장이었다.

정성근 대리는 확실히 튀려고 하지 않았다.

이번 일 역시 박상기 차장을 통해서 팀 내에서 진행한 일로 처리했다.

배종대 과장은 정성근 대리의 행동에 혀를 찰 뿐이었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정 대리는 차장 진급해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아.”

“…….”

정성근 대리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가 한 일이 정말 많기 때문이다. 다만 굳이 나서지는 않았다. 괜한 오해는 사양이었다.

배종대 과장은 곧 걸려온 전화를 받았다. 다름 아닌 데스크 쪽이었다.

그는 다급하게 1층 로비로 내려왔는데, 정장을 입은 다섯 사람을 발견했다. 딱 봐도 보통 사람은 아닌 것 같았다.

데스크는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녀는 갑자기 찾아온 손님 때문에 이곳저곳에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저쪽에서 아무도 전화를 받지 않았다.

거기다 찾아온 사람이 누구인지 알자 다들 슬슬 피하고 말았다.

그녀는 결국 핸드폰 번호로 전화했는데, 그럼에도 아무도 전화를 받지 않았다.

외국 출장을 간 사람이 반이었고, 지방 출장을 간 사람이 대다수였다.

그나마 통화가 된 사람은 배종대 과장이었다.

“…재정 경제원이라. 따라오시죠.”

* * *

배종대 과장은 신기한 눈으로 자신과 걸음을 나란히 하는 두 사람을 쳐다보았다. 뒤에 따르는 세 사람은 낮은 직급이었다.

“재정 경제원에서 직접 우리 회사를 찾아올 줄은 상상도 못 했습니다.”

당연한 일이었다.

보통 정부 기관에서는 사기업을 호출해서 협의한다.

대체적으로 일방적으로 흘러간다.

정부 정책이 이러니, 기업은 알아서 잘 따라와 달라 식이다.

이렇게 말하면 대부분 알았다고 한다.

거절하는 경우는 거의 흔치 않았다.

그 반대로 사기업을 찾아가는 경우는 전례가 잘 없었다.

김우석 국제경제 심의관은 이환채 차관 대신에 이 자리에 나선 터라 어색하게 웃었다. 원래는 이환채 차관이 와야 하지만 최민혁 실장을 괜히 자극할 것 같아서 자신이 총대를 멨다.

그런데 그 역시 최민혁 실장을 비밀리에 만날 때는 괜찮았다. 하지만 이렇게 공개적으로 회사를 찾아오는 건 꽤 부담스러웠다.

아무래도 재정 경제원 직원이 개인 회사를 찾은 것 때문이다.

한국 언론사가 알면 논란이 나도 이상하지 않은 일이었다.

그는 때문에 주변을 이리저리 살폈다. 다행히 자신을 주목하는 사람은 그렇게 많지가 않았다. 그런데 그도 이러고 싶어서 그런 것이 아니었다.

“최 실장님이 저희 연락을 받지 않습니다.”

배종대 과장은 최민혁 실장의 기행에 그다지 놀라지 않았다.

“최 실장님이라면 그러고도 남죠.”

“…그렇습니까?”

“여러분은 상상도 못 할 겁니다. 아, 최민혁 실장님을 비난하는 게 아니라 우리 상상력을 아득히 벗어난 행보를 자주 보여서요.”

“그건 일이죠. 재정 경제원에서는…….”

“똑같습니다. 설마 최민혁 실장님이 여러분 속내를 모를 거로 생각하세요?”

“하아.”

김우석 국제경제 심의관은 한숨을 내쉬고 말았다. 자신들이 한 일이 있다. 솔직히 부끄러웠다. 하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정성근 대리는 배종대 과장이 헛소리할까 봐서 계속 눈치를 줬다.

하지만 배종대 과장은 눈치가 빨라서 알아챘다. 다만 그의 성격은 참는 타입이 아니었다. 그는 최민혁 실장이 재정 경제원 직원을 피하는 이유를 잘 알았다. 똥이 더러워서 피하는 거니 말이다.

“솔직히 재정 경제원 그쪽이 우리를 상대로 수작을 많이 부렸죠. 인허가 문제부터 시작해서 건설 쪽에도 시비를 걸었더군요.”

“네?”

“아, KMBOOK에서 고안한 인공지능이 우리 KM 건설 쪽에도 적용됩니다. 우리 KM 전자에서 조율해 KM 센서, KM 건설을 다 작업했죠. 그런데 이 시스템에 대한 허가를 아예 안 내주는 겁니다. 그런 항목이 없다고 우기면서 말이죠.”

그랬다.

인공지능과 관련된 부분은 아직 제대로 된 가이드라인이 없었다.

정부 관련 부서에는 이걸 문제 삼아서 계속 훼방을 놓았다.

그들은 인공지능 부분은 검토 중이라는 말만 도돌이표처럼 말했다.

배종대 과장은 결국 담당 공무원과 주먹까지 휘두르면서 싸우다가 결국 경찰서에 끌려갔다.

다행히 KM 전자 법무 팀이 잘 합의해서 일이 끝나기는 했다.

결국 기획 팀에서 알아서 정부 가이드라인을 만들어야 했다.

배종대 과장은 지난 일을 떠올리면서 대놓고 이를 갈았다.

“그거 아세요? 솔직히 우리가 인공지능이 뭔지 알 게 뭡니까. 건설 인허가는 또 압니까? 그거 다 공부해서 해야 해요. 아침에는 미국 전화 걸어서 자료 얻고, 점심때는 한국 정부에 전화 걸어서 필요한 서류를 확인해야 해요.”

저녁에는 관련 서류를 검토해야 했다.

별것 아닌 이 일에 한 달 밤을 꼬박 새워야 했다.

“그런데 정말 화가가 나는 건 재정 경제원이죠. 그쪽에서 계속 검토 중이라는 말만 앵무새처럼 반복하면서 퇴짜를 놓았죠. 완전히 돌아버리겠더군요.”

결국 KM 건설에 인공지능을 추가하는 일은 멈추고 말았다.

배종대 과장은 그런 일을 하나하나 떠올리면서 김우석 심의관을 막 씹었다.

“…….”

김우석 심의관은 마른침을 삼키고 말았다. 그는 배종대 과장의 이야기를 듣자 KM 전자 내부적으로 고생이 많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배종대 과장은 푸념을 멈추지 않았다.

“그거 아십니까? 우리 기획실이 정말 힘든 것은 인공지능 아파트 설계가 아니라 정부 인허가가 더 어려웠어요. 진짜 어려웠죠.”

정성근 대리도 처음에는 배종대 과장의 입을 막으려다가 지난 이야기를 듣자 슬쩍 이들 뒤로 물러나고 말았다.

그 역시 하고 싶은 말이 있었다.

다만 그걸 심의관 앞에서 하고 싶지는 않았다.

배종대 과장은 그런 면에서 참 자기 생각을 잘 표현했다.

상대가 불편해할 만한 진실도 비비 꼬아서 신랄하게 씹었다.

동행한 조동석 과장이 사과했다.

“죄송합니다. 저희 쪽에서 한 일은 아니지만…….”

“에이, 또 이런다. 설마 반대 파벌 쪽에서 일을 벌여 당신은 책임이 없다는 겁니까?”

“…아닙니다.”

배종대 과장이 차가운 어조로 소리쳤다.

“우리 최 실장님이 사람이 아주 좋아서 나쁜 소리를 안 했을 겁니다. 하지만 우리 기획 팀 생각은 많이 다릅니다. 당신들 정말 부끄러운 줄 알아야 해요!”

“…….”

두 사람은 결국 입을 쿡 다물고 말았다. 동행한 공무원은 일방적인 배종대 과장의 괴롭힘에 울컥해서 나서려고 했다.

하지만 김우석 심의관을 그들을 막았다.

‘…이 사람은 성질이 정말 엿같네.’

* * *

[정말 현실감이 없네요. 요즘 중소기업 정책이 정말 정책이기는 합니까?]

[그게 좀…….]

[자꾸 올해 타령 하는데, 작년에 파산한 기업이 얼마나 되는 줄 아세요. 영진 부도난 것은 뉴스에도 안 나오죠. 충청 은행이 500억 손실을 보면서 지역 경제는 줄초상 났습니다.]

실제로 관련되어서 파산한 기업은 수백 곳이 넘었다.

[문제는 이들 지역 기업이 부채가 너무 많았죠. 그런데 재정 경제원에서는 나 몰라라 했지. 아니, 언론사 입을 막아서 아예 기사로 나오지 못하게 했죠. 올해 우영 건설 파산은 이거 연장선이죠. 단기 외화 쇼크도 자연스럽게 터진 일이고!!]

사실 지역 경제의 몰락은 작년에 오히려 더 심했다.

뉴스가 제대로 나오지 않은 것은 재정 경제원이 막아서다.

이런 현상은 충남을 비롯한 전국적으로 광범위하게 나타났다.

상호신용금고를 통한 불법 대출도 많았다.

지역 경제 혼란을 막기 위해서 정보를 통제한 것이었다.

[…….]

김우석 국제경제 심의관은 식은땀을 흘리면서 슬쩍 입을 다물었고, 조동석 과장 눈치를 봤다. 두 사람은 배종대 과장이 저렇게 다양한 지식을 섭렵하고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

배종대 과장도 최민혁 실장 지시에 따라서 X 리포트를 검토하는 과정에서 얻은 지식과 추후 조사 과정을 통해 나름 안목이 생긴 것이었다.

조동석 과장은 시선을 피하고 말았다. 그 역시 들은 바가 있었다.

“…….”

오히려 최민혁 실장조차 살짝 놀란 표정을 한 채 배종대 과장을 쳐다보았다.

배종대 과장은 진지한 표정이었다. 주식 투자의 기본에 철저한 덕분에 지방 경제를 잘 안 것이었다.

하지만 최민혁 실장은 자신의 전생 기억에서 확인할 수가 없었다. 역시 자신의 인식을 벗어난 정보였기 때문이었다.

‘하긴 자잘한 기업에는 내가 관심을 안 뒀으니.’

다만 그는 신기한 눈으로 배종대 과장을 쳐다보았다.

그의 강점.

바로 사람을 갈구는 방식에 있었다.

솔직히 자신이 할 수 있으면 저렇게 하고 싶었다.

“…….”

최민혁 실장은 자신이 할 말까지 다 해주곤 이제 침묵한 배종대 과장 표정을 살폈다. 그는 배종대 과장이 자신을 대리해서 재정경제원을 질타해 준 덕분에 통쾌했다.

배종대 과장은 슬쩍 입을 열었다.

“조 팀장님은 실장님 수행원으로 나가 버렸고, 박상기 차장님은 이번에 영국 출장 나갔습니다. 혹시 필요한 것 같아서 여기 남았습니다.”

“후후후, 알았어요.”

실제로 기획 팀 대다수는 다 어딘가에 가버렸다.

심지어 그들이 신입 사원 역시 쪼개서 다 데려간 것이었다.

최민혁은 웃음이 터져 나오는 것을 참으면서 김우석 심의관을 쳐다보았다. 이제 자신은 굿캅 역할을 하기만 하면 된다.

“배 과장님 말이 좀 심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그 본질이 과장되지 않았습니다. 그 점을 이해해 주세요.”

“…죄송합니다.”

“아니, 여기까지 합시다.”

최민혁 실장은 축객령을 내려 버렸다.

“……!”

그냥 나가란 말에 다섯 사람은 패닉에 빠져서 어찌할 바를 몰랐다.

하지만 김명준 과장이 경호원을 데리고 와서 다섯 사람을 끌어내렸다. 그 역시 재정 경제원에 불만이 많았던 것이었다.

김우석 심의관은 수십 년의 공무원 생활 동안 이런 일은 처음이라서 크게 당황했다.

이제까지 갑질만 일삼아왔다.

그런데 갑질을 당할 줄은 상상도 못 했다.

하지만 최민혁 실장은 진짜 얄짤 없었다.

그는 더 그들과 이야기하지 않았다.

‘재정 경제원 쪽은 신경 쓸 바가 아니지.’

* * *

최민혁은 재정 경제원이 저자세로 나오자 오히려 이번 기조연설에 추가로 방해될 요인에 대해서 곰곰이 생각했다.

그는 여러 가지 요인을 생각해 보다가 이대로 두고 보기보다는 시선을 끌 만한 요소에 대해서 한번 짚어보았다.

‘이왕이면 최문경 부회장이나 샐로먼 브러더스가 집착해야 할 일이야.’

KM 센서와 같이 수익이 나는 사업 가지고 작업을 해서는 곤란했다.

차라리 신사업이 나았다.

그런데 마땅한 대상이 잘 나오지 않았다.

그는 결국 별다른 결과 없이 퇴근해야 했다.

그런데 KM 전자 본사 입구에는 놀랍게도 아직 김우석 심의관이 집 나간 아내를 기다리는 남편처럼 최민혁 실장을 멍하니 기다리는 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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